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86)
봄이여 오라 (4)
눈폭풍이 치는 첫날.
학사 일정이 텅텅 비는 방학도 슬슬 끝나간다.
온전히 내 성장과 단련을 위해서 하루를 통째로 쓸 수 있는 나날도 끝나간다는 뜻이다.
이 일주일은 이제 마지막 스퍼트다.
학기가 시작하고 나면 집중적인 단련을 하는데도 한계가 온다. 그래봐야 예니카랑 일정을 맞춰서 중위 정령과 계약하거나, 학사 일정 끝나고 귀가한 후 남는 시간 틈틈이 공부하는 것 정도다.
체력 단련은 사실상 거의 의미가 없어졌다. 현상 유지에 집중하고 있는 편이다.
한창 체력이 바닥을 기던 때에는 며칠정도 단련하면 그래도 관련 스탯이 좀 올라가는 티라도 나긴 했는데, 슬슬 이 몸뚱아리에도 한계가 오는 것인지 스탯 변동이 거의 없다.
신체적 재능이라고는 전혀 타고나질 못한 에드 로스테일러로서는, 정말 몸뚱아리가 허락하는 한계선까지 단련한 느낌이다.
일반인 남성들 중에서도 꽤나 체력적으로 단련이 된 수준까지는 끌어올렸다. 이 정도까지만 와도 정말 장족의 발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제 여기서 더 스펙을 끌어올리려거든, 생각 없이 단련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특화된 분야에 시간을 투자해야만 한다.
마공학과 정령술. 이 둘로는 역시 좀 부족한 감이 있다.
실베니아의 낙제 검성 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스킬군 중에서도, 이 둘이 서로의 약점을 가장 적절하게 보완해주는 조합이긴 하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건 없듯이, 여기에 뭔가 하나가 더 해져야 비로소 졸업 이후에도 제 한 몫 해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생활 능력 상세 ]등급 : 중급 장인 전문 분야 : 목공 손재주 Lv 15 설계 Lv 11 채집 능력 Lv 13 목공 Lv 15 석공 Lv 8 사냥 Lv 14 낚시 Lv 12 요리 Lv 7 수선 Lv 5 고급 제작 기술 슬롯 : 정령식 주입 기술 숙련도 :23 위력 증폭도 :4 주입 성공률 :92
– 불 계열 정령식 숙련도: 6
– 바람 계열 정령식 숙련도 : 3 계약 정령 : 하위 불 정령 머그 정령 감응도 : 12 정령 이해도 : 12 고유 스킬 : 화복(火?)의 가호, 폭성 계약 정령 : 고위 바람 정령 메릴다 정령 감응도 : 4 정령 이해도 : 3 고유 스킬 : 풍랑(風狼)의 가호, 상승기류 고급 제작 기술 슬롯 : 마공학 기술 숙련도: 4 마공학품 이해 : 5 빠른 제작 : 3 수집한 제작식 :
미약한 바람 발산기 (Lv 1)
산울림 소음 발생기 (Lv 1)
감응식 자동 마력 체스판 (Lv 1)
온실화 수정구슬 (Lv 1)
푸른 마법구 (Lv 1)
갈퀴손 (Lv 1)
크레이글 마법 잉크 (Lv 1)
투광구 (Lv 1)
오니아의 겁화 (Lv 1)
텔로스의 서릿빛 가호 (Lv1)
벼락 맞은 천년 나무 지팡이 (제작 불가!)
글록트의 눈 (제작 불가!)
델 헤임 모래시계 (제작 불가!)
밧줄을 타고 내려오다 바닥이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폴짝 뛰어내렸다.
그리고 몸에 묻은 눈을 훌훌 털어낸 뒤, 떨어진 천장을 바라보았다. 눈송이 몇가닥이 나풀나풀 내려오지만, 기본적으로 구멍이 꽤 길어서 생각보다 그 양이 많지는 않다.
온갖 마공학용품 재료가 가득 쌓여있는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내가 몇 번이나 왔다갔다 하면서 옮겨놓은 것들이다. 정말 진이 다 빠지는 줄 알았다.
그 외에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도서관의 모습이 인상 깊다. 재료들을 옮기며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역시나 빈틈이 없다.
직스에게 돈이라도 몇 푼 쥐어주면서 마법으로 잔해를 좀 치워달라고 했기로서니, 널부러져 있던 책들까지 다 정리해놓을 줄은 몰랐다.
