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39)
벨브로크 토벌전 (7)
황실의 위용을 상징하는 으리으리한 크기의 마차가 길가에 넘어져 있었다.
휘황찬란한 장식품들은 이미 때가 잔뜩타고 피까지 튀어서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져 있었다. 바퀴는 뽑혀서 주변 풀숲을 구르고 있고, 문도 덜렁거리고 있어서 더 이상 마차로서의 역할은 기대하기 힘들어 보였다.
그 옆에서 드레스 자락을 끌며, 셀라하 에이니르 클로엘은 넘어진 마차 잔해의 뒤쪽에 숨어 있었다.
셀라하 황녀를 호위하던 호위기사 다섯명 중 둘이 죽었고, 마부도 이미 마물족에게 당해서 비참하게 숨을 거두었다.
셀라하 황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공회전 하는 마차 바퀴를 슥 쳐다보고는, 살아남은 호위 기사들에게 물었다.
“황족 숙소 쪽이 습격 당했다라? 아바마마의 안전이 위험한 상황이로구나.”
“예. 그렇습니다. 저희 쪽은 마물족이 거의 떨어지질 않아서 목숨을 부지할 순 있었습니다만, 아무래도 황족 숙소는 고위 마물족 여러 개체가 급습했다고 들어서…”
셀라하 황녀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고는 다시금 상황을 정리했다.
주변을 보면 온갖 마물족의 시체가 가득하다. 상대적으로 미약한 세력이었지만, 호위병사 너덧명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양이었다.
어떻게든 목숨줄을 유지하기는 했으나, 황족 숙소가 뚫렸다는 말이 계속해서 가슴에 밟혔다.
이윽고, 피가 묻은 레이피어를 갈무리해서 집어넣은 집사장 데스트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전서구가 날아온 것을 보면 어떻게든 방어선을 유지하고는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페니아 황녀님의 호위장 클레르님께서 사망하셨다는 소식이 적혀있었습니다.”
“그렇군… 페니아는 강력한 아군을 잃었구나. 그 기사는 언제나 페니아 편이었는데… 황권 세력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겠군…”
셀라하는 그렇게 이야기하고선, 지옥을 구현해놓은 듯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마당에… 황권 경쟁 같은게 중요할까 싶긴 하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셀라하 황녀님. 현재 학생 광장 쪽과, 생활동 쪽에 여러 주둔지가 형성되어 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그 쪽으로 합류한다면 좀 더 안전을 기할 수는 있을겁니다.”
“말 같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구나, 데스트. 아바마마의 안전이 확보가 안됐는데, 나부터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란 소리더냐?”
셀라하는 옷깃을 한차례 털고선, 데스트를 질책했다.
“멍청한 놈.”
“죄송합니다.”
“나는 황족이니라. 피를 흘리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황족 숙소로 향해야겠다. 아바마마의 안전을 확인해야겠어.”
마차를 타고 꽤 먼 거리를 나왔으나, 어쨌든 도보로 돌아가지 못할 정도의 거리는 아니다.
문제는 가는 길에 마주칠 수많은 마물족들을 뚫어낼 수 있냐는 것이다.
생존한 호위병들은 모두 지쳐있고, 집사장 데스트는 비교적 멀쩡하지만 저 많은 마물족을 다 상대해낼 수 있을 리는 없다.
“뭔가, 방법을 강구해봐야 할 터인데…”
셀라하가 턱을 괴며 생각에 잠기려는 순간이었다.
– 쾅! 콰가가가가가가각!
– 화아아아악!
그 순간, 무언가가 추락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교수동 쪽으로 향하는 외진 길목, 풀숲에 무언가가 추락하는 듯한 소리였다. 셀라하 황녀 일행이 있는 곳에서는 곧바로 보이는 위치였는데, 커다란 시조새 모양을 한 정령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커, 허윽!”
거기서, 에드 로스테일러를 꽉 끌어안은 예니카 페일로버가 구르듯 내려온다.
정신을 잃은 에드의 머리를 안은 채, 생채기가 가득한 상태로 기침을 내뱉는 예니카. 이미 많이 지쳐보이는 상태이건만 여전히 새로운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제서야 셀라하 황녀는 다시금 상공을 올려다 본다. 예니카를 쫓아드는 엄청난 수의 비행 마물족이 한 눈에 들어왔다.
