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79)
이튿날 아침, 눈을 떠보니 일찍 일어난 빌헬름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젤란은 늦잠을 자는 것인지 침대에서 밍기적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부지런한 빌헬름이 이래저래 챙겨 주지 않으면, 저 양반도 영 글러 먹은 인간인 듯했다.
나랑 루시는 비몽사몽한 눈으로 일어나, 빌헬름에게 인사를 건네곤 근처 개울가에 가서 세수를 했다.
딱히 루시라고 해서 이렇게 이른 새벽에 일어날 정도로 부지런한 타입은 아니지만, 내 품에 안겨서 잠든 탓인지 내가 일어나자 덩달아서 일어났다.
그렇게 루시와 나는 새벽 공기를 맞으며 라멜른 산맥 지대의 침엽수림 풍경을 한 눈에 담았다.
사부작거리는 잎사귀들을 밟으며 통통 튀어 나가는 루시는, 오랜만에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지리를 훤히 꿰고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 자주 돌아다녔어. 중력 마법이랑 경량화 마법을 몸에 감고 가볍게 몸을 놀리는 연습을 하다 보면, 처음 와 보는 곳까지 도달해서 길을 잃기도 했고.”
“무섭진 않았나 보네.”
“응. 어차피 글록트 할아범의 마력은 멀리서도 잘 느껴져서, 마력을 따라 쫓아가다 보면 금방 오두막으로 돌아갈 수 있었거든.”
그 어린 시절부터 멀리 있는 글록트의 마력을 감지했다는 이야기다.
루시의 말도 안 되는 마법 재능에 대한 이야기야 입이 닳도록 이야기해 왔으니, 이제 와서 뭘 더 강조해 봐야 의미는 없다.
루시는 마력이 감긴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가를 따라 개울까지 나아갔다.
“마력을 제법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됐네. 꽤 회복된 것 같다?”
“응. 기초 마법 정도는 쓸 수 있어. 조만간 중위 마법도 사용해 볼 수 있을 거 같아.”
처음에는 회복 기간을 거의 오륙 년은 잡았다.
그러나, 채 절반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중위 마법 사용을 시도할 수 있을정도다.
역시 루시는 마력에 관한 일에 있어서만큼은, 항상 예상을 벗어나 있다.
나는 시원한 새벽공기를 맞으며 루시와 함께 세수를 했다.
그리고 물기를 털어 내고, 산속의 시원한 새벽 공기를 좀 더 만끽하고 있자… 루시는 그새 육포 하나를 꺼내서 우물거리며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나는 이리저리 몸을 풀면서 이야기했다.
“젤란이라는 저 마법사. 너는 어떤 거 같아.”
“이상해.”
생각하고 있던 바가 명확했던 것인지, 루시는 망설임 하나 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내 생각과도 일치해 있었다.
이 라멜른 산맥 지대까지 오는 여정 길에서 충분히 대화를 나눠보며 느꼈다.
절단자 젤란은 언제나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유쾌한 듯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내면은 한없이 잔뜩 깎여 나가 있다. 어떻게 보면 텅 비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 * *
간단한 아침 식사를 끝마친 후, 본격적으로 글록트의 지하 연구실에 있는 유품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젤란은 정통 마법 자체에도 조예가 깊지만, 전문 분야는 마공학과 유물학이다. 평범한 마법사가 희대의 천재인 글록트가 만든 유물들을 정확하게 분석해 내기는 쉽지 않겠지만, 젤란이라면 그 설계 의도 정도는 파악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젤란은 꽤나 기다란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글록트의 연구실에 잔뜩 쌓여 있는 유품들을 하나하나씩 살폈다.
나와 루시, 그리고 빌헬름은 그 옆에서 덩달아 유물과 마공학 용품들을 살폈다.
하나하나 살피다 보면, 꽤나 참신한 물건들이 많았다. 마공학 용품에 조예가 없으면 알아보기 힘들겠지만, 글록트가 남겨 놓은 물건들은 기존에 연구된 내부 구조나 마력 흐름에 얽매여 있지 않았다.
천재가 직접 설계한 마공학 용품은 아예 기반 구조부터가 다르다. 스위치 하나, 마력 유도선 하나하나를 아예 처음부터 뜯어보듯이 살펴야 한다.
마치 지금까지 익힌 마공학 체계 자체가 전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확실히… 이건 쉽지가 않네….”