심지어 유의미한 범주를 가지고 보기 좋게 분류되어 있는 책들을 보아하니… 아무리 봐도 사서 일을 경험해 본 적 있는 자의 손길이 느껴진다.
아마도 직스의 연인인 엘카의 솜씨도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되도록 도서관의 존재는 비밀로 붙여달라고 말했건만, 그 새를 못참고 엘카에게 알린 것인가…
혀를 몇 번 차려다가 말았다. 그 녀석은 남한테 싸게 입을 놀리는 편은 아니긴 하지만… 녀석이 유일하게 모든 사실을 숨기지 않고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엘카다.
제 아무리 입이 무겁다 한들 엘카한테까지 숨길 수는 없다고 피력하는 듯 하다.
엘카도 그 사실이 영 신경 쓰였는지, 굳이 이런 어두컴컴한 도서관까지 내려와서 책정리를 한 것이다. 남의 비밀을 알아버린 죗값 치고는 너무 거하게 치른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엘카가 체계적으로 책을 분류하고, 그걸 직스가 뛰어다니며 꽂아대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상상되었다. 직스 성격을 생각해보면 이것도 단련이라 생각하고 임했겠지.
어찌됐든… 꽤 신세를 진 건 맞다. 준 돈보다 그 둘이 감당했어야 할 노동량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
개학하고 학사로 돌아오면 그 둘한테는 나름대로 답례를 해야될 듯 하다.
“흐음… 슬슬 시작해볼까.”
식량도 잔뜩 쌓아 놓았다. 재료들도 모두 모여있다. 도서관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 오로지 마공학 연구에만 온전히 집중할 환경이 완벽하게 마련되었다.
일주일은 길다면 길지만, 무언가를 작정하고 단련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일주일만에 완벽하게 통달할 수 있다면, 마공학 분야가 이렇게 세분화 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효율적인 성장이라면 이미 내가 빠삭하게 꿰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반복 숙달 훈련이다. 아무리 뻔하고 단순해 보이는 장치라도 반복해서 만들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기계적 원리나, 마력 흐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수백개의 제작식을 모조리 독파하는 건 비효율적이다. 중요한 건 선택과 집중이다.
내가 만들 수 있는 분야의 마공학 지식을 깊숙하게 관통하는 게 핵심이다.
바람 발산기, 소음 발생기, 온실화 수정구슬, 푸른 마법구, 크레이글 마법잉크, 투광구까지 미친 듯이 반복해서 마공학 스킬을 드높인 뒤… 어느정도 익숙해지면 오니아의 겁화 같은 희귀한 등급의 아이템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숙련도를 쌓고 또 쌓고, 정말 눈이 충혈되고 도저히 피곤해서 깨어 있을 수가 없는 수준까지 단련하고 나서야… 나는 이번 방학 마지막 목표에 도전할 것이다.
[ 글록트의 눈 ( 전설 )]모든 감응계 능력의 숙련도 일시적 폭증. 저주계 마법의 효율 반감. 방어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됨. 원소계 마법에 면역 상태가 됨
[ 델 헤임 모래 시계 ( 전설 ) ]신체 상태를 수 초 전으로 되돌리고 모든 피해와 상처를 없앤다. 1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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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용력과 방어력을 희생해서 극한의 감응력을 얻게 해주는 글록트의 눈.
단 한 번에 한하여 죽음에 이르는 피해조차도 전부 무효화 시켜주는 델 헤임 모래시계.
3막 시점에선 밸런스상 존재할 수가 없었던 전설급 마공학용품들이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완성 시킨다. 못하면 죽는다는 마인드로 간다. 고삼 때 하루 세시간만 자면서 공부했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이 정도 피버 타임은 악으로 깡으로 버틸 수 있다.
도서관 중앙에 마련해놓은 작업대에 앉아, 나는 크게 한 번 심호흡 했다.
“후우… 가볼까….”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깨달았다.
아니… 정작 공구들을 오두막에서 안가지고 왔다…
도서관으로 가지고 오려고 예쁘게 공구함에 수납까지 해놓고서…!
폭풍 대비 한답시고 너무 바빠서 신경을 못 쓴 게 컸다.
통한의 실책이었다.
몸이 고생할 시간이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
조금씩 매서워지는 칼바람이 북쪽 숲의 침엽수 사이로 유영했다.
