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3)
개학 7일 전 (1)
일단 그럭저럭 3일이 지났다.
3일이라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진 않았다. 하나 하나 설명하기엔 너무 지리멸렬하다만, 그렇다고 한 마디로 요약하기도 뭣했다.
일단 처음으로 만들었던 쉼터는 좀 더 규모가 커져있었다.
둘쨋날 밤에 느닷없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숲에서 좀 더 나무를 캐와서 지지대를 보강했다.
묶을만한 밧줄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딱히 없어서 흙을 마구 파낸 다음에 그곳에 지지대를 박아넣었다.
혹시 비가 오면 비가 샐 수도 있기 때문에 그냥 옷 서너벌을 희생해서 지붕 역할을 하는 나뭇잎 위를 덮고, 그 위에 다시 잎사귀가 큰 나뭇잎들을 덮었다.
그러고나니 또 지지대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려고 해서 지지대 사이를 가로로 지탱하는 보조 지지대까지 설치했다.
보조 지지대를 뭘로 묶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헌옷을 걸레짜듯이 베베 꼬아서 밧줄처럼 만들어 묶었다.
당장 옷들을 이런 식으로 소모하는 게 아까웠다. 혹시 싹 다 긁어서 전당포에 가져가면 은화 몇 닢이라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윽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보석이라도 치렁치렁 달린 고급품이 아닌 이상에야 전당포에서 매입해줄 리가 없다.
정말로 매입해줄 만한 귀중품은 아직 아껴두고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다만, 매입해줄 전당포가 옆 도시에나 있다는 사실이 문제다.
어렵사리 아켄 섬을 나가서 옆 도시의 전당포까지 걸어갔다가, 생각보다 수중에 떨어진 돈이 얼마 안되서 돌아올 자금이 없는 불상사는 피하고 싶었다.
마차를 타고 가면 금방이지만 걸어가려거든 왕복 1박 2일은 잡아야 하는 거리다. 마당 나가듯이 가볍게 떠날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마차를 탈 돈이 없는 내 입장에서는 신중해야만 했다.
“흐음…”
나는 개울가에 앉아 단검으로 나무 줄기 하나의 끝을 날카롭게 깎고 있었다.
섣불리 이 학교 밖으로 나가지 않기로 마음 먹었으니 일단은 생활 기반을 마련해야 했다.
의 식 주.
옷이야 당장 며칠 입을 만큼은 있고, 집이야 부실하게라도 하나 갖췄지만 당장 먹을 것이 문제였다.
둘째날에는 숲으로 먹을 것을 찾아 나섰다. 나는 고향이 시골 깡촌이다. 숲이니 산이니 하는 환경에는 생각보다 익숙했다.
그러나 식자재를 찾는 건 또 다른 일이다. 풀이야 지천에 널렸지만 먹어도 되는 풀이 무엇이냐 구분 하는 건 또 별개의 문제였다. 서바이벌 전문가도 아닌 내가 눈으로 식용 풀을 구별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숲에 잔뜩 있는 소나무의 껍질을 뜯어냈다. 껍질 안쪽은 하얀 속살 같은 것이 있었다.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가 이야기 해준 적이 있다. 당신의 어렸을 적에 보릿고개가 오면 뒷산의 나무 껍질을 삶아 먹었다는 이야기였다.
내 짐으로 딸려 나왔던 예식용 단검으로 속살을 뜯어냈다. 그리고 발화 마법으로 불을 피운 뒤 개울가의 물을 끓여서 속살을 삶았다. 냄비로 쓸 게 없어서 장식용으로 쓰던 철제 컵을 사용했다.
그대로 질겅대는 소나무 껍질을 입에 넣고 씹어 보았다. 정말 지독하게 맛이 없었지만 뭐 그럭저럭 먹을 수는 있었다.
그리고 그 날 밤 폭풍같이 설사했다. 역시 나무껍질은 인간이 먹을게 못되나 보다.
그리고 3일차 낮. 거진 이틀을 꼬박 굶고, 설사에 고생까지 해서 몰골이 말이 아닌 상태.
