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36)
오필리스관 점거 사태 (6)
“그거 알아요, 엘리스씨? 저 차였어요.”
오필리스관 5층 복도.
비품 창고와 메이드들의 휴게실. 그 외 다용도실로만 이루어진 이 공간은 아래층들의 이변이 뭐 어쨌냐는 듯 여전히 조용하다.
애초에 학생들은 5층까지 올라올 일이 없다. 객실들은 모두 아래층들에 포진해있고, 메이드들도 대부분은 4층의 직원 회의실에 갇혀있으니, 넓디넓은 5층의 복도도 조용할 수 밖에 없다.
아래층에서 난리를 피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각 이상으로 에드 로스테일러가 화려하게 날뛰어 준 모양이다. 사태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 좋은 로르텔의 입장에선 희소식이다.
이윽고 겁에 질린 클레비어스의 비명 소리 같은 것도 들려오니, 객실에 갇혀있는 학생들은 가면 갈수록 더 불안해질 것이다. 상황이 심각해지면 일제히 벽을 부수고 탈출할 것이다.
엘리스는 어둠 속에서 다소곳이 서서 말을 건넨 소녀를 바라보았다.
“엘리스씨도 아시잖아요? 딱 봐도 악하고 못되보이는 그 사람이요.”
“에드 도련님 말씀이십니까? 저번에 캠프에서 만났던 분.”
“네, 맞아요.”
“그런 사람이 취향이셨군요. 몰랐습니다.”
“…외모야 준수한 편이지만, 딱히 그런 뜻은 아니에요.”
로르텔 케헬른은 비품 창고의 목재 장식장 위에 걸터앉아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상황이 계획대로 잘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을 마친 참이었다.
“엘리스씨한테 맡았던 냄새를 그 남자한테서도 맡았던 것 같아서. 어울리지도 않게 감상적인 소리를 늘어놨지 뭐에요.”
“그렇습니까?”
“그랬더니 얄짤없이 쳐내버리더라고요. 네 선택에는 네가 책임지라면서.”
로르텔은 머리를 틀어 올리고 탈탈 털면서 미소를 흘렸다.
“우리 같은 족속들은, 그런 말을 듣고 살아야만 하는 거겠죠.”
엘리스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지도, 가로젓지도 못했다.
엘리스는 오필리스관의 메이드 장으로서, 근속기간이 20년이 넘어가는 원로 메이드다.
아무것도 모르는 15세의 나이에 견습 메이드로서 일을 시작해, 끝끝내 그 능력을 인정받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오필리스관의 지배인이 되었다.
그런 자들은 모두 심지가 깊게 굳어 있다. 그렇기에, 그런 자들은 쉽게 돈으로 매수할 수가 없다.
가슴 속에 묻어둔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하려거든, 그 가치관조차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돈을 들이붓지 않으면 안 된다.
오필리스관 점거 사태의 스케일을 억지로 불리기 위해서 가장 많이 투자한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일평생을 충성해온 직장을 버리고, 상황을 크게 만들어 오필리스관을 반파시켜버리고, 이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
이런 짓을 하도록 매수하려거든, 모든 죗값을 치르고도 평생을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했다.
덕분에 엘테 상회 실베니아 지부의 장부에도 커다란 구멍이 하나 났다. 더 큰 이익을 위해서 적절한 투자는 필수지만,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원로급 직원 하나를 매수할 만큼 막대한 손실이다. 쉽게 매꿀 수는 없을 터이다.
그러나 로르텔은 그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단순히 더 큰 이익을 위한 투자라는 명목이 다는 아니다. 일련의 행동들은 동족을 찾아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반짝거리는 금화에 이끌려 신념을 꺾은 자는 수도 없이 많이 봐왔다.
그런 자들은 대개 궁지에 몰려있거나, 알량하고 무게감 없는 신념 따위를 인생의 자랑으로 여기던 자다.
그런 자들은 동족이라 부를 가치조차 없다.
진정한 동족은, 일평생을 다해 바친 굳은 신념과 가치관을 금화 앞에서 내던진 자들이다.
그 신념과 가치관이 숭고하고 값질수록, 로르텔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낀다. 그 모습만이 유일하게 로르텔의 고독을 해소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스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20년이 넘는 세월을 오필리스관에서 학생들을 위해 봉사해온 원로 메이드조차 탐욕 앞에선 하릴 없이 무너진다.
