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56)
글래스트 토벌전 (5)
“부탁이야. 아일라를 구해야 해. 한 번만 도와줘.”
꾸벅 고개를 숙인 테일리는 이미 상처가 꽤 생겨 있었다.
2막 최종전의 1페이즈인 글래스트 교수 추격전에서 생긴 상처였다.
교수동 외곽에서 단련을 하고 있던 직스 에펠슈타인은 그런 테일리를 보고 있자니 어리둥절했다.
정확한 상황을 모르는 입장에서는 갑자기 도움을 청하는 테일리의 행동이 너무 뜬금 없게 느껴졌다.
“무슨 일인데, 테일리?”
*
영혼 도서관은 커다란 홀 하나에 온갖 책장이 가득차 있는 구조다.
외벽을 따라 둘러쳐진 가장 외곽 쪽 책장에 귀중품이 많다.
물론 진짜로 가치 있는 희귀 마공학 용품이나, 전설급 마공학용품 제조식은 영혼 도서관 중앙에 있는 사서 레이나의 탁자 주변에 포진해있다.
레이나의 탐지 마법에 걸리지 않고 그 쪽에 접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그 쪽을 수색하는 건 이번 토벌전이 얼추 마무리 된 이후에 하는 게 좋을 듯 하다.
“♬ ♪ ♩ ”
넓은 도서관 홀에 사서 레이나의 콧노래 소리가 울려퍼졌다. 음침하고 낮은 성조의 섬뜩한 목소리였다.
일단 외곽 쪽을 돌면서, 자그마한 마도서 레플리카들을 좀 챙기고, 분해 재조립 가능한 마공학 용품들도 좀 찾아보자.
특히 C열 서가에 보관되어 있는 마공학용품 ‘벼락 외침 생성기’는 알람이 달린 덫을 만들 때 활용할 수 있을 것이고, ‘단방향 빛 흐림 장치’는 한 쪽으로만 빛이 통하는 창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욕심 부리기 보단 일단 그 정도만 챙겨두고, 나머지는 공부할 때 쓸만한 책을 챙기는 것으로 마무리 해두자.
진짜 귀중한 마공학 용품들은 레이나의 눈치 없이 천천히 뒤질 수 있을 때 챙겨두면 된다.
책장 사이에 몸을 숨긴 채 슬쩍 고개를 내밀어서 홀 중앙을 보았다.
탁자에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서 레이나는… 허공을 부유하고 있다.
레이나는 인간이 아닌 마물족이다. 이 도서관에 영혼이 매인 ‘밴시족’으로서, 반경 20m 안쪽으로 접근하기만 해도 그 특유의 탐지 마법에 걸려 침입자를 감지해낸다.
마치 수중을 부유하고 있는 것처럼 레이나의 스커트 자락이 둥실 둥실 허공을 맴돌았다.
그렇게 레이나는 온갖 책들 사이를 부유하며 주기적으로 도서관을 순찰을 돌고 있었다.
레이나의 순찰 패턴은 제법 익숙하다. 일단 전투에 진입하더라도 어느 정도 공략법은 숙지하고 있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대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 레이나는 귀중한 테일리의 경험치다.
테일리의 검성식이나 다른 검술계 스킬의 숙련도가 충분히 단련되어 있지 않으면, 글래스트 교수의 성위 마법을 상대로 애로사항이 생기게 된다.
어디 그 뿐인가, 나중에 상대하게 될 재앙급 보스들을 상대로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특히 검성식이 일정 수준이상 도달하지 못하면 그 적들을 내가 책임져야만 할 가능성이 크다.
너무 고생스러운 일이고, 애초에 책임을 질 능력도 의지도 없다. 그러니 일단 글래스트 교수의 비밀 연구실에 있는 보스 몬스터들은 최대한 손대지 않기로 했다.
뭐, 사실 레이나 하나 안 잡는다고 해서 이미 성장세가 물오른 테일리의 힘이 눈에 띄게 꺾이는 일은 없긴 하다.
어디 레이나만 그런가. 대부분의 보스들 다 스킵해도 당장 성장세가 밀리진 않는다. 그냥 가장 성장치에 도움이 되는 ‘되살아난 지하수로의 악마’만 잘 잡으면 문제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나는 책장들 사이를 숨어다니며 품 속에 이런저런 양피지와 제조식들을 챙겨넣었다.
