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40)
벨브로크 토벌전 (8)
오필리스관 장미 정원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 마법진은, 어느샌가 거대해져 오필리스관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대부분의 마물족은 그 방어 법진을 뚫어 내지 못해 오필리스관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몇 몇 항마력이 강대한 마물족들은 오필리스관의 방어 법진조차도 돌파해 들어갈 수 있었다.
오필리스관의 방어 법진을 뚫어낼 수 있을 정도의 마물족은 사실 매우 희귀하다. 허나, 애초에 마물족 무리 자체가 저렇게 방대한 규모이니, 그런 특수한 마물족의 규모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 카앙! 채앵!
– 화아아아아악!
칼이 부딪히는 소리와, 마법이 발현되는 소리가 오필리스관 입구에 가득했다.
오필리스관의 메이드들은 못하는 게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당연히 전투에도 어느정도 조예가 있는 자들이며, 선임 메이드 급 정도 되면 중위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인력도 꽤 있었다.
그런 메이드들이 무리지어서 지키고 있는 곳인데다, 전용 방어 법진까지 구축되어 있는 곳인만큼 아직도 여유롭게 전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 콰앙! 콰앙!
거기다가, 오필리스관을 쓰는 학생들은 대부분 성적 우수생이다. 메이드들 뿐만이 아니라 기숙사생들조차도 전투 능력이 출중한 것이다. 심지어 지리적 위치 조차도 생활동에서 외곽으로 애매하게 떨어져 있는 곳이라, 마물족들은 대부분 생활동 중심으로 침범해 들어가지 오필리스관으로 올 생각은 하지 못한다.
여러 조건들이 맞물리고 또 맞물려서, 황족 숙소조차도 위험에 빠진 이런 위기 상황에 오필리스관은 훌륭하게 방어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남쪽 방어법진의 균열에 마물족들이 또 한차례 밀려들어오고 있습니다!”
“지금 손이 비는 선임 메이드들이 없어요! 일단 움직일 수 있는 인원들을 다 동원해서 막아내도록 하세요!”
그 오필리스관의 중앙 지휘실.
메이드 장 벨 마이아는 메이드들의 작업 공간에 임시로 바리케이드를 쳐 만든 지휘실에서, 메이드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메이드들 뿐만 아니라, 오필리스관에 머무르고 있던 학생들 또한 한 마음 한 뜻으로 마물족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방어하는 것이 전부다.
아마도 난리가 나있을 다른 곳에 도움의 손길을 건넬 여유는 없었다.
애초에 이만한 마물족 무리를 뚫고 거기까지 도달하는 것도 무리이며, 설령 다른 생존자 무리와 접촉했다고 한들 멀쩡한 상태로 오필리스관에 데려올 수도 없다.
결국, 상황이 해결되길 바라며 최대한 버티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는 것이다.
“로레일관이나 덱스관에는 연락이 닿았나요?”
“로레일관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큰 피해를 입었지만 어떻게든 학생들을 보호하고는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덱스관은… 연락 두절입니다…”
메이드가 올린 보고에 벨 마이아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동요 같은 걸 할 상황이 아니었다.
덱스관은 그 기숙사 규모도 워낙 크고, 기숙사생도 많아서 온전하게 방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마 지금쯤은 초토화되어 있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을 터.
“어쩔 수 없습니다. 저희는 일단 저희가 보호하고 있는 학생들의 안전을 기하면서 최대한…”
그 때, 벨브로크가 또 다시 한 번 포효했다.
날카로운 포효 소리가 아켄섬의 상공을 가를 때마다, 그 소리에 서린 마력의 기운은 조금씩 더 강대해져 간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벨브로크의 봉인이 가면 갈수록 더 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루시 메이릴이 어떻게든 막아설 수 있지만, 벨브로크가 온전히 봉인을 풀어헤치고 나오면 루시조차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지금 시점에서 이미 루시 메이릴은 한계에 달한 상태다.
“꺄아아악!”
“크으윽!”
마력의 여파 때문에 바닥에 쓰러진 메이드들이 비명을 질렀다.
벨 마이아도 인상을 찌푸리면서 창 밖을 보았다. 벨브로크는 다시 한 번, 그 거대한 입을 쩍 벌리며 마력을 모으고 있었다.