지금 아켄섬 상공은 거의 지옥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다. 백단위를 넘어서, 수천 단위의 마물족이 상공을 부유하며 닥치는대로 사람을 습격하고 있는 와중이다.
예니카 페일로버는 혈혈단신으로 그 안을 돌파해온 것이다. 제 아무리 수백 단위의 정령을 부리는 정령사라 할지라도, 너무나도 무모한 행동이었다.
바닥에 추락한 바람 정령은, 상처가 가득한 채로 숨만 겨우 내쉬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어렵사리 날개를 들어 예니카 쪽을 보호하려 들었다.
“셀라하 황녀님! 추가적으로 마물족이 덮쳐듭니다! 당장 마차 안으로 숨으셔야 합니다!”
“제가 유리를 부수겠습니다! 넘어진 마차 안에 들어가 계십시오!”
병사가 급박하게 목소리를 드높였다. 확실히, 예니카를 추격해온 비행 마물족의 숫자는 범상치가 않다.
거대 박쥐, 그렘린, 키메라, 괴조에 이르기까지… 하나 하나가 기괴하게 비틀려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겁을 집어먹게 만들지만, 예니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한 손으로 에드를 꽉 끌어안은 채로, 나머지 한 손을 공중으로 뻗는다.
거대한 껍질을 지닌 거북이 형태의 정령이 몸을 일으킨다. 하늘을 보고 마력을 뿜어내자, 퍼져나오는 거대한 빛의 물결에 마물족들은 쓸려나갔다.
수십마리의 마물족을 한 번에 쓸어버린 예니카는, 숨을 훅훅 몰아쉬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나무들이 가득한 오솔길 쪽으로 들어와서인지, 그 이후로 추격은 없었다.
그렇게 정령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나자, 그곳엔 정신을 잃은 소년을 끌어안은채 고개를 푹 숙인 소녀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건…”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병사들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숄 아래에 교복을 두르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학생 신분이건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힘이었다.
그러나, 지칠대로 지친 것인지 숨을 몰아쉬고 있던 예니카는… 자기 몸 조차도 제대로 가누기 힘들어하고 있었다. 반쯤 피곤에 찌든 눈으로 에드의 머리를 감싸 안고는, 궁지에 몰린 야수처럼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셀라하 황녀와 눈이 마주친 것이 바로 그 시점이었다.
셀라하 황녀는 팔을 슬쩍들어서 병사들을 무른 뒤, 천천히 예니카 쪽을 향해 나아갔다.
예니카는 가시를 잔뜩 세운 고슴도치처럼, 에드를 꽉 끌어안으며 셀라하를 공격적인 눈으로 쳐다보았다.
모든 질서가 무너져 내린 지금 상황에서, 누군가를 함부로 믿을 순 없다.
특히 셀라하 황녀는 에드랑 긴 시간 적대해온 자다. 쉽게 남을 상대로 악의를 품지 않는 예니카지만, 만신창이가 된 에드를 지켜야만 하는 상황에선 자그마한 위협도 쉽게 여길순 없다.
“품 속의 그 남자는… 에드 로스테일러인가…”
셀라하 황녀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옷깃에 때 한 톨만 타도 인상을 팍 구기는 사람이지만, 지금은 그 사지에서 살아남느라 흙먼지에 범벅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셀라하 황녀는, 고고한 자태를 굽힐 마음이 없다는 듯이 거만하게 이야기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크게 다친 것처럼 보이는군.”
“가까이… 오지 마세요.”
“가까이 오지 말라…? 하하… 상황이 이렇게 되니, 이제 너 같은 천 것이 내게 명령질을 다 하는구나. 하긴, 이토록 질서가 무너졌으니… 나와 맞먹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겠구나.”
셀라하 황녀는 허탈하다는 듯이 웃었으나, 예니카는 그럼에도 경계를 풀지 않았다.
“역시 너는 그 때 로스테일러 저택에서 보았던 그 노리개렸다. 불쌍하게도, 아직도 덧없는 연심을 품고 있느냐. 과연 실력은 대단한 것 같으나… 주제에 어울리는 남자를 골랐어야지.”
“…”
“나를 적대하는 건 그리 현명하지 않을 것인데… 그리 노려보아서 상황이 더 나아지느냐?”
셀라하 황녀의 오만함은,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상황 속에서도 여전하다.
굳건하게 지켜온 자존심이 무너지는 일은 절대로 없다.