“후우…”
주기적으로 책장들 사이를 거닐며 순찰을 도는 레이나의 시선을 최대한 피했다. 그러면서 일단 손에 닿는 것들은 닥치는 대로 챙겼다.
제조식들은 하나 하나 펼쳐서 읽어보지 않는 이상은 어떤 제조식인지 파악하기 힘드므로, 그냥 질보다 양 전략이라 생각하고 최대한 많이 챙기기로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품속이 묵직해진 것이, 꽤나 흡족했다.
[ 지금이라면 출구 쪽엔 시선이 닿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에드 도련님! ]속삭이는 어조로 머그가 내게 일러주었다.
아직은 아니다. 시야 밖이라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다. 레이나의 탐지 마법은 시야와는 상관이 없다.
밴시 레이나는 오로지 시각만으로 적의 유무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일정 거리 안의 마력을 탐지해서 적을 감지해낸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행동하지 않으면 오히려 들키게 될 것이다.
나는 침착하게 책장들 사이로 오가며, 레이나가 빈틈을 보이기를 뚝심있게 기다렸다.
– 쿠구궁, 쿵.
“…흠?”
정신을 차려보니 지축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무언가 웅웅 울려대는 소리.
처음에는 착각인가 싶어서 무시했으나, 슬슬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위기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진인가.
그런 이벤트는 없었던 걸로 아는데.
단순한 헤프닝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이내 그 떨림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 에, 에드 도련님! ]“…뭐지?”
머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이미 책장을 부여잡지 않고는 제대로 균형을 유지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허공을 부유하고 있는 레이나에게 이런 진동은 별 의미 없겠지만, 다른 책장들은 다르다.
결국 밀려오는 격동을 버티지 못한 책장들이 하나 둘씩 넘어지기 시작했다. 모두 내 모습을 감춰주던 고마운 엄폐물들이었다.
책장들이 제 역할을 관두고 넘어지기 시작하자, 내 모습을 감춰주던 엄폐물의 역할 또한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나는 완전히 레이나의 시야에 들어가고 말았다.
“♬ ♩ ———”
밴시 레이나의 콧소리가 뚝하고 멈췄다.
그리고 나를 발견하더니,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쇠를 긁는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마력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일순간 풍경이 어그러지는 듯한 감각이 나를 습격하더니, 주변 책장들과 마도서들이 허공을 부유하기 시작했다.
레이나의 영혼계 마법에 공명해 새 생명이 주어진 사물들은… 폴터가이스트 현상처럼 제 멋대로 움직이고 날뛰기 시작했다.
[ 에, 에드 도련님! 어떡하죠! 이, 이건! ]“괜찮아! 도주하는 거 자체는 쉬워!”
레이나는 이 도서관에 영혼이 묶여있는 상태다.
발화 마법으로 일단 공간을 장악한 뒤, 출구 쪽으로 후퇴해서 레이나의 사정거리 밖으로만 벗어나면 된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심호흡을 하고 팔을 걷어 붙였다. 레이나를 제압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도주하기만 하면 되는 거다. 쉽다 못해 식은 죽 먹기다.
나는 몸에 마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
전투에 적합한 복장은 아니다. 그렇다고 갈아입을 시간은 없었다.
로르텔은 화려한 장식이 잔뜩 수놓인 세미 로브의 자락을 펄럭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마차에서 풀쩍 뛰어내린 로르텔은 제발 회의실로 돌아가자고 만류하는 직원들을 한 팔로 물리치고, 그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지하수로의 입구를 쳐다보았다.
우람한 석재기둥 두 개가 입구 양 옆을 든든하게 받치고 있다. 지하로 향하는 내리막이 보이는 거리까지 다가가자, 특유의 습기가 식도에 들러붙는 것만 같았다.
그 아래에 도달하고 나면 잘 정돈된 수로가 지하 너머로 쭉쭉 펼쳐져 있다. 공간 자체는 큼직큼직하고, 석재 지지대와 외벽이 깔끔하게 갖춰져 필요 이상으로 흙먼지가 휘날리는 일도 없다.
