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54)
넘볼 수 없는 사람을 사랑했던 자들의 이야기가 많다.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 낭만 가득한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동화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쯤은 안다.
예니카 페일로버는 애먼 옛날에 깨달았다. 현실이란 생각보다 뻔하고, 반전 없고, 무미건조하게 흘러가는 시간들의 연속이다.
한 번씩 맞이하게 되는 하이라이트도 그 때 잠깐 뿐, 본디 삶이란 대부분 뻔한 이야기와 그저그런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연애사 또한 뻔한 결말로 그 끝을 맞이하리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무책임한 한 줄로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끝마쳐버리고, 나몰라라 책을 덮게 만드는 동화와는 달리…
예니카 페일로버의 삶은 늘 그랬듯, 아주 가끔의 하이라이트와 대부분의 뻔한 시간들로 점철되어 흘러가리라.
에드 로스테일러라는 사내를 사랑했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그래도 직감할 수 있다. 향후 몇 년을 더 살게 되든 간에, 또 다시 누군가를 이토록 열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일은 없으리라.
불처럼 누군가를 사랑해보았던 경험은 긴 인생의 영양분이 되어, 예니카 자신을 좀 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
결실을 맺지 못한 사랑일지라도 마음 한 켠에 남아, 이토록 뜨겁게 누군가를 생각해본 적 있었다고 회상할 수 있도록 해줄테니.
사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그렇게 예니카 페일로버는 제멋대로 실연을 결심했던 것이다. 스스로 의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로스테일러 공작령에 부대껴 살며 그의 곁에 있는 시절도, 언젠가 반드시 끝이 날 것이라고 직감하고 있었다.
아직 오지도 않은 실연에 지레 겁먹어, 스스로 연애사를 마무리 짓는 황당한 행동. 그런 짓을 하는 이유는 뻔하다. 에드 로스테일러의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니카 페일로버는 에드가 자신을 취하기 위해서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에드가 마음먹고 모든 희생을 감수해서 예니카를 취해준다면 참으로 기쁜 일일 터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비난할 수도 없다.
정 그를 사랑한다면 고집을 부리면 된다.
날 곁에 두고 싶으면 정치적인 이득이든, 인맥이든, 귀족으로서의 권위든, 바쁜 교수직이든 뭐든… 일단 내려놓으라고.
예니카 페일로버라는 여자가 가지고 싶으면 그에 걸맞은 희생을 하라고, 좀 더 자신을 돌아보고 보살피며 때때로 안아달라 강요하면 되는 일이다. 아마 에드 로스테일러는 거부하지 못할 터.
그러나, 예니카 페일로버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천성을 타고났다.
그녀는 에드 로스테일러에게 그 어떤 종류의 희생도 강요하고 싶지 않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려 하는지 잘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렇기에 소녀는 방황하는 것이다. 기나긴 세월 품어왔던 연심은 무인도에 표류한 듯 나아갈 방향을 잃은 상태다.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버린 자신에게 때때로 환멸이 느껴질 때도 있다.
‘…마음 다잡아야지…’
세신을 마친 예니카는 가벼운 가운을 걸친 채로 앞섬을 꽉 묶었다. 그리고 거울을 본 채 머리칼의 물기를 털며 다시금 결심했다.
‘잠깐 같은 방에서 잔다고 마음이 흐트러졌는데, 혼동하면 안 되지… 나한테는 내 역할이 있는 거야..’
에드 로스테일러가 자신을 특별대우 해준다고 해서, 정말로 자기가 특별하고 고귀한 인간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갈 곳 잃은 자기를 일단 방 안에 들여준 에드한테 고마워해도 모자를 상황에, 뭘 기대감에 부푼 듯이 심장을 쿵쾅거리고 있단 말인가.
에드 성향상 예니카에게 손을 댈 일도 없을 것이다. 사실 늘 그랬듯이 예니카 혼자서만 북치고 장구치고 긴장해대는 것일 가능성이 컸다.
홍당무처럼 붉어진 볼을 바라보면서, 예니카는 입술을 꽉 앙다물었다.
실베니아 아카데미를 막 졸업했을 뿐인 신분이지만, 자기도 일단은 성인이 되지 않았는가. 언제까지 이런 일에 쑥맥처럼 일일이 얼굴 붉히고, 눈동자를 흔들어대고, 겁을 집어먹고 있을 것인가.
진짜로 작정하고 잠자리를 가지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방에 있는 침대 하나를 내주었을 뿐이다.
다 큰 성인 여성이 그거 하나 부끄럽다고 말 더듬고, 얼굴 붉히고, 숨 막혀하는 거 이거 아주 부끄러운 일이다. 언제까지고 에드한테 보살핌이나 받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한 번 세안을 했다.
“그래, 좋았어..”