“그래, 마음만 먹으면 나 하나 어떻게 해보는 건 일도 아니겠지. 지금 이 아켄섬의 질서는 무너졌고, 나는 네 놈 만큼 막대한 힘을 가지진 못했다. 그래서, 지금 나를 시해하겠느냐? 해코지라도 해볼 생각인가?”
“솔직히 말해서… 아무래도 좋아요.”
예니카는 애초에 셀라하 황녀가 어찌되든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이윽고 예니카는 눈을 한 번 지그시 감더니, 고개를 내리깔고 이야기했다.
“이대로 가면 에드가 죽어요.”
품속에 안긴 에드의 출혈이 심상치 않다.
예니카는 강대한 힘을 가졌지만, 상처를 치료하는 재주 같은 것은 없다. 학사가 다 박살이 나고 있는 이런 상황 속에서, 어디로 향해야 에드를 살릴 수 있을지 감조차 안 잡힌다.
설령 어디로 향할지 방침이 정해졌다고 한들, 거기까지 에드를 온전한 상태로 데리고 갈 수 있을지도 잘 알 수가 없다.
예니카는 어느샌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황녀님은 모르시겠지만, 옆에서 오래 지켜봤던 전 알아요. 에드는 삶을 비관하고, 죽음의 목전까지 간 상황에서도 마음 다잡고 어떻게든 살아왔어요.”
처음 보였던 독기 어린 경계심은 어느샌가 많이 누그러져, 셀라하 황녀조차도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그렇게 발버둥치며 살아온 에드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건, 너무하잖아요. 그럼 안되는 거 잖아요.”
상황이 급박한 만큼, 죽어가는 에드를 바라보며 두 손 놓고 오열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대책을 마련해서, 에드를 살려 볼 방법을 강구해내야만 한다. 그렇기에, 예니카는 이를 악물고 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이란 것은 마음 먹은대로 통제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입술을 꽉 앙다물고, 에드의 상처를 꾹꾹 짓누르며 지혈을 해보지만… 그럼에도 눈에서는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나왔다.
“다른 사람은 그렇다쳐도, 에드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으면 안되는 거잖아요. 누구보다도 살아남으려고 이를 악물고 살아온 사람이 이렇게 죽는 건, 그런 건… 안되는 거 잖아요.”
그렇기에 예니카는 빌었다. 신이 듣고 있다면 이 사내만큼은 살려주기를.
이 넓디 넓은 세상에, 개미 떼처럼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자신이 그 거대한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안다.
으레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자기 또한 제 이야기를 마음속에만 품다 세상을 뜨는 엑스트라일 뿐이다.
피를 깎으며 취해왔던 노력이 보답받지 않는 일은 많다.
간절히 바란다고 해서 다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불합리하게 많은 것을 얻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평생토록 바라던 단 하나의 소원조차 이루지 못하는 자도 있다.
세상 만사라는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예니카는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도, 에드 로스테일러라는 사내는 이리 쉽게 죽어도 되는 인물이 아니지 않는가.
그가 살아남고자 발버둥 친 세월이 얼마나 진득하고 무게감 있었는지, 예니카 페일로버는 잘 알고 있다.
신이 있다면, 그 염원 만큼은 무시해선 안됐다. 애초에 이 사내는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는 밤마다 모닥불 앞에 지그시 앉아, 타닥대는 불꽃을 멍하니 보며, 속삭이듯 되뇌였을 뿐이다.
내일 하루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기를.
매일 밤, 파자마를 입은 채 제 오두막 문 뒤편에 무릎을 안고 앉아서… 그런 에드의 되뇌임을 듣던 예니카다. 그녀는 에드의 그런 되뇌임을 듣고선 늘 똑같은 생각을 했다.
거창하고 드높은 바람도 아니다. 그저 내일 하루도 살아남아 버텨나가고 싶다는 그 당연한 바람 하나일 뿐이다.
그게 그렇게 주제 넘고 드높은 소원이라고, 세상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에드 좀 살려주세요.”
의지를 품은 채 입술을 앙 다물고 있었지만, 눈에서 뚝뚝 흘러내려오는 눈물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예니카는 셀라하 황녀를 대등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똑바로 이야기 한다.
