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36)
벨브로크 토벌전 (4)
예정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으리란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갑작스럽게 벨브로크가 들고일어나 섬을 뒤집어 놓는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재빠르게 판단해 움직일 수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시나리오와는 미묘하게 다르게 비틀려진 이 흐름도… 이젠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졌으니까.
그러니 일단은 움직여왔다.
예니카 페일로버가 한 달이나 빨리 벨로스페르에게 잡아먹혀버릴 때도, 로르텔 케헬른이 엘테 케헬른에게 잡혀버릴 위기에 빠질 때도, 루시 메이릴이 예정과는 다르게 흑막으로 몰리지 않아도, 성녀 클라리스가 타락하지 않아도, 크레핀이 예정과는 다르게 로스테일러 영지에 메뷸러를 풀어놓아버렸을 때도…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따라 최적의 대처를 해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매번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적의 존재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쓰러트려야할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고, 그들을 제압하기 위한 수단 또한 알고 있었으며, 최종적으로 무엇을 준비해야하는지 미리 정리해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품실 창문 밖으로 드러난 상대의 모습은… 그런 모든 규칙으로부터 초월해있는 존재다.
대현자 실베니아 로베스테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일컫어지며, 많은 마법적 연구 기록과 업적을 남기고, 이 실베니아 아카데미를 세운 장본인이자, 성위 마법의 대가.
그리고… 먼 과거 속의 인물이다.
그녀는, 현재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인물이다.
설정 상, 아직 지금처럼 마법 영역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 시대의 인물로 나오는 마법사다.
그리고… 이 아켄섬의 심해에 봉인된 벨브로크의 봉인 마법을 유지해왔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나는 현자의 봉서에 깃펜으로 휘갈겨진 글씨를 다시 한 번 확인해보았다. 급하게 갈겨쓴 티가 역력하게 나고 있지만, 어쨌든 이 메시지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를 향한 것이란 사실 만큼은 확인할 수 있었다.
실베니아 로베스테르는 나라는 인간을 의식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으로 날 불러낸 자가 실베니아 로베스테르 본인이라는 투다.
그러나, 굳이 번거롭게 이 현자의 봉서에 메시지를 남긴 이유는 무어란 말인가.
본인이 직접 날 불러냈다면, 내 앞에 나타나서 모든 사정을 설명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날… 찾아내지 못했다…?”
떠오르는 가능성은 몇 없다.
“아니면… 신변에 큰 변화가 생겼다.. 예를들면…”
비품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실베니아의 모습.
깨지고 금이간 복도 창문을 배경으로, 화려한 문양이 잔뜩 새겨진 로브를 뒤집어 쓴 채 머리를 풀어헤치고 있는 그 광경.
창문 밖으로는 벨브로크가 날뛰고, 루시의 온갖 고위 마법이 작렬하는 세기말적인 모습이 펼쳐져 있다.
그 풍경을 배경삼아서, 실베니아는 기괴한 웃음 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척 봐도, 구전되어온 대현자 실베니아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광기에 휩싸여 깔깔 웃는 그 모습에… 벽에 처박힌 레이첼 부교장은 눈을 부릅떴다.
그제서야, 난데없이 트릭스관에 난입해 학사 핵심인력을 모두 제압해버린 이 소녀의 정체가… 예상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척봐서 바로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전해져 내려오는 모습과는 많이 변해있는데다가, 애초에 먼 과거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를 바로 알아보라고 하는 건 너무 불합리 하다.
“당신은…”
희미해져가는 정신 속에서, 레이첼이 뭐라 말을 하려했지만… 그 순간 실베니아의 표정에 어둠이 깔린다.
깔깔 대며 웃어대던 방금 전과는 달리, 소름돋을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로 대현자가 말을 내뱉는다.
“고생 많았어.”
웃음기가 확 없어진 목소리. 그 온도차에 레이첼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제 쉬렴.”
그렇게 레이첼의 심장에 중위 빙결 마법 ‘얼음창’ 두어발이 꽂혔다.
사실상,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최종 결정권자로서, 모든 상황을 통제해야할 자의 죽음이었다.
복도에 정적만이 감돌았다.
이따금씩 벨브로크가 내지르는 포효소리와, 학사 전체에 울리는 전투음, 그리고 마물족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오는 마법진이 펼쳐지는 소리 따위만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복도의 중앙에서 잠시간 광기에 찬 웃음을 몇 번 흘리던 실베니아는, 이내 뚝 그 웃음을 그치고 다시 정색한다.
