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41)
벨브로크 토벌전 (9)
― 타닥, 타닥.
코 끝을 간질이는 솜이불의 촉감이 기분이 좋아, 괜히 얼굴에 몇 번 쓸어본다.
벽난로의 모닥불이 타닥대는 소리에 귀기울여서, 온기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어느샌가 잠이 들어있을 것이다.
이불속에서 조막만한 체구의 루시 메이릴이 빼꼼 고개를 내밀어 본다.
푹신한 솜이불 틈바구니로 보이는 벽난로 앞에는, 늙은 마법사가 하나 앉아있었다.
루시가 잠에 들기 전까지 옆자리를 지켜줄 요량인지, 딱히 하는 일도 없이 쇠꼬챙이로 불타는 장작을 몇 번 찌르고 있었다.
이제 완전히 늙어서 자기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들어하는 글록트 엘더베인의 뒷모습은 어찌나 처량한지, 툭 건들이면 그대로 쓰러져버리지 않을까 걱정될 지경이다.
본인이 말하기를, 살만큼 살았다고 한다. 더 살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말하지만, 그래도 일단 살아있으니 살고 있다나.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물어도, 글록트는 명확하게 대답하는 일 없이 루시의 밥이나 차려줬을 뿐이다.
‘꽤 길게 살았지.’
불꽃이 일렁이자 오두막에 가득한 여러 그림자들도 함께 몸을 흔들었다.
별이 뜨지 않은 밤. 반딧불이가 그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듯, 창문에 몇 마리 붙어 부질없이 빛을 내고 있었다.
주름살 가득한 손이 쇠꼬챙이를 꾹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옛날에, 난 내 스승이 싫었어.’
낮잠을 많이 잔 탓인가, 루시가 좀처럼 잠에 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글록트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리 이야기했다.
잠투정을 하는 어린 아이에게는 옛 이야기나 읊어주는 게 최고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어린 나이에 이미 온 가족을 잃고 삶의 의미도, 의욕도 전부 잃어버렸던 글록트 엘더베인.
기어이 대현자라는 작자한테까지 찾아가, 이대로 고통스러울 뿐인 삶을 살아가고 싶지 않다고 토로 했을 때… 그녀는 어린 글록트에게 냅다 꿀밤부터 한 대 때려박았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고한 지식을 갖춘 성위 마법의 대가란 작자가 주먹질부터 해댔다는 사실이 믿을 수가 없었으나… 이윽고 세상 밝게 웃으며 기운차게 이어진 말에 그만 허탈해지고 말았다.
― ‘일단 살아보고 말해! 알지도 못하면서!’
그 뒤로, 아켄섬으로 유배당한 실베니아의 첫제자로 들어가면서… 꽤나 파란만장한 하루 하루를 보냈다.
사사건건 일을 벌이고, 연구랍시고 위험천만한 짓을 해대는 스승의 조수로 끌려다니면서… 악을 지르고 화를 내거나, 한숨을 푹푹 쉬는 날이 훨씬 많았다.
굳이 글록트의 팔목을 끌어 당기면서 오른산 꼭대기의 풍경을 보여주거나, 생전 처음보는 거대한 바람 늑대 앞에서 벌벌 떠는 모습을 보고 폭소를 하고, 다쳤을 때는 왜 조심하지 않았냐고 노발대발 화를 내면서도 치료를 해주고, 연구 성과가 제대로 안 나왔을 때는 침울해하기도 하다가, 또 다음 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목소리를 드높이며 마력 이론을 주구장창 읊어대고.
그렇게 휘둘리고 살다보니 어느샌가 어엿한 1인분을 하는 마법사가 되어있었고.
그렇게 또 정진하다보니 제자랍시고 글록트를 따르는 인간들이 찾아오고.
이론 정리를 하려고 몇 번 끄적인 책을 사람들이 찬양하며 읽어대고.
전쟁터를 노니며 부당하게 죽어가는 목숨들이 안타까워 힘을 쓰기도 하고.
재앙처럼 나타난 마물족이나 정령족들을 직접 물리치기도 하고.
