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72)
이 뒤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전적으로 내게 달려 있었다.
척 봐도 경험이 없어 보이는 로르텔은,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지 내 손에 완전히 이끌려 움직였다.
나신을 드러냈다는 사실과, 자기 은밀한 내면을 적어놓은 노트를 들춰졌다는 수치심이 동시에 휘몰아쳐서 피가 얼굴에 쏠려있는 듯하다.
허나, 나도 사내다.
여기까지 와서 로르텔을 진정시키고, 조용히 다시 이불을 덮어준 채 방을 나설 수는 없다. 여심을 헤아리는 데에 별로 재주가 없는 나지만, 그래도 그게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은 안다.
여기서는 더 치고 나가야할 타이밍이므로, 나는 천천히 로르텔의 어깨를 당겨서 다시 내 품안으로 데려왔다.
로르텔은 텅 빈 인형처럼 이끌려서 자연스럽게 품속으로 들어오더니, 다시금 화들짝 놀라서 어깨를 좁힌다.
새삼 느끼는 바는, 체구가 작다는 것이다.
엘테 상회를 호령하던 거상의 소리를 듣던 소녀건만, 이렇게 팔을 벌려 안아보면 한 품 안에 들어온다.
명치 언저리에서 로르텔이 숨을 몰아서 내쉬는 느낌이 난다.
슬쩍 고개를 내려 보면, 그 냉철하고 냉혈한 거상의 모습은 아무데도 없다.
“위, 위험해요. 에드 선배님….”
“뭐가.”
“모, 모든 게 전부요. 예, 예상했던대로 굴러가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환어음의 이자율이나, 창고의 상품 적재율 따위는 몇 분만에 계산해버리는 영악한 상인일지 모르겠으나… 침대 위에서는 자기 표정 하나 제대로 조절할 줄을 모른다.
어쩔 수 없다. 신은 공평한 법이다.
신은 로르텔에게 상인으로서의 재능을 주었을지언정, 여자로서의 원숙미는 주지 않았다.
그 빈자리는, 누군가가 채워줘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 이왕 이렇게 됐으니 말을 하자면요… 사, 상상으로는 많이 해봤거든요…”
“…상상?”
로르텔은 당장 터져나갈 것 같이 붉은 얼굴로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와서 헤픈 여자라도 보는 눈빛을 하시진 않을 거죠?”
“…”
“뭐, 뭐요… 제가 에드 선배님한테 대놓고 호의를 표한지도 벌써 몇 년이나 지났어요. 그렇게 긴 시간을 보내다보면, 이런저런 상상도 하고… 또… 그런… 거죠… 사…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건 죄가 아니잖아요.”
확실히, 로르텔의 메모를 생각해보면… 그 상상이라는 것이 현실과는 지극히 동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상도의 세계에선 누구보다 냉혈하고 현실적인 주제에, 아직 겪지 않은 첫경험에 대한 상상은 사춘기 소녀 저리가라 할 정도로 낭만주의자다.
“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는 여러모로 나와 있었는데…”
“있었는데…?”
“…다 잊어버렸어요.”
사실 로르텔은, 내 손길에 이끌려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이미 뇌가 터지기 일보 직전인 듯해 보였다.
뭘 하든 철저한 계획부터 세우려 드는 직업병은 여전하다. 그러나, 사람 일이라는 게 항상 계획대로 되란 법은 없다.
“그래도요… 신기한 기분이네요…”
일단은 로르텔의 손 끝 떨림이 멈출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천천히 로르텔은 심호흡을 하더니, 이내 내 가슴께에 턱을 묻고서 속삭이듯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안겨 있다는 행복감은 과연…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거네요.”
“…”
“이런 기분은 그 어떤 비싼 방에 머무르고, 그 어떤 비싼 술과 음식을 먹는다고 하더라도… 대체할 수 없는 거겠죠.”
천천히 로르텔의 손떨림이 잦아든다.
드디어 긴장이 조금 가신 건지, 행동이 부드러워진다.
이 어두운 방 안에 우리 둘 뿐이다.
우리를 볼 수 있는 건, 창밖에 덩그러니 걸린 초승달 뿐.
밤바다 위에서 은은히 빛나고 있는 초승달도, 오늘 밤 만큼은 우리를 못본 척 해줄 심산인지 고개를 돌리고 있다.
로르텔은 그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소박하게 웃어보였다.
회주로서의 근엄한 웃음도 보았고, 상인으로서의 음흉한 웃음도 보았다. 언제나 여우처럼 고혹적으로 웃는 로르텔에게, 이런 순박한 소녀의 모습이 있을 거라는 상상은 해본 적도 없다.
본인 스스로도, 거울을 보면 놀라지 않을까.
그렇게 천천히… 로르텔의 어깨를 쓸어내리던 내 손은 굴곡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밤은 길다.