하릴없이 흩날리는 클라리스의 머리칼은 금방이라도 날아가버릴 것만 같다.
아직은 버틸만한 바람을 헤쳐나가면서, 클라리스는 북쪽 숲을 가로지르는 강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갔다.
‘성법술’과 ‘성마술’.
성법술이 태생적으로 타고난 신의 가호를 통해 발현되는 성질의 마법이라고 한다면, 성마술은 후천적인 신앙심으로 인해 발현된 신성계 마법들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성당기사들이나, 성도 소속 마법사들은 성법술보다는 성마술에 능한 경우가 많았다. 성법술은 기본적으로 신의 축복을 타고난 자들에게나 유의미한 효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신 텔로스의 사랑을 독차지한 클라리스의 성법술이 말도 안되는 물리력을 발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클라리스가 몸에 두르고 있는 성법의 가호는, ‘적의’를 가지고 공격한 대상이 주는 피해를 갑절로 되돌려줘 버리는데다가, 겉으로 보기에는 뭐해 당했는지 알 수도 없는…. 불합리한 구조의 방어 마법이다.
정말 특수한 몇가지 파훼법이 아니라면 아예 상대할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야생동물을 맞이하더라도, 설령 괴한을 맞이하더라도 클라리스는 절대로 다치지 않는다.
기세나 기운에 쫄아서 두려움을 느끼는 한이 있더라도, 공격당해 다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리스는 에드를 상대로 선명한 공포를 느꼈었다.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그건 바로…. 에드가 텔로스 교단의 세례를 받았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가주 크레핀 로스테일러가 세례를 받은 이후로, 로스테일러 가문의 후계자들은 텔로스 교단의 세례를 받는 전통이 정착되었다. 그래봤자 두 세대 밖에 안 이어진 전통이지만.
아르웬 로스테일러가 세상을 뜨고, 에드 로스테일러가 후계자 자리에 오르면서… 그 또한 대주교 누군가에게 세례를 받았을 것이다.
타냐는 아직 세례를 못 받았다. 후계자 자리에 오른지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나 에드 로스테일러는, 누가 뭐라해도 텔로스 교단의 세례를 받은 신자일 확률이 컸다.
성법의 가호는… 교단의 세례를 받는 신자를 상대로는 그 힘을 발휘되지 않는 성질을 지녔다.
같은 가르침을 받은 형제에게는 칼을 들이밀지 않는 것이다.
애초에 세례를 받을 정도의 신자라면, 성녀를 상대로 적의를 품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맹점이 생겨나는데… 지금 그녀는 클라리스 성녀가 아닌, 카일리 에크네로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점이다.
제 아무리 상대가 독실한 텔로스 신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정체를 모르면 그대로 칼날을 들어올릴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체를 밝히긴 싫다.
아니, 애초에 그 금발의 몰락귀족이 클라리스의 정체를 알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다.
“크으으으읏….!”
꽉 껴 입은 옷을 동여맨 채, 클라리스는 눈폭풍을 헤치고 북쪽숲을 계속 헤쳐나갔다. 강이 흐르는 곳은 지도를 미리 숙지해둬서 알고 있다. 어차피 숲을 가로지르므로, 쭉 나아가다 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어있다.
강이 나타나면, 상류 방향으로 걸어가면 그만인 것이다.
추위는 버틸만 했다.
메이드가 클라리스의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뛰쳐나왔으므로, 최소 몇 시간 정도는 발각되지 않을 것이다.
그 틈을 타… 봄이 오고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에드 로스테일러에 대해 찝찝한 점을 모두 해소시켜둬야 한다.
‘정말로…. 모험하는 것 같잖아…!’
어느샌가 공포나 긴장감은 많이 희석되고, 클라리스의 몸속에서 뜨거운 호승심이 솟아올랐다.
정말 이대로 에드의 오두막을 발견하기만 하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희망이 샘솟는다.
클라리스는 소심해 보이지만 결코 약하진 않다. 태생적으로 타고난 성법술도 그렇고, 후천적으로 익힌 성마술도 어지간한 마법사들에게 꿀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내 저 눈폭풍 너머에서 에드의 오두막이 어렴풋이 보였을 때, 중요한 고지를 발견한 탐험가라도 된 것처럼.. 클라리스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이렇게 홀몸으로 멀리까지 나와본 적도 처음이고, 눈폭풍 사이를 걸어본 적도 처음이다.