“저를 천 것이라고 매도해도 상관 없고, 노리개니 뭐니 모독해도 신경 안써요. 그냥… 지금 저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다른 건 다 아무래도 상관 없으니까…”
“…”
“에드 좀… 살려주세요…”
일국의 황녀 쯤 된다면 다른 수단을 강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에드 로스테일러의 몸에서 흐르는 피가 어느샌가 예니카의 교복을 적시고 있었다. 그럼에도 예니카는 아랑곳하지 않고, 에드의 머리를 품에 꽉 끌어안고 있었다.
셀라하 황녀는 잠시 마른 침을 삼키며 식은 땀 한 줄기를 흘렸다.
잠시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피를 흘리고 있는 에드를 쳐다보았다.
테이블 맞은 편에 앉아,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페니아의 이름만 대던 그 소년이다.
굳건한 바위처럼 든든해 보이던 그 남자가, 만신창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모습에선 괴리감 마저 느껴진다.
평소엔 도저히 볼 수 없었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묘한 배덕감 같은 것이 피어오른다. 세상 무엇이 와도 굳건하게 버티고 있을 것 같았던 이 사내도, 이런 위기 앞에서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라면… 이 사내의 생명의 은인이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조차 그런 타산적인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자신에 혀를 내두르게 되지만, 오히려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이므로 부끄럽게 생각하진 않는다.
“데스트!”
셀라하가 목소리를 드높여 집사장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재빠르게 뛰어나와 에드의 몸을 살폈다.
에드의 얼굴을 꽉 끌어안고 있던 예니카가 손에 힘을 풀자, 피가 잔뜩 묻은 그의 얼굴이 드러난다.
데스트는 맥을 짚어보고, 그의 상처와 출혈을 가늠했다. 그러다가 미간을 푹 찌그러트리곤, 셀라하에게 보고했다.
“몸 여기 저기에 검붉은 마력이 담긴 성위 마법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최소 고위 마법을 구사하는 상대와 싸우고 온 것 같습니다. 단순한 물리적 상처도 심각해서, 이대로 가만히 두면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예니카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의 핏기가 사라졌으나, 셀라하 황녀는 마른 침을 한 번 더 삼키는 것으로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았다.
“내 입장에서야, 이 사내가 죽든 살든…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니라!”
일단, 그렇게 단언해둔다.
피가 잔뜩 묻은 에드의 얼굴을 내려다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솟아오르는 짜증이 머리를 뒤덮지만… 셀라하 황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어렵사리 다시 이야기 했다.
“거기다가, 학사 전체가 아수라장이 된 상태에서 의료 인력을 찾아내기가 쉽진 않을테지. 당장 황족 숙소도 난리가 난 모양이고, 학생 광장 쪽이든, 생활동 쪽이든 수백 단위의 사상자가 나왔을 터이니 어딜가든 의료 인력이 남진 않을 것이니라.”
“…”
“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저 하늘의 용이 날뛰고, 마물족들이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판국이니… 이동도 자유롭지 않다. 이런 상황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니라. 황족인 이 나조차도 몸에 생긴 크고 작은 생채기들을 방치하고 있는 와중에… 이 사내를 어떻게든 살리는 게 가능하겠느냐?”
셀라하는 숨을 휙 몰아 쉰다음, 어렵사리 예니카에게 통보했다.
“이 사내의 목숨은 포기해라! 쓸 데 없는 곳에 그리 집착할 바에, 차라리…! 차라리…!”
– 푸쉬익!
그 순간, 에드의 몸에 남은 상처에서 핏줄기가 다시 솟아올랐다.
성위 마법 ‘즉사’의 권능은 대부분 회피했지만, 남은 여파로 인한 상처가 에드 몸 여기 저기에 가득했다. 몸에 서린 검붉은 마력의 저주에 의해 상처가 벌어져, 몇 번이고 핏줄기가 터져나왔다.
가까이서 에드의 상태를 내려다보던 셀라하의 얼굴에 그 한줄기 선혈이 픽 하고 튀었다.
화들짝 놀란 셀라하 황녀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내려다보다가, 얼른 벌어진 상처를 맨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흘러나온 에드의 피가 드레스 자락과 소매에 묻어나고 있었지만, 반사적으로 몸부터 튀어나가고 말았다.
“뭐, 뭐하느냐? 상처를 동여매지 않고! 멍하니 있으면 다인 줄 아느냐?!”
“…아, 읏?!”
예니카가 화들짝 놀라서 자기 스커트 끝자락 부욱 찢어버린다. 그대로 에드의 상처를 휙휙 동여매면서, 흘러나오는 피를 꾹 눌렀다.
