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55)
나부끼는 커튼 사이로 보름달의 은은한 빛이 새어들어온다.
어둠 속에서 올려다본 에드의 얼굴은 한 없이 진지하다. 늘 그랬듯이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듯 하지만… 제 아무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내라 할지라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인내심이라는 것은 언젠간 끊어지기 마련이다.
에드 로스테일러의 인내심과 자제력은 가히 초인의 영역이라 봐도 무방하겠지만, 무한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흔들거리는 이성에 마지막 추가타를 날리겠다는 일념으로, 예니카가 속삭인다. 난 괜찮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보듬어주는 그 따스한 관계는 아름답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복잡한 것들은 굳이 생각하지 말자. 미담 가득한 동화 속 꽃밭에서도 졸업할 때가 되었다.
어렸을 적의 예니카가 펼쳐보았던 동화책 속의 삽화.
멋진 왕자님이 공주님을 구해내고, 앞머리를 들어 앙증맞은 키스를 해주며 이야기가 끝나던 그 풋풋한 이야기. 겨우 그런 입맞춤 하나만으로도 베개를 두들기고 이불을 꾹꾹 누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예니카였으나…
현실의 입맞춤은, 귀여운 수채화풍으로 깜찍하게 그려져있던 동화책 속 내용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실감해야만 했다.
굳은 살이 가득 배긴 에드의 손이 자기 이마를 쓸어올리자, 예니카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게 되어버렸다. 떨리는 눈동자와 상기된 볼을 더 이상 숨길 수도 없이 그대로 드러낸 채, 굳은 몸으로 에드의 다음 행동을 기다려야만했다.
도마 위에 놓인 물고기가 이런 기분일까.
지금은 에드 로스테일러라는 사내가 하는대로 이끌려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그 묘한 상태. 그런 피지배감에서 오는 기묘한 배덕감마저도 예니카에게는 새로운 세계다.
에드 로스테일러 역시도 긴장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여성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니카처럼 천진난만하고 발랄하던 소녀에게 직접 손을 대는 이 상황은… 다른 종류의 망설임을 부추긴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끊임 없이 머리를 잠식하지만… 아무리 이성적으로 따져보아도 이러면 안될 이유라는 게 없었다.
예니카 본인이 괜찮다고 했으며, 이미 에드 본인은 자기가 쓰레기라고 선언하다시피 한 상황이고, 마을 사람들… 심지어 예니카의 가족들마저도 고개를 끄덕이는 상황 아니던가.
예니카의 이마를 타고 그대로 턱선을 쓸어내리는 손이… 조금 더 아래로 아래로 뻗어 내려가도 괜찮은 상황이다. 세상 그 누구도 그 손의 동선에 제지를 가할 사람이 없다.
막을 사람이 없다면 나아갈 뿐이다. 에드는 어울리지도 않게 마른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서는, 예니카의 어깨를 쓸어주면서 조용히 입을 맞춰보았다.
입술에 불이 붙었다.
그 정도로 예니카의 피부 표면은 완전히 달아올라있었다. 수치심이 한계에 달한 것일까.
처음으로 하는 입맞춤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이런 분위기 속에서의 입맞춤은 캠프에서 잠깐 입술을 맞대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동화책 삽화 따위는 현실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냥 입술 표면이 맞닿는 것만으로도 예니카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끈적거리는 듯한 느낌이 가슴 속에 울렁거리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예쁜 팬지꽃밭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웃어보이는… 그런 가슴 푸근한 광경만 가득하진 않다는 것.
오히려 금지 구역에 들어가는 듯한 그런 오싹한 감각이 더 본질에 가깝다는 것.
예니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런 느낌을 맛보았다.
에드의 입이 떨어져나오고, 예니카가 숨을 몰아쉬면서 에드의 다음 행동을 기다린다.
그렇게 에드의 손이 조금씩 더 아래로 내려가, 다음 굴곡진 곳을 향하려는 순간에… 예니카는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냈다.
“에드으… 그…”
이 이후로부터는 스킨십의 의미 자체가 달라진다.
그 직전의 상태에서, 예니카는 쥐어짜듯이 겨우 목소리를 내는데 성공했다.
“나아, 진짜 한심하고, 바보 같은 질문해도 돼…?”
“지금…?”
“으, 응…”
에드는 잠시 손을 멈추고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에, 에드는… 내가 처음이야?”
폐부를 찌르는 듯한 질문에 잠시 숨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질문이 휙 들어오면 그 누구도 한 번은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다.