마음을 급하게 먹을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이 생소한 로르텔이겠지만, 천천히 익숙해질 시간은 많았다.
몸의 외곽을 부드럽게 쓸던 손은 조금씩 안으로 안으로 향한다. 천천히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로르텔이 흠칫 몸을 떠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저항은 없다.
오히려 완전히 내게 몸을 맡기고, 이따금씩 몸을 떨어댈 뿐이었다.
두려운 것일까.
금화 수만닢이 왔다갔다하는 거래 현장에서도 마른 침 한 번 안 삼키는 거상이, 손길 한 번에 눈을 질끈 감는다.
그 누구에게도 허락한 적 없는 영역에 손이 나아갈 때마다, 눈물 고인 눈으로 내게 시선을 보낸다. 그 두려움을 감추지 않는다.
나는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최대한 상냥하게 속삭여준다. 그 말에 조금은 심경이 누그러졌는지, 한층 더 로르텔이 몸을 기대어 왔다.
긴장이 역력하던 로르텔의 목소리가 이윽고 교성으로 변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로르텔은 양팔을 내 뒷목에 두르고 감싸안더니,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는 내 움직임에 모든 것을 맡긴 채 조금씩 본인의 감각 속으로 침전해갔다.
로르텔의 따스한 숨결이 목 언저리를 스쳐지나간다.
순간, 로르텔도 자신의 거칠어진 숨결을 자각했는지, 휙 손을 얹어 자기 입을 틀어막는다.
자신의 모습이 좀 천박하다고 느낀 것인지, 로르텔은 다시금 얼굴을 붉혔다. 나는 로르텔에게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한 번 더 단언해주고, 그대로 밀어서 침대 위로 눕혀주었다.
자연스럽게 몸이 넘어가자, 로르텔은 그대로 숨을 삼키고 나를 올려다 보았다.
급할 필요가 전혀 없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상대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다.
천천히 로르텔을 배려하면서 목 언저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로르텔은 눈을 지그시 감고 목소리를 참아야 했다.
무엇을 하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모든 일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도록 로르텔을 배려해준다.
그런 상냥한 움직임 하나 하나가 느껴지는 것인지, 이윽고 로르텔은 다시금 내 목을 감싸안고 귓가에 속삭인다.
괜찮다고, 원하는대로 하라고.
…그 시점에서 내 인내심은 끊어진다. 결국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고 만다.
느리게 흘러가던 시간은, 이윽고 빠른 템포로 뒤바뀐다.
로르텔은 처음엔 고통으로 일그러진 소리를 낸다. 그러나 이윽고 천천히, 목소리에 서린 감정이 더 격정적인 것으로 바뀌어 간다.
로르텔은 무엇이든지 간에 빠르게 배우고 익힌다.
처음에는 내 손에 이끌려가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조금씩 흐름에 익숙해져간다. 템포에 맞춰 몸을 움직이다보니, 이내 여유가 생겨 내게 입을 맞추거나 팔뚝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계속해서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얼굴을 붉히고만 있던 로르텔이었다. 그러나 어느샌가 여유의 미소를 되찾았다.
이윽고 조금씩 본인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다. 내 어깨를 잡아끌거나, 팔을 꽉 잡아 다른 쪽으로 이끈다.
아직은 쾌락보다는 고통이 더 강할 터. 처음은 누구에게나 그렇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로르텔의 얼굴에 고통의 흔적은 없다.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인다. 로르텔은 그냥 함께 밤을 보내고 있는 이 시간 자체가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다.
에드 선배님, 하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정신을 차려보니, 로르텔은 내 가슴께를 밀어내 나를 뒤로 눕히고 있었다.
머리 회전이 빠른 천재라는 거야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습득이 빠르고 적응력이 강한 기질도야 여러 번 확인 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로르텔을 올려다 보는 형태다.
그렇게 아래에서 올려다본 로르텔의 표정은, 매력적이다 못해 조금은 섬뜩할 정도다.
그렇게 로르텔은, 인생 처음으로 들어오는 그 생소한 행복감을 끊임없이 탐닉한다.
늘 자기 손으로 목표를 쟁취해온 여자다. 그런 그녀의 진취적인 기질은, 어둠이 자리한 이 심야의 여관방 안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가만히 수동적으로 앉아 다가오는 행복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회가 오면 채간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제 품 안에 들이려 한다. 그 탐욕은, 지난 수년 간 변함없이 눈독을 들이고 있던 남자에게도 똑같이 향한다.
지금 이 순간은 나와 로르텔만이 공유하는 것이다. 1분 1초가 금은보화보다도 더 귀중한 것처럼, 조금이라도 더 나를 탐하려 든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손 하나 까딱하고 있지 않다.
그렇게 한참동안 서로의 호흡을 주고 받다보면, 한계의 때가 온다.