불타오르는 것 같던 얼굴의 열기도 싹 내려 앉고, 드디어 평정심이라는 것이 돌아온 기분이다.
괜시리 거울을 보고 어른스러운 미소도 스르륵 지어본다. 이만하면 쑥맥 같던 모습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여유를 가지고 남자를 대하는 어른의 모습 그 자체다.
예니카는 그 기세를 타고 얼른 욕실 문을 열어 젖혔다. 지금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에드를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다 씻었냐.”
– 쾅!
그러나, 상의를 탈의한 채 면바지만 입고 예니카의 침대에 걸터 앉아 있던 에드를 보자… 예니카는 그대로 욕실 문을 다시 후려쳐서 닫아야만 했다.
코피가 올라올 뻔 한 것을 콧잔등을 꽉 잡아서 겨우 처리하고, 다시 한 번 한참동안 냉수를 얼굴에 들이부어야만 했다.
*“미, 미안해… 에드… 옷 갈아입고 있는 줄 몰랐네.”
침실 쪽으로 나온 예니카가 거의 붉은색 물감을 치덕치덕 바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홍당무가 된 얼굴을 수습하며 나왔다.
그러나, 예니카가 다시 침실로 나왔음에도, 에드는 여전히 상의를 탈의한 상태였다.
“아, 아직도 안 갈아입었네…! 미안해! 잠깐 들어가 있을테니까 다 끝나면 불러!”
“아니, 안 가도 된다. 일단 여기 와서 옆에 앉아봐.”
“뭐흐컥”
뭐라고? 라고 대답하려다가 호흡이 틀어막혀서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당장에 뇌에 과부하가 걸려 있는 예니카를 배려해줄 입장도 아니므로, 에드는 그 다음 대사로 추가타를 박아넣을 수밖에 없었다.
“갈아입던 중이었던 게 아니라, 그냥 벗은 거다.”
“….!!!”
예니카는 여기서 이미 숨이 멎어서 질식사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당장에 증기가 뿜어져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머리를 두어번 끄덕이더니, 그냥 에드가 시키는대로 종종 걸음으로 나와서 에드의 옆에 앉았다.
“…지는 않고?”
심장 고동 소리가 쿵쿵 대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귓가에 울려퍼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에드의 말을 순간적으로 놓쳐버릴 정도였다.
“으, 응?! 뭐라고?!”
“춥지는 않았냐고.”
“응! 날씨도 따뜻하고! 오히려 냉수라서 정신이 바짝 들어서 좋던걸!”
괜히 긴장해서 필요이상으로 텐션이 높아져 있었다.
나 아무렇지도 않아요, 라고 강조하고 싶어하는 듯한 태도다. 보통 그런 태도를 취하는 사람치고 괜찮은 사람이 없다.
“그럼 다행이네. 그나저나, 이런 기회가 왔으니까 꼭 네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 예니카.”
“응, 응! 말해! 다 말해!”
이미 예니카는 완전히 예스맨이 되어 있었다.
밀폐된 공간. 하룻밤을 같이 지내기로 약속된 상태. 상의를 탈의하고 예니카의 침대에 걸터 앉은 에드. 속옷과 가운만 두른 채로 그 옆에 앉아서 고개를 붉힌 채 숨을 가다듬고 있는 예니카.
이 상태에서 뭔가를 더 생각하거나 뇌를 굴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예니카는 그런 인간이었다.
“…좀 진지하게 하는 말이다. 네 입장에서는 당연하다고 느껴질 수도, 의외라고 느껴질 수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말해두마.”
“뭔데?”
에드는 잠시간 침대 시트 끝을 당기다가, 그냥 리듬을 타고 흐르듯 이야기 했다.
“아무래도 난 널 좋아하는 것 같다. 이성적인 의미로.”
예니카 페일로버의 호흡이 끊어졌다.
사망. 예니카 페일로버, 향년 21세.
에드 로스테일러의 갑작스러운 고백으로 인한 심장 마비로 쇼크사.
*“….허억!”
잠시 정신줄이 끊어졌다가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3초였을까, 아니면 5초였을까.
죽었다가 귀환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잠깐동안 공황 상태에 빠져있던 예니카의 정신이 얼른 제 자리를 찾아 돌아간다.
“뭐, 뭐어…”
“난 널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거 같다고 말했다.”
“아, 아니 듣긴 했는데 왜.. 어.. 으으 왜… 침이…”
입을 다물 생각을 못해서 침이 흘러나와 예니카는 스읍 거리며 얼른 정신을 다잡았다.
“너도 어느 정도는 직감하고 있었을 거 아니야. 부대낀 세월이 몇 년인데.”