에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잠시 고민을 해볼까 했는데, 사실 ‘고민을 한다’는 선택지는 최악이나 다름 없다. 고민한 시점에서 대답은 나온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예니카를 상대로 거짓을 이야기할 이유도 없고, 또 기묘한 배려를 해줬다가 분위기만 더 이상해질 수도 있기에… 일단 에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윽…”
그 짧은 대답이 큰 충격이었는지, 예니카는 눈물이 핑 도는 걸 한 번 참아내었다. 사실 예니카 입장에서 뭐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에드가 예니카랑 만난 것은 실베니아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고, 그 이전의 에드의 삶이 어땠을지는 완전히 예니카가 관여할 영역이 아니다. 사실 그 이후도 마찬가지고.
공작가 도련님인만큼 완전히 예니카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을 터. 예니카 입장에서 입학 이전의 에드의 삶은 철저히 상상의 영역일 뿐이다.
그러니 고개를 가로저은 에드에게 뭐라 말할 수는 없다. 허나, 최소한 부탁 정도는 할 수 있다.
“나, 나는 처음이란 말야…”
“…”
“에, 에드가 주도해줘야 해… 난 진짜… 머리가 새하얘서… 아무것도… 잘 모르겠어….”
예니카는 순수한 의도로 말한 것이지만, 그것이 상대에게 얼마나 무거운 의미를 가지는 발언인지는 모를 것이었다.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따라갈테니. 이 앞에서 인내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내는 없었다.
그대로 에드의 손이 굴곡을 따라 내려갔다. 예니카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와도 같이 일이 진행되어 갔다.
에드의 손이 분주해질수록, 그에 호응하듯 예니카의 목소리도 드높아져갔다. 때로는 지금 이 순간이 아깝다는듯 강렬하게, 때로는 영원히 이 시간이 계속될 것처럼 은은하게, 서로가 서로를 탐했다.
서로를 품에 안고, 눈을 마주치고, 살결을 댄다는 것.
이성 경험이 전혀 없는 예니카에게는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가 모두 금단의 선을 넘는 일인 것만 같다. 탄탄하고 묵직한 사내의 덩치와 몸을 온 몸으로 감싸 안아본 것도 처음이고, 살결을 따라 물 흐르듯 부드럽게 흘러가는 손길도, 가까이서 느껴지는 그의 숨결도 전부 해선 안될 일을 하는 것 같은 저항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예니카는 이토록 가까이서 살을 맞대고 나서야 에드와 자신의 차이를 더욱 더 여실히 깨닫고 만다.
신분, 성격, 배경, 가치관 따위의 것들이 아닌… 좀 더 야성적이고 원초적인 차이. 묵직한 손놀림, 튼튼한 팔과 다리, 한 뼘 이상 더 큰 키, 꽉 안아도 다 품을 수 없는 몸, 꾸준한 생존 생활을 반복한 끝에 완성된 그의 육체는 부러질 듯이 가늘고 새하얀 예니카의 팔다리와는 확실히 비교된다.
몇 번의 입맞춤이 더 반복됐지만, 하면할수록 오히려 더 심장이 뛰어오르기만 했다. 뭐가 됐든 이런 행위에 한해서는, 자신은 정말 적응력이라는 게 전혀 없구나. 그 사실을 실감하고 만다.
한 번 한 번의 손놀림이, 입맞춤이, 숨결이, 온기가, 전부 적응이 되질 않는다. 매번 처음처럼 심장이 쿵쾅대서 당장이라도 혼미할 듯이 예니카를 몰아붙인다.
에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 예니카의 사정을 봐줄 입장이 안된다.
그는 분주한 와중에도 한 번씩 예니카의 앞머리를 들어서 은은하게 눈을 맞췄다.
그럴 때마다 예니카는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회피하려 했다. 그래도 에드는 예니카에게 더 이상 도망칠 구석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한 번씩 서로 간에 눈을 맞추는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평정을 되찾을 기회를 주는 것이지만… 오히려 예니카에겐 역효과였다. 에드와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하는 건 너무나도 큰 정신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렇게 눈을 질끈 감다가, 다시 시선을 맞추려고 애를 쓰는 예니카를 보고 있는 게 재밌어지는 바람에 반쯤 장난으로 시도를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 시점에서 이미 예니카는 반쯤 정신을 놓고 있었다.
에드의 손길을 느끼며 목소리를 드높이다가도, 잠시간 휴식하며 눈을 맞추고 서로를 바라보거나, 껴안은 상태로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은은하게 지탱해주거나.
에드가 힘을 쓰면 자신은 버티고, 에드가 쓰다듬어주면 그냥 그 온기를 느끼고, 그렇게 긴장과 이완을 오가며 그의 손에 놀아나고만 있었다.
그리고 의외였던 부분은 스스로가 그런 느낌을 제법 즐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팔다리가 묶인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리드 받는대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에 무언가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에드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다시금 안아주었을 때, 예니카는 깨달았다. 이건 행복감이라는 것이다.
