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82)
루시. 할 말이 있다.
아무래도 나는 곧 죽을 것 같다.
이 불합리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발버둥 쳐봤지만, 아무래도 내 여정은 여기까지다.
네가 정신을 되찾았을 때 쯤이면, 나는 이 세상에 없을 확률이 훨씬 더 높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네게 남기는 유언이 될 것 같다.
네가 어떤 기분일지 잘 이해하고 있다. 상실의 아픔을 이미 경험해 보았을테지만, 그 아픔은 적응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지금 가장 먼저 네게 하고 싶은 말은 미안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의미도 없는 사과 따위로 널 향한 내 마지막 말을 채우고 싶진 않다.
살아남아라. 루시.
세상이 어떤 꼴로 흘러가든, 네 삶을 꽉 움켜쥐고 버텨내라.
한기가 몰아치는 겨울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도 봄은 반드시 온다.
세상이 그저 영원히 어둠 속으로 침전되어가는 것 같아도, 아침은 반드시 밝아오게 되어있다.
현실의 이야기에 ‘결말’ 따위는 없다.
모든 것이 행복하게 끝난 것 같아도, 모든 것이 비극으로 마무리 된 것 같아도.
그래도 현실은 이어진다. 삶은 뻗어나간다. 그게 내가 짧은 생애동안 얻어낸 답이다.
이 불합리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오면서 내가 해왔던 수많은 선택들.
그 중 몇몇에 다른 선택을 취했다면, 다른 결말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
머나먼 세계의 흐름 어딘가에는,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행복한 결말을 쟁취한 내가 있을 수도 있겠지.
아니면 이보다도 더 끔찍한 최후를 맞이해, 고통 속에서 불타 죽었을 수도 있겠지.
그게 뭐 어찌됐든 간에, 우리들이 이 불합리한 세상 속에서 버티기 위해 취해야할 자세는 변하지 않는다. 살아남는 것이다.
넌 슬퍼하겠지.
그래도, 절대 삶을 내려놓지 마.
이 악물고 살아남아 버텨라. 지옥 같은 세상에 더 이상 답이 없는 것 같아도, 무의미해보일지라도, 그저 맹목적으로라도…. 살아남아라.
죽음을 앞두고 있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나는 흔들림 없이 믿는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보면… 살아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러니까, 반드시 살아남아라.
*“도와줘. 네 도움이 필요해.”
이어지는 로르텔의 말은 단도직입적이었다. 로르텔에게서 어떤 말이 이어질지는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들어오면서 여기에 모여 앉아 있는 피난민들 표정 봤지? 루시, 네 생존이 확인된 시점에서… 그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생긴거야.”
“….”
“불사조 반지의 힘을 빌렸었다곤 하지만, 성창룡 벨브로크를 상대로도 시간을 끌어냈던 너라면… 예니카 선배님을 어떻게든 제압하고 설득할 수도 있을테니까.”
루시는 애초에 이 세계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바깥의 생존자들이 그 사실까지 알고 있을 리는 없다.
“…나는 아직 반지의 반동이 다 사라지지 않았어.”
“…”
“전성기의 마력이 전부 돌아오지 않은 건 당연하고, 애초에 벨브로크의 심장을 쥐고 있는 고위 정령사를 상대로 얼마나 힘을 낼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
루시는 고개를 푹 숙이며, 현실을 이야기 했다.
“무엇보다, 내 우선적인 목표는…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가는 거야.”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는 없는 문제다.
이 쪽 세계의 로르텔과, 저 쪽 세계의 루시.
둘의 이해관계는 합치하지 않는다.
예니카를 제압하고 섬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로르텔, 어떻게든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애를 쓰는 루시.
그 둘 사이에 접점은 없다.
“…”
“…”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원래부터 루시와 로르텔은 그리 사이가 좋은 편도 아니었다. 서로 접점이랄 것도 거의 없었다.
그래도, 로르텔은 나지막이 이야기 했다.
“…있잖아, 루시.”
다른 가능성의 세계를 바라보고온 루시에게, 로르텔이 끝끝내 묻고자 했던 것.
차마 입술이 떨어지질 않아서, 시선을 내리깐 채 입술을 떨기만 하는 그녀.
루시는, 로르텔이 차마 묻고 싶어도 묻지 못하는 질문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네가 알고 있는 에드 선배님은, 행복하게 잘 살아남았니?
거기에 루시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로르텔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이라고 미소지을지, 아니면 현재 자신의 상황에 좌절할지, 펑펑 눈물을 흘릴지….
루시는 물론이고, 로르텔 자기 자신조차도 전혀 예상이 되질 않았다.
로르텔은 약해져선 안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로르텔의 판단과 결정에 목숨이 내걸린 사람이 너무 많다.
그렇기에, 로르텔은 눈을 지그시 감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
“돌아갈 방법은?”
루시를 향한 배려였다.