그리고, 주변을 천천히 둘러본다. 아직 트릭스관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비품실 안에 갇힌 학생들은 모두 숨을 머금고 있다.
정리용 선반 밑에 들어가 있는 학생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입을 꽉 누른채 공포에 찬 신음소리를 어떻게든 눌러참았다.
구석 벽에 기대어있는 테일리도 어떻게든 밀려올라오는 고통을 꾹 참으며 상처를 눌렀다. 아일라 또한 마른침을 연신 삼켜대면서 테일리 옆에 꼭 붙어 있었다.
그 외 다른 전투부, 연금부 소속 학생들도 여기저기에 숨어서 비품실 창문 밖으로 실베니아의 모습을 보았다.
실베니아는… 천천히 복도를 가로질러서 걷는다.
가만히 창밖을 쳐다보고 있다가, 고개를 휙 돌려 비품실 문 쪽을 본다.
레이첼 부교장이 마지막으로 구현해놓은 위장 마법 덕에, 그냥 평범한 벽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실베니아 로베스테르는 마법 분야에 있어선 그 어떤 역사적 인물들도 빗댈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경지에 오른 자다.
고개를 푹 숙이더니, 이내 다시 몸을 뒤틀 듯이 일으키면서 비품실 문쪽으로 걷는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걷듯이 비품실 문 쪽으로 다가와, 유리로 된 창문에 툭 머리를 박는다.
이마에 유리 특유의 차가운 감촉이 올라오자, 실베니아의 입꼬리가 소름돋을 정도로 휙 올라간다.
산발된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눈, 그 안광, 비죽비죽 솟아있는 실핏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 광기의 대현자가, 빙그레 웃으며 벽을 보고 이야기한다.
“──여기 뭐가 있네.”
“다 엎드려!!!”
– 쾅!!
실베니아가 어떤 행동을 취하기 전에, 내가 먼저 마력을 끌어올려내어 중위 마법 ‘일점 폭발’을 입구 쪽에 쏟아부었다.
너무 근거리에서 쓴 마법이라 다른 학생들이 말려들 여파도 있었으나, 그런 걸 신경쓸 여유는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확실하게 다 죽는 상황이다.
“꺄아아아악!!”
아일라가 자기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지르고, 테일리는 그런 아일라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다른 학생들도 모두 방어 태세를 취하며 폭발에 휘말리는 것을 대비했으나, 그 폭발의 여파가 퍼져나가는 일은 없었다.
-화아아아악!
내가 발현시킨 폭발은, 순식간에 성위 마법에 휘감겨 사라지고 말았다. 마치 블랙홀에 빨려들어가기라도 한 듯이, 말 그대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고위 성위 마법 ‘소멸’.
마력이 담긴 그 무엇이든 간에, 존재 자체를 세상에서 없던 것으로 돌려버리는 마법.
상성이 없고, 대처가 불가능 하며, 사실상 그 위력을 무력화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성위 마법의 특징이다.
세계의 법칙에 따르면 이 거대한 열과 폭발은 주변을 통째로 날려버려야 함이 맞지만, 실베니아의 성위 마력에 잡아먹혀버린 내 힘은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다만, 문 언저리 만큼은 확실하게 폭발시켰다. 실베니아가 들어올 입구를 마련해준 셈이다. 어차피 자기 마법으로 부수고 들어왔겠지만.
“여깄네.”
비품실에 숨어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숨을 집어삼키며 뒷걸음질 쳤다.
“너희들… 저 간사한 여우가 숨겨둘 정도면 뭐라도 있는 아이들이구나. 혹시 모르니까… ‘변수’를 제거해둘 겸, 없애둘까.”
실베니아를 중심으로 요동치는 마력의 양은, 이미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다.
비죽비죽 솟아올라가는 입꼬리는 희열 비스무리한 감정이라도 느끼는 것일까.
실베니아가 다른 행동을 취하기 전에, 나는 얼른 마력을 끌어모아 다시금 ‘일점폭발’을 구현해냈다.
그러나, 이번에 그 마력이 향하는 곳은 반대쪽 내벽이다.
-콰앙!!!
반대 방향을 부수자, 외부로 이어지는 거대한 통로가 뚫렸다. 밀려들어오는 외풍에 순간적으로 옷깃이 펄럭댔다.
