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8)
개학 전 날 (1)
“자… 이걸 어쩐다…”
북쪽숲 남동부의 자그마한 호수. 그 중앙 바위섬에 있는 ‘메릴다의 수호목’.
그 나무에 기대어 앉은 채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정령사 예니카를 발견했을 때, 나는 생각에 잠겼다.
*
슬슬 개학도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등교하려면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았다. 일단 거지꼴부터 어떻게 해야했다.
열흘 간의 야생 생활 탓에 내 몰골은 자연인에 한 없이 가까워져 있었다. 개울가에서 매일같이 몸을 씻긴 하지만, 그새 듬성듬성 자란 수염들은 면도를 해야했다.
목재 가방에서 뜯어낸 경첩의 날을 갈아서 면도를 하긴 했는데, 하면서도 좀 무서웠다. 녹이 슬어있는 칼날로 면도를 하다가 베이기라도 하면 파상풍 같은 질환에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베니아에서 눈에 띄지 않고 학업 생활을 유지하려거든 품위유지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고 졸업하는 게 목표인 내 입장에서는, 거지꼴을 하고 다니다 학사 직원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그만한 불상사가 또 없었다.
청결한 면도날을 구할 방법도 강구해야겠군.
그렇게 차림새를 단정히 하고, 이런저런 등교 준비를 마친 다음에서야 나는 활을 집어 들었다.
————— [ 전투 능력 상세 ]
등급 : 전투 입문자 전문 분야 : 활 활 숙련도 Lv1
————–
나는 전투 능력 항목의 전문 분야를 망설임 없이 활로 결정했다.
‘실베니아의 낙제 검성’에는 4가지의 능력 항목이 있다.
전투, 마법, 생활, 연금.
그 중 두 가지를 조합해 자신의 전문 직업을 결정하는 시스템이었다.
전투와 마법을 전문화하면 마검사, 혹은 마투사.
마법과 연금을 전문화하면 연금학자, 혹은 정령술사 등이 되는 식이다.
맘편히 자기 전문 직업을 택할 수 있는 플레이어의 입장이라면 고민해 볼 여지가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이미 조합해야할 두가지 능력 항목이 결정되어 있었다.
생존을 위해 생활 분야 스킬은 필수로 단련해야 했고, 애초에 마법부 학생으로 빙의하는 바람에 마법 단련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즉, 마법과 생활 스킬을 특화해야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 둘의 궁합이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마도공학이나 인챈터 등으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그렇다면 전에도 언급했듯이 활만큼 궁합이 좋은 무기가 또 없다.
지구력, 근력, 반사신경 등의 능력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근접전투에 능하기는 힘들다. 원거리에서 일방적으로 적을 공격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전투 구도가 될 것이고…
생활 계열 스킬의 숙련도가 많이 올라서 품질 좋은 화살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정령식이나 마법식을 그 화살에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전투 능력으로는 활을 특화하고, 연금 능력으로는 정령술을 특화하는 게 이상적이라 할 수 있겠다.
“정령술이라…”
그러나 정령술에는 필히 타고나야하는 능력이 있으니, 바로 정령 감응력이다.
정령과 감응하여 교감하는 능력은 단련으로서 갈고 닦는데에는 필시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역사적으로 위대한 정령술사들은 하나 같이 정령과 감응하는 체질을 타고난 자들이었다.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긴 하지만…. 아쉽긴 하군..”
애초에 연금계 스킬 자체가 특화하기 좋은 것들이 많지가 않다. 끽해봐야 약초학 정도일까…
그래도 없는 정령 감응력을 억지로 생겨나게 할 수도 없는 법이니, 아쉬우면 아쉬운대로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하겠지.
“어쨌든, 오늘은 밤을 새서 만든 활을 시험해 봐야지.”
제작난이도가 무려 2단계나 되는 활을 만들어 냈을 때는 뛸 듯이 기뻤지만, 제대로 실용성이 있을지는 또 의문이었다.
화살이라고 해봐야 나뭇가지에 날카롭게 날을 간 경첩을 매단 게 전부다. 가지고 있는 경첩 날을 전부 사용해서 4발을 만들어봤지만, 솔직히 살상력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멧돼지 같은 큰 짐승한테는 의미가 없을테지만, 다람쥐나 토끼 같은 짐승들한테는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등에 활을 매단 채 사냥을 나섰다.