금화의 탑 앞에서는 그 어떤 숭고함도 가치를 잃는다.
그것이 부질없는 자기 위로라는 사실을 로르텔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금화에 이끌려 다른 모든 것을 전부 내던지고 살아온 삶. 그런 인생을 긍정받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로르텔은 동족을 찾아 해매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안 그러면 이런 계획이 어떻게 성립할 수가 있겠어요.”
오필리스관 총 지배인의 가담이 이 사태에 얼마나 큰 변수가 되어주었는지는 더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대로 4층 관리실을 열등생 대표 윌레인이 점거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얼렁뚱땅 그에게 폭주시킨 방호 마법의 주도권을 넘겨줘버리면… 영문도 모르고 오필리스관을 파괴해대겠죠.”
로르텔이 살아남기 위해서 여지껏 짓밟아온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이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다.
빈민가의 거적데기 틈바구니, 혹은 금화 한 닢에 목숨을 거는 상인들의 행렬 속.
먼저 남의 등을 찌르지 않으면, 내가 찔려 죽는 삶을 살았다.
허나 살아남기 위해서 저질렀다고 한들, 그 악행이 정당화 될 리 없다.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생존 방식이었다는 말만으로는… 정상참작은 될지언정 완전히 합리화될 수는 없다.
“상황은 계획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 것 같으니 저는 이대로 창고에 있을게요. 아무것도 모른 채 겁에 질려서 급한 대로 창고에 숨은 선량한 학생 행세를 해야죠.”
“알겠습니다, 로르텔 아가씨.”
불운한 과거사가 어쨌고, 궁지에 내몰린 속사정이 어쨌든 간에 로르텔은 명명백백한 악역이고 흑막이다.
만약 내세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지옥불에서 영원히 불타게 되겠지.
이해 받을 수도, 동정 받을 자격도 없다. 로르텔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결국 찾아 헤매게 되는 것은 동족이다.
함께 늪의 밑바닥까지 가라앉아줄 동반자만을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이 존재할 리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너무나도 가여운 인간이구나.
그 나잇대의 소녀처럼 누군가를 사랑해보지도, 가족처럼 마음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 평생을 고독 속에 죽어가겠지.
그 사실에 엘리스는 안타까움의 한숨을 내쉬고서는.
…레이피어를 꺼내들어, 로르텔을 향해 겨눴다.
“로르텔 아가씨. 생각난 김에 말씀드리겠습니다만.”
마법사가 칼을 다루는 자에게 이 정도의 거리를 내준 시점에서… 이미 싸움은 성립되지 않는다.
“저는, 딱히 당신의 동족이 아닙니다.”
*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네.”
오필리스관 3층 복도.
창밖으로는 여전히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그 사이를 유영하며, 테일리 일행은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다.
테일리, 아일라, 엘비라, 클레비어스.
2층에서 도망치는 클레비어스를 잡아서 제압해 억지로 파티에 참가시켰다.
3층에서 ‘침구류 세탁 담당 켈리’가 일행을 막아섰지만, 적절히 대처해서 무난하게 제압했다.
– ‘죄송해요, 엘리스님… 믿고 맡기신 일을 끝까지 처리하지 못했어요…’
잘 묶어서 제압한 뒤 복도 구석에 던져놓을 때까지 켈리는 계속해서 혼잣말을 해댔다.
그러고 보면 켈리와 거의 매일 함께 다니는 쌍둥이 언니 셰니는 어디로 간 것일까.
물론 테일리 일행의 생각이 거기까지 닿는 일은 없었다.
“이 페이스대로만 가면 금방이겠는데…?”
어느덧 4층에 진입했다.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 생각보다 일이 술술 풀리는 느낌이었다.
애초에 1층의 난이도가 이상할 정도로 까다로웠을 뿐이다. 그 뒤로는 전략적으로 테일리 일행의 약점을 찔러오는 상대가 없다.
“…”
엘비라는 평소와는 달리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타오르는 화염 한가운데에서, 피로 젖은 셔츠를 걷어붙이고 서있던 2학년 마법사의 모습이 자꾸 아른거린다.