운명 같은 여자를 만나 불꽃처럼 사랑해서, 가족이라는 것을 얻어보고.
목숨을 건 전투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가족을 잃어보고.
슬픔과 피폐 속에서도 지키고 싶은 게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다시 몸을 일으켜보고.
자신을 음해하는 세력과 말다툼하고, 자신을 지지해주는 세력과 악수를 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싸우고, 도망치고, 울고, 웃고, 화내고, 화해하고.
그 끝에 도달한 곳이 결국,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 산맥지대 깊은 곳의 오두막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자신은 어쨌든 고독 속에 삶을 마감하리라 예견했던 그 어린 시절 글록트의 말도… 어느 정도는 맞아 떨어진 것이다.
자기 삶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니까. 그 어린 나이에 이미 이런 자신의 숙명을 통찰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감안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고 한다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냥 살았더니, 자기 멋대로 내 어깨에 올라타서 기대려드는 인간들이 막 생기더구나. 부탁한 적도 없는데 찾아와서는, 박수치고 떠들고, 웃고 울고, 걱정하고 화내고… 너무 앵앵거리고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치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만.’
어린 루시에게 너무 어려운 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걱정도 들지만, 언젠가 다 큰 루시가 회상해준다면 기쁘겠다는 생각에 천천히 말을 내뱉어 본다.
‘없으면 허전해.’
목재 의자에 등을 맡기고, 피식 웃는 노인의 모습이 루시의 동공에 똑바로 아로새겨진다.
‘산다는 게 쉽지가 않아. 그래도, 루시 네가 삶의 끝자락에 도달한 날… 꼭 이렇게 회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솜이불 틈사이로 빼꼼 쳐다보고 있는 루시 쪽은 끝끝내 돌아보지 않은 채, 글록트는 가만히 천장을 보며 그리운 세월을 회상하듯 잠에 든다.
‘일단 살아보길 잘했다.’
― 콰아아아아앙!
주마등이었던 것일까. 순간적으로 그 먼 옛날 라멜른 산맥지대의 오두막 풍경이 떠오르는 듯 해서, 루시는 얼른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장소는 생활동 입구 광장 쪽이었다.
대현자 실베니아와 몇 번이고 원소 마법을 주고 받은 끝에, 차마 벨브로크의 마력탄을 막아내지 못하고 생활동까지 내다 꽂힌 것이었다.
온 몸에 몇 겹으로 방어 마법을 두르고 있었지만, 새어나온 충격에 뼈 마디마다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기 위해서 바닥을 짚었더니 질척질척하다.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에 흥건했다.
루시는 동요하는 기색조차 없이, 마력을 끌어올려 지혈을 했다. 보아하니 입구 광장 쪽의 분수대에 정통으로 쳐박힌 듯 했다.
주변에 온통 흥건하게 젖어있는 바닥 너머로, 마물족들의 무리가 보인다. 그 마물족들과 싸우고 있던 생존자 무리들이 화들짝 놀라서 이 쪽을 쳐다보지만, 루시는 아랑곳 하지 않고 물을 털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상공에 나타난 실베니아가 그 거대한 지팡이로 다시 마력을 이끌어낸다.
루시는 입에 고여있던 피가래를 뱉어내고, 넝마가 되어가는 블라우스를 꽉 움켜쥔채 마력을 끌어올렸다.
“벨브로크를 감싸고 있는 저 봉인은 네가 유지시키고 있는거지? 루시 메이릴.”
제자의 제자, 손제자를 바라보는 실베니아의 모습에 이성의 흔적이라곤 거의 남아있질 않다.
대번에 상대의 정체를 눈치챘지만, 루시는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쓸 데 없는 짓 하지마, 제발! 제발 좀! 제발! 이런 짓 좀! 제발! 그만 좀 해! 그만! 그만! 그만 좀 해!”
날카로운 비명 과도 같은 외침에 머리가 울려, 루시는 미간을 팍 좁혔다.
이미 벨브로크를 상대하느라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거기다가 저런 성위 마법의 대가까지 한 번에 상대하라는 건 너무한 처사다.