뭉뚱그려 표현하기엔 좀 난폭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것 말고는 가슴 속에 피어오르는 이 충족감을 표현할만한 어휘가 없었다.
예니카 페일로버는 지금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욕구 충족이 아닌, 삶에 대한 긍정과 희망 비스무리한 감정이었다.
본디 함께 밤을 보낸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을 터다.
난잡한 곳에서 서로의 온기만을 탐하는 그런 일차원적인 욕구 충족이 아닌, 누군가의 온기에 기대어 제 삶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과정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 받는 일이다. 펼쳐진 길이 꽃길이든 가시밭길이든, 제 옆에는 같이 손잡고 걸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
햇살만 가득한 삶은 아니었다. 사실 실베니아에 입학한 뒤로는 어두운 날이 더 많았다.
어깨를 짓누르던 기대감도, 하늘을 가득 메우던 글라스칸의 마법진도, 부서진 네일관에서 울던 기억도, 대륙을 불사르겠다는 의지로 포효하던 성창룡의 외침도, 아켄섬 상공을 뒤덮던 프리데의 고동 소리도, 상처투성이로 마물족 무리들을 뚫어내던 그 의지도.
그리고 그 끝에서 피를 흘리고, 울고, 이를 악물며 버텨왔던 예니카 페일로버의 고독도.
그 추웠던 날들을 보상 받지는 못할지라도, 이해해줄 사람은 옆에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확인하는 듯해, 문득 예니카는 눈물을 조금 흘렸다.
“…괜찮냐?”
“무서워서 우는 거 아냐.”
“…그럼?”
“그냥.”
사람은 행복해도 눈물이 난다. 그런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예니카는 자기 눈가를 쓸어주는 에드의 엄지손가락을 느끼며, 오히려 입꼬리를 올려보았다.
드디어 긴장이 풀린 것인가.
에드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침대 언저리에 있던 큼지막한 베개를 예니카의 허리춤 아래에 밀어 넣어주었다.
꼿꼿이 세워진 허리 탓에 당당히 몸을 위로 내미는 듯한 자세가 되어, 괜시리 몸의 굴곡이 강조되는 것 같다.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여전히 예니카는 얼굴을 붉힌 채 숨을 휙 머금었다.
에드는 자기 턱을 한 번 쓸어내리고서는 이윽고 양팔로 예니카의 허리춤을 지탱해주었다.
앞으로 이어질 일이야 뻔하지만, 사실 육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새부턴가 몸보다는 마음의 교감이 두 사람에게 더 큰 충족감을 주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소중히 여긴다는 감각을 공유하는 것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다.
긴 밤이 이어지는 동안 예니카가 가슴에 품었던 생각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 인생에 이토록 행복한 순간이 또 다시 올 수 있을까. 그 기쁨과 아쉬움이 동시에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 뒤로 예니카는 베개가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꽉 쥐고 있을 뿐이었다.
허리춤 아래에 있는 베갯잎을 꽉 움켜쥐거나, 아니면 품에 안은 채 엎드려서 얼굴을 묻거나, 그대로 몸을 지지하는 팔을 받치거나, 목 뒤에 받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거나…
그렇게 긴 시간이 가고, 이런 저런 움직임을 취하던 예니카는 두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는, 자기 몸이 생각보다 그리 유연하지는 않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영원히 계속 될 것 같았던 에드의 체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슬슬 끝이 오는 것일까. 에드가 예니카의 볼을 한 번 쓸어주며 복부에 힘을 꽉 주는 듯한 모습을 취하자, 예니카는 오히려 그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이 사내가 어디 도망이라도 갈까 싶어서, 일단은 품에 꼭 끌어안고 있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올라… 그렇게 예니카는 마지막까지 에드 로스테일러의 너른 가슴에 얼굴을 묻고 싶었던 것이다.
*한산하면서도 활력 넘친다.
모순적인 표현이지만 산골 마을의 새벽엔 그런 묘한 느낌이 난다.
산등성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안개 때문에 그 웅장한 산맥의 위용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이따금씩 마을 사이로 생활 소음이 울려퍼진다.
태양조차 잠든 까마득한 시간부터, 이 마을은 움직일 준비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연초 연기가 흘러올라가다가, 이윽고 메릴다의 발길질에 휘말려서 휙 하고 사라져버린다.
숙소의 옥상에서 산골 풍경을 보고 있던 메릴다는, 새벽부터 나와서 연초를 피우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더니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 피곤해 보이네~ ]숙소 앞 나무 등걸에 가만히 앉아서 새벽의 풀벌레 소리를 듣던 나는, 뭐라 대답하려다가 말았다.
