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58)
글래스트 토벌전 (7)
[ 새로운 마공학 조합식을 습득하였습니다. ]갈퀴손 ( 일반 )
짧은 거리에 있는 물체나 적을 순간적으로 끌어당기는 능력을 지닌 마도구. 일회용.
크레이글 마법 잉크 ( 일반 )
특별한 마법식을 부여하기 위해 필요한 특수 잉크. 일회용.
투광구 (일반)
일정 시간동안 빛을 발해 조명 역할을 해주는 마도구. 일회용.
오니아의 겁화 ( 희귀 )
불 속성 함정 설치 도구. 실내 혹은 특정 지형에서는 사용 불가.
텔로스의 서릿빛 가호 ( 희귀 )
일시적으로 물리계열 방어력 폭증. 탈진 상태에 돌입하는 부작용 주의.
벼락 맞은 천년 나무 지팡이 ( 매우 희귀 )
모든 속성 정령의 감응력 증폭. 정령계 마법의 마력 효율 증폭.
글록트의 눈 ( 전설 )
모든 감응계 능력의 숙련도 일시적 폭증. 저주계 마법의 효율 반감. 방어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됨. 원소계 마법에 면역 상태가 됨.
델 헤임 모래 시계 ( 전설 )
신체 상태를 수 초 전으로 되돌리고 모든 피해와 상처를 없앤다. 1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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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공학 스킬은 수련이 워낙 어려워서 희귀 등급 물품 하나만 제작해도 숙련도가 쭉쭉 올라간다. 그 윗등급 부터는 정말 하나 하나가 끝까지 유용한 도구다.
시나리오 기준으로, 클리어 전까지 전설 등급 마공학용품을 두 세 개 정도 제작해냈으면 꽤나 부지런히 수련한 것이다.
그만큼 전설 등급 마공학용품이 가지는 위상은 크다. 재료 하나 하나가 수급하기 힘들고, 들어가는 노동량도 엄청나기 때문에 좀 해본 사람들은 섣불리 마공학에 투자하지는 않는다.
“이 정도면 알차게 챙기긴 했네…!”
나는 온갖 두루마리를 쑤셔 넣을 수 있을 만큼 쑤셔 넣고, 루시를 들쳐맨 채로 연구실 출구를 향해 내달렸다.
영혼 도서관을 돌파 했으면 나머지는 쉽다. 지하수로 쪽 출구까지 동선을 지키고 있는 적들은 대개 가벼운 마물족들 정도밖에 없다. 연구 대상조차도 되지 못해, 탈출하고 나서도 연구진들이 굳이 잡아넣지 않을 수준이다.
어차피 체력은 어지간한 남자들을 데려다놔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단련되어 있다. 루시를 업은 채로 마물족 사이를 질주하며, 동선을 가로막는 적들을 원소마법으로 날려댔다.
– 콰앙! 쾅!
대리석이 깔린 복도를 가로지르고, 수 많은 갈랫길 사이를 뛰어다니며 망설임 없이 출구를 향해 뛰었다.
– 크르르륵!
– 카아아악!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아득히 높은 천장의 끝에 매달려 있던 흡혈박쥐들. 놈들이 죄다 날개를 펼치고 활강한다.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새로운 먹잇감을 발견했다는 희열의 외침을 내지르고, 가차 없이 달려들어 내 피부에 이빨을 박아넣으려 한다.
-화르륵.
말할 것도 없이 모두 불타서 통구이가 되었다.
기괴한 모습의 실험체들이나, 탈출한 그렘린 따위의 마물족들도 전부 내 적수는 못 됐다.
기초 마법 하나 다를 줄 몰랐던 1학기 초면 모를까, 2학기가 끝나가는 지금에서는 어지간한 하급 마물족은 모두 상대도 안 된다. 그 동안 정말 말도 안 되는 생활 패턴을 유지하며 단련해왔던 나다.
[ 원소계 마법의 숙련도가 증가했습니다. ] [ 마력 감응의 숙련도가 증가했습니다. ]몰이 사냥의 참맛이라고 해야할까. 마물족 특유의 경험치 폭탄이 쏟아져 내려왔다. 미안하다 테일리…! 조금만 먹을게…!
그래도 최대한 마물족을 건드리지 않은 상태로 거의 출구까지 도달했다.
미친 듯이 전력질주를 하다보니, 어느덧 거대한 크기의 철문이 눈에 들어왔다.