“다 뛰어내려!!”
나는 학생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가장 먼지 테일리의 멱살을 집어올렸다. 상처 때문에 밀려오는 고통에 테일리가 미간을 찌푸렸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외벽 구멍으로 테일리를 집어던져버렸다.
4층 높이다. 크게 다쳐도 이상하지 않을 높이지만, 나는 바람 마법을 구현해서 어떻게든 테일리를 착지시켰다.
그 광경을 본 학생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뛰어내렸다.
죽음의 공포는 사람을 망설이게 만든다. 4층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건 쉬운일이 아니지만, 당장 목전에 다가온 실베니아의 공포가 훨씬 더 두렵다.
각자 바람 마법을 구현하며 뛰어내린 학생들은 바닥을 몇 번 구르며 다칠지언정, 목숨에 지장이 가지는 않았다.
“…”
물론, 학생들이 다 탈출할 때까지 실베니아가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팔을 휙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마력의 파동이 비품실 전체에 가득했다.
나는 아직 탈출하지 못한 아일라를 보호하면서, 덩달아 외벽 쪽 구멍으로 뛰쳐내려갔다.
– 콰앙!!!!!!
방금 전까지 모두가 들어가 있던 비품실을 중심으로 거대한 폭발이 터져나왔다.
실질적으로 실베니아가 마법을 발현하는데 들인시간은 채 1초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겨우 그 정도 시간을 들여 발현한 마법이라기엔 너무 위력이 막대하다.
트릭스관의 4층 전체가 터져나갔다. 거대한 폭발이 일대를 한 번 더 뒤덮고 나니, 터져나간 건물의 잔해가 트릭스관의 앞마당으로 쏟아져 내려왔다.
– 쾅! 콰광!
“꺄아아아아악!”
몇몇 학생들은 잔해에 부딪혀 큰 상처를 입었으나, 대부분은 어떻게든 회피하거나 막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트릭스관 앞마당에 제각기 퍼져서, 도래한 재앙을 올려다 본다.
박살난 트릭스관.
실베니아의 마력에 휘말려 허공을 부유하고있는 수많은 잔해들.
하늘에는 수많은 마법진들이 수놓아져 있다. 대부분은 마물족들이 튀어나오고 있는 벨브로크의 마법진이다.
학사 전체에 퍼져나가는 전투음과 폭발음 사이에, 이제는 옥상과 별반 다를 게 없어진 트릭스관의 4층에 서서… 실베니아가 세상을 내려다본다.
*“꺄악!”
“살려줘…! 죽기 싫어! 죽기 싫다고…!”
“도망쳐! 모두 도망쳐! 여기 가만히 있으면 다 죽어!”
비품실에서 뛰쳐나온 학생들은 모두 언덕 아랫길을 따라 달아났다. 일부는 전력질주로 달리고, 다친 사람들은 절뚝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려고 했다.
다친 상태로 도망쳐봐야 마물족을 마주치면 개죽음이다. 혼비백산해서 각자 다른 방향으로 도망가는 것보단, 뭉쳐서 도망쳐야지 그나마 생존 확률이 늘어난다.
그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으나, 워낙 혼란한 상황인지라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결국 학생들은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다들 다른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큭, 크윽…! 저, 저건…!”
상처를 꽉 움켜쥐며 자리에서 일어선 테일리가 트릭스관을 올려다 본다.
바보가 아닌 한 척 보면 알 수 있다.
저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도망쳐야만 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테일리 맥로어는 검을 뽑아들었다. 상처투성이일지언정 부들부들 떠는 몸을 일으켜서라도 상대에게 맞서려고 한다.
애초에 저 소년에게 도망이라는 선택지는 없다. 그 어떤 시련이 찾아오든, 온힘을 끌어내서 맞부딪힐 뿐이다.
용기와 만용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남이 그러다 개죽음 당하는 것이야 내 알 바 아니긴 하나, 적어도 테일리만큼은 살려놓아야만 했다.
나는 온 몸의 마력을 끌어내어, 다시 한 번 더 메릴다를 소환해냈다. 한 번 한 번이 막대한 마력을 잡아먹는 고위 정령 소환은 슬슬 몸에 부담을 주기 시작하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 화아아아아아악!
그러나, 마력을 끌어올렸지만 메릴다가 받아들이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어렵사리 구현해낸 메릴다의 모습을 보았다.