벨브로크가 노리는 적은, 자신을 막아서고 있는 루시 메이릴이다. 몸을 다시 저 깊은 바다속으로 끌어내리려고 하는 봉인의 쇠사슬과 더불어서, 자신을 막아서는 최대의 적이다.
그러나, 그 여파 만으로도 오필리스관의 방어 법진은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벨브로크의 마력에는 여러 방어 법진과 항마 법진을 무력화 시키는 힘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몇 번까지는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벨브로크가 온전히 부활해서 그 힘을 내기 시작하면 오필리스관도 더 이상 방어 태세를 유지하고 있을 순 없을 것이다.
대책은, 기도하는 것 뿐이다.
– 콰앙!
그 때를 틈탄 것일까.
금이간 방어법진의 틈으로 밀고 들어온 거대 박쥐 하나가 오필리스관 외벽에 달라 붙었다.
“꺄아아아악!”
“당황 하지마! 전부 마법을 끌어내!”
학생들의 비명 소리가 난무했고, 그 와중엔 침착함을 유지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벨 마이아도 어떻게든 테이블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창문을 보자, 거대한 박쥐의 눈알이 유리창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벨은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레이피어를 꺼내서 박쥐의 눈에 박아넣었다.
-쨍그랑!
-카아아아아앙!
유리조각이 깨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고통에 몸부림 치는 거대 박쥐가 외벽에서부터 떨어져 나갔다.
– 쿠우우우웅!
장미 정원에 추락한 거대 박쥐는 피를 흘리면서도 몸부림을 쳐서, 주변을 닥치는대로 박살내기 시작했다.
“후우… 후욱…”
방어 법진도 조금씩 한계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그 사실은 절망적이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었다.
벨 마이아는 숨을 겨우 몰아쉬면서 주변에 지시했다.
“학생들을 지하 시설로 대피시키세요! 앞으로 마물족들의 위협은 더 거세질겁니다! 피해를 최소화 하려면, 일단은 학생들을 숨겨야 해요!”
그렇게 외치며, 내벽에 장식되어 있던 다른 레이피어를 꺼내들고 지휘실 밖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젖혔다.
“명심하세요. 우리들의 임무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학생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한 몸 불사르겠다는 의지로, 최대한 많은 학생을 살려야 해요.”
“아, 알겠습니다…”
“외곽 쪽에 포진되어 있는 메이드들에게도 전달하겠습니다.”
벨 마이아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복도 쪽으로 휙 뛰쳐나갔다.
메이드 장이라는 지휘직을 달고서, 최전선에 나가는 것은 그리 현명한 판단은 아니다. 자신이 죽으면 지휘 체계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항이 극한으로 치닫을수록 단 한 명의 전투 인력이 절실해지는 법이다. 이렇게까지 상황이 흘러갔으면 벨 마이아 본인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레이피어를 꽉 움켜쥐며 복도로 나왔을 때, 방금 전과는 다른 거대 박쥐 두 개체가 창문에 들러붙었다.
– 쾅! 쾅!
– 쨍그랑!
복도의 창문들이 일제히 깨져나가면서, 거대 박쥐의 팔이 복도 안으로 밀려들어 온다.
여러 예술품들과 장식품들을 닥치는대로 깨부수면서, 손에 닿는 모든 인간을 죽이고자 기분나쁜 포효 소리를 냈다.
“크윽!”
벨 마이아가 마법을 쓰기 위해 온몸의 마력을 끌어모으려는 순간이었다.
– 파악!
기괴한 소리를 내며 벨 마이아를 향해 손을 뻗던 거대 박쥐 한 마리.
그 목이,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마법을 쓰려던 벨 마이아는 순간적인 상황 변화에 당황했다. 그러나, 이윽고 몸만 남은 거대박쥐를 걷어 차버린 뒤, 창문 안으로 굴러 들어온 소년을 보고 상황을 이해했다.
-푸스슥, 퍼덕!
마력으로 재빠르게 벽을 타고 올라서, 거대박쥐의 목을 깔끔하게 베어버리는 일련의 흐름. 이런 상황에서까지 당황하지 않는 실전 감각을 지니고 있음을 이야기 해준다.
유리 조각이 가득한 바닥을 한 차례 굴러서, 피가 묻은 검을 털어내며 일어난 소년은… 직스 에펠슈타인이었다.