소름끼칠 정도로 노련한 움직임이, 추하게 바닥을 구르던 입학 시험 당시의 모습과 괴리되어 끊임없이 신경을 건드린다.
엘비라는 자존심 덩어리다. 에드가 일부러 져줬다는 사실은 그 오만방자한 품성에 큰 스크래치를 남겨주었지만, 그렇다고 이성을 잃는 짓 따위는 안한다.
‘신경 쓰여. 분명 실력을 숨기고 있었어.’
단지, 사실의 확인만큼은 필요해 보인다.
한 번 솟아오른 엘비라의 호기심은 그 어떤 난제도 막아설 수 없었다. 분명 에드 로스테일러에게는, 엘비라가 알지 못하는 어떠한 일면이 존재한다.
“도, 도망쳐!”
“끄아아아아아아악!”
그런 엘비라의 고민도 잠시 뿐이었다.
4층 복도의 끄트머리에서 열등생 무리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왔다. 모두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테일리 일행을 지나쳐서 오필리스관 출구를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방호 마법이 폭주했어!”
“윌레인 바보 녀석!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
“젠장! 방호 마법을 관리하는 메이드들은 다 어디 간거야! 일단 도망차자!”
“모르겠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진짜 몰랐단 말이야!”
그렇게 비명을 지르며 튀어나온 학생들 때문에 순식간에 복도는 난장판이 되었다.
“자, 잠깐만! 뭐야! 다들 왜 이래!”
테일리가 소리를 지르며 학생들을 막아서보려고 하지만, 어림도 없는 행동이었다.
지축이 흔들리며, 오필리스관이 조금씩 진동하기 시작한다.
4층 복도 구석, 관리실 입구에서 몸을 휘청이면서 사내 하나가 나타난다.
3학년 마법부, 열등생 대표 윌레인이다.
그의 몸을 중심으로 피어오른 온갖 방호 법진은 숙련된 마법사들도 다루기 힘들 정도로 섬세하다. 보통은 충분한 마나감응을 지닌 메이드 너덧 명이 한 번에 달려들어서 조정하는 법진이다.
오필리스관 전체를 관리하는 비상경계 체계이니, 확실한 권한을 가진 관리자가 아니면 접근 권한 자체가 없다. 윌레인이 법진에 휘둘리고 있는 상황 자체가 부자연스럽다.
법진의 관리 체계를 발동하는 수정 구슬을 관리실 중앙에 보란 듯이 놔둔 엘리스와 로르텔의 계략이다.
“으, 으악! 도, 도와줘!”
윌레인이 몸을 둘러싼 법진의 압박에 휘둘려서 휘청거렸다. 한 쪽으로 팔을 휘두르자. 벽과 천장에 새겨진 온갖 법진이 우루루 발동되더니 복도 한 켠의 외벽을 부숴버린다.
콰광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빗줄기가 복도 안으로 침범해 들어왔다.
“감당 못하겠어! 살려줘!”
윌레인은 그대로 미끄러져서 꼴사납게 고꾸라졌지만, 그 마저도 무언가의 술식을 발동시키는 방아쇠가 되어서 천장을 날려버리고 반대쪽 벽도 부숴버린다.
오필리스관 건물의 여기저기에 새겨진 자체 방어 술식. 본래는 외부의 침략자로부터 고귀한 신분을 가진 재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광경은 그저 어린이가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들고 있는 꼴이다. 그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그 총구는 아군을 향하게 된다.
“일단 술자인 윌레인을 기절시켜버려야 해! 저런 상태에서 일일이 법진을 해제시키는 건 너무 힘들어!”
실질적인 마력 감응 실력은 미천하더라도, 마법 그 자체에 대한 지식만큼은 출중한 아일라다. 그녀는 재빨리 상황파악을 끝냈다.
테일리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잠깐 끄덕이면서 도약해 나갔다. 검을 눕혀서, 검면으로 윌레인을 가격해 제압할 생각이었다.
“끄아아아아악!”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세로 달려들면 누가되었든 당황스러워 방어자세를 취하고 만다. 그리고 그것이 곧 새로운 법진의 발동을 자극하게 된다.
-파아아앙!
유리창과 탕비실 문에서부터 뻗어져 나오는 마력의 파동에 테일리가 나가 떨어졌다. 얼른 낙법을 취하고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이어지는 윌레인의 비명에 새로운 마법들이 복도에 쏟아져 나온다.