루시는 차마 뭐라 말을 하진 못했다. 무엇보다, 어떻게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할지 가늠조차 되질 않았다.
젤란과 에드가 이야기한 성위 마법의 이론에 따르면, 이런 비현실적인 일은 일어나선 안됐다.
세계와 세계 사이의 마력 간섭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루시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빠졌다.
일어날 수 없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 버린 이유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방 유추해낼 수 있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박수를 칠 수 있는 것처럼, 이 세계에 있는 누군가가 지금의 루시를 관측해냈기 때문에 이런 간섭도 일어난 것이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런 짓을 벌였는지는 차치해두고서라도, 어쨌든 이 세계에서 탈출하려거든 다시금 저쪽 세계를 향해 구해달라고 손을 뻗어야만 한다.
아마도, 에드 로스테일러는 자신을 구해내기 위해 다시금 셰계의 수많은 흐름을 관측해내려 할 것이다.
그 막대한 숫자의 흐름 속에서, 자기가 표류해버린 세계를 찾아내기란 쉽지않을 터.
그렇기에, 구조 신호를 보내야 한다.
나 여기 있어.
그렇게, 자신을 찾아 헤매는 에드 로스테일러에게 목청을 높여 알려야만 한다.
무인도에 표류해버린 사람이 불을 피우고, 동굴에 갇혀버린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끊임없이 에드를 향해 외쳐야 한다. 나 여기 있어. 구해줘.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선 막대한 양의 마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성위 마법을 일으켜, 루시를 찾아 헤매고 있을 에드를 루시 스스로 관측해내야만 한다.
하지만 절대적인 마력의 양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성위마력을 다루는 방법은 알지만, 성위 마력 자체가 부족한 것은 어떻게 해결할 방도가 없다.
천천히 마력을 회복시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허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글록트가 남겨놓고 떠난 관측기는 가까이에 있는 가능성의 흐름만을 관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대로 마력을 회복한답시고 몇 년의 세월을 이곳에 눌러붙어 있다가는, 관측할 수도 없을 정도로 흐름의 간극이 넓게 벌어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지… 어디서 그런 천문학적인 마력을 당장 수급해온단 말인가.
그 순간이었다.
루시가 이 쪽 세계로 표류해버린 그 순간…. 에드 로스테일러가 던져주었던 물건. 그게 뭔지 제대로 확인은 못했지만, 품속에 꽉 안고 있었던 그것.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 차마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루시?”
눈을 부릅뜬 루시를 로르텔이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루시는 그대로 자기 품속에 손을 넣고, 안에 있던 둥그런 구슬 형태의 물건을 꺼내어 확인했다.
“그건….”
루시는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에드는 루시와 떨어져나가는 그 순간에, 본인이 가지고 있을 가장 귀중한 물건을 던져준 것이다.
루시는 희대의 천재 마법사다. 지금은 마력을 거의 잃어서 제대로 힘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응용력과 지식 만큼은 거의 위인에 반열에 들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수준이었다.
허나 마력이 없다는 사실이 뼈아플 뿐이다. 그 사실을 에드 또한 알고 있었기에…
그토록 애지중지 아끼던 ‘티르칼락스의 유해’를… 루시에게 맡겨둔 것이다.
-우웅.
마력의 기운을 내뿜는 구슬은 최고위 정령이 지니고 있던 마력을 온전히 품고 있다.
너무나도 막대한 양이라서 어지간한 마법사들은 감당할 수도 없다. 그러나 루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허나 젤란이 말했듯, 제대로 가공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소모품에 불과한 물건이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이다.
에드 로스테일러는, 루시를 잃느니 차라리 그 귀중한 유물을 잃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너… 그건…”
“이 안에 있는 마력을 사용하고 싶어. 아마… 가공하는 건 너무 고난이도라서 곤란하겠지만…”
루시는 숨을 머금고 이야기 했다.
“단순히 내부에 묶여있는 마력을 풀어헤치는 정도라면… 가능할테니까…”
– 끼익
“가능하긴 하겠지. 다만, 사소한 문제가 있어.”
그 순간, 접견실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방금까지 바깥에서 상황을 정리하고 있던 엘비라였다.
“해방된 마력이 뿜어져나오면서 일대가 난리가 날 거야. 제대로 그 마력을 흡수하지도 못할 거고 말이야.”
이제와서 보니 조금은 키가 더 큰 것 같다. 엘비라는 자신의 연금술 가방을 탁탁 털어내며, 클레비어스를 데리고 들어왔다.
연금술과 마공학용품에 대해서는 출중한 지식을 지닌 소녀다. 루시가 품에서 꺼낸 물건이 뭔지 대번에 눈치채고선, 접견용 쇼파에 앉았다.
그 뒤로 클레비어스가 따라와서, 문을 닫고선 엘비라의 뒤에 섰다. 척 봐도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클레비어스는 어두운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루시가 알고 있는 것보다는 더 듬직해진 인상이었다.