이게 아델이 말한… 총천연색으로 가득한 모험가의 삶이라는 걸까. 클라리스는 눈에 반쯤 파묻혀가는 에드의 캠프 앞까지 당도하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자신감이 샘솟는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클라리스는 더 이상 겁먹지 않기로 결심하고, 숨을 거하게 내쉰 다음 에드의 오두막 문을 열었다.
“으음….”
귀 바로 옆에서 몰아치던 바람소리가 벽 하나를 낀 채 웅웅대는 소리로 치환된다.
실내에서 듣는 바람 소리는 생각 이상으로 스산하다. 아무런 광원이 없는 오두막 내부는 당연히 어두컴컴 했으므로, 눈이 어둠에 적응하는 것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갈고리에 걸린 멧돼지 시체였다.
크기가 클라리스보다 컸다.
“으헤으아하학!”
뒷걸음질을 하다가 바닥에 엉덩이를 찍은 클라리스는…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 매달린 시체에게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오두막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폭풍에 대비하느라 대부분의 물자들이 오두막에 들어와있었다.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는 톱니들은… 자세히보니 잔뜩 쌓여있는 사냥덫이다.
사냥 지식이 없는 클라리스에게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예리한 무기 같은 것으로밖에 안보였다.
그리고… 대부분 사냥덫에는 검붉은 피가 섬뜩하게 묻어있다. 여길 봐도 피, 저길 봐도 피. 피! 피! 피!
멧돼지 시체를 옮기면서 묻은 핏자국들도 여전하고, 한쪽 구석에는 뱀 허물이나 담비가죽 따위가 잔뜩 쌓여있었다.
그리고 오두막 안쪽을 보면 보이는 것은… 여전히 핏자국이 가득한 손질용 나이프… 그리고 클라리스의 새하얀 팔뚝보다도 굵고 커다란 쇠톱들, 널부러져 건조되고 있는 여러 야생동물 내장들.
테이블 위에는 매달려 있는 멧돼지 시체의 머리가 효수되어있다. 대체 어디다가 쓸 심산인지 알 수가 없다.
이 시점에서 클라리스는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다. 평생을 성황도의 고결한 이슬을 맞고산 소녀에게는 자극적이다 못해 마치 지옥도처럼 보였다.
-부욱, 부욱.
눈 밟는 소리.
몰아치는 폭풍의 너머에서, 누군가가 오두막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더 볼 것도 없다. 이런 시기에 이런 곳에 나타날 자라면… 이 오두막의 주인밖에 없다.
클라리스는 숨을 곳을 찾으려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억지로 팔을 놀려서 오두막 우측 구석까지 몸을 밀어넣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누가봐도 허술한 은폐동작이었다.
클라리스는 작업대의 아래에 들어가, 미약한 어둠 속에 숨은 채 텔로스를 향해 기도했다.
– 콰앙!
– 휘이이이이이잉!
이윽고 문이 부서지듯 열리고, 아득하게 들리던 외풍 소리가 다시금 귀에 때려 박혔다.
눈발을 헤치며 들어온 에드는 어깨에 얹어두었던 물건 하나를 쾅 하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푸드덕 하고 고꾸라지는 짐덩어리… 자세히보니 얼어죽은 새끼 고라니였다.
에드 입장에서는 행운이었다. 오다가 이런 횡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허나 바닥을 구르던 고라니 시체와 눈이 마주친 클라리스는… 미약한 비명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들킬까봐 소리를 안낸 것이 아니라, 비명 소리를 낼 여유조차도 없었다. 의미 없이 삼켜져 들어가는 헛숨만이 그녀의 마음을 대변할 뿐이었다.
“후욱….”
추운 날씨.
잔뜩 옷을 껴입은 에드의 입가에 입김이 피어오른다. 클라리스의 눈에는 그것이 야수의 숨결처럼 보였다. 있지도 않은 안광이 에드의 눈에 피어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거의 기절 직전까지 몰렸다.
그래도 마지막 남은 이성이 두 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아, 아무런 소리도 새나가지 않게 만들었다.
에드는 이제야 어둠 속으로 들어왔다. 클라리스와는 달리 시야가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략적인 배치를 숙지하고 있는 에드는 더듬더듬 오두막 내부로 들어갔다.
