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75)
로스테일러 저택의 메이드들도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루시가 아주 조금의 마력을 되찾은 시점에서, 본인들이 루시를 통제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말했듯, 루시의 마력감각은 일반적인 마법사를 아득히 상회하기 때문에, 쥐꼬리만큼의 마력만으로도 평범한 메이드들을 가지고 노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로스테일러 저택의 메이드들이 루시를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메이드 장 직위에 있는 벨 마이아 덕분이다.
루시 메이릴은 신기할 정도로 벨 마이아의 말을 잘 따랐는데, 실베니아 아카데미에 재학하던 시절에 학습된 공포가 여전히 남아있는 듯 했다.
그 덕분에 벨 마이아의 휘하에 있는 메이드들의 일도 제법 편해졌다보니, 조금은 방심할 수밖에 없었다.
“…루시 아가씨가 없어졌습니다.”
벨 마이아는 그 보고를 받자마자, 아차 싶을 수밖에 없었다.
매사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벨 마이아라 할지라도 아예 허점이 없을 수는 없다.
“…루시 아가씨가 말입니까…?”
벨 마이아의 반문에 참모 역할을 하는 메이드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짧은 보고였지만, 그 보고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검토 과정을 거쳤을지 어렵지 않게 상상이 되었다.
루시 메이릴을 잘 케어하라는 것은 지금은 저택을 비운 에드 로스테일러가 특별히 신경써서 내린 지시다. 이른바 특명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었다.
벨 마이아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꽤나 많이 당황스러웠다.
“…”
잠시간 생각에 빠진 채로, 벨 마이아는 가만히 장식장에 기대어 섰다.
그동안 참모 역할을 하는 메이드는 구체적인 상황을 상세히 보고 했다.
아침에 루시 메이릴을 챙기러 귀빈실에 방문했더니, 창문이 열린 채로 방이 텅 비어있던 일.
저택 중앙정원부터 정문 쪽까지 루시가 이동한 흔적이 남아있었다는 것.
아무래도 루시는 아침 일찍 저택에 물류를 납품하러 오는 상인의 마차에 숨어들어서 빠져나간 것 같다는 점까지. 마차의 행선지는 아마 아켄섬까지 이어질 것이다.
“…상회 쪽에 연락을 해서 마차를 살펴달라고 할까요?”
“연락이 닿을 때 쯤이면 이미 늦었을 겁니다.”
“…그, 그런가요.”
에드 로스테일러가 직접 내린 특명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실책을 범하게 되다니.
매사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벨 마이아는 이마를 쓸어올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지만, 탄식이나 하고 있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을 생각해보건대, 루시의 행선지가 어디가 될지도 뻔한 것이었다.
“가주님과 도련님께 보고를 올리는 게… 맞겠지요…?”
메이드가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자, 벨은 다시금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몸을 일으켰다.
“가주님께는 제가 전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에드 도련님께는… 따로 연락을 보내지 않아도 금방 알게 되실 겁니다.”
“…그렇습니까?”
루시의 갑작스러운 가출 이유도 불보듯 뻔하다.
최근 에드 로스테일러가 너무 바빠서 저택에 돌아오질 못하고 있다. 학기가 시작되면 이렇게 되리란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저택 일에 치이느라 미리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벨 마이아의 부덕이 크다.
아마 루시는 직접 에드를 만나러 갔을 것이다.
제 아무리 고독을 즐기고,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도 때때로 누군가를 보고 싶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고고하게 콧대를 세우는 길고양이들도 때로는 인간의 손길이 그리워 담장 아래로 뛰어내려오곤 하는 것이다.
사람이라고 어찌 다를까.
“루시 아가씨의 일탈은… 일단은 큰 일은 아닐겁니다. 어느정도 마력도 회복되셨으니, 어디가서 당하실만한 상태는 아니기도 하고…”
루시 메이릴은 손톱만한 마력만으로도 중위 마법을 구사하는 마법사를 상대할 수 있다.
그 정도면 자기 몸 하나 보호하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시말서를… 미리 작성해두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벨은 한숨을 푹 내쉬며 그리 말해두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필요한 일이었다.
루시 메이릴의 성격에, 이 답답한 저택 생활을 꽤 오랜 세월 버텨주었다.
한 번 쯤은 일탈을 감행할 때도 된 것이다.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루시 메이릴 입장에서도, 이 정도면 꽤 버틸만큼 버틴 거니까.
*“이상이, 중위 마법을 다루기 위해 필요한 이론들이다. 애초에 원소 별로 마력의 감응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니까… 디테일한 부분은 개인의 실습을 통해서 감을 잡아가는 게 훨씬 빠를 거다.”