천만금을 줘도 살 수 없는 고귀한 황족의 드레스가 검붉은 피에 더럽혀지는 것을 보면서도, 셀라하 황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예니카와 함께 에드의 상처를 꾹 덧눌렀다.
지켜보고 있던 데스트도 화들짝 놀라서 가담했지만, 셀라하 황녀는 어쩐 일인지 팔에 힘이 떨어지질 않았다.
급박해져가는 상황에 심장이 쿵쿵 뛰고, 동공도 커져간다. 그럼에도 에드의 상처를 짓누르면서, 셀라하 황녀는 스스로의 행동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벙찐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셀라하의 모습을 보고 있던 예니카 또한 마찬가지였다.
*흐릿해진 정신 속에서 수집한 정보를 정리해 나간다.
전신의 출혈 때문에 몸이 불타는 것처럼 뜨겁지만, 절대로 사고는 멈추지 않는다.
사고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살아있다면, 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주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 치면서도, 나는 정신을 절대로 놓지 않았다.
한 순간이라도 흐릿해진 의식에 몸을 맡기는 순간,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아득한 옛날 인물인 실베니아 로베스테르가, 어떻게 지금 이 학사에 나타난 것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능성은 역시 성위 마법이다.
극에 달한 성위 마법은, 시간과 공간조차도 제 것처럼 다룰 수 있는 권능을 준다.
그러나, 시간을 건너 뛰어 미래로 나아가는 마법 같은 게 존재한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없다.
내 게임지식은 물론이고, 이 세계에 넘어와서 알아봤던 마법지식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성위 마법의 선구자인 실베니아 로베스테르라면 시간을 뛰어넘는 마법을 발견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단순히 미래를 관측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미래로 건너 뛰어가는 마법이라니.
이론적으로 그런 게 가능하다면… 그렇다면, 실베니아는 왜 미래 그 자체를 두려워하게 된 것일까? 미래가 두렵다면, 그 미래조차도 건너 뛰어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고 나니, 어느 정도 실베니아가 본 미래라는 것이 그려진다.
…언젠가 찾아올 어둠과도 같은 미래가 두려워, 실베니아는 광인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아마도, 실베니아가 관측한 미래는 그 끝조차도 보이지 않는 아득한 어둠이었을테지…
그러나, 그 어둠에 대한 공포는… 그 옛날에도 마찬가지로 품고 있었을 것이다.
처음 성위 마법으로 미래를 관측한 날, 그 막대한 어둠의 공포가 실베니아를 짓눌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의 실베니아는 그 어둠의 공포에 잠식되지 않았다.
오히려, 약속된 종말을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치던 시절이 더 길었다.
그렇다면 지금에 와서 완전히 미쳐버린 실베니아의 모습이 설명되지 않는다. 그 때의 실베니아가 지금으로 시간을 건너 뛰어온 것이라면, 어둠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우려 들던 그 옛날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허나, 지금 트릭스관을 점거한 실베니아는 완전히 어둠의 공포에 잠식되어 미쳐버렸다.
공포 속에 영원히 몸부림 치는 죽음을 맞이할 바에, 지금 여기서 다같이 벨브로크에 의해 죽어버리자고 외치고 있었다.
그 중간 과정이 붕 떠버린 느낌이 든다.
왜, 실베니아는 미쳐버렸는가?
단순히, 성위 마법의 알 수 없는 광기에 휩쓸려서?
세상 그 누구보다도 성위 마법을 깊숙이 이해했을 때조차도, 끝 없는 어둠의 미래로부터 달아나고자 발버둥치던 그녀 아닌가. 그런 그녀가, 이리 쉽게 광인이 되어버리는 것이 정말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그리고, 미쳐버린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정말로 벨브로크를 풀어버려서 다 같이 죽어버리자는 게 목표라면…
그럼… 지금 저 벨브로크를 휘감고 있는 쇠사슬의 정체는 무어란 말인가?
남아 있는 의문이 너무나도 많다. 해결해야할 것들이, 아직 보이지 않는 진상이… 분명 남아있다.
그것은, 타개책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온전히 알고 있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해결책이 남아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니까, 살아남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온 몸에서 불타는 듯이 격통이 밀려 올라오더라도, 나는 절대로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길고 길었던 여정의 마지막 시련이다. 이제 남은 승리 조건은 단 두 개 뿐이다.