그리고 두 시간 뒤,
다람쥐 시체 두 마리라는 성과를 낸 나는, ‘메릴다의 수호목’에서 예니카를 발견하게 된다.
실베니아 아카데미 현 2학년 수석, 최연소의 나이로 고위 불정령 타칸과 계약한 재능있는 정령술사이자, 후일 고위 어둠정령 벨로스페르에게 지배 당해, 학생회관 건물을 통째로 점거하고 최고위 어둠 정령 글라스칸의 오른손을 소환해내는 ‘실베니아의 낙제 검성’, 1막 최종보스였다.
*
야망은 없고, 그냥 졸업만 하고 싶다. 그것이 내 방침이다.
사실 나도 낭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세계의 주인공이 되어서, 모두의 찬사를 받으며 영광스러운 영웅의 행보를 걷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영웅이 걷는 길은 대개 가시밭길인 법이다.
그들이 찬사를 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피가 흐르는 가시밭길을, 꽃길처럼 묵묵히 나아가기 때문이다.
아직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를 이 세계의 주인공 ‘테일리’도 마찬가지다.
테일리로서 수도 없이 플레이 해 본 나는 잘 알고 있다.
총 5막, 43챕터의 대 서사시와도 같은 시나리오. 그 속에서 주인공 테일리가 겪을 시련은 범인의 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는 것이다.
발랄하고 낭만적인 아카데미 생활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도 없는 죽음의 고통과 강대하고도 압도적인 적들이다.
특히, 마지막 학기를 기점으로 시련의 스케일이 급격하게 커지고, 끊임없이 테일리의 신변을 위협하고 압박한다.
극복했을 때의 쾌감과 승리감은 분명 달콤한 것일테지만, 나는 그 많고 많은 시련을 감당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그 고된 시련을 감당해냈다고 해서 그리 큰 보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명예와 영광. 충분히 값어치 있는 것들이지만,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희생해야할 것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 앞이 가시밭길임을 알고 있는데도 멀쩡히 그 곳으로 걸어들어가는 멍청한 짓을 할 리가 없다.
그러니까 내린 결론이다.
뭐가 되었든, ‘정사’를 따라가자.
내가 알고 있는 ‘실베니아의 낙제 검성’ 시나리오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그럼 뭐, 온갖 시련과 시험을 겪어 굳건해진 테일리가 모든 위기를 알아서 다 해결해놓을 것이다.
나는 그냥 잘한다 잘한다 박수나 쳐주고, 내 이득이나 챙기면서 졸업장이나 따는 방향으로 가자.
무엇보다, 나는 테일리보다 1년 선배인 입장이다.
‘실베니아의 낙제 검성’의 시나리오가 점점 더 격해지는 것은 테일리가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년 때 쯤이다. 이 때가 시나리오의 클라이막스다.
학교 밖의 온갖 세력들이 준동하고, 학생들을 위협하면서, 분위기가 삭막해지고, 갖가지 시련들이 학생들을 덮치는 시즌이다.
그 시즌이 오기 딱 바로 전 해에 나는 졸업장 따고 나가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꿀만 다 빨고, 어려운 건 주인공한테 다 맡겨놓고, 나는 내 삶 찾아 떠나는 전략이다.
그림 너무 이쁘지 않냐고.
그러니까, 바로 지금 이 상황.
시나리오 최중요 인물 중 하나이자, 가장 먼저 테일리를 덮치게 될 시련이 될 자. 예니카 페일로버.
굳이 연관되지 말고, 내 갈길 가자.
그게, 합당한 행동 방침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자리를 뜨려는 순간이었다.
“어머, 네가 메릴다가 말했던 ‘재밌는 친구’구나?”
휙하고 눈을 뜬 예니카가 나에게 말을 건 것이다.
인생사, 내가 뜻한대로 오롯이 흘러가는 일이라곤 거의 없는 법이다.
*
“이 숲은 완전히 메릴다의 영역이거든. 고위 정령답지 않게 입이 헤프다니까.”
실베니아 아카데미가 들어서기도 전부터 이 숲을 지키고 있던 오래된 고위 바람 정령의 이름을 제 친구처럼 부르는 소녀.
풍성한 연분홍빛 머리칼을 잘 쓸어내렸고, 그 와중에 양 옆머리는 단정하게 땋아내려 푸근한 인상이다.
적색 외투에 감청색 스커트, 실베니아 아카데미의 표준적인 교복을 잘 차려입은 모양새지만, 그럼에도 좀 추운지 푹신푹신한 숄로 어깨를 두르고 있었고.