“아니, 그렇긴 하지만… 에드랑 나 사이에는 간극이 있으니까… 에드는 공작가 도련님이고, 나는 그 가신이자 겨우 남작 작위 하나 받았을 뿐이고…”
“그래…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할 거란 예상은 했다…”
에드는 잠시 고개를 숙인 채 이야기 했다.
“…그렇지, 내 입장에서야 차여도 할 말은 없다.”
“뭐어? 무슨 소리야! 이, 이상하게 해석하지 마! 찬 거 아니야! 찬 거 아니니까 너무 섣부르게 결론 내지 말고 일단 이야기를 좀 나눌 필요성이 있다는 거야! 오해 하지마! 중요하니까 확실히 확인해두는 거지만 진짜로 찬 거 아니야! 안 찼어!”
“안 찼다는 거면, 그럼…”
“허억…!”
틈만 나면 숨을 몰아쉬던 예니카는, 도저히 자기 얼굴의 열기를 감당 못하겠는지 얼굴을 확 감싸쥐며 이야기 했다.
“에, 에드… 큰 일 났어…”
“뭐? 왜?”
“이, 입꼬리가 토, 통제가 안되는데에… 잠깐만 시간을 좀 줘. 나 지금 분위기랑 안 어울리게 되게 웃기고 실 없는 표정을 짓고 있을 거 같아…”
“…천천히 해라.”
예니카는 고개를 푹 숙여서 자기 새하얀 허벅지 사이에 고개를 박았다.
아까부터 등을 타고 오싹오싹 피어오르는 이 감정은 무엇인가. 뭐라 명명해야할지 모르겠는 이 미묘한 청량감과 카타르시스, 그리고 열기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것이다.
행복감, 그렇게 뭉뚱그려서 표현을 해보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호흡조차 가빠질 정도로 마음이 붕붕 뜨는 감각에 지금 당장 천당으로 승천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행복에 겨워서 매여버린 목에서 어떻게든 소리를 내보려고 애를 쓰는 예니카의 등에, 이어지는 에드의 말이 넘어왔다.
그 사내 치고는 어울리지 않게, 쭈뼛거리고, 시선을 회피하면서… 묘한 어투로, 어렵사리 말을 이어간다.
“너만, 좋아하는 건, 아닐지도….”
세상이 멈췄다.
어떻게든 승천하는 입꼬리를 끌어내리려던 예니카가 돌처럼 굳었다.
그리고 뻣뻣한 고개를 들고 확 커진 눈동자로 에드를 바라보았다.
“…으응?”
“잘.. 들어봐라… 예니카… 영웅호색이란 말이있다… 내가 뭐 영웅은 아니지만, 이래봬도 공작가 도련님이고 이룬 것도 꽤 많다.”
“으, 으응….”
“큰 배가 어떻게 한 항구에만 정착할 수 있겠냐. 무릇 웅대한 그릇을 가진 사내라면 수많은 경험을 두루 해보고, 많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하해와 같은 내면을 가다듬어야지…”
에드 로스테일러 치고는 뜬구름 잡는 소리가 많다. 언제나 냉철하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던 모습과는 묘하게 엇나가 있는 느낌이 든다.
어쩔 수가 없었다. 에드 로스테일러에 빙의하기 전에도 여자 경험이야 있었지만, 상대한테 대놓고 나 바람 필거라고 당당히 선언하는 쓰레기 같은 짓을 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에드는 슥 고개를 돌린 채 이야기했다.
“다, 다른 여자를 또 이성적으로 좋아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거 아니냐…”
“그, 그건 무슨 소리야…!”
“난 로스테일러 공작가 출신이니까, 나랑 엮여보려 하거나 줄을 대보려고 하는 여성이야 꽤 있겠지… 어쨌든 사교적으로 그들과 어울리고, 그러다 보면 눈이 맞고… 뭐 그러는 일이야 귀족 사회에서는 일상다반사지. 그 때가서 예니카 너에게 상처를 주는 건 좀 그렇지 않냐는 거야. 어떻게 보면 널 배려하는… 그런 거다…”
궤변 그 자체다.
그러나, 에드 로스테일러는 이게 말 같지도 않은 말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혹시나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넌 좀 이해해주고 용서해줄 수 있냐는… 그런 질문을… 좀 해보고 싶었다…”
여기서 에드 로스테일러는 예니카가 따귀를 걷어올릴 거라고 생각해 마음을 다잡았다.
펑펑 울거나 욕이라도 하면 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도 좀 생각해두었다. 어쨌든, 예니카가 무슨 짓을 하든 에드로서는 다 받아들여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에, 드으…”
그렇게 고개를 들어올린 예니카는… 의외로 아련한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실베니아 2학년생 시절, 아켄섬 북쪽숲의 호수에서 처음만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의 4년이다.