“무사한 걸 확인하니 기쁘군요, 벨씨.”
“직스 도련님. 언제…?”
“방금 도착했습니다. 테일리와 아일라도 함께 왔어요. 오필리스관 상황도 썩 여유로워 보이진 않는군요.”
계속해서 버틸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오필리스관의 방어 법진도 가면 갈수록 불안정해져가고 있었다.
“피차 간에 길게 상황 설명할 시간은 없지 않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일단 오필리스관까지 대피오신 건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지금 바로 지하 시설 쪽으로…!”
“대피온 게 아니라, 데리러 올 사람이 있어서 온 겁니다. 엘비라가 여기에 있죠? 보나마나 자기 방에 있는 연금 용품이랑 시약 재료들 챙기러 한 달음에 달려왔을테니까.”
이미 같은 학년 동기들 행동 패턴이야 눈에 뻔히 들어올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직스는 나머지 거대 박쥐 한 마리가 휘두르는 팔에 올라 타더니, 그대로 몸을 한 바퀴 빙 돌려서 휘어 꺾으며 검격을 날렸다.
그러자, 거대 박쥐의 왼팔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거대박쥐는 비명을 지르며 뒤편의 마당 쪽으로 추락했다.
“벨브로크를 잡으려면, 엘비라의 연금술 지식이 필요합니다. 연금학부 교수님들과 접근하기 힘든 지금 시점에서, 가감 없이 동행 해줄 고위 연금 술사는 걔가 유일하니까…”
“벨브로크를… 잡겠다고요…?”
“테일리라면 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손 놓고 있을 마음이 없습니다.”
칼에 다시 묻은 피를 탁탁 털어내며, 깨진 유리창을 등진 채로 직스가 이야기 한다.
“마음 같아선 궁지에 몰린 오필리스관 수비에 가담하고 싶습니다만… 저희는 더 중요한 일을 하러 가야합니다.”
“…농담으로 하는 말은 아니시군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희생했습니다. 테일리를 살리려고 에드 선배님은 홀로 가장 위험한 사지에 남았고, 저 또한 테일리와 합류하기 위해 학생 광장의 생존자 무리를 등지고 왔습니다. 엘카가 거기에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그 이유는 오로지 하나. 가장 큰 위협을 처리하기 위해.
“저희는… 책임지고 벨브로크를 잡아야 합니다.”
위기에 빠진 곳은 오필리스관 뿐만이 아니다.
직스가 두고온 학생광장의 생존자 무리 또한 마찬가지다.
학생회장 타냐의 진두지휘를 받으며, 생활동까지 도달한 생존자 무리는 이미 많은 희생을 감내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전투인력인 직스를 잃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런 피해도 없이 생활동까지 갈 수는 없다.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가득했지만, 타냐는 그래도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살려가며 생활동을 향해 나아갔다.
성녀 클라리스를 중심으로 모인 학사 성당 쪽 주둔지 또한, 몰려드는 마물족 무리에 의해 거의 뚫려가고 있었고…
전투부 학생들을 중심으로 모인 학생 훈련장의 생존자 무리 또한 많은 피해를 보고 있었다.
맥세스 대교 붕괴로 인해 직속 상인 3분의 1을 잃은 엘테 상회 또한, 몰려드는 마물족으로부터 상회 건물을 지켜내고 있고… 황족 숙소는 아예 거의 뚫렸다는 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반격해야 합니다.”
직스는 단언했다.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받아들일 맘은 없습니다. 그러니… 죄송하게 된 일이지만, 엘비라를 데려가야겠습니다.”
*- ‘나는 오필리스관에 있는 내 연금용품들이랑 시약 재료들 챙기러 갔다올테니까, 안전한 곳에 콕 박혀있어!’
엘비라가 오필리스관을 향해 달려나가며 했던 이야기다.
곧 죽어도 연금술에만 몰두해왔던 인생이 아니랄까봐,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제 연구 성과들을 지키는 것이 일순위다. 그런 여자라는 것을 모르진 않았다. 다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거라는 예상은 못했던 것일까.
학생 광장에서 엘비라와 헤어진 뒤로, 갑자기 몰아쳐오는 마물족에 의해 도망치다가 결국 가장 가까운 주둔지에 합류하는 데에 성공하긴 했다. 허나, 그게 전부였다.