풍탄, 발화, 토벽 소환, 그림자 칼날, 지진.
갖가지 법진이 제각기 발현되어 복도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윌레인에게로의 접근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말할 것도 없이, 벽에 걸린 온갖 벽화나 복도를 늘어선 원목 장식장들, 외벽과 바닥 까지 전부다 부서지고 깨지고 찢어져버린다.
안 그래도 샹들리에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에 불안을 떨던 객실 안 학생들이다. 그 인내심은 결국 한계에 달한다.
– ‘바깥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 ‘이대로 있다간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냐?! 벽이라도 부수고 나가야겠어!’
– ‘메이드들은 뭘하고 있는 거야 대체!’
– 콰앙!
2층 구석 객실에서 소녀 하나가 결국 벽을 부수고 밖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클레비어스 때와는 명백히 다르다. 이번에는 정말로 건물이 다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콰아아앙!
-파아아아아앙!
두, 세명이 벽을 부수고 나오기 시작하자, 이내 군중심리에 휩쓸린 학생들이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방을 탈출하기 시작한다.
1층 학생들은 유리창을 깨부수고 빗속으로 뛰쳐나가고, 비행 마법을 구사할 줄 알거나 높은 곳에서 착지할 기술이 있는 학생들도 창문을 부수고 나온다.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복도 쪽 외벽을 아예 부숴버리거나, 온 마력을 다해 짧은 공간계 마법을 구사해서 튀어나오고, 아예 1층쪽으로 이어지는 바닥을 부숴버리기도 한다.
-콰아아아앙!
-쾅! 쾅! 콰아아앙!
-쨍그랑! 파사삭!
오필리스관에 울려 퍼지는 파괴의 소리는 끝날 줄 모른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밖으로 대피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테일리 일행은 일이 잘못 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했지만, 그럼에도 윌레인이 조종하는 보호 법진의 폭주는 멈출 줄을 모르고 파괴 행각을 계속해간다.
“엘비라! 밤나비꽃 시약 남은 거 없어?!”
“멍청한 소리 하지 마, 테일리! 밤나비꽃 시약은 술자의 마력 운용을 꼬이게 만드는 거지, 저렇게 미리 새겨진 법진에는 효력이 없어!”
엘비라는 혀를 차고 몸을 수그렸다. 그대로 발 언저리에 아귀풀씨앗과 으깬 황제조개껍질을 섞어서 녹인 시약을 뿌려댔다. 그 중심으로 마력의 기운이 솟아오르더니, 보호 법진에서 튀어나온 온갖 기초 마법이 일시적으로 차단당한다.
범위가 좁아 큰 실용성은 없지만, 이런 폭 좁은 복도에서는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하는 아귀풀 시약이었다.
“어쨌든 저 보호 법진은 오로지 보조용 마법일 뿐이야! 그 양이 대단할 뿐이지 위력 자체는 감당할만 해! 잘 뚫고 지나가서 윌레인을 기절시켜봐!”
그렇게 말하고, 엘비라는 조용히 장식장의 잔해 뒤에 숨어있던 클레비어스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으아아아아악! 끄아아악! 뭐야,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하여튼 멍청한 클레비어스! 틈만 나면 숨으려 든다니까!”
엘비라는 클레비어스의 엉덩이를 걷어차면서, 테일리에게 외쳤다.
“둘이서 같이 달려들면 충분히 제압할만할 거야! 내가 뒤에서 지원해 줄테니까, 피해 더 커지기 전에 윌레인을 제압해!”
그 말에 테일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클레비어스는 아연실색했다.
*
-콰아아앙!
-파앙!
오필리스관의 외벽들이 터져나간다. 4층 보스 공략전이 시작된 것이다.
5층 보스 엘리스를 제외하고서는 그다지 난이도가 높지 않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 오필리스관 점거 사태가 끝나기까지도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에드, 어디가! 상처 벌어져!”
“별 거 아냐! 이것도 대부분은 내 피 아니야!”
비를 맞으며 오필리스관 주변을 뛰어다니는 나를 예니카가 얼른 따라왔다.
얼마 안가서 오필리스관 후면의 직원용 통로 앞에 커다란 마차가 서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각종 금테가 화려하게 둘러진 그 마차는 척 봐도 비싸 보이고 휘황찬란하지만, 그 마차의 안에 타고 있는 인간이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면 이보다도 검소할 수가 없다.