벨브로크를 잡는 것.
대현자 실베니아를 잡는 것.
전자는 테일리에게 일임해두더라도… 후자는 온전히 내 힘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이런 저런 변동이 많았지만, 테일리는 벨브로크의 심장을 베어낼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갖췄다.
정사에서 벨브로크를 함께 토벌했던 멤버. 아일라, 직스, 클레비어스, 엘비라, 로르텔, 페니아.
이 여섯명의 멤버는 각자의 역할을 도맡으며 벨브로크를 깔끔하게 토벌했던 멤버들이다. 적어도 이 여섯 명 정도만 최소 조건으로 맞춰주면, 이론상 어떻게든 해결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맘 같아서는 몇 명 더 안정적으로 붙여주고 싶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최소 조건을 맞춰주는 것만으로도 빡빡하다. 테일리를 믿어 볼 수밖에 없다.
그건 그거대로 두더라도, 실베니아를 잡을 마지막 멤버도 생각해야만 한다.
일대일로 토벌전을 진행하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 그 정사에서 마지막 토벌의 무대에 서지 못한 엑스트라들이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무력을 갖춘 자들을 규합해야만 한다.
테일리가 벨브로크를 토벌하는 데에 영향을 최대한 주지 않으면서도, 동원 가능한 최대한의 전력을 전부 끌어모아야만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다.
그것은 의 메인 스토리와는 상관 없이.
내가 에드 로스테일러로서 살아가면서 만들어 나갈 수 있었던, 나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사람들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발버둥을 치면서 살아왔던 것은…. 바로 지금을 위한 것이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절묘한 상황에, 격통 속에서도 한줄기 웃음이 피어나고 만다.
한 번 해보자는 것이다. 이 빌어처먹을 세상아.
그렇게 이를 악물며 정신을 부여잡자, 조금씩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그런… 드의 출…. 하지만… 생활동…!”
어렴풋이, 익숙한 예니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조금씩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검붉은 피에 푹 절여진 앞머리가 시야를 가린다.
청각도 천천히 돌아와서, 이번엔 셀라하 황녀의 목소리가 온전히 들려왔다.
“생활동까지 이동하는 건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이 몸은 황족 숙소로 향해야 하느니라! 황족 숙소가 완전히 뚫린 와중에, 아바마마와 페니아의 목숨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는데 다른 곳으로 가라는 건 무리다!”
“그, 그러면… 황족 숙소에는 최소한의 의료 인력은 있는 거에요?”
“생존해 있다면… 있겠지… 생존해 있다면 말이다. 애시당초 이런 상황에서 온전하게 보장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내 협조를 바란다면, 너도 황족 숙소로 향해라! 만약 의료 인력이 생존해 있다면 책임지고 이 사내를 살려 놓으마! 그건 약속할 수 있다!”
예니카가 숨을 머금으며 셀라하 황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재채기를 하며 억지로 소리를 냈다.
“에, 에드…! 에드!”
예니카가 화들짝 놀라며 내 쪽으로 고개를 내리고 내 상태를 체크했다.
나는 숨을 훅 몰아쉬며 어렵사리 목소리를 냈다.
“황족..숙소… 황족 숙소로…가..”
이게 내 결단이었다.
그 말에, 셀라하 황녀가 화색을 하며 내 쪽을 내려다 보았다.
“과연, 비몽사몽한 상태에서도 현명한 결단이로구나! 들었느냐? 네가 그토록 죽고 못사는 이 남자가 직접 말하지 않았느냐.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이 옳다! 더 고민할 것이 없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지만, 확실하게 들었다.
지금… 셀라하 황녀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녀의 의견대로 움직여야만 했다.
“에드 로스테일러! 역시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는구나! 그래, 그래야지! 자, 잘 보고 기억하거라… 내가 네 생명의 은인이 될 것이니라. 목숨을 빚지는 것이니까, 확실하게 기억해둬야지!”
“페… 니아…”
“…뭐?”
페니아 엘리어스 클로엘은, 테일리의 벨브로크 토벌 파티에 반드시 포함되는 최소 조건 멤버였다.
“페니아 황녀님을… 살려야 합니다…!”
“또…! 페니아냐…!!!!! 내가 진짜…!! 못 살아!!!”
내 상처를 꽉 움켜쥐면서도, 셀라하 황녀는 진짜 질렸다는 듯이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러운 고음에 머리가 지끈거리며 울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