내부에서 보면 으리으리할 정도로 커다란 철문이지만, 외부에서는 그냥 석벽으로밖에 안보일 것이다. 위장 마법을 통해 감춰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지하수로로 통한다. 물론 그냥 열 수는 없다. 이 연구실의 존재를 알고 있는 자들끼리 공유하고 있는 암호 해독 마법을 활용해야만 문을 열 수 있다.
해독할 수 없다면 통째로 부숴버려야 한다.
테일리는 검성식을 이용해 문을 통째로 베고 지나가버릴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재주가 없다.
원래였으면 여기 근처에서 숨어있다가, 테일리가 진입하면 열린 출구로 몰래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허나 지금은 그럴만한 여유가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지금은 마스터 키를 가지고 있다. 나는 등 뒤에서 쌔근쌔근 숨을 내쉬고 있는 루시의 볼을 꼬집어서 당겼다.
찹쌀떡 같은 볼을 우에에 하고 늘어뜨리며 루시가 잠에서 깨어났다.
* ‘전투 준비 중인가…?’
막대할 정도로 엄청난 마나의 흐름이 수로의 통로를 타고 퍼져 흐른다.
로르텔 케헬른은 예니카 쪽에 무언가 사고가 일어났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지하수로를 배회하고 있는 마성 골렘을 만난 것일까 싶었지만, 하급 마성 골렘은 이 정도 위력의 마력을 끌어올릴 만한 상대는 아니다.
로르텔 본인도 지하 수로를 거닐면서 마성 골렘 몇을 만나긴 했지만, 직접적인 마력이 통하지 않아 까다로울 뿐이지 그리 막강한 상대는 아니었다. 마법을 통해 내벽을 부숴서 외적인 물리력을 행사하면 쉽게 이길 수 있었다.
로르텔 케헬른은 합동 전투 실습 당시에 전력을 다 하는 예니카를 상대해 본 적이 있다.
제 아무리 고학년 멤버가 들이닥친다 할지라도 교수진이 아닌 이상에야 전력을 다 하는 예니카를 제압할 수 있는 자는 거의 없다.
하물며 그게 1학년들이라면 더 논할 가치도 없다.
그러나, 어찌됐든 시간이 끌리긴 끌리는 모양이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꼬여서 에드 수색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면… 로르텔에게는 나름대로 기회인 셈이다.
실제로 로르텔은 지하수로 내부에서 비밀 연구실로 향하는 실마리를 잡았다.
‘이 근방 어딘가에 엄폐 마법이 걸려 있어.’
마력 감응에 대해서만큼은 글래스트 교수도 인정하고 A반에 배정했을 정도로 민감한 로르텔이다.
반경 몇 미터 안에 있는 마력 반응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절대 놓치지 않는다. 정령계 마법에 감각이 특화된 예니카는 이런 부분은 조금 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근방 어딘가에 아마 더 은밀히 숨겨진 시설로 향하는 입구가 있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빙빙 돌게 되는 이 구조가 설명이 되질 않는다. 제 아무리 길을 찾으려 들어도 하릴없이 제 자리를 돌게 만드는 이 구조는 애초에 수로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조차 없다.
이름은 지하수로지만, 애초에 지하수로의 흉내를 내고 있을 뿐 다른 목적성을 가진 시설이 분명하다.
‘그래… 속 좋은 소리나 늘어놓고 있을 땐 아니지…’
문득, 로르텔은 수면에 비친 자기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최대한 윤기 있게 보이려고 깔끔하게 빗어내린 머리칼. 그 차분하게 내려앉은 적갈색 빛깔 덕에 백옥 같은 피부의 아름다움이 강조된다. 조금이라도 멋들어지게 보이려고 포인트 삼아 꽂은 푸른 장미 모양 머리핀이나, 금테가 둘러쳐진 세미로브는… 정말로 데이트라도 나가는 사람처럼 차려입은 소녀다.
말이 좋아 낭만에 빠진 소녀지, 이런 장소까지 와서 보니 철부지다.
로르텔은 한숨을 푹 쉬고 머리핀을 빼고 머릿결을 풀어헤쳤다. 그리고 교복 주머니에서 끈을 빼어 들어 평소처럼 한 쪽으로 내려 묶었다. 혹시나 머리가 헝클어질까봐 쓰지 않고 있던 로브 모자를 다시 휙 올려쓰고, 값 비싼 장신구들을 풀어서 주머니에 우겨넣었다.