본디 그는 어딘가에 행차할 때 최소한 마차 열 댓개를 동반한다. 이 정도 수준의 규모로 행차했다는 것은, 무언가 급한 일이 생겨 쏜살 같이 달려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모습만 보자면, 한참동안 이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마치… 오필리스관이 반파되는 것을 기다렸던 것처럼.
이윽고 직원용 출구 쪽에서 메이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우산을 쓴 여자 하나가 나온다.
‘식기 관리 담당 셰니’
메이드장 엘리스가 거둬서 키워낸 고아 중 하나이자, 본래대로라면 오필리스관 3층에서 동생 켈리와 함께 테일리 일행을 막아섰어야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셰니는 정사와는 달리 현장에서 빠져나와 마차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야기가 엇나가고 있다. 그 명확한 증거다.
셰니가 뒷걸음질을 하고 예를 취하자, 안에서는 비쩍 마른 신사 하나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엘테 상회의 오래된 임원 빅터다.
빅터는 문을 열고, 우산을 정중하게 들어 마차의 주인이 걸어 나올 수 있도록 환경을 갖춰놓았다.
이윽고, 으리으리한 마차의 입구에서 그가 걸어 나온다.
딱 붙는 흰색 셔츠와 검붉은 색 허리띠, 밑단을 꽉 조여맨 가죽 바지는 검소해 보인다. 그러나 온갖 금칠이 되어있고 보석이 주렁주렁 매달린 외투는 그야말로 함선 한 채의 값을 자랑하고, 손가락 사이사이에 끼워놓은 보석 반지는 하나하나가 집 한 채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젋지도, 그렇다고 늙지도 않았다. 가지런히 정리된 턱수염은 날이 서있다. 몸에 서린 위엄은 이미 신체의 일부와도 같다.
엘테상회의 회주, ‘황금왕 엘테’.
나는 직감했다.
지금 이 지점이, 모든 이변의 시작을 알리는 시발점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황금왕 엘테가 실베니아에 방문하는 것은 이 오필리스관 점거 사태가 끝나고 나서 한참 뒤, ‘현자의 봉서 쟁탈전’ 이벤트 때다.
상회 내의 입지가 궁지까지 몰려있는 엘테다. 그는 현자의 봉서 매입을 통해 일발역전을 노려보게 된다. 로스테일러 가문의 가주, 크레핀 로스테일러가 그 책에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불렀기 때문이다.
허나, 그는 결국 로르텔에 의해 뒤통수를 맞고 퇴장. 상인으로서의 삶을 마감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그가 여기에 와있다.
과정은 모른다. 오로지 결과만이 남아있다.
무엇이 어디에서 어떻게 꼬여서 이렇게 되었는지는 철저히 내 인식 밖의 영역일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그걸 다 알아내려 하는 건 오만이다.
다만, 앞으로 일어날 일이라면 충분히 유추 가능하다.
메이드장 엘리스에게 철저히 충성하는 두 쌍둥이 메이드, 셰니와 켈리.
그 중 셰니가 황금왕 엘테와 접선하고 있다는 사실은 곧… 메이드장 엘리스가 황금왕 엘테와 내통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허나 정사에서는 분명, 메이드장 엘리스는 로르텔에게 완전히 매수당했었다.
막대한 양의 돈을 받고, 오필리스관의 보호 법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뒤집어 쓴다.
그렇게 수십 년을 근속했던 직장에서 온갖 징계와 처벌을 받은 뒤, 쌓아올린 모든 커리어를 내려놓는다.
단순히 돈으로 매수될만한 인간은 아니다. 엘리스는 굳건한 신념과 가치관이 있는 자다.
그런 자가 어떻게 오로지 돈만으로 매수되었는지는 그리 깊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막대한 돈을 줬겠지, 하고 유추해볼 뿐이다.
애초에 로르텔은 그런 숭고한 자들이 돈 앞에서 신념을 꺾는 모습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동족을 찾아 헤매는 로르텔의 강박이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저 광경은 정사와는 명백히 다르다. 저 모습은 마치…
“에드… 감기 걸려…! 피도 많이 흘려서 체온도 떨어졌잖아!”