젤란도 한 시간 만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지하 연구실은 여기저기서 꺼낸 마공학 용품과 유물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이 중에서 완전하게 구조를 판단할 수 있는 물건은 단 하나도 없었다.
“잠시 작전을 조율할 시간이 필요하겠는걸.”
다시금 부엌의 식사용 테이블에 모여 앉은 우리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생각보다 글록트의 유물을 살피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운데에 앉은 젤란이 빌헬름이 내와 준 차를 마시며, 먼저 운을 뗐다.
“생전의 글록트는, 그 대현자 실베니아만큼 명확하게 모든 미래 흐름을 전부 관측하진 못해도…. 어느 정도의 미래 흐름은 살필 수 있었다고 하지.”
여기까지는 아는 얘기였다.
글록트는 실베니아의 성위 마법을 이어받은 마법사답게, 그녀가 지니고 있던 능력의 일부를 구현할 수 있었다.
물론 실베니아의 모든 성과를 전부 구현해 낼 순 없었다.
실베니아가 모든 ‘가능성의 세계’를 전부 관측해서, ‘절벽지점’의 존재를 특정해 냈다면… 글록트는 단지 수많은 가능성 중 몇몇만을 살필 수 있었을 뿐이고.
실베니아가 원하는 지점의 미래를 원하는 만큼 내다볼 수 있었다고 한다면, 글록트는 다가올 미래를 어렴풋이 느낌으로만 전해 받거나, 극히 잠깐의 풍경만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정도만 되도 성위 마법사로서는 엄청난 경지에 이른 것이다. 세상의 섭리를 비틀어 꺾고 시간의 선을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신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유물들을 살피다 보면 분명 다른 세계를 관측할 수 있는 유물들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저 수많은 유물들을 일일이 다 살피려면 몇 년이 걸려도 모자라.”
글록트가 만들어 낸 물건들은, 오로지 글록트 본인이 창조해 낸 법칙으로만 움직인다.
이미 세상에 설파되어 있는 마공학 이론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오는 데만 열흘이 넘는 대모험을 치러야 하는 이런 산맥 한가운데에서 몇 년씩이나 시간을 보낼 수도 없는 일이지….”
“유물들을 전부 챙겨서 코헬톤 무법 지대에 있는 연구실로 가져가면 어떻습니까?”
“그래도 최소 몇 년은 걸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난 그렇게까지 기다릴 마음이 없어.”
그렇게 단언하는 젤란을 바라보는 빌헬름의 표정이 영 좋지 않다.
무언가 젤란이 급진적인 해결책을 내놓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젤란은 날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날 도와주면 젊은이 자네가 가지고 있는 유물을 직접 가공해준다고 약속했었지. 거기에 웃돈을 더 얹지.”
“…….”
“코헬톤 무법 지대에 있는 내 마공학 연구실을 주지.”
그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빌헬름이었다.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젤란을 바라보는 모습이 인상 깊다.
“어차피 이번 일이 끝나면 코헬톤 무법 지대에서 나갈 생각이었으니… 이사할 고생을 더는 셈이지.”
“…연구실 안에 뭐가 있습니까?”
“내가 연구해 온 모든 것.”
어지간해선 남을 잘 인정하지 않는 칼레이드 교수조차도, 젤란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은연중에 경의를 담고 있었다.
그런 젤란이 평생 동안 연구해 온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연구실이다.
“내가 아니라 젊은이 자네가 쓴다고 하면, 그 땅을 책임지고 있는 셀라하 황녀도 딱히 불만을 표하진 않겠지. 오히려 연구실 때문에 자주 코헬톤 무법 지대를 오가면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고. 쿠후후.”
젤란은 장난스러운 얼굴로 농담을 덧붙였다.
“금전적 가치로 환산할 수도 없을 거야. 빌헬름은 잘 알겠지만, 거기에는 마공학의 역사를 뒤바꿀 수도 있는 물건들이 잔뜩 있거든.”
“안 받겠습니다.”
나는 테이블을 짚은 채 담담히 말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젤란은 잠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 틈을 타 나는 덧붙여서 이야기했다.
“그만한 것을 건네주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 아닙니까? 준다고 낼름 받으면, 배탈이 납니다.”
“신중하게 대답할 거란 생각은 하고 있었어. 그래….”
젤란은 은은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지하실에 있는 유물들에, 닥치는 대로 성위 마력을 주입하고 싶어.”