전투부 소속 학생들이 모여서 다이크를 중심으로 주둔지를 꾸린 학생 훈련장.
그 구석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박은 채 덜덜 떨고 있는 사내는 클레비어스 노튼데일이다.
명문 무가 노튼데일 가문 소속인데다가, 2학년 수석이라는 타이틀까지도 달고 있지만… 클레비어스는 겁에 질려서 벌벌 떨고 있었다.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워낙 많고, 하늘을 뒤덮는 마물족들의 수는 도저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이대로 가만 있으면 개죽음이다. 그러나, 하늘을 뒤덮은 성창룡의 포효를 듣고 있다보면 심장이 꽉 쥐어짜이는 듯한 공포가 밀려올라온다.
자기 손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거대한 재앙이 눈앞에 도래하니, 자기 자신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 ‘저 자식은… 왜 하필 이쪽 주둔지로 합류한거야…?’
– ‘검술도 좀 할 줄 알면서… 싸움만 나면 꽁무니 빠지게 도망이나 치는 놈이잖아!’
– ‘다들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한심한 새끼… 왜 다이크 선배님은 저 놈을 내쫓지 않는거야?’
– ‘냅둬, 다이크 선배님이 다 생각이 있겠지. 일단… 주둔지 바깥 쪽을 수비하는 데 정신을 집중해!’
“나라고… 시팔…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나… 으윽… 끄흑…”
척 보기에도 한심해보이는 인간이다. 사내라는 인간이 눈물을 꾹꾹 참으면서, 벌벌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래도 어쩌라는 말인가. 겁이 나는 것을. 사람 감정이라는 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닌데.
모두가 용맹하게 싸우고 있다고 해서, 자신까지 용맹해지란 법은 없지 않은가. 한 순간 타오르는 불꽃처럼, 루시를 상대로 검을 내지르던 기억도 이젠 어느덧 옛날이다.
결국 한심한 인간은 끝까지 한심한 법이다. 모처럼 기운을 낸다고 해서 썩어빠진 내면이 통째로 바뀌는 일은 없다.
이제와서 자신을 흉보는 주변 학생들의 뒷담은 아무렇지도 않다. 평생토록 욕을 들어먹으며 살았는데, 이제와서 일일이 마음 상하고 충격 받아서야 일상 생활도 안 된다.
다만, 두렵고 또 두려울 뿐이다.
“진짜… 시팔…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거야… 왜…!”
자기 무릎을 끌어 안으며 이를 딱딱 떨고 있는 모습.
안전한 주둔지 구석에 박혀서 그러고만 있는 모습을, 지나가는 학생들이 볼 때마다 혀를 찼다.
선배들은 물론이고, 후배들마저 클레비어스를 보고 비겁자라고 대놓고 말했다.
검을 잡을 수 있기만 하면 모두가 전선으로 나가는 지금 상황에,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있는 꼴. 그 모습을 지켜보던 후배들은 악이 받쳐서 주둔지 리더인 다이크에게 건의까지 넣었다. 저럴 거면 클레비어스를 내쫓아버리라고. 주둔지 사기에 악영향을 끼칠 뿐이라고.
허나, 다이크는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일단 클레비어스를 주둔지에 받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겁쟁이라는 이유로 클레비어스를 내쫓을 수는 없었다.
클레비어스 자신도 알고 있다. 자신은 비겁자고, 이기주의자고, 겁쟁이고, 쓰레기 같은 인간이다.
그런 자신을 일단 수습해준 다이크는 참된 리더고, 좋은 사람이고, 모두의 존경을 받을만 하다.
그 간극에 좌절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이크 같은 인간이 되려 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시궁창 속에 사는 시궁쥐 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하수도의 악취가 잔뜩 몸에 배인 시궁쥐는, 아무리 노력해도 고결해질 수 없다.
싸늘해져가는 주둔지 학생들의 시선은 아무렇지도 않다. 그런 경멸의 시선이야 평생동안 버텨왔다.
다만, 목숨을 부지하기위해 발버둥 칠 뿐이다.
그것이 클레비어스가 살아남는 방식이다.