다소 수수하지만, 평소처럼 강단 있는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다. 로르텔은 고개를 끄덕이고 팔을 휘어 꺾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야 어쨌든, 지금은 명명백백한 위기 상황이다.
연적한테 지고 싶지 않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저울질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일평생 모든 가치를 죄다 저울질 하면서 살아왔지만, 끝끝내 절대 저울질 해선 안되는 것도 분명 있을 터.
그게 무엇인지가, 그 사람의 가치를 재단하는 기준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로르텔은 퍽 에드가 걱정이 되었다.
에드 로스테일러는 어떤 위기가 오든 간에 어떻게든 해결해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신묘한 인간이다. 묵직하고 믿음직한 에드의 이미지 때문에 다소 위기감이 마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느낌’에 의존해 사태의 심각성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글래스트 교수는 무척이나 치밀한 자다.
그런 자에게 납치 당했다고 하면, 에드도 좋은 꼴을 보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어딘가에 갇혀서, 곤혹에 빠져 있을 것이 확실하다.
당황, 곤혹, 곤란, 위기. 그런 단어들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 것 같은 인간일지라도, 이 정도 쯤 되면 정말 도움만을 원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에드에게 빚을 지우고 뭐고를 떠나서, 이건 진심으로 에드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인간 관계를 항상 채무 관계로만 치환해온 상인의 삶을 살았던 통에, 그 당연하디 당연한 사실을 잊어버렸다.
문득 로르텔은 자각했다. 지금 자신이야말로 순수한 선의로 누군가를 돕고자 한다는 것을.
일평생 상도의 길에서 살아오며, 사람의 가치를 금전으로만 판단한 겨울 같은 삶에… 무언가 새로운 빛이 보이는 듯 하다.
끝끝내 돈으로는 손에 넣을 수 없었던, 어떠한 새로운 관계성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로르텔은 결심했다.
에드는…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위기 상황에 빠져있다. 지금이야말로 에드를….
– 쾅!
그 순간, 다섯 보 쯤 뒤편에 있던 벽이 폭발해서 터져나갔다.
중위급 엄폐 마법과 봉인 마법이 덧대어져 있는… 나름 철통 같은 보안이지만, 고위 폭발 마법 앞에서는 바람 앞의 등불일 뿐이다.
-콰강! 탕! 콰앙!
-파스스스스스
어떤 공격도 튕겨내버릴 것처럼 견고했던 철판이, 한껏 달아오른 채 수로에 쳐박혀 연기를 피어올렸다.
교수진들마저도 꽤나 집중해서 영창하지 않으면 제대로 발현하기 힘든 고위 마법.
에드의 등에 업힌 채로 대충 한 손을 휘적거리는 것으로 발현된 그 마법은, 가차 없이 비밀 연구실의 입구를 세상에 드러냈다.
“….”
피어오른 연기 안에서 에드 로스테일러가 튀어나왔다.
로르텔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순간적으로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에, 드 선배님?”
“오, 로르텔. 있었냐.”
여유 넘치는 얼굴엔 생채기가 조금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멀쩡해 보이는 모습이다.
가장 먼저 피어오르는 감정은 안도감이다. 납치당한 에드가 몸 건강히 잘 살아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큰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감정은… 당혹감.. 이른바 어이없음이다.
“그… 에드 선배님…? 무슨…?”
“납치 당했었다.”
“그.. 그건 아는데…”
에드는 루시를 다시 고쳐 업고 팔을 휙휙 털었다. 양 팔뚝 사이와 품 속 안주머니까지 온갖 양피지 두루마리를 잔뜩 채워넣은 상태였다.
“마침 잘 됐다, 로르텔. 이것 좀 나눠들어줘라. 혼자 들기 버겁다.”
“에… 예?”
에드는 로르텔 쪽으로 성큼 성큼 걸어오더니, 로르텔 앞에서 온갖 양피지 두루마리를 잔뜩 쏟아내었다.
정신없이 손을 놀리며 그것들을 받아든 로르텔은 내용을 보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 이건 뭐야..? 하나 같이 고급 제작식들이잖아…?’
로르텔은 그 어떤 물건이든 금전적인 가치로 환산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
에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휙휙 쏟아내는 제작식들은 하나 같이 쉬이 구할 수 없는 것들이다. 심지어는 전설급 마공학 제작식까지 섞여 있으니… 대체 이런 걸 어디서 구했냐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아니, 그 이전에 묻고 싶은 건… 왜 이렇게 멀쩡한 상태냐는 것이다.