기대고 앉은 나무 주변엔 읽다만 마법서 두어개가 보란 듯이 펼쳐져있었다. 딴에는 숲의 나무에 둘러쌓여서 독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방학 끝나고 이제 막 기숙사 돌아온 참인데, 뭐가 그렇게 할 말은 또 많은지… 고위 정령이니 뭐니 하면서 잔뜩 추앙받지만, 막상 대화상대가 없으면 외롭나봐. 방학동안 심심해서 어떻게 살았을지 몰라.”
빙긋빙긋 웃으며 잡담을 던지지만, 내 입장에서는 한없이 고민될 뿐이었다.
되도록 엮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니아 황녀의 건에 대해선 내 처우와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뭐라도 해보려고 하는 게 타당했겠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얘기다.
“말 상대 없으면 외로운 건 누가됐든 똑같나봐.”
빙그레 웃는 모습. 포근하고 상냥해 보이는 인상, 그렇기에 초반부에 플레이어들을 충격에 몰아넣는 주범이다.
믿음직스럽고 푸근한 2학년 선배였던 그녀가, 글라스칸의 저주 인장을 온몸에 새긴 채 학생회관을 봉인하고 점거하는 모습.
막 이 세계의 법칙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하는 플레이어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존재.
사실상 이야기에 확 몰입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는 에피소드다. 나도 입에서 시발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그래서.
왜 나한테 말을 거는데?
그 원인이야 본인이 말했다.
“이 숲에서 산다며? 파문 당한 뒤로?”
“이 숲의 주인이 말해줬다고?”
“메릴다가 오지랖이 좀 넓거든. 이 숲을 사랑하잖아.”
빙긋빙긋 웃는 얼굴엔 활짝핀 꽃이 주변에 날리는 것 같다. 세상 근심 다 아무래도 좋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내 입장에서야 학생회관을 점거한 모습과의 괴리감에 영 불편할 뿐이었다.
“그렇게 이 숲을 좋아하는데, 눌러앉은 불청객 하나 모르겠어?”
“으음…”
나는 등 뒤에 매달아둔 다람쥐 시체 둘이 괜시리 신경 쓰였다. 나무도 꽤 많이 베어냈었다.
“괜한 거 신경 쓰지 마~. 숲에 사는 생물이 서로 잡고 잡아먹히는 일이야 자연의 섭리인걸. 메릴다가 고작 그런 걸로 불편해하겠어?”
“그렇게 우락부락한 거대 늑대도 마음은 여린가보네.”
“의외지? 아하핫.”
숲을 지키는 메릴다는 거대한 늑대 형상을 한 고위 바람 정령이다. 평소에 인간들 앞에 나타나는 일은 잘 없지만, 생각보다 관대한 편이었던 걸로 기억하다.
지금까지 캠프 차리고 사냥이나 채집을 하고 있는 내 행보를 놔둔 것도 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인상이 많이 바뀌었네. 으음… 저번 학기 때 에드 너는… 별로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진 않았지만 뭐랄까.. 좀 더 목소리가 이렇게 떽떽!! 하는 느낌이었는데, 좀 진중해졌네. 이미지 체인지야?”
“대충 그런 거야.”
“아하핫. 나도 그래. 오필리스관 메이드가 양 쪽 옆머리를 땋아줬어. 어때? 좀 더 말괄량이처럼 보여?”
머리를 베베꼬며 어떠냐고 물어본들 감상을 말해줄 수도 없다.
천하에 재수없는 놈이라 소문난 그 에드 로스테일러를 상대로도 저렇게 넉살 좋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친화력에는 박수를 보내주고 싶으나, 이 소녀의 미래를 알고 있는 입장에선 유쾌하게 웃으며 받아쳐줄 수가 없다.
뭐, 어찌됐든 거리를 두고 싶다면 그 방법이야 쉽다.
아무리 천상의 인격을 타고난 대인배라 할지라도 침을 삼키고 의심의 눈초리를 하게 만드는, 그런 마법같은 주문을 나는 알고 있다.
“예니카. 개학 전 날에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부탁 좀 해도 돼?”
“부탁?”
“내가 요즘 돈이 좀 급해져서 빌려볼 데를 찾고있거든.”
그 마법의 주문을 자연스럽게 내뱉었다.
“보증 좀 서줄래?”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