그러나 제 아무리 일류 마법 기술을 이용해 건축된 지하수로라 할지라도 세월의 풍파에는 쉬이 버틸 수 없다.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어 있거나, 깨져있고 부서져 있는 둥… 결국 세월의 흔적을 온전히 없앨 방법은 없다.
금화 수십닢을 호가하는 장신구와 옷을 잔뜩 두른 로르텔이 들어갈만한 장소가 아니다. 먼지 몇 톨만 묻어도 장부에 적히는 금액 단위가 바뀔 정도의 사치품들이다.
그러나 로르텔은 아랑곳 하지 않고 성큼성큼 수로에 진입했다. 비전투직 직원들은 데리고 들어가봐야 짐만 되니, 바깥에서 대기하다가 상황 변동이 생기면 보고하러 들어오라고 지시해두었다.
“이렇게 큰 규모의 지하수로가 필요한 시설은 아닐 것 같은데.”
로르텔은 건축 사업에 손을 대보기도 했고, 온갖 건물이나 시설들에 기부금을 대본 적이 있다. 이런 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 감각 또한 날카롭게 날이 서있다.
실베니아 아카데미는 아켄섬 남부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큰 규모의 학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큰 지하수로를 구축해놓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건물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층고와 넓직한 가로 넓이는 과해도 너무 과했다.
애초에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 자체도 많지 않다. 굳이 발을 담가본다면 로르텔의 얇은 발목을 겨우 적실 정도의 수준일 터다.
“마치 다른 목적이 있어서 만들어 놓은 것 같네.”
로르텔은 순식간에 지하수로의 수상한 부분을 통찰해냈다. 구체적으로 그 목적이 뭔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리막이 끝나고, 제대로 된 수로 초입이 보이자 로르텔은 숨을 집어삼켰다.
– 쪼르르르
– 쿠궁, 쿵.
통로 중심부에 큼직하게 마련된 물길에 얕은 물결이 치는 소리.
그리고 마법이 각인된 돌로 이루어진 마성 골렘의 파편들이 수로 여기 저기에 널부러져 있는 광경.
누가봐도 전투 흔적이다.
아니, 전투라기보단 일방적인 격퇴에 가까운 흔적이었다.
조금 더 들어가서 수로 중앙 부분을 보면, 거의 마차 한 대에 버금가는 크기의 마력석들 또한 수로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직 조금은 마력이 남아 간헐적으로 몸을 떨 듯 돌이 움직이고 있었으나, 이미 유의미한 수준의 전력이 될 수는 없을 듯 했다.
로르텔의 상반신 정도 되는 크기의 돌들은 중급 마성 골렘을 이루고 있던 파편들일 테고, 마차에 버금갈 정도로 커다란 크기의 파편들은 상급 마성 골렘을 이루고 있던 파편들일테다.
중급 마성 골렘 10기 정도를 상대하려거든, 최소 고학년 중에서도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데려와야 하고.
고급 마성 골렘에 이르러서는 교수진 정도 되는 인간 아니면 돌파할 수가 없다.
그것들을 홀몸으로, 한 번에 돌파해버릴 만한 인간은 그리 많지 않다. 제 아무리 마법 실력에 자신을 가지고 있는 로르텔이라도 따로 끌어내 싸울 수는 있을지언정 한 번에 격퇴해버릴 수는 없다.
“…”
로르텔은 그대로 골렘 파편 사이를 지나서 좀 더 수로 깊숙한 곳으로 진입했다.
통로 끄트머리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소녀가 있었다.
각 학년 우등생들의 인적 사항은 줄줄 꿰고 있는 로르텔이다. 그게 누구인지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자 치고는 훤칠한 키, 가볍게 올려 묶어 활동성 넘치는 뒷머리, 볼에 애교처럼 박힌 주근깨.
3학년 연금부 수석 도로시였다.
허나, 완전히 기절한 상태다.
옷 여기저기가 젖어있는 걸 보아하니, 누군가에게 제압 당해 수로 쪽에서 나자빠진 걸 건져내 준 모양이다.