에드 로스테일러 교수의 원소학 강의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수업 중에서도 가장 경쟁이 세다.
에드의 이름값도 이름값이지만, 강의력 자체도 늙은 교수들에 비하면 훨씬 뛰어난 편이었다.
빠르게 중위 마법을 익히고 싶은 신입생들은 모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수업으로 유명해져서, 작금에 이르러서는 자리를 차지하기가 쉽지 않다.
꽤 큼지막한 강의실에, 빼곡이 들어찬 학생들을 앞에두고서 에드 로스테일러는 차분하게 말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해두도록 하마. 아직 기초 원소 마법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위 마법 발현을 시도하는 건 위험할 수 있으니까, 이번 달 말 평가에서 확실히 기초 마법 능력을 입증한 다음 중위 마법진을 연구할 수 있도록. 그리고 실기 계획표는 조교들한테 받아가라. 이상.”
에드는 분필을 내려놓고, 강의 자료들을 챙긴 뒤 뚜벅뚜벅 강의실을 걸어나갔다.
오늘의 오전 강의는 이 원소학 수업이 마지막이었다. 오후에 학생회관 실습실에서 중위 마법을 실습하는 1학년생들을 봐주려면, 지금 짬을 내서 점심을 먹어두어야 했다.
교직원 식당으로 빨리 향하기 위해 복도로 나온 참이었다.
이런저런 질문 거리를 가득 안고 있는 학생들이 복도에서 벌써 기다리고 있었다.
“이동하면서 하지.”
학생들 질문을 하나하나 받아주면서 복도를 걸어나가는 모습은 흡사 연예인 같지만, 주고 받는 담화는 학술에 관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화려한 삶이라기보단 피곤에 찌든 삶에 더 가까웠다.
그럼에도 에드는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주면서, 복도를 가로질러 로비까지 나왔다.
교수동의 로비. 깔끔한 대리석 바닥 여기저기에 학생들을 위한 공간인 고풍스런 목재 벤치가 여기저기 늘어서있었다.
앉아서 책을 읽는 학생들. 강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간단하게 밥을 떼우는 학생들. 친구랑 담화를 나누고 있는 학생들. 마녀 모자를 눌러쓴 채 드러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는 학생. 분주하게 어딘가로 걸어나가는 학생….
여러 학생들을 곁눈질로 살피며 교수동을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학생들의 질문을 한참 받으며 이동하던 에드는, 문득 이상하단 느낌이 들어서 걸음걸이를 휙 멈췄다.
그러다보니 에드를 감싸고 있던 학생들의 무리도 휙 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에,..에엑… 교수님… 어쩐일이세요?”
한창 질문거리를 던지던 학생이 당황해서 에드를 살폈다.
에드는 눈을 비비적 거리더니 자기가 걸어나온 로비 쪽을 보았다.
그리고 성큼성큼 뒤돌아 걸어서 로비 구석에 있는 벤치 앞으로 나아갔다.
벤치에는 낯이 익은 학생이 마녀 모자를 얼굴에 덮어놓고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 옆에 걸터앉았다.
이제와서 보니 학생도 아니다. 교복이 아니라 아기자기한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당연하다. 이 소녀는 이미 애먼 옛날에 학교를 중퇴한 입장이다.
“여기서 뭐하냐… 루시…”
천리 타향에서 고향 친구를 만나도 이렇게 당황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루시.
그 이름을 들은 주변 학생들이 모두 귀를 의심했다.
실베니아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학생들 치고, 루시 메이릴의 이름을 모르는 자는 없다.
전설적인 선배, 그 차기 대마법사 루시 메이릴의 이름을 말이다.
“응, 허억…. 스읍….”
그 전설적인 대마법사는 화들짝 놀라서 깨어나며 얼른 침을 스읍 삼켰다.
그리고 마녀모자를 꽉 끌어안으면서 상반신을 일으키더니, 비몽사몽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루시 메이릴.
그 이름을 들은 학생들이 모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시선을 한 데 모아두고 있었다.
“…안녕. 심심해서 한 번 보러 왔어.”
로스테일러 공작가의 가주 바로 다음가는 실권자. 에드 로스테일러를 상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제 집 친구마냥 부르는 말투…
그럼에도 에드 로스테일러는 전혀 불편해하는 기색이 없다.
그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라서가 아니다. 애초에 이 소녀는, 그 에드 로스테일러와도 어렵지 않게 맞먹을 수 있는 자인 것이다.