그래도, 루시 메이릴은 고개를 팍 치켜들고 있다. 도망칠 마음도, 쓰러질 마음도 없다.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머리를 굴리는 걸 멈추지 않는다.
“벨브로크를 직접 제압할 수는 없으니까, 내가 과거에 구축해놓았던 봉인 법진을 억지로 기워붙여서 유지시키고 있는 거잖아?”
알 수 없는 소리를 뱉어낸다. 루시 메이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루시는 딱히 반박하려고 들진 않았다.
“저런 대규모 법진을 유지시킬 수 있는 마력량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아. 네가…. 네가 이 모든 일을 일으킨 변수구나… 루시 메이릴… 흐흐… 흐흐흐… 그래… 너만… 너만 없으면 돼. 너마안…”
루시는 흘러내리는 핏줄기 속에서 눈을 지그시 한 번 감았다.
벨브로크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는 에드에게 이미 몇 번이고 들었다. 루시는 그 짐을 같이 짊어져주겠다고 몇 번이고 이야기했다.
루시는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계속해서 사고의 흐름을 이어나가 결론을 내는데에 성공했다.
“미쳐버렸구나, 가엽게도.”
루시가 멍한 눈으로 실베니아를 바라본다.
“제 아무리 성위 마법이라고 해도,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결과를 이끌어내려면 인간이 가진 마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그것도 이렇게 아득한 미래를 한 번에 뛰어넘어 지금에 도달한다는 건, 말이 안돼…”
항상 멍하고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어대는 루시지만, 그 통찰력은 여전히 날이 서있다.
성위 마법에 대해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고 있는 루시는 잘 알고 있다.
시간 여행을 하는 것처럼, 휙휙 미래로 뛰어다니는 마법 같은 것이 존재할 리 만무하다. 있다해도 인간의 마력량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면, 대체 실베니아는 어떻게 ‘지금’의 시간에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인가.
간단하다.
세상의 시간을 빠르게 감은 것이 아니라, 자기 시간을 멈춰버린 것이다.
중위 성위마법 ‘시간 감옥’.
시전자의 마력이 바닥나기 전까지, 대상의 시간을 멈춰버리는 게 가능한 마법이다.
그걸,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시전해버린다면… 참으로 무식하고 난폭한 수단이지만, 이론상 미래로 자기를 날려보내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다.
아켄섬에 와서 마력 흐름에 대한 계산식 연구에 집착했던 실베니아의 과거.
벨브로크의 부활 시기를 넘어서 얼마정도의 마력을 부어야 하는지… 실베니아는 그 계산을 진행해왔던 것이다.
뿐만아니라, 마력량 계산을 한다고 다 끝나는 게 아니다.
그 막대한 규모의 성위 마법을 자기 자신한테 시전하면, 자기에게 종속된 마력마저도 시간 감옥에 속박당해버릴 테니… 마법의 효력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시전자의 마력을 스스로 차단해버리는 꼴이니까.
그렇다면, 시간 감옥을 유지시키기 위한 마력을 외부 저장원으로 돌려놓을 필요가 있다.
자신의 몸에 속해있는 성위 마력을 외부의 마력석이나, 다른 저장원으로 우회시키는 마법. 그것도 말도 안될 정도로 막대한 양의 마력을 대상으로 해야만 한다.
메릴다가 이야기 했던, 아켄섬에서 실베니아가 연구해왔다던 그 ‘갈음의 마법’
이제야 어느정도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루시는 고개를 들어 아켄섬에 우뚝 솟아오른 오른 산을 쳐다보았다.
오른산의 꼭대기.
신입생 반 배정 시험 때 에드가 지키고 앉아 있던… 그 ‘갈음의 제단’.
근원도 유래도 알 수 없던 그 제단의 정체는, 실베니아가 스스로를 미래로 날려보내기 위한 마법을 연구한 흔적이었던 것이다.
“절벽 너머로 가려고 했던 거구나.”