예니카는 완전히 골아떨어져서 잠든 상태다. 이불을 잘 덮어주고 밖에 나오니, 다섯시도 안된 이른 시간에 일터를 향해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너도 참 짓궂은 면이 많아. 메릴다.”
메릴다는 숙소 옥상에서 휙 뛰어내리더니, 바람에 흩날리는 스커트 자락을 꾹 누르며 바닥에 착지했다.
뒤로 올려 묶은 백발의 머리칼을 휙휙 쓸어내리더니, 이윽고 뒷짐지고 와서 자세를 낮춘 채 연초를 피우고 있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고선 놀리듯이 말했다.
[ 쓰레기~ ]뭐라고 받아쳐줄까 말하려다가, 그냥 부정을 안하는 게 맞겠다 싶어서 가만히 있었다. 메릴다 본인이 부추긴 일이니, 사실 본인도 별다른 발언권은 없을 터다.
[ 예니카를 나몰라라 방치하기도 싫고, 그렇다고 부담 지우기도 싫고… 뭐, 네가 취할 수 있는 입장과 선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는 건 인정하겠지만… ]메릴다는 내 옆 나무등걸에 나란히 걸터 앉더니, 스커트 자락을 괜시리 펄럭대며 이야기했다.
[ 다른 여자들이 엮이든 말든 뭐 그러려니 하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니… 예니카는 어쩌면, 오히려 더 고생길이 열린 걸지도 모르겠네… ]“야 임마.”
[ 세상 일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는 거야~. 어느 날 갑자기 네가 새로운 눈을 뜰지도 모르는 일이지~. ]메릴다는 그래도 싫지는 않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괜히 바람 마법을 내보내 내 연초 연기를 흩뿌려대는 장난을 쳤다.
원래 장난기 기질이 있던 정령이라는 사실이야 알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더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 이유야 알만 했다.
“어쨌든, 슬슬 티르칼락스에 대한 조사도 착수해야지. 빨리 마무리하고 아켄섬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연초를 다 피운 뒤, 나는 불을 비벼 끄면서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듣던 메릴다는, 이내 다시금 아련한 얼굴로 이야기 했다.
[ 그거 알아? ]“뭐.”
[ 이 지역에선 말야, 산등성이를 따라서 쭉 피어있는 팬지꽃을 바람꽃이라고 부른대. ]“그래?”
바람이 불었다. 새벽녘의 선선한 바람이다.
산등성이를 따라 타고 내려온 시원한 바람은 언제나 청량하다.
새하얀 머릿결을 휘날리며, 메릴다는 탁 펼쳐진 산등성이를 가만히 올려다 보았다.
[ 왜 그렇게 부를 거 같아? ]“항상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으니까?”
[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달라. ]이따금씩 지어보이는 그 고독한 얼굴로, 그 바람 늑대는 나긋하게 이야기했다.
*“마실 것을 좀 드릴까요?”
연초를 피고 올라가는 길에, 숙소 주인장이 친절하게 물어보았다. 나는 감사하다고 인사한 다음 허름한 계단을 타고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간밤에 잠을 별로 못자서 그런가, 좀 더 침대에 누워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예니카는 그새 잠에서 깨었는지 발끝을 꼬물대고 있었다.
뭔가 얼굴을 내밀기 부끄러운 것인지, 이불 속에 몸을 묻은 채로 내 눈치를 보고 있는 듯 했다. 이른바 현자타임이다.
나는 맞은 편 침대에 걸터 앉은 뒤 협탁에 물주전자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컵에 물을 한잔 쫄쫄 따른 뒤, 한 번에 원샷하고 내려놓았다.
“…”
그렇게 잠시간 정적.
이어지는 정적 속에서 시간차를 둔 뒤, 다시금 목소리를 내보기로 했다.
“야, 예니카.”
호명 한 번 한 것 가지고 뭐가 그리 놀라운 것인지, 예니카가 발끝을 휙 감으며 몸을 크게 떨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불 아래로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 꼭 굴 속에 숨은 다람쥐 같았다.
“조사 하러 가야지.”
이불 속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예니카가 안쓰러워서, 나는 일단 밖으로 나올 명분을 던져주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일단 해야할 일이 있으면, 싫어도 나올 수밖에 없는 거니까.
예니카는 이불로 몸을 감은 채 얼굴을 쏙 빼내더니, 고개를 돌려서 산발이 된 머리칼을 한 번 휙휙 털고선 어렵사리 대답했다.
“아, 알았어…”
목소리가 완전히 나가 있었다.
그럴 만했다.
Primovilly
Increíble (lo detallaron más de lo que pensé, lo sabía, éste es el Best manhwa no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