로르텔은 허리를 확 숙이더니, 내 얼굴을 끌어안는다. 그렇게 우리는 귀중한 교감의 시간을, 함께 마무리 한다.
몰아쉬는 숨이 오가는 사이에 찾아온, 아주 약간의 휴식.
서로가 껴안고 숨을 고르고 있는 그 사이, 로르텔이 한 번 더 속삭인다. 에드 선배님. 아직 밤이 길어요. 그 말 뜻을 대번에 이해했지만, 일단은 숨을 고른다.
주객이 전도된 기분이다.
내 허리춤 위의 로르텔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날 내려다 본다. 아까보다도 한층 더 의미심장한 표정이 되어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에 눈이라도 뜬 것처럼, 한 없이 들뜬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과연, 이것이 잡아먹힌다는 것인가.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까지는 말 못하더라도, 나도 어느 정도는 능숙하다고 말할 수는 있는 수준일 터인데…
로르텔은 그런 나의 자기평가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무한한 탐욕으로 얼룩져있다.
그래, 평생을 탐욕 속에서 살아온 로르텔의 기질을 너무 등한시 했던 것일까.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는 새로운 탐욕에 눈을 뜬 것이, 이런 식으로 되돌아 올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허나 여기서 잠깐 멈추어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나는 그런 걸 따지는 성격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사내로서의 자존심이라는 게 있다.
저렇게 열렬하게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여인을 앞에 두고, 힘에 부쳐 뒤로 물러나는 일은 해선 안될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는 단련한 남성이고 로르텔은 상인 여성이다. 체력적으로 밀려날 일은 없다.
분명 그럴 것인데… 나를 끌어안으며 계속해서 속삭이는 로르텔의 말에, 무언가 묘한 압박감 같은 것이 서려있다.
밤은 길다. 해보고 싶은 것이 많다.
그런 로르텔의 말에, 조금씩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났다.
*평소보다 밤이 조금 더 길었다.
몸을 깨끗이 씻은 뒤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다시금 냉수를 더 떠올 겸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복도 바닥에 뭔가가 턱 걸렸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숙여보니, 방금 여관 직원에게 부탁해두었던 옷이었다.
올덱의 상인 여성들이 자주 입는 말끔한 드레스였다. 대충 슥 들어서 보니, 로르텔한테 잘 맞을 것 같았다. 역시 비싼 여관의 직원답게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다.
그나저나, 노크 소리 같은 건 못 들었는데… 아무래도, 여관 직원은 방 내부의 상황을 대충 눈치 채고 센스 있게 돌아간 듯 하다.
“…”
괜히 멋쩍은 기분이 들었지만, 딱히 여관 직원한테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나는 조용히 옷을 챙겨서 다시 방으로 돌아들어갔다.
내 침대 위에는 로르텔이 이불을 두른 채 얼굴을 쓸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난리를 다시 되새김질 해보니, 뒤늦게 수치심이 밀려온 모양이었다.
“서… 선배님, 오, 오해하지 마세요. 방금은 그… 뭐, 뭐라도 씌인 것 같은… 내가 남사스럽게 무슨…”
“그렇게 쑥스러워할 것도 없다. 뭐 다 자연스러운 일이지.”
“으읏… 허, 허리가…”
로르텔이 얼굴을 찌푸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나는 간단한 설명과 함께 직원에게 받아온 옷을 건넸다. 로르텔은 감사인사를 하며, 얼른 이불 속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굳이 내 침대 위에 앉아 있는 이유는… 로르텔의 침대는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로르텔은 혼자서 연신 얼굴을 쓸어내렸다. 나중에 방을 정리할 직원이 와서 보면 얼마나 민망할지 상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
나는 적당히 창가에 앉아, 새벽 바람을 맞았다.
아직도 해가 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올덱의 밤은 깊고도 길다.
“…에드 선배님.”
어느샌가 옷을 갖춰입은 로르텔이 창가에 다가와 맞은 편에 앉았다. 로르텔이나 나나 한층 홀가분해진 기분이었다.
문득, 로르텔은 새삼스러운 말을 건넸다.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어두운 올덱의 밤에 충분히 익숙해져 있는 로르텔일 터다.
그럼에도, 로르텔은 그 어둠이 무서웠던 것일까.
혼자서 보내는 그 긴 밤은, 언제나 로르텔의 고독을 더 사무치게 만들었던 거겠지.
“야, 로르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느새 시간이 됐다. 슬슬 나가봐야할 때다.
“슬슬 상회 건물 쪽으로 가야해. 리엔나 비서랑 만나기로 했거든. 네 몸 상태가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걸 알려야지.”
“이렇게 늦은 새벽 시간에요…?”
“뭐, 급하게 처리할 일이 많았을테니까… 슬슬 약속시간이다.”
나는 외투를 챙겨 입으며 말했다.
“그 전에, 우리 부둣가 좀 같이 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