뒤늦게 따라온 예니카가 로브 안에 두르고 있던 숄을 벗어서 앞으로 오더니, 얼른 내 머리에 덮어주었다.
“속상하게 왜 그래! 정말!”
“예니카.”
“어, 응?”
가만히 있을 상황은 아니다. 정황 파악은 아직 덜 됐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 급한 일인데, 나 혼자 감당하기는 좀 버거울 수도 있어서.”
내 머리에 팔을 뻗어 숄을 올린 채로, 예니카는 멍하니 이야기를 듣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니카에게서 튀어나올 대답이 무엇일지는 명확하다. 느닷없이 이런 말을 들으면, 누가되었든 상황을 먼저 묻기 마련이다. 그게 뭔데? 급한 일이야? 무슨 일에 휘말렸어? 사정을 설명해봐. 뭐 그런 것들이다.
예니카가 받아들이게 하려거든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최대한 짧고 굵게 상황의 핵심만을 전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하는 것들을 고민하고 있자, 예니카로부터 금방 대답이 돌아왔다.
“응. 알았어.”
급하다는 말에 대한 배려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내용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것일까.
“내가 뭘 하면 되는데?”
중간과정 따위는 생략하고 쿨하게 처리해야할 일을 물어오는 태도에, 참 좋은 친구를 두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마는 것이다.
* [ 엘테 케헬른님께 보내는 편지 ]
안녕하십니까, 존경하는 엘테 상회의 회주, 황금왕 엘테 케헬른님.
저는 드높은 실베니아 아카데미에서 오필리스관의 메이드장 직을 업으로 삼고 있는 엘리스라고 합니다.
이 편지는 다 읽고 나면 각인된 발화 법진에 의해 저절로 불타 사라집니다. 화상을 입지 않게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아무런 접점이 없을 제가 매 분 매 초가 바쁠 귀하께 편지를 쓰기 위해 깃펜을 들게 된 것은, 실베니아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귀하의 양녀 로르텔 케헬른 양에 대해 보고드릴 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귀하께서 명하신대로 ‘현자의 봉서’를 매입하기 위해, 오필리스관의 반파를 유도해 실베니아 학사에 재정적 위기가 초래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이윽고, 오필리스관의 총 지배인인 저 엘리스가 가담하는 것으로, 성공할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만약 모든 계획이 잘 끝난다면, 실베니아 학사의 재정은 궁지에 몰리게 되고, ‘현자의 봉서’ 매입 협상에서 엘테 상회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인해 저는 그녀의 진정한 속내를 알게 되었습니다.
엘테님. 귀하의 양녀, 로르텔 케헬른 양은 귀하의 아군이 아닙니다. 그녀를 절대 신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녀는… 그녀의 친부모를 죽인 자가 귀하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녀의 삶을 궁지로 몰아, 귀하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는 사실 또한 전부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귀하가 모르는 새에 엘테 상회의 6대 거상과 임원직들을 회유해, 귀하를 회주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들 계획을 꾸미고 있습니다.
‘현자의 봉서’ 매입 협상 또한, 당신을 실베니아 아카데미로 끌어들여, 엘테 상회 본점에서 일어나는 이변에 제 때 대처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한 미끼입니다.
저는 그 증거가 될 수 있는 밀서들을 그녀의 방에서 빼돌려 보관중입니다.
그녀는 확실히 소각장에 불태워서 폐기했다고 생각하지만, 소각장에 불을 지피는 일은 저희 메이드들의 일입니다.
제 아무리 철저한 그녀라 할지라도, 오필리스관의 메이드들이 설마 소각장 사이에 잘게 찢겨져 버려진 밀서를 한 땀 한 땀 챙겨두었을 거라는 생각까지는 못했던 모양입니다.
저는 언제든 그녀를 고발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간에, 저는 오필리스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으로 심판대에 올라서게 될 것입니다.
그 심판대 위에서 모든 일의 흑막인 로르텔 이름 석 자를 내뱉기만 한다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건 저 혼자만이 아닐 것입니다.
다만, 세상일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공짜라는 것은 없습니다.
이번 일에 대해 함구하는 것을 조건으로, 저는 그녀에게 막대한 양의 금화를 약속 받았습니다.
막대한 양의 금화를 틀어막는 것은, 그보다 더 막대한 양의 금화뿐입니다.