에드 로스테일러처럼 필사적이지도, 다이크 엘펠란처럼 고결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나쁜 놈이 되지도 못한다. 어중간할 뿐인 비겁자의 삶이다.
클레비어스는 자기 손을 펼쳐서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쥔 것이 없는 그 손은, 겁에 질려서 부들부들 떨리고만 있었다.
“오필리스관이 뚫리기 직전이랍니다! 아마 그 쪽 주둔지도 더 이상 안전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윽고, 달려들어온 학생 하나가 다이크에게 큰 소리로 보고했다. 어찌나 다급한 목소리인지 주둔지 내부에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질 정도였다.
“뭐? 오필리스관은 방어 법진까지 쳐져 있어서 안전한 거 아니었나?”
“아무래도, 벨브로크의 마력에 영향을 받은 듯 해서…”
“그럼, 그 쪽 학생들도 피신하겠군. 우리 쪽으로 피신 해올 학생들이 있다면 받아들일 준비를 해둬야지.”
“아닙니다, 다이크 선배님. 아마 내부 지하 시설로 피신해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오필리스관이 뚫리면, 안전하리란 보장은 없지만요.”
솔직히 어느 주둔지가 버티고, 어느 주둔지가 뚫릴지는 순전히 운의 영역이다.
운좋게 고위 마물족이 별로 떨어지지 않은 곳은 오래 버티고, 운 나쁘게 고위 마물족이 잔뜩 떨어진 곳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딱 그 뿐이다.
황족 숙소는 운이 나빴고, 이 훈련장은 운이 좋았다. 딱 그 정도 차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갈리고 있는 것이다.
다이크는 미간을 구기며 한숨을 푹 쉬었지만, 지금 시점에서 오필리스관 쪽에 도움을 줄 방법은 없다. 이 주둔지도 제 코가 석자인 상황이다.
“부디, 무사하길 빌고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일단 전투부 건물들 안에 있는 생존자들만이라도 규합시켜야 해!”
다이크는 빠르게 결단을 내려서 이야기 했다.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최악의 경우엔 오필리스관 학생들이 통째로 마물족의 위협에 노출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를 비는 수밖에 없었다.
“삼십 분 정도만 더 쉬다가, 이번엔 북쪽 훈련지구에 생존자들을 수색하러 간다! 함께 따라올 사람들은 지금부터 장비를 정비해둬!”
다이크는 그렇게 외친 뒤, 자신의 너클을 집어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생존자들을 주둔지로 모으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다소 부담스러운 강행군이었으나, 그런 빡빡한 일정에도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순간, 다이크의 눈에 클레비어스가 밟혔다.
클레비어스는 홀린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검 한자루를 검집채 들어올린 채 주둔지 출구쪽으로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화들짝 놀란 다이크가 얼른 자리에서 튀어나가 클레비어스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클레비어스! 어딜 가는 거냐! 지금 밖은 지옥이야!”
주둔지의 학생들에게 계속해서 압박을 당하고 있는 클레비어스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에, 다이크는 클레비어스를 어느 정도는 의식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홀린 듯이 주둔지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할 거라곤 생각 못했다.
제 아무리 그래도 클레비어스는 끔찍한 겁쟁이다. 이런 재앙과도 같은 상황에 밖을 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으나..
클레비어스는 소름 돋을 정도로 침착한 눈으로, 다이크의 팔목을 꽉 쥐고선 제 어깨에서 내려놓았다.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다이크는 클레비어스의 두 눈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겁에 질려서 덜덜 떨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클레비어스의 눈은 한없이 침착했다.
“너, 대체 어딜 가려는 거냐? 이런 상황에?”
엘비라는 오필리스관으로 향했다─ 그 별 거아닌 사실이 자꾸만 마음에 밟히는 것은, 결국 클레비어스가 겁쟁이에 불과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매사에 걱정만하며 살다보면, 쓸 데 없는 걱정이 늘어나는 것도 순식간이지 않은가.
이 또한, 쓸 데 없는 걱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만큼이나 클레비어스의 마음에 자리한 다른 공포감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것은… 엘비라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틈만 나면 클레비어스를 잡아 쥐어서 흔들어 대고, 닦달하고, 언성 높여대며 쓸 데 없이 화만 내는 그 다혈질 연금광 말이다.