늑대의 형상을 하고 있지조차 않다. 늘 그렇듯, 백발의 머리칼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뒤로넘긴 인간의 형상으로… 트릭스관을 올려다보고 있다.
“야, 메릴다!”
나는 나자빠진 몸을 얼른 일으켜서 메릴다에게 달려나갔다. 인간 형태의 메릴다의 양 어깨를 꽉 쥐고, 눈을 마주친 채 이야기 했다.
“정신 똑바려 차려!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다 죽어!”
[ 어, 읏… 그렇지만… 저건… ]메릴다와 실베니아는 각별한 친우 사이라는 사실이야 알고 있었다. 제 아무리 긴 세월을 살아와, 매사에 여유롭게 굴며 모든 것을 관조하는 정령이라지만… 이런 상황이 되고나니 당황하고 만다.
그러나, 당황하면서 낭비할 시간조차도 아깝다.
“잘 들어, 메릴다. 넌 저게…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걸로 보이냐?”
나는 메릴다의 양 어깨를 꽉 누르면서, 호흡을 맞추며 진정시켰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트릭스관을 바라본다. 도망쳐 나가는 학생들을 보며… 입술을 비틀며 웃음을 짓는다.
저렇게 혼비백산한 상태로 도망쳐봐야 마물족과 맞딱트려 개죽음 당할 뿐이다.
도망치지 않고 맞서려 드는 몇몇 학생들 또한, 상대조차 되지 않는 수준들의 학생들 뿐이다.
[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 ]이윽고 조금 더 침착해진 어조로 메릴다가 겨우 목소리를 내뱉었다.
[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들어봐야 할 거 아니야… ]메릴다의 말 자체도 일리는 있다.
적어도 메릴다는 저 광기에 휩싸인 마법사와는 구면이다. 메릴다를 내세워서 뭐라도 이야기를 풀어가보면, 조금이라도 상황이 호전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도 트릭스관 옥상에 올라서 있는 실베니아는… 메릴다를 알아본 것 같은 기색이 없다.
그토록 각별한 친우 사이였다고 하는데, 제 아무리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더라도 메릴다의 마력을 느끼지 못했을 리는 없다.
불길한 느낌이 흐른다.
나는 다시금 인상을 찌푸리면서, 메릴다의 어깨를 꾹 누르며 이야기했다.
“섣부르게 움직였다간 일격사 당한다. 그 정도 능력이 있는 상대인 건 너도 척 보면 알잖아.”
메릴다를 알아볼 수 있는 상태인지는 차치해두고서라도,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보였을 때 바로 대처할 수 있는 상태는 유지해야만 한다.
메릴다는 잠시간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다가, 이윽고 지그시 감았다 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메릴다의 심리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비상사태였다.
대현자 실베니아가 그 거대한 지팡이를 슬쩍 들어올린다.
하늘을 향해 샘솟은 마력의 흐름이, 아켄섬의 상공을 뒤덮는다. 이 다음 무슨 행동을 취할지 알 수가 없다. 사전 정보도 없고, 행동 원칙도 전혀 유추가 안된다.
확실한 건, 가만히 놔두면 안된다는 것이다.
“도망쳐라.”
나는 팔을 걷어 붙이고, 손목을 몇 번 꺾었다. 아직은 몸에 무리가 오는 정도까진 아닌 것 같다.
검을 뽑아든 테일리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뭐라고요…?”
“저건 내가 어떻게 시간을 끌어보든 해볼테니까, 일단 교수동 쪽으로 내려가서 저 하늘에 용부터 해결할 방법을 찾아. 네 동료들 다 끌어모아서, 방법을 강구해보라고.”
“저걸…. 저 마법사를… 어떻게… 하겠다는거에요..? 방법이 있어요?”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없다.”
혼자서 패퇴시킬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가능한 한 이 아켄섬 안에서 모든 전력을 다 끌어 모아도 상대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허나 확실한 건, 일단 테일리가 벨브로크를 토벌해야만 뭐라도 가능하단 것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은… 아직 벨브로크가 봉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실베니아가 저렇게 미쳐 날뛰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벨브로크가 아직도 봉인을 깨지 못하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지 모른다.
테일리는 벨브로크의 심장을 벨 수 있는 검성의 힘을 지녔다.