그리고 혹시나 젖은 옷 때문에 추울까봐 이불삼아 덮어준 숄을 보자마자… 로르텔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외곽을 따라 귀여운 코스모스 자수가 새겨져 있는 숄의 디자인이 퍽 앙증맞다.
로르텔이 두르고 있는 옷에 비하면 헐값이지만, 그래도 그 숄에는 상징성이라는 것이 있었다.
옷만큼이나 중요한 게 옷걸이다.
항상 이 숄을 두르고 다니는 소녀가 누구인가. 이 실베니아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는 정령사다.
“또 입구로 돌아왔어! 으앙!”
듣는 이도 없는데 우는 소리를 하며 내부에서 한 소녀가 나타났다.
아니, 듣는 이는 확실히 있었을 것이다. 단지 로르텔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내가 뭐라했어! 타칸 말이 맞잖아…! 아, 아닌가? 이번엔 누구 말대로 했었더라? 으음… 그러니까… 두 번째 갈림길에서 오른쪽, 그 다음 왼쪽, 그 다음… 왼왼오오왼오왼왼… 아닌가…? 왼왼오왼오왼왼이었나…? 머리 아파….”
그리고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허공에 대고 연신 푸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안해… 나 길치인걸… 북쪽숲 가는 길 외우는 데에만 며칠이 걸렸는데, 이런 미로 같은 곳을 한 번에 파악하라는 건 너무해… 그리고 멜리스 너두 길 다 못 외웠잖아! 너무 그렇게 화내지 좀 마…! 나두 내가 답답하단 말이야…! 또 여기로 돌아오다니.. 이래가지고 어느 세월에 에드를…”
거기서 말이 끊긴 건 로르텔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
“…”
물이 흘러가는 소리만 어두운 지하수로 너머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아기자기하게 땋아내린 연분홍빛 머리칼에 흙먼지가 가득하다. 평소와 달리 숄을 두르고 있지 않은 모습이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교복에도 여기저기 젖은 자국이나 먼지 묻은 자국이 가득한 것이, 바로 얼마 전까지 전투를 한 모양새다.
그 흔적의 크기나 형태를 보아하면, 지하수로 내부에서 추가적인 전투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머, 어머머. 예니카 선배님.”
견원지간이란 말만으로는 둘의 관계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그보다 더 질척질척하고 추잡한 무언가다.
어쨌든 예니카든 로르텔이든 서로가 눈엣가시라는 입장만큼은 명확하다.
로르텔은 수십분 전, 지하수로 입구 근처에서 보였던 타칸의 형상을 명백히 보았다. 에드의 납치 소식을 듣고 예니카가 한달음에 달려왔을 거라는 사실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허나 예니카에게 있어 로르텔의 등장은 완전히 예상 외의 상황이었다.
이 점은 중요한 사실이다.
로르텔의 상황 판단이 한 걸음 더 빨랐단 이야기다.
예니카 페일로버로 말하자면 각 학년 수석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무력을 자랑하는 이 실베니아의 에이스다.
굳이 무력으로 줄을 세우자면, 혼자 압도적으로 앞서나가는 루시를 제외한 나머지 중에서는 거의 선두에 서고 있는 소녀다.
이쯤 되면 글래스트 교수의 연구진들이고 뭐고 아무런 필요가 없다.
그냥 혼자서 수로를 다 박살내고 깽판을 쳐 무슨 짓을 하든 간에 에드의 신변을 확보해올 것이다.
‘그러면…?’
로르텔은 그 냉철한 성격 탓에 자기객관화가 확실하게 되어 있는 타입이다.
허나, 그런 로르텔조차도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니… 자신은 유독 남녀 관계만 개입되면 사고 방식이 퇴행해버린다는 점이다.
언제쯤 로르텔이 스스로 그 사실을 깨닫고 수치심을 자각할 수 있을지는… 먼 훗날의 이야기다. 어쨌든 지금 당장 로르텔의 머릿속에 맴도는 이미지는 너무나도 일차원적인 것이다.
예니카가 온갖 정령들을 휘두르며 사로잡힌 에드를 구해낸다.
에드 구하러 왔어. 다친 데 없지. 너무 힘들었지. 걱정 많았어. 괜찮아? 같이 돌아가자. 캠프에 밥 해놨어.