“로르텔. 바깥 상황이 심상치 않아. 정령들이 더 날뛸 거야. 바깥을 수색하다가 발각당한 것 때문에 정령들이 민감해진 거 같아.”
“…생존자들은 어때?”
“루시의 얼굴을 보고 화색이 돌곤 있지만, 바깥 상황 때문에 불안해하는 기색이 더 커.”
겁쟁이 기질은 거의 버린 느낌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둘의 기색을 보고 있자하니, 아까부터 로르텔과 루시가 나누고 있던 대화를 모두 들은 것 같았다. 굳이 로르텔과 루시에게 뭔가를 물어보려 하지 않았다.
다만, 엘비라는 나지막히 이야기할 뿐이다.
“내 생각엔… 루시, 우리 이해관계가 그리 엇나가 있지는 않은 것 같아.”
루시는 조용히 입을 다문 채 엘비라 쪽을 쳐다보았다.
“손에 들고 있는 그게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부의 마력을 발산시키고 싶은 거 잖아?”
“…”
“가공 없이 곧바로 내부의 마력을 제대로 끌어내면, 흩어져버리는 마력이 네가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마력보다 훨씬 더 많을거야.”
활용방식이 값싼 마력석이나 다름없다. 값비싼 귀금속 공예품을 망치처럼 활용하고 있는 형국이다.
허나 상황이 상황이다. 그 차이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 정도 고급품이면… 내부의 마력을 온전히 끌어내줄 매개 장치가 필요해. 물론 이런 환경에서 그런 매개 장치를 만들어 낼 수는 없겠지만…”
엘비라는 마력 응용 분야에 대한 지식은 출중한 편이다. 실베니아 아카데미에 재학 중일 때도 관련한 과제에서도 항상 높은 성적을 낸 학생이었다.
그런 그녀가 내릴 결론을, 루시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신입생 반배정 시험 때 기억해? 에드 선배님이 오른산 꼭대기에서 신입생들을 막아섰을 때.”
“…”
그 때, 루시도 오른산 꼭대기에서 에드를 보고 있었다.
오른산 꼭대기에 있는 ‘갈음의 제단’.
마력이 속한 물품들의 내부에 있는 마력을 끌어내, 사용자에게 그대로 전이해주는 힘을 지닌 제단이었다.
글래스트의 불사조 반지로 인한 반동 때문에 마력을 쓸 수 없던 에드는, 마력석을 잔뜩 구비해와서 그 갈음의 제단을 이용해 신입생들을 상대했었다.
“….그 제단의 힘이 있으면, 네가 들고 있는 그 구슬에 내재된 마력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을 거야. 문제가 있다면…”
제단을 지키고 있는 자가 있다.
오른산 꼭대기에서, 끝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소녀다.
이 아켄섬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지워내버리고, 오로지 그 소년의 무덤이자 성역으로 삼고자 하는… 그 광기에 삼켜져버린 정령사가.
잠시간 접견실에 정적만이 퍼져나갔다.
모두가 루시의 눈치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당장 루시가 가담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란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루시라는 전력은 생존자들에게 있어서 큰 힘이 될 것이었다.
“…필요하면 해야지.”
그리고 루시는 늘 그렇듯, 결정에 있어서 큰 고민을 하지 않는다.
*겨울도 아닌데 눈이 내린다.
어둑어둑한 밤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자세히보면 눈송이가 아나리 화산재다.
오른산 꼭대기, 울컥울컥 거리며 아직도 뛰고 있는 벨브로크의 심장 앞에서… 에드의 지팡이를 꽉 끌어안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녀. 소녀의 눈물은 아직도 멎지 않은 상태였다.
최고위 불 정령 테오르피스의 몸에서 폭발한 화산들. 그 몸에서부터 흩날리는 화산재는 수년동안 오른산 일대를 뒤덮어, 이윽고 새하얀 설산처럼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뻗어오른 침엽수와 깔린 잔디들조차도 새하얗게 물들어, 고요한 성역처럼 보인다. 이 섬이야 말로 에드 로스테일러가 잠든 곳이다.
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차분하게 내려와 가라앉는 화산재들의 틈바구니에, 새하얀 머리칼의 정령사는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든다. 슬픔으로 얼룩진 얼굴이 화산재로 덮여가는 모습은, 마치 깃털로 뒤덮인 천사의 형상처럼 보인다.
허나, 그곳에 주저앉아 비탄에 빠져있는 것은 천사가 아니라 악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을 공평히 치워버리고, 이 섬의 시간을 영원히 멈춰놓으려 드는, 광기에 물든 장의사다.
“…아직도 생명이 있구나. 떠난 사람의 안식을 방해하는 생명이.”
섬에 퍼진 정령들의 눈은, 곧 소녀의 눈이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