빌헬름의 불안한 표정이 이해가 될 정도의 급진책이다.
“제대로 된 용도들도 확인하지 않고 말입니까?”
“그래. 그중에는 분명 다른 가능성의 세계를 관측할 수 있는 물건도 있겠지. 글록트는 성위 마법 연구에 진심이었으니까.”
“그러다 위험한 마도구가 있으면….”
“그래서, 내 평생에 걸친 연구 성과들을 판돈으로 올려놓은 거야.”
거기서 대화는 잠시간 끊긴다.
나는 잠시 숨을 머금으며 젤란의 표정을 살폈다.
마공학 용품은 그 용도를 모른 채로 함부로 살펴서는 안 된다.
전투용이나 함정용으로 사용되는 위험한 물품들도 많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성위 마력을 사용하는 마공학 용품이라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정말 알 수가 없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뭡니까?”
의미 없는 질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허황된 나비를 쫓는 것 같다고 스스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있었을지도 모를 가능성’ 같은 걸 뒤늦게 관측해서… 대체 뭘 어쩌겠다는….”
거기까지 말하고, 나는 말을 끊고 말았다.
어딘지 모르게 현재의 삶에 큰 미련이 없어 보이는 젤란의 행보. 급기야는 자기가 평생 연구해온 실적들을 건네주겠다는 말까지 하고….
그것은 마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해 주십시오.”
“…….”
“끝까지 함구한다면, 제 추측을 멋대로 말하겠습니다.”
금기에 도전하는 자, 젤란.
과거의 실패가 얼마나 그녀의 마음을 꽉 움켜쥐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녀가 이렇게까지 다른 갈래로 갈라진 미래를 관측하고자 하는 이유는….
“――원하던 미래가 있으면… 성위 마력을 연구하고 이용해서 그곳으로 넘어갈 생각입니까?”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수많은 가능성의 미래.
그 가지와 가지 사이를 넘어 뛰는 것.
젤란의 야망은…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비대했던 것이다.
“…….”
“…….”
행선지를 정하기 위해선 먼저 그곳을 관측해야만 한다.
젤란의 원대한 계획의 시발점이… 바로 그 관측이다. 어차피 버리고 떠날 세계라면, 이곳에 남겨 놓은 연구실이니 연구 성과니 하는 것들은 다 의미가 없다.
그러니 억만큼이나 귀중한 그 연구 기록을 다 내게 넘겨 주겠다는 이야기다.
“……사실 ‘관측기’로 예상되는 마공학 용품은 이미 특정했어.”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니, 젤란은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백프로 확실한 건 아니야. 그렇게 추측할 뿐이지. 그리고 다른 갈래의 세계와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고받게 될지 알 수도 없어.”
“…다른 갈래의 세계로 넘어갈 수가 있습니까?”
“이론상 불가능하지. 마력이란 상호 작용이 기본이야. 이쪽 세계에서 백날 마력을 발현해 봤자, 저쪽 세계에서 그 마력을 받아 낼 매개체가 없으면 단방향 소통일 뿐이야.”
“…….”
“…그래도, 시도할 수 있는 모든 걸 전부 시도하고 싶어.”
젤란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힘없이 이야기한다.
당장이라도 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릴 것 같은, 묘한 탈력감이 느껴진다.
“이 늙은이의 마지막 비원에, 어울려 줄 수는 없겠어? 줄 수 있는 건… 전부 주지…. 나한텐 어차피 의미가 없어.”
1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세상을 유랑해 온 젤란의 마지막 비원.
“내가 아인족을 학살하지 않은 세계로… 갈 수 있게 도와줘….”
으스러질 듯이 목소리를 쥐어짜며, 젤란이 어렵사리 이야기했다.
그리고 잠시간의 정적.
상당히 위험한 부탁이라는 자각은 있다. 글록트의 유물을 정확하게 조율할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다.
나로서도 리스크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쾌활하던 젤란이 저렇게까지 저자세로 나오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그냥 연구를 도와주는 것뿐이라면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대가로 따라오는 보상은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내 입장에서야 나쁠 것도 없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알았어.”
루시가, 내 마음을 읽어 내기라도 한 것처럼 대답했다.
이 자리에서 성위 마력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나와 루시, 단둘뿐이다.
“…도와줄게.”
루시는 내 품속에 몸을 묻은 채, 그녀치고는 굳건한 목소리로 대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