따뜻한 스프 마시면서 몸을 데우자. 몸에 힘 안 들어가지 자 괜찮아 업혀 고마워 예니카 네가 최고야 뜬금 없이 납치 당해서 너무 고생스러웠다 무서운 부분도 많았고 도움이 필요했다 역시 너밖에 없다 예니카 내 삶의 동반자는 네가 맞는 것 같다 결혼하자 예니카아니 에드 결혼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너무 좋아 식장은 어디서 할까 자식은 몇 명이나 낳을까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 신혼집은 어디에 차릴까? 우리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 하지 마 예니카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게 해줄게 자 가자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어 우리 부부의 미래처럼 밝게 떠오르는 저 태양을 향해 달려나가자. 하하하하하하하안 돼!
세상사 거의 모든 사업에 손을 대봤으면서 하여튼 연애 사업에 있어서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허당이다. 이제 와서는 좀 스스로 자각할만도 하건만… 로르텔은 또 어김없이 동공을 떨어대는 것이었다.
“예니카 선배님. 에드 선배님이 구출되었다지 뭐에요…! 정말 너무 너무 분한 일이지만, 납치 당한 사이에 많이 다친 모양이에요…! 병상에 누워서 예니카 선배님 이름만 부르고 있어요! 언제 오냐고 혼수 상태로 예니카 선배님만 찾고 있어요! 지금 캠프에서요!”
어쨌든 머리 하나 만큼은 핑핑 돌아가는 로르텔이었다.
에드가 납치당한 곳이 이 지하수로라는 정황 증거가 가득한 만큼, 일단 예니카를 이 지하수로에서 내쫓아버릴 필요가 있다.
“뭐, 뭐라구?!”
예니카는 히끅대는 소리와 함께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는 지팡이를 가슴께에 꽉 움켜쥐고 총알처럼 달려나갔다.
로르텔을 지나치고, 지하수로 밖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조막만한 발로 타닥대며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조금씩 멀어져가는 것을 들으며, 로르텔은 일단 재빠르게 에드가 납치당한 곳이 이 지하수로 중에서도 어디일까 추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시간이 길게 가지는 못했다. 조금씩 멀어지던 발걸음 소리가 다시금 커지더니, 꺾여있는 커브길 안쪽에서 다시 한 번 예니카의 얼굴이 쑥 하고 튀어나왔다.
“근데, 로르텔. 로르텔이 왜 나한테 그걸 이야기 해줘?”
로르텔은 헛숨을 집어삼켰다.
“그리구 나 에드 위치가 특정 되자 마자 쏜살 같이 달려왔는데, 거의 입구 주변에만 있었는데 에드가 어떻게 구출 되었다는 거야? 누가 구출했다는 거야? 내가 제일 먼저 도착했는데 어떻게 내 눈에 안 띄고 구출했다는 거야?”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는 예니카의 얼굴에 일순 귀기가 서린다.
로르텔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꽃봉오리가 피어오르듯 화사한 미소와 함께 시원스러운 어조로 이야기 했다.
“아님 말고요.”
“너 진짜 너무해!”
한계까지 볼을 부풀리고 바닥을 꾹꾹 밟아대며 예니카가 성을 냈다.
떡갈나무 지팡이를 붕붕 휘두르며 팔을 허공에 뻗어대는 꼴이, 한 편으로는 그냥 떼를 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로르텔도 양보할 마음은 없었다.
에드 로스테일러는 항상 심드렁한 모습처럼 보이지만, 어쨌든 받은 바에 대해서는 착실히 감사를 표하고 마음의 빚으로 남겨둔다.
목숨의 위기에서 구해내준 은혜라니. 이 정도 쯤 되면 에드도 절대 가벼이 여기진 않을 것이다.
가장 먼저 에드를 찾아내서 구출해내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그 무뚝뚝한 인간에게 제대로 된 은혜를 입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봉서를 매입해주니 마니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은혜다.
여러 사람에게 허락된 기회가 아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단 한명 뿐이다. 처절한 레이스의 세계에서 2등에게 허락된 영광은 없다. 오로지 승자만이 독식하는 세계다.