그간 많은 시련도 헤쳐나가고, 동거도 하고, 가신 관계까지 되면서… 예니카는 그 누구보다 에드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이 다 있나! 라면서 호통을 치며 따귀를 걷어붙일 타이밍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예니카 페일로버는, 저런 말을 하는 에드의 의도까지도 전부 이해해버리고 만 것이다.
에드 로스테일러라는 사내는 탐욕적이지도, 자신의 그릇이 넓다고 뻗대지도, 주색잡기에 관심이 있지도 않다. 저런 말을 할만한 인간이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 로스테일러가 저런 말을 입에 담은 이유는, 결국 예니카 페일로버를 깊게 이해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에드 로스테일러라는 인간이 자기 희생을 감수해가며 예니카 페일로버를 취했을 때, 그녀가 느낄 부채의식과 부담감을… 에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한 번 그 무거운 짐에 의해 무너진 경험이 있는 예니카에게, 같은 경험을 두 번 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에드 자신이 쓰레기를 자처한 것이다.
에드가 희생해서 예니카에게 그 부담감을 강요하기 보다는,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비난을 감수하며 용서 받는 입장이 된다.
예니카 페일로버는 에드에게 많은 빚을 진 채무자가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에드의 부덕과 방탕함을 이해해주고 용서해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자체로 예니카의 마음에서 얼마나 많은 무게감을 지워낼 수 있는지 잘 이해하고 있기에…. 에드는 사회적 위신 같은 것을 굳이 챙기려 들진 않았다. 귀족들 중에서 평민과 불장난을 하는 사람들이야 원래 많기도 하고 말이다. 그 정도 뒷소문 쯤은 감당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일까.
책임감 있는 에드가 여러 여자를 한 번에 안아들 거라는 생각은 잘 안든다. 그는 매사 진지하고 누구를 대하든 진심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그런 건실한 사내가 방탕한 짓을 하려 들 이유가 없다.
적어도 예니카는 에드의 그런 기질은 잘 알고 있다. 그는 언제나 이성관계보다는, 자신이 해야만 할 일에 집중하는 스타일이었다.
에드 주변의 이성들이 가만히 있을 것인지는… 차치해 두고…
나중에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것도… 일단은 차치해 두고…
세상 일이라는 게 항상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까지도… 어떻게든 차치해 둔다 치면…
일단 에드가 예니카에게 해준 그 배려는, 예니카에게는 오히려 눈물이 흘러나오려 하는 것이었다. 차치해둔 게 좀 많긴 하지만 어쨌든 간에.
“에드. 자기 스스로를 깎아내려가면서까지 내 마음에 책임을 지려고는 하지마.”
핵심을 꿰뚫는 예니카의 말에, 에드는 잠시간 말문이 막혔다.
예니카라면 에드의 이런 행동에 대한 의문을 가질거란 생각 정도는 했다.
그래도 그렇지, 워낙에 충격적인 선언이라서 일단 경멸의 시선부터 보내지 않을까 하긴 했었다. 허나, 생각 이상으로 예니카는 에드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유 없이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사람은 아니다.
그 굳게 박힌 신뢰가 흔들리지 않으니, 사실 에드 입장에서 오명을 뒤집어쓰고 말고 할 건덕지도 없다.
결국에는 부질없는 헛발질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질없는 헛발질이 예상외의 발전을 낳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예니카도, 에드도.
결국 둘의 관계는 상호 존중과 배려가 거미줄처럼 얽혀서 서로를 옭아매는 것에 가깝다.
에드는 예니카의 마음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고, 예니카는 에드의 마음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니… 둘 중 하나가 굳게 마음을 먹으면 관계도 완전히 일변해버리기 마련이다.
“그럼… 알았어, 에드.”
결국, 에드의 의도를 전부 읽어낸 예니카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선언하듯 외쳤다.
“네가 그렇게 쓰레기면, 쓰레기 해!”
에드가 굳게 먹은 마음에 결국 예니카도 덩달아 영향을 받고 만 것일까. 예니카는 마음을 굳게 먹고 에드의 팔을 확 잡아끌더니 침대 위에 나자빠졌다.
숨을 훅, 훅, 몰아쉬면서 에드를 끌어당긴 것만으로도 모든 용기를 다 끌어 쓴 느낌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목덜미 언저리에 제 몸을 지지하고 있는 에드의 팔이 느껴졌다.
풀어헤쳐진 앞섬. 보란 듯이 드러난 흉부나 둔부를 생각해보면 벌써부터 열이 올라와 기절할 것만 같다.
창가에서부터 밀려오는 시원한 밤공기가 예니카의 맨살에 닿아 몸을 한 번 쓱 훑고 내려간다. 한계까지 뜨거워진 체온 때문에 늦여름 밤공기조차도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진다.
Primovilly
LO HIZOOOO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