“이 학교는 그 난리를 치르고서도 변한 게 전혀 없네… 글록트 할아범이 좋아하겠다…”
그 말에, 주변 학생들은 모두 경악하며 나자빠질 수 밖에 없었다.
코앞에 있는 저 나태한 소녀 마법사가, 실베니아 역사상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 희대의 천재 마법사가 맞았던 것이다.
잠시간의 침묵 후, 폭발적인 반응.
“루시 선배님! 존경합니다! 늘 루시 선배님 같은 마법사가 되고 싶어서 정진하고 있습니다!”
“루시 선배님에 대한 기록들을 하나도 빠짐 없이 모두 읽었어요!”
“꺄악! 루시 선배님이 이 쪽을 보셨어!”
“아니야! 나야! 내 쪽을 보신 거야!”
“루시 메이릴! 루시 메이릴! 루시 메이릴! 루시 메이릴! 루시 메이릴!”
루시는 너무 시끄럽다는 듯이 귀를 틀어막으며, 내 무릎위에 걸터 앉았다.
가벼운 블라우스 하나만 걸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무슨 상황인지 금방 파악이 끝났다.
루시는 혼자서 저택을 탈출해서 이 아켄섬까지 온 것이다. 거리가 가까운 편은 절대 아닌데, 적당히 교통편을 활용했겠지. 아직 공간계 마법을 쓸 정도로 마력이 회복되진 않았을테니까.
나는 그대로 루시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어서 깍지를 끼고 들어올렸다.
그대로 아무 저항없이 딸려온 루시는 내 품에 안겨서 멍하니 있었다.
그렇게 나는 루시를 짐짝처럼 든 채로 학생들의 인파 사이를 빠져나와 연구실까지 와야만 했다.
*“루, 루시 선배님이시라고요?! 이,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 전설의 마법사 루시를 무슨 짐짝처럼 들고 연구실에 들어오자, 조교들은 모두 자지러지면서 놀랐다.
화들짝 놀라서 다과와 차를 내오지만, 루시는 관심 없다는 듯이 곁눈질 한 번만 주고서는… 의자를 하나 스윽 가져와 내 집무용 책상 옆에 가져다 두고 걸터앉아서 하품을 했다.
“꽤 시끄러운 환경에서 일을 하네…”
“굳이 따지자면 네가 소음의 원인이다.”
나는 수업 자료들을 업무용 책상 위에 툭 내려놓고, 내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침묵.
졸린 눈으로 비몽사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루시도 조용한 건 매한가지고,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다른 학생들도 멍한 눈으로 우리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연구실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마음 같아선 조교들 다 내보내고 상황을 꼬치꼬치 캐묻고 싶지만, 당자 할 이리 많은 조교들에게 이 이상 시간적인 압박을 느끼게 만들 순 없었다.
나는 얼른 남은 업무지시를 마무리하고, 루시의 팔을 잡아 끈 채로 연구실을 나섰다.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소문은 빠르다.
실베니아 출신의 전설적인 대마법사 루시 메이릴이 학사에 들어와 있다는 소문은 이미 일파만파 퍼져서, 하루 일과가 마무리 될 때 쯤 되니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일부 열성적인 학생들이 그 희대의 대마법사 얼굴을 한 번 보고 싶다고 트릭스관에 찾아들었다. 뿐만 아니라 혹시 학생 시절에 생활하던 오필리스관에 나타나진 않을까 싶어서 그 앞에도 학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고, 교수동 쪽에도 루시를 만나고 싶어하는 학생이 가득했다.
이미 학생들 머리 속에서 루시의 존재는 자애롭고, 아름답고, 어른스럽고, 모두가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존경스러운 대마법사다.
그들에게 진실의 칼날을 들이밀고 싶지는 않아서… 결국 내가 행선지로 택한 곳은 북쪽숲의 내 개인 연구실이었다.
예전에는 오두막 부지였지만, 지금은 학사의 지원을 받아서 단출한 목재 연구실 건물이 들어서있다.
“여기는 많이 변했지만… 캠프파이어는 그대로네… 여기만 오면.. 잠이 오는 기분이야…”
“루시 너는 오랜만에 오겠구나. 아직도 내 마음의 고향은 여기야.”
“…”
뉘엿뉘엿 해가 지는 초저녁.
루시를 모닥불 한쪽 옆에 앉혀놓고, 철제 냄비에 물을 끓였다.
타닥대는 모닥불 위로 냄비가 달아오르는 소리가 덧씌워졌다.