미지의 대륙을 향해 나아가는 탐험가들처럼. 어둠의 장막을 헤치고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는 범선을 띄우고, 이를 꽉 깨문 채… 자기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현자 실베니아가 관측한, 모든 미래가 어둠으로 수렴하는 지점, 명명하기를 ‘절벽지점’.
대현자 실베니아는, 그 너머로 직접 나아가기 위해서… 스스로의 몸을 미래로 던져넣은 것이다.
관측하지 못했을 뿐, 미래는 이어진다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그러나, 대현자 실베니아가 각오해야만 했던 부분은… 그 긴 세월을 시간 감옥 속에서 감내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몸의 시간은 멈출지언정, 의식은 어둠 속에서나마 피어난다. 시간 감옥은 정신의 흐름까지는 그 여파가 미치지 않는다.
깊고 깊은 어둠 속에 침전되는 듯한 광경 속에서, 대현자 실베니아는 그 긴 세월을 오롯이 자기 의지만으로 버텨왔던 것이다.
그러나, 실베니아도 인간이다.
인간의 정신력에는 한계가 있다.
이미 실베니아를 잠식하고 있던 그 근원적인 어둠의 공포.
황태자 린돈조차도 몸을 떨며 방구석에 처박히게 만들어버린, 그 인간의 원초를 자극하는 끝 없는 공포에… 시간 감옥에 갇혀있던 그 긴 세월동안 끝없이 노출되어야만 했다.
그 옛날의 실베니아는 버티고 또 버텨냈다.
이 모든 종말의 공포로부터, 기어이 웃어보이고, 살아남을 것이라며… 생을 찬미했다. 틈만나면 밀려올라오는 그 어두운 속삭임에 몇 번이고 저항해 보였다.
그러나… 끝끝내 마음이 꺾여버린 것은…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루시는 전말을 전부 알지는 못해도, 적어도 실베니아가 광기에 물들어버린 이유만큼은 추측할 수 있었다.
그녀는 긴 세월 속에서 끊임없이 고통받아야 했던 것이다. 자기가 평생을 맞서 싸워왔던 그 근원적인 공포로부터.
그렇다면, 실베니아를 이해해주지 못할 것도 없다. 그녀가 그 옛날에 쌓아올렸던 수많은 업적들이나, 세계의 미래를 계속 뻗어나가게 만들기 위해 해왔던 노력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고생했다고 이야기 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여기서 쓰러져 줄 마음은 없었다.
루시는 루시대로 지키고 싶은 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루시가 지키고 싶은 것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다. 세계의 미래라느니, 근원적인 어둠의 공포라느니. 그런 손에 닿기 힘들 정도로 막대해서, 범인들은 가늠조차 못하는 것들이 아니다.
“미안하게 됐어요.”
루시는 존댓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의 스승을 목전에 두고서 루시는 잠시간 고개를 숙여보인 것이다.
“나는 그렇게 그릇이 안 넓어서, 세계라느니 미래라느니 그런 거창한 것들을 생각하진 못해요. 아시잖아요. 제자라는 게 항상 내 바라는대로 자라나주진 않잖아요.”
루시가 지키고 싶은 건 그냥 한 사내의 삶일 뿐이다. 북쪽숲에서 궁상맞게 사는 한 몰락귀족의 이야기다.
공허한 제 삶에 그래도 살아갈만한 이유가 되어줬으니… 그렇다면 자기도 그 사내의 삶을 온힘을 다해 지킬 뿐이다.
그 과정에 세계의 숙명이니, 근원의 어둠이니 하는 거창한 이유는 가져다 붙이지 않는다. 루시는 그런 숙명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받은 게 있으니, 돌려줄 뿐이다. 삶을 받았으니, 삶으로써 돌려주는 것이 상도의에 맞을 뿐.
루시가 피를 흩뿌리며 주먹을 올려쥐었다. 이대로 무리하면 진짜로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렇다고해서 망설이지는 않았다.
아켄섬의 상공에 별이 모두 사라졌다.
루시가 구현해낸 수천개의 원소 마법진에 뒤덮여, 더 이상 하늘이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