“이럴 때가 아니라구! 로르텔! 근데…”
어쨌든 예니카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으나… 그 이전에 에드의 목숨이 왔다갔다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기 싸움이나 하고 있을 때는 아니라는 사실을 피력하려 했건만….
“….로르텔은 혼자 왔지? 비겁하게 다른 상회 직원들까지 동원해서 에드 찾아내려는 거 아니지…?”
“….”
“아니, 내 말은… 괜히 비전투직 상회직원들까지 휘말리면 더 위험해질 수가 있으니까! 응!”
어렵사리 정당한 이유를 덧붙이는데 성공한 예니카가, 이번엔 자신의 공정성도 덩달아 피력하기 시작했다.
“나두 처음엔 루시한테 좀 도와달라고 했었지만… 루시는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하품이나 하면서 산책 하러 갔단 말이야… 걔는 완전히 남 얘기 안듣고 자기 페이스 대로만 행동하잖아… 그러니까 나두 혼자야.”
“아하…. 그렇군요.”
로르텔은 빙그레 웃음 짓고서는, 그렇게 한동안 예니카와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기자기하고 발랄하게 미소를 건네는 예니카의 얼굴에선 당장이라도 포근한 민들레 씨앗이 피어오를 것만 같다.
왜소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차분하고 요염한 미소를 건네던 로르텔의 표정도 어찌나 푸근한지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그럼 나는 수로 동편 위주로 찾아볼게, 로르텔.”
“네, 그럼 저는 반대쪽 한 번 수색해볼게요.”
에드의 목숨이 위험에 처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까지 기 싸움 하며 서로를 견제하는 건 너무 몰상식한 일이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자.
별 다른 말은 주고 받진 않았지만, 그런 타협점을 찾은듯한 두사람이었다.
그러나, 둘이 갈라져 나와서 모퉁이를 도는 순간, 둘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수로를 전력질주 하기 시작했다.
자고로 승부의 세계란 냉혹한 법이다.
*
-후두둑
흙먼지가 떨어지는 소리.
지하 깊숙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한줄기 태양빛이 지하 도서관의 허공에 사선을 그린다.
웅크리고 있던 자그마한 몸을 펴고 평소처럼 꺄악대며 기지개를 한 소녀는… 고개를 두어 번 털고 마녀모자를 고쳐 잡은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식하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어이가 없다고 표현해야할까.
상식이 통하지 않는 강함 앞에선 제 아무리 두꺼운 지표면이라 할지라도 두부처럼 쉽게 썰려나가버린다.
고위계 마법도 아니다.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벼려진 마력도 아니다.
그냥 압도적인 마력량, 그것 하나 뿐이다. 이 나태한 소녀에게는 그런 기초적인 마력 정제 과정조차도 귀찮은 일일 뿐이다.
말도 안되는 수준의 마력 감응을 타고난 희대의 괴물이다.
태생적으로 타고난 마력량으로 찍어눌러 지표면 자체를 돌파해버리고, 그대로 에드의 낌새가 느껴지는 곳을 향해 이어서 그 마력을 발산해버린다.
굳이 마력을 정제하거나 그 흐름을 제어해 마력 효율을 증대시키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도 소녀에게는 귀찮음의 영역이다.
무식함을 넘어서 비상식적일 정도로 단순한 돌파. 전기톱으로 사과를 깎는 짓과 다름이 없다.
이쯤되면 이건 마법도 뭣도 아니다. 그냥 압도적인 물리력을 이용한 폭력이다.
영혼 도서관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흩어진 대리석 파편이 홀에 가득했다.
나태한 루시의 발 아래는 이미 정신을 잃은 밴시 레이나가 완전히 제압되어 뭉개져 있었다.
“으햐악–!”
하품도 기지개도 언제나처럼 늘어진 듯한 느낌이다.
잡동사니처럼 쌓여있는 책장들의 꼭대기, 밴시 레이나의 몸을 뭉개고 선 채로 비틀비틀 졸린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더니…
“안녕.”
그렇게 루시는 멍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심심해서 구하러 왔어.”
지끈거리는 두통을 눌러 참으며, 나는 얼굴을 몇 번이고 쓸어내렸다.
아….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