나는 예식용 단검으로 나무 끝을 깎고, 거기에 손수건으로 단검을 꽉 동여매서 단촐한 작살을 만들었다. 꽉 묶는다고 묶었지만 손수건만으로는 좀 헐거웠다. 그래서 숲을 탐험하다 발견했던 얇은 덩굴을 몇 겹 더 덧대 묶었다.
[ 새로운 완성품 ]–
간이 작살 잘 깎은 나무 줄기 위에 예식용 단검을 묶었다. 낚시나 사냥에 사용할 수 있을 듯 하다. 단검의 예리함이 모자라 큰 살상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제작 난이도 : ◐○○○○
– [ 제작을 완료했습니다. 제작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
어렸을 적에 냇가에서 민물고기를 잡던 솜씨를 발휘할 때였다. 다만, 배고파서 죽을 것 같았기에 그 때와는 다른 비장함이 있었다.
공산품으로 나오던 낚시용 작살과는 달리 예리함이 모자랐지만, 경험으로 극복하면 된다.
*
장작이 타닥대며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발화 마법이 있어서 불을 피우는데 고생할 필요는 없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새삼 전공 원소를 불로 고른 과거의 에드에게 감사했다.
…
감사할 일이 맞나?
어쨌든 채집이 안되니까 사냥으로 돌리는 판단은 잘 맞아들었다. 소싯적에 냇가를 주름잡았던 실력은 어디로 안 갔는지, 민물고기들을 좀 잡을 수 있었다.
만화에서 봤던 것처럼 나무 꼬챙이에 꿰어서 구우려고 했는데, 생선이 구워지면서 살이 연해지더니 나뭇가지에서 살점째로 떨어져 나가서 아까운 살점을 많이 버렸다.
불판 같은 걸 만들 수 있으면 좋겠는데… 당장에 마땅한 재료가 없으니 그럴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혓바닥을 데어가며 뜨거운 생선살을 입에 밀어 넣었다.
“크하…”
간만에 몸에 영양가가 흡수되는 기분이었다. 딱 놓고 말해서 맛은 없었으나. 그래도 배를 채울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생선 너덧마리의 살을 발라서 요기를 하고, 냇물에 얼굴을 묻고 꿀꺽대며 물을 마셨다.
“후우…”
배 부르진 않지만 이틀 간 나를 괴롭히던 허기는 어느 정도 물리쳤다.
냇가의 자갈 바닥에 자빠져서 하늘을 쳐다봤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개학이 일주일 남았다.
당장 의식주 해결도 이렇게 급박한데, 아카데미 커리큘럼을 따라가면서 장학금까지 받는 게 가능할까?
가능 불가능을 논하기 전에 해내야만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에서 실베니아 졸업장 하나 품에 안고 있는 게 얼마나 큰 무기가 될지 모른다.
보통 실베니아의 졸업생들은 각국의 핵심 인재가 된다. 아무리 성적이 바닥을 기는 학생이더라도 실베니아의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토벌대의 에이스 자리에 앉거나 지방 비주류 마법 학회에서 한 자리 해먹곤 한다.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는 몇 배나 나은 환경이 조성되는 셈이다.
“거기 누구 있나요?”
냇가에 자빠져 누워 하늘을 쳐다보고 있자니 사람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켄섬 북부는 학생들은 물론 교직원들도 잘 오지 않는 곳이다. 특정 실습이나 시험을 제외하고선 사용되지 않는 공간인데 이런 앳된 목소리가 들린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정체 또한 가늠이 갔다.
“당신은….. 에드 로스테일러?”
클로엘 제국 제 3황녀 페니아 엘리어스 클로엘. 일명 페니아 황녀.
‘실베니아의 낙제 검성’ 메인 히로인 4인방 중 하나이자, 시나리오 내내 학교 전반의 정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실세 중의 실세였다. 뭐 그거야 훗날의 일이고 지금은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신입생 신분이긴 하지.