“…”
클레비어스는 다이크의 팔목을 꽉 움켜쥔 채로, 잠시간 그의 눈을 올려다 보았다. 이런 한심한 자신을 위해줄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으니, 쓸 데 없는 걱정이나 도움을 바라고 싶진 않았다.
“산책이요.”
지옥도나 다름 없는 학사 내부로 향하면서 한다는 소리가 그것인가.
그러나, 다이크는 귀기어린 클레비어스를 막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주둔지를 떠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말았다.
클레비어스는 전투부 훈련장의 주둔지를 나서면서, 제 어깨에 칼을 박아넣는다.
끔찍한 격통이 밀려올라오며 절로 신음성이 흘러나오지만… 이윽고 고통은 잦아든다.
허리를 푹 숙이고선, 훅훅 몰아쉬는 숨소리와 더불어서, 붉게 물든 안광으로 주둔지를 포위하고 있는 마물족들의 무리를 스윽 올려다 본다.
핏빛 마력이 물든 검이 섬광처럼 뽑혀져 나왔다. 피를 두른 검귀가 산책길에 나선다.
정신을 차려보면 그 길은, 마족들이 흩뿌린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테일리 맥로어는 오필리스관의 장미 정원에 앉아, 어렵사리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테일리와 함께 오필리스관에 도달한 아일라 트리스는 오필리스관을 뛰어다니며 엘비라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직스 에펠슈타인은 벨 마이아를 위협하는 거대박쥐를 베어버리고, 사정을 설명하고 있었으며.
로르텔 케헬른은 상회 건물 앞에서 직접 빙결 마법을 쏴대며 건물을 지켜내고 있었다.
페니아 엘리어스 클로엘은 클로엘 황제를 이끌고 마물족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황족 숙소 복도를 가로지르고 있었고.
엘비라 에니스턴은… 제 방에서 시약 재료들을 전부 끌어 모으고 있었으며,
클레비어스 노튼데일은 혈혈단신으로 학사의 마물족들을 쓸어담으며 오필리스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벨브로크 토벌대 멤버를 한 자리에 모으려면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해보였지만… 그래도 모두가 잘 생존해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것이다.
허나, 에드 로스테일러를 중심으로 모여야만 할 실베니아 토벌대는… 진전이라 할 것이 거의 없었다.
의 정사에서 아득히 벗어나, 완전히 다른 흐름 속으로 말려들어가버린 인물들. 그나마 정사의 토벌대 전력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에드에게 협조해줄 수 있을만한 인물들…
에드 로스테일러, 예니카 페일로버, 셀라하 에이니르 클로엘은 한 자리에 모여 있었으나…
루시 메이릴은 홀로 벨브로크를 막아내느라 마력이 거의 바닥나 기진맥진한 상태고.
성녀 클라리스는 성당 주둔지에서 나갈 생각조차도 못하고 있었으며.
타냐 로스테일러는 제 주둔지의 생존자들을 책임지는 것만으로도 한계에 달한 상태였다.
그렇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도, 세상의 종말은 차근 차근 다가오고 있었다.
대현자 실베니아는 무너져가는 세상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벨브로크를 막아서려드는 수많은 변수들 중에서, 가장 먼저 제거해야할 변수가 그 두눈에 아로 새겨진다.
그것은… 봉인된 상태의 벨브로크와 거의 호각으로 싸우고 있는, 루시 메이릴의 존재다.
– 쾅!!
반쯤은 무너져 내려버린 학사 첨탑의 잔해에, 루시 메이릴이 매다 꽂혔다.
피어오르는 흙먼지 속에서, 루시는 고개를 털어내고 멸망해가는 하늘을 다시 올려다 보았다.
벨브로크와 더불어서, 그 앞에 지팡이를 들고 부유하고 있는 자.
대현자 실베니아가… 소름 끼치는 웃음을 흘리면서 루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뒤로는 발버둥 치고 있는 벨브로크의 모습이 여전하다.
“아무리 그래도… 둘 다 한 번에 감당하라는 건… 좀 너무한데…”
루시는 교복 외투를 휙 벗어서 던져버리고, 조막만한 몸을 다시금 일으켜 세웠다. 이만한 상처가 생겨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교복 블라우스에 피가 붉게 물들어 퍼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루시 메이릴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늘 그렇 듯, 멍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 본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스스로도 잘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