적어도 내 계산이 맞다면… 지금 시점의 스펙만으로도 벨브로크의 심장을 벨 수는 있다.
수많은 패턴을 파훼해가며 벨브로크의 심장 앞에 도달하는 것이 힘겨울 뿐이다. 아직 봉인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지금 상태라면… 어떻게든 된다.
그 동안 실베니아는 내가 어떻게든 해결한다.
어떻게? 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방법은 모른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아는 무대는 모두 끝났다.
에 기록되어 있던 모든 여정은, 이 벨브로크 토벌전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된다.
이후의 이야기 따위는 모른다. 대현자 실베니아가 왜 여기에 강림해있는지도 모른다.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다.
─사실, 아는 게 이상한 것이다.
인생사 대부분의 일이라는 게 그렇듯이… 삶이란 미지의 영역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이 실베니아 아카데미에서 생활하면서, 원래라면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든 정사를 알고, 보통 사람이면 알 수 없었던 수많은 정보를 미리 파악해… 그 정보 우위로 어떻게든 버텨왔던 시간도 이제 끝이 났다.
당면한 위기는, 오롯이 내 힘과 능력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그게 얼마다 막막한 벽이든… 뚫어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원래 삶이란, 미지와 맞서 싸우는 투쟁의 연속이다.
근 몇 년간 모든 미래의 흐름을 미리 알고 대처해온 삶에 익숙해져서, 그 본질을 잊어선 안된다.
“네 일행들을 최대한 많이 찾아내서, 벨브로크를 토벌하러 가라.”
“에드 로스테일러…”
테일리는 잠시간 검을 늦추고, 팔을 걷어붙인 나를 쳐다보더니 이야기했다.
“안돼요. 이건… 혼자 감당 가능한 상황이 아니잖아요. 당신과는 악연만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거에요.”
“긴 말 하지말고 가라. 여러 번 말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당연히, 시련의 검성 테일리 맥로어는 이런 상황을 놔두고 도망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그가 아니라 아일라 쪽을 쳐다보았다.
아일라한테 대부분의 상황은 모두 설명해 두었다. 내가 쏘아붙이듯 노려다보자, 아일라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테일리의 팔을 잡아 끌었다.
“테일리! 지금 당장 학사동 쪽으로 가야해!”
“아, 아일라..!”
“빨리! 벨브로크를 상대할 수 있을만한 사람은… 너밖에 없어…!”
“아무리 그래도, 저런 괴물을 혼자 상대하라고 놔두고 가란 말이야? 원수 같은 사람일지라도, 죽으라고 놔둘 수는 없어!”
“죽으라고 놔두는 게 아니야, 테일리!”
아일라는 테일리의 옷깃을 꽉 움켜쥐고 잡아당겼다.
“에드 선배님도,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거야! 그걸 알아야해!”
“뭐…?”
“잔말 말고… 빨리 가야해! 시간 별로 없어!”
아일라가 그렇게까지 테일리를 잡아 끌려고 하자, 테일리는 나와 아일라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제 아무리 악연이 많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죽으라고 두고 도망칠 수 없는 테일리의 품성은 이해한다.
그러나, 지금은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다. 상처를 치유하고, 재정비해서, 벨브로크를 토벌하러 가야되는 인물이다.
그 과정까지 참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일단은 살려서 내보낸 것에 의의를 둬야지.
온 몸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온다.
나는 가지고 있는 모든 마공학용품을 꺼내들면서, 테일리에게 쫓아내듯이 손짓을 몇 번 하는 것으로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았다.
“…”
테일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이윽고 이를 악물고 길을 따라 뛰어내려갔다.
아일라 또한 고개를 꾸벅 숙이고, 테일리를 이끈 채 교수동 쪽으로 달려나갔다.
확실한 건… 일단 아일라가 붙어 있으면 최소한 테일리가 헤맬 일은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부분이다.
나는 얼굴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고 마른세수를 하며 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리고 그대로 앞머리를 화악 쓸어올리며, 미간에 힘을 꽉 주고 트릭스관을 올려다 보았다.
모두가 도망치고, 홀로 전의를 잃지 않은 채 자신을 노려보는 모습이 감명 깊었던 것일까.
대현자 실베니아는, 지팡이를 휙 내리며 막대한 양의 마력을 끌어올린다.
승리 가능성은, 한 없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두 다리를 굳건하게 땅에 붙인 채 똑바로 서있었다.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그것으로 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