“선배님. 그… 엄청난 위기에 빠진 상황 아니었어요…?”
“응? 그랬지. 근데 어떻게든 해결이 됐다.”
그제서야 에드의 등에 업혀있는 루시로 시선이 향한다.
루시 메이릴.
무식하게 강한 1학년 수석이 선수를 쳤던 것이다.
제 아무리 난다긴다 하는 마법사들이라도 루시 앞에서는 죄다 어린애들이나 다름 없으니, 애초부터 이길 수가 없던 경쟁이다.
그 순간, 로르텔의 직감이 경보를 울렸다.
위기 상황에 봉착하면 언제나 차갑게 식던 심장이, 새롭게 도래한 연적의 존재를 상기시켰다.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에드의 등에 업혀서 쌔근쌔근 숨소리만 내고 있는 루시.
아무리 봐도 루시는 에드 로스테일러를 상대로 어떠한 연애 감정도 품고 있지 않다. 애초에 연적이라고 볼만한 상대가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남남도 아닌 것이, 루시는 기묘할 정도로 에드의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궁지에 몰린 에드를 누구보다도 빨리 달려와서 구해내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남들의 손길은 웬만해서는 피하는 루시 주제에, 에드의 등에 업혀 있을 때는 세상 편하단 얼굴로 침까지 흘리며 숙면 중이다.
당췌 루시가 에드를 상대로 가지는 이 거리감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감이 서질 않는다.
지금이야 세상 편한 동료 관계일 뿐이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면… 이 거리감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둘의 관계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이거 위험하다.
이거 정말로 위험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이다! 미리 화근의 싹을 잘라두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한다!
그리고…. 야속하다…!
“….”
부끄럼 많이 타는 순둥이인 예니카 페일로버는 제 마음 하나 제대로 못 전하고, 대시 한 번 못하는 겁쟁이다.
반면, 로르텔 자신은 어떤가.
누가 뭐라해도 로르텔 자신이 가장 적극적으로 진도를 빼왔던 것이다.
먼저 멱살 잡고 입술을 훔치고, 대놓고 연심을 품고 있다고 면전에 대고 말하고, 가득한 흑심을 숨길 마음도 없이 이것저것 챙겨줬지 않았나.
누구는 부끄러움 느낄 줄 모르나!
캠프에서 처음으로 입술을 훔치던 날, 귀가하면서 자꾸 숨이 가빠져서 횃불을 떨어트리는 바람에 숲에 불을 낼 뻔했다.
에드 한 번 만나는 날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난리를 피우며 몸치장을 해댄다.
여우 같은 얼굴을 하고 밀당을 하며 상대의 가슴을 슬슬 긁지만, 무엇보다 부끄러워서 북북 긁히는 것은 바로 자기 가슴이었다.
거 이쯤 되면 좀…. 안절부절 휘둘려줘도 괜찮지 않나…??
최소한 의식 정도는 해줄 법도 하지 않나?
적어도 자기 앞에서는 다른 여자랑 스킨십을 하든 친한 모습을 보이든 하는 건 좀 피하게 되지 않나…?
로르텔은 마음을 다부지게 먹었다.
이쯤되면 슬슬 강하게 나가야만 한다. 이거 이대로 가다가 진짜 호구 되는 거 한순간이다.
보아하니 에드 몸은 다친 데도 없어보이고, 큼직큼직한 문제는 일단락 된 듯 하다. 더 이상 심각하게 생각할만한 위기도 없을 거라 판단된다.
로르텔은 상인이다.
상도의 기본은 기브 앤 테이크다.
여기서 강하게 밀쳐내지 못하면… 한 번에 에드를 휘어잡아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하면 정말로 크게 후회할 일이 생기고 말 것이다.
“그럼, 에드 선배님….”
“그 양피지 두루마리 좀 챙겨주라. 혹시 상회 내부에 재료 있으면 파악해서 준비해주면 좋고. 다음에 엘테 상회에 수령하러 갈게. 그리고 그 중 매입하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전설급 두루마리 빼고는 전부 팔아도 괜찮은 것들이야. 너한테 이것저것 도움 받은 게 있으니 다소 싸게 매입해도 별 말 안할게.”
“네? 그, 그래요? 하지만 이건…”
“부탁한다. 내가 너 말고 믿을 사람이 또 누가 있겠냐. 대체.”
로르텔은 휙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 그래요?”