제법 삶에도 여유라는 게 많이 생겼고, 원한다면 호화로운 곳에서 생활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을 정리해야할 일이 생기거나,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는 이 북쪽숲의 캠프파이어로 찾아온다.
매일매일 야생생활을 이어갈 때처럼 생활 내음이 물씬 풍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는 느낌이다.
허브 티 한 잔을 금방 타서 머그컵에 담아 루시에게 건네주자, 루시는 그 조막만한 손으로 받아들고서는 근처의 나무등걸에 조신하게 걸터앉았다.
예전 같았으면 벌러덩 드러누웠겠지만, 적어도 손에 뭔가를 마실만한 걸 들고 있는 와중에 그러진 않는다.
알게모르게 저택의 메이드들의 노력은 나름대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화낼 줄 알았어.”
“…”
루시는 무릎 위에 머그잔을 올려놓은 채로,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나는 부지깽이로 모닥불을 슥슥 정리한 다음에, 내가 마실 허브티를 손에 들고서 가볍게 대답했다.
“왜?”
“멋대로 저택을 탈출해서 널 보러 아켄섬에 왔잖아.”
“그 정도까지 꽉 막혀있지는 않다. 저택의 메이드들은 전부 머리를 뜯고 있겠지만…”
나 스스로도 좀 놀란 부분이 있다.
이런저런 문젯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릭스관 로비에서 루시의 얼굴을 보자마자 내가 느낀 감정의 기저에는… 반가움이 꽤 깔려있었다.
“요즘 일에 너무 치여있어서 꽤 적적하기도 했거든.”
근래에는 정말 쉬는시간이 아예 없는 느낌이다.
저택 사람들을 못보게 된지도 꽤 오래 되어서, 간만에 본 루시의 얼굴이 되려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뭐, 저택을 탈출했느니 뭐니 하는 거야… 일단 와버린 건 어쩔 수 없지 않나.
“건강해보여서 다행이다, 루시.”
나는 솔직하게 그리 이야기 했다.
그러자 루시는 양손으로 꼭 쥐고 있는 머그컵을 슬쩍 내려다보고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뭐라 대답을 하려다 말았다.
아마도,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 미묘한 심경의 변화는 눈치 채기 힘든 것이지만,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참으로 다채로워진 편이었다.
루시는 어느샌가 한 명의 어엿한 소녀가 되어있었다.
사람의 변화는, 그렇게 불현 듯 실감될 때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기화가 생겼으니 말해둬야겠다. 조만간 라멜른 산맥지대 쪽으로 가야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절단자 젤란.
그 전쟁 영웅을 만나서, 대마법사 글록트의 거처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거래를 할 계획이다.
그 과정에서 루시의 도움이 조금 필요할 수가 있다고 이야기를 해두자, 루시는 별 다른 감정의 변화도 없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글록트의 옛 거처에 관한 건 루시 입장에서도 민감할 수 있는 문제이건만, 루시는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지는 않는 눈치다.
학기 중이라 얼마나 시간을 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루시의 도움을 확약받았다면 이 이후로는 간단하다.
아니….
간단하지만도 않은가…
“흐음…”
“…표정이 안좋네.”
“아니. 루시 너랑은 상관 없는 문제긴 한데…”
결국 라멜른 산맥지대로 향하려거든, 그 중간에 있는 코헬톤 무법지대를 통과해야만 한다.
애석하게도 코헬톤 무법지대는 황실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으면 통과할 수가 없다. 그곳은 제국에서도 가장 유명한 금구이기 때문이다.
황실 쪽의 비호를 받고 있는 나라고 해도, 무한정 특권을 요구하기는 또 힘들다. 최소한의 명분 정도는 갖춰야지 황실에서도 면을 살릴 수 있을테다.
그럴싸한 명분이야 만들어내면 그만이라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현재… 코헬톤 무법지대를 포함한 금구 일대를 관리하고 있는 황족 출신 군주의 존재다.
그녀는… 지금 나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다… 기묘할 정도로 나를 보면 떽떽대거나 언성을 높이는 통에 그다지 만나서 기싸움을 하고싶지가 않다.
그래도… 필요한 일이라면 해야하겠지….
나는 턱을 몇 번 쓸어내리면서 고민에 빠졌다.
그러고 있자니… 허브티를 다 마신 루시가 무릎 위에 올라와서 치근덕거린다. 간만에 만나니 루시도 썩 반가운 모양이었다.
나는 루시의 머리위에 턱 하고 손을 얹은 채… 가만히 생각에 빠졌다.
뉘엿뉘엿 석양이 지고 있는 북쪽 숲은, 늘 그렇듯 조용하고도 평화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