이 편지 아래, 별첨된 종이에 기술된 내용은 제가 비밀리에 정기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기관’의 이름들입니다. 해당 기관으로 전달되는 금화의 양이 이후 제 행동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시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청각도 거의 잃었습니다. 그 이유를 자세히 기술할 이유는 없겠습니다만, 어쨌든 메이드장으로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마 올해가 마지막이겠지요.
저는 이번 일의 모든 진상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간이며, 더 이상 뒤가 없어 궁지에 몰린 인간입니다. 제가 이후 어느 쪽에 붙느냐에 따라, 상황은 더 복잡해질 수도, 더 간단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부디, 자비롭고 현명히 판단해주시기를.
– 오필리스관 메이드장, 엘리스 올림.
[ 별첨 용지 ]세른 지방 크룩스 고아원 코헬톤 고아 보호소 아튼스 크로셀 고아 보호원 오델 지방 알튼 고아원 테밀 지방 공공 고아 보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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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 너 다쳤어! 너무 그렇게 빨리 움직이면 상처 벌어진단 말야…!”
이미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점은, 세상의 변수라는 건 너무 복잡다단하여 전부 통제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노력하는 것. 큼직큼직한 변수들만큼은 문제없도록 잘 관리해주는 것 뿐이다.
예니카와 함께 빗속을 헤쳐 나가며, 생각을 정리한다.
그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만약 정말로 엘리스가 로르텔을 배신했다면, 로르텔의 몰락은 필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로르텔 케헬른이 정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3막에서는 페니아 황녀와 대립각을 세워 학사 내 정치 싸움을 주도해주어야 하고, 오른산 수색작전에서 인재들을 규합하는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다가, 루시 토벌전에서는 상단 측 전력의 대표로 활약하는… 막대한 비중을 부여 받은 인물이다.
4막에서는 아예 주인공 세력의 조력자로서 입지가 굳어, 로스테일러 가문과 대놓고 대립각을 세워주는 최대의 우호 세력으로까지 발전하니… 그 외 자잘 자잘한 사건과 에피소드에 미치는 영향력은 일일이 예시를 들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로르텔, 몰락.
그 모든 시나리오의 전제를 무너뜨리는 단 한 문장이다.
로르텔 케헬른이 사라진 시나리오는, 내 시점에서는 완전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다. 미래 지식이고 정보 우위고 나발이고 전부 무너져 내려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로르텔의 역할을 완전히 땜빵해낼 수 있는가 하면… 불가능 하진 않을지도 모르나 너무나도 고되고 힘든 길이다. 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그런 개고생은 무조건 사양이다.
아예 아카데미 학위를 포기하고 바깥으로 나가, 미지의 판타지 세계에서 맨땅에 헤딩하며 살게 아닌 이상에야… 로르텔 케헬른의 퇴장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예니카, 혹시 직스 방이 어디인줄 알아? 걔한테도 도움을 좀 청해야겠는데.”
“어, 응? 글쎄… 별로 안 친해서… 잘 모르겠는데…”
“…그래, 일일이 찾아다녀야겠네. 이미 건물에서 탈출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나는 얼굴을 타고 흐르는 빗줄기를 닦아 내면서, 오필리스관 정문까지 돌아왔다. 피난 나온 학생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웅성거리고 있다.
오필리스관 점거 사태도 마무리되어 간다.
방호마법이 발동되었으니 교직원들이 몇 분 안에 도착할 것이다.
로르텔 케헬른은 몰락한다고 해서 동정 받을 수도, 이해 받을 수도 없는 인물이다. 제 아무리 방대한 속사정이 있다고 한들 그녀는 명실상부 악인이다.
권선징악, 사필귀정, 사불범정.
하나 같이 옳은 이야기들이지만, 그런 전래동화 속의 교훈은 잠시 뒤로 미뤄놓는다.
무대 위에는 모든 진상을 가리고 서있어줄 흑막의 존재가 필수불가결하다.
악역이 사라진 시나리오가 어떤 방향으로 튀어나갈지, 어떤 방식으로 눈덩이가 굴러 세상을 박살내놓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비 내리는 오필리스관 정문.
나는 한계까지 머리를 굴려가며,
예니카와 함께 반파된 오필리스관을 올려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