“애초에 내가 인간관계라 해봐야 뻔하고. 너도 알겠지만, 대부분 미덥지가 못하잖아. 똑 부러졌다 싶은 놈은 진짜 너 하나 밖에 없으니까 내 입장에서도 이 정도는 당연해.”
너 밖에 믿을 사람이 없다- 너밖에 – 오직 너 밖에 –
거 대단한 의미가 부여된 대사도 아니건만, 로르텔의 가슴 안에 메아리쳤다.
“저, 정말?”
“굳이 거짓말 할 이유가 있나…?”
로르텔은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선을 넘었다.
지금까지 연심 하나만으로 해준 게 얼마인데, 이제와서 이런 것까지 요구하겠다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사람을 호구로 보는데도 정도가 있다. 제 아무리 냉혹한 상도의 세계에 사느라 연심의 두근거림에 익숙지 않은 인간이 되었다고 한들, 이 정도 까지 오면 공과 사는 구분한다. 그게 프로였고, 그게 상인이었다.
로르텔은 숨을 집어 삼키고 목에 힘을 준 채 에드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리고 최대한 차가운 어조로 당당히 이야기 하는 것이다. 에드 선배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선을 넘은 것 같아요.
“…혹시 영수증도 필요하세요?”
나는 호구다…!!!
“보고 사항이 있습니다!”
그렇게, 로르텔이 뭔가 많은 걸 내려놓은 듯 공허한 얼굴로 헛숨을 흘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에드와 양피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수로 저편에서 사내 하나가 뛰어들어왔다.
별다른 전투 능력도 없는 인간이 위험천만한 지하수로를 뚫고 직접 내려온 것이다. 차박차박 물을 헤치며 달려오는 모습이 워낙 다급해 보였다.
*
밝다. 이 지하수로에 광원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터인데.
그 빛의 근원을 찾아보자면, 갖가지 형태를 한 온갖 원소 정령들이다.
불, 물, 바람, 흙, 풀, 얼음.
독수리, 토끼, 사자, 늑대, 참새, 도마뱀.
원소와 동물의 종류는 워낙에 각양각색이라 하나 하나 읊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다만, 하나의 군체로서 정의 내릴 수는 있다. 예니카 페일로버의 정령군단이다.
일인군단.
오로지 예니카 페일로버의 감응력 하나 만으로 구현된 정령들의 수는… 양 손의 손가락을 몇 번씩이나 접었다 펴가며 헤아려 보아도 절대 그 전부를 셀 수 없다.
고위 정령 하나, 중위 정령 넷, 하위 정령은 수백체.
그 정령들 틈바구니에서, 떡갈나무 지팡이를 사선으로 든 채 스커트 매무새를 정리하는 소녀.
옷깃을 나풀대며 아무렇지 않게 서있는 모습이지만, 분명 수많은 정령들의 비호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아마 근처에 접근조차도 할 수 없을 터.
지금 시점에서 테일리가 이길 수 있을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 사실은 몇 번이고 여실히 깨달았다. 테일리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싸워야만할 이유가 없었다면, 테일리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섰을 것이다.
그러나, 싸워야만 할 이유가 있다. 아일라를 구해야만 한다.
하나뿐인 인생의 동반자인 아일라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그깟 목숨 수백번이라도 걸 수 있다.
“뭐, 뭐야? 분위기가 왜 이렇게 되는데?”
직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예니카와 테일리 일행을 번갈아 쳐다봤다.
예니카 페일로버에 대한 공포가 각인된 테일리, 그리고 엘비라는 그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이미 전투 태세다.
쓰러져 있던 도로시나 파괴되어 있던 마성 골렘들. 기절해버린 클레어 조교수 등. 여타 정황증거 상 예니카가 무언가 파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해 보인다.
폐쇄적인 환경에 목격자도 없는 장소. 일단 적대하고 보는 것은 합당한 판단일지도 모르나, 직스와 아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니카는 학사 모두의 사랑을 받는 천진난만한 소녀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공포에 덜덜 떠는 테일리와 엘비라의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게 당연하다.
“왜, 왜 그래 테일리! 침착해!”
애초에 적대한다고 해서 이길만한 상대도 아니다.
왜소한 몸집에 귀여운 외관, 우물쭈물 거리는 착한 성격에 넘어가 함부로 저 소녀를 적대해서는 안된다.
오필리스관 점거 사태 당시에 예니카와 함께 전투를 치러본 직스는 잘 알고 있다. 그저 아군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지금 1학년 멤버가 모두 같이 달려든다고 해서, 저 예니카를 이길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쓸 데 없이 전력을 손실해서 좋을 게 없다.