주인공 ‘테일리’와는 입학 시험에서 만난다.
신분을 숨기고 입학 시험을 치러 온 페니아 황녀는 에드 로스테일러… 그래, 바로 나를 단죄한 당사자다.
내가 주인공 테일리를 시기해 시험의 내용을 조작한 것을 폭로한 당사자이자, 내가 가문에서 파문당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자였다.
“… 파문 당했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죠…?”
여기서 뭘 하고 있냐니.
그건 내가 물을 말이었다.
기본적으로 호위가 예닐곱 명씩 따라붙는 제 3황녀가 행차할만한 장소가 아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페니아 황녀를 보았다.
단아하게 내려앉은 백금발 머리칼과 프릴 드레스가 야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평소처럼 아예 휘황찬란한 복장을 하고 있진 않았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 ‘반 배정 시험 에피소드’가 진행 중인거구나.
확실히… 아켄 섬 북쪽 숲에서 진행되던 에피소드였다.
아카데미 마법부 소속이 될 학생들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한 시험. 개학 일주일 전에 진행되는 거였지.
악질 중의 악질로 유명한 마법부 글래스트 교수의 신입생 반 배정 시험.
넓디 넓은 아켄섬 북쪽 숲에 마력이 부여된 구슬을 무작위하게 뿌리고, 찾아오게 만드는 시험이었다.
구슬에서 새어나오는 마력을 감지할 수 있는지를 체크하기 위한 시험이었지. 모든 마법의 기본은 마력을 감지하는 데에서 시작하니까.
“또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페니아 황녀님.”
나를 경멸하는 페니아 황녀의 눈길이 제법 매서웠다. 내 입장에서야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나불댄다고 내 말을 다 믿어줄 리도 없다.
얼른 상반신을 휙 일으키고 페니아 황녀를 바라보고 정중히 인사했다.
“학교에서 쫓겨났을 줄 알았는데.”
“기숙사에서는 쫓겨났습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냐고 물었습니다.”
페니아 황녀는 내가 만들어 놓은 간이 쉼터나 모닥불, 먹다만 생선 가시 따위를 훑어보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이 학교에서 안 나갔나요?”
“애석하게도 아직 재학생 신분인지라.”
“실베니아에서 당신의 퇴학 절차를 밟지 않았단 말이에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 치욕을 당하고 가문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입장이 됐는데, 계속 다닐 수 있을 리가 없지요.”
페니아 황녀의 입술이 비죽 비틀어졌다. 확실히, 이 정도의 치욕을 받은 데다가 파문까지 당한 귀족이 실베니아에 계속 재학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기 힘들었다.
“학사에서 이 모습을 발견하면 바로 퇴학 절차를 밟겠군요.”
“…”
“내일 학사 쪽에 바로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당신이 여기에 머무는 게 허락될 것 같아요?”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졸업장을 따내는 계획에 벌써 차질이 생기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얼른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황녀님께서 그리 판단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실제로 페니아 황녀님은 물론이고, 대다수의 학생들은 저를 경멸하고 있습니다. 학사 직원들도 마찬가지겠지요.”
“그걸 알고 있다면 왜 제 발로 나가지 않죠? 치욕스러운 퇴학 절차를 밟느니 마지막으로 영예롭게 떠나는 게 당신 입장에서도 더 낫지 않나요?”
“저는 계속 실베니아를 다니고 싶습니다.”
“권장하고 싶진 않네요.”
페니아 황녀는 팔짱을 끼고 경멸에 찬 눈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떠나세요. 모두가 당신을 경멸하고, 당신 또한 모두를 경멸하고 있잖아요.”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누군가를 경멸하지 않습니다.”
“당신 스스로가 얼마나 오만과 경멸에 차있는 인간인지 기억이 나지 않나 보군요. 하긴,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아닙니다.”
뭐가 됐든 간에 상황을 무마하려거든 새치 혓바닥을 잘 놀리는 수 밖에 없다.
“저는 오히려 황녀님께 감사하고 있는 입장입니다.”
페니아 황녀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