말로 해결할 수만 있으면 말로 해결하는 게 가장 좋다.
애초에 예니카 페일로버가 모든 정령을 소환해 전투 태세에 돌입한 것도, 먼저 적대한 테일리 일행의 태도에 일단 반응부터한 것일 터.
예니카의 성격상 전투 의지가 없을 가능성이 더 크다.
여기서는 본인이 중재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한 직스가 언성을 높이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그쯤 해둬라.”
지하수로 서편 쪽의 통로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테일리 일행과 예니카의 시선이 그 쪽으로 모였다.
통로 속 어둠을 헤치고, 왠 조그마한 마법사 소녀 하나를 업은 금발의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옷은 조금 헤져있었고, 몸 여기저기에는 생채기가 꽤 나있었다.
“에드-!”
“에드 로스테일러…!”
소년의 이름이 두 번 불렸다.
예니카는 화사하게 꽃이라도 피어나는 것처럼 표정을 풀며 그 이름을 불렀고.
테일리는… 낮게 되뇌이는 듯한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불렀다.
엘비라는 차갑게 내리깐 시선으로 에드 쪽을 바라보고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에드의 뒤에 따라 붙어 모습을 드러낸 자는, 1학년 A반 3인방 중 하나이자 엘테 상회의 실권자인 로르텔 케헬른이고.
그 등 뒤에 업힌 소녀는 그 누구도 따라잡을 이가 없다던 희대의 천재 마법사 루시 메이릴이다.
“에드! 에드! 괜찮아! 다친 데 없어?!”
방방 뛰며 에드를 부르는 예니카를 향해, 에드는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걱정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덧붙여줬다.
그대로 홀 중앙까지 걸어들어온 에드는, 예니카의 옆에 서서 테일리 일행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테일리, 직스, 엘비라, 클레비어스, 아델.
별들의 전쟁이라는 1학년 중에서도 하나 하나가 에이스 취급을 받는 테일리 일행이었다.
그러나 테일리는 마른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검을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가기 시작한다.
에드를 중심으로 서있는 건너편 무리를 보고 있으면… 헛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긴장이 된다.
에드, 예니카, 로르텔, 그리고 루시.
제 아무리 장대한 무력을 자랑하는 테일리 일행이라도, 저들을 상대로는 힘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만약 적대하게 된다면… 정말로 전투를 해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저 말도 안되는 벽을 상대로 돌격해야만 한다는 것인가.
“테일리.”
엘비라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테일리의 이름을 불렀다. 내포된 의미는 다음과 같다.
이건 퇴각해야 해.
엘비라는 이미 에드의 전투 방식이 어떤 식인지 지긋지긋하게 깨달은 상태다.
에드의 전투는 마법사라기보단 책사에 가깝다.
기초 마법 겨우 다루고 활 조금 다룰 줄 아는 것만으로 스펙 차이가 아득히 나는 3명을 홀로 막아낸 전적이 있다.
그런 자가, 저 정도 전력의 동료 3명을 두고 있다고 하면… 심지어 먼저 도착해서 전장을 조율해둘 시간적 여유까지 있었다고 한다면… 승기는 0에 수렴한다.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제 아무리 아일라가 소중하다 하더라도, 승기가 전혀 없는 적을 상대로 돌진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만약 에드가 길을 막아선다고 하면, 절대로 뚫어낼 수 없다.
“테일리.”
긴장감이 가득한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에드였다.
조용히 테일리의 이름을 부르며, 에드는 속으로 안도했다. 겨우 늦지 않았구나.
비밀 실험실 최심부에서부터 역주행해서, 이제 정주행을 시작하는 테일리와의 교차점에 겨우 바로섰다.
이제부터는 바톤 터치다. 공교롭게도 에드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오필리스관 점거 사태와 현자의 봉서 쟁탈전.
지난한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아직 완전하게 마무리 되지 않은 변수가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완전히 무대에서 퇴장해, 더 이상의 개입은 방해가 될 뿐인…
손대중 할 필요도 전혀 없고, 그저 토벌 대상으로만 남은 존재였다.
“아일라가 널 기다리고 있다.”
조용한 목소리로 에드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이 교차점을 서로 가로지르며, 각자 해야할 일을 하러 갈 시간이었다.
글래스트를 잡으러 가라, 테일리.
나는 엘테를 잡으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