이리저리 물건들을 피해서, 한 나무 상자에 손을 뻗은 에드는… 뭔가 체크하듯이 물건을 하나씩 꺼내어 보았다.
핀셋, 바늘, 송곳, 꼬챙이… 조금씩 물건이 커지고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더니… 이내 망치나 나이프까지 튀어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대한 쇠톱을 손에 들어올리자, 그 날이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클라리스의 눈을 비추었다.
“으히끅!”
결국 소리를 내고 말았다. 클라리스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로… 거의 반쯤 미쳐돌아가는 상태가 되었다.
“…”
한순간 파악!하고 돌아간 에드의 머리가… 어둠속의 클라리스와 정확하게 눈이 마주친다.
심장이 한 번 멈췄다가 뛰었다.
멈춘만큼 더 일을 할 작정인지, 쿵쾅대며 클라리스의 귓가에 미친 듯이 소리를 울려대기 시작했다.
“크… 카일리 에크네?”
온몸이 미친 듯이 떨리는 상태. 사고는 정지하고, 눈물샘은 멋대로 수분을 발산해대고, 심장은 쓸 데 없이 마구 노동한다.
“뭐, 뭐냐? 왜 여기에? 왜 그렇게 떨고…”
“흐꺄아아아아아아아악!”
–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성법술 ‘신력 발산’.
에드가 두르고 있는 풍랑의 가호조차도 무시할 정도로 거의 모든 마법을 상대로 상성 우위에 있는 그 기술이… 에드의 명치에 똑바로 꽂혔다.
-콰가가가강!
-카앙! 까앙! 쨍그랑!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습에 에드는 그대로 나가떨어져서 벽에 매다 꽂혔다. 그대로 장식장이 넘어지고, 벽에 걸려있던 온갖 잡동사니들도 에드 위로 쏟아져내려왔다.
피어오르는 흙먼지.
그리고 정적.
먼지가 가라앉고 난 뒤 보이는 광경은…. 머리에서 한줄기 선혈을 흘리며 쓰러져 있는 에드의 모습이었다.
제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완벽한 기습이었다. 매사 신속하고 판단이 빠른 에드라고 할지라도… 이걸 대처하라는 건 너무한 처사였다.
“으, 헉… 나… 나도 모르게….! 가…갑자기…! 이러려고 한 게…”
잠시간의 정적.
덜덜 떠는 몸을 이끌고 일어난 클라리스는 피 한줄기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에드의 모습을 확인했다.
쏟아지는 잡동사니들을 한몸에 받아낸 에드는 척 보기엔 의식을 잃은 듯 했다.
아니, 의식을 잃은 수준이 아니라…
-휘이이이이이이잉
계속해서 몰아치는 겨울바람.
차디찬 공기가 조금씩 머리를 식히고, 드디어 집나간 이성이 되돌아왔다.
“나…”
클라리스는 그제서야 현실을 직시했다.
“사람을…….. 죽였어……!”
차갑게 식은 에드의 몸은 미동도 없다. 클라리스는 다른 종류의 소름이 온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테… 텔로스님… 저는… 저는 죄악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클라리스는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었다. 어찌해야할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계속해서 손을 맞대고 온 몸을 떨고 있을 뿐이었다.
“저는.. 이 죗값을… 어떻게… 순백과도 같이 정갈한 삶을 살아야하는… 제가… 이렇게 크나큰 죄악으로… 씻을 수 없는 죄로 물들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더럽혀져서… 저는… 저는… 지옥에서 불타야… 이 죗값을 치러야….”
고해성사를 하며… 클라리스는 부들부들 떨고 눈물을 흘렸다. 반쯤 공황상태에 빠져드는 그 순간.
“야.”
-턱.
어깨에 올라온 손.
화들짝 놀라 돌아보자, 피칠갑이 된 채 숨을 내뿜는 에드의 얼굴에… 귀기가 서려있었다.
“지금… 나랑 장난하냐.”
“히에에-엑”
…클라리스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이렇다 할 반응조차 못하고… 절규하는 표정 그대로, 의식을 잃으며 쓰러졌다.
“…”
세상 모든 것을 뒤덮을 기세로 몰아치는 눈폭풍.
그 틈바구니에 있는 오두막에서, 에드만이 홀로선 채 쓰러진 클라리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표정은…. 썩 좋진 않았다.
*
“메이드장님.”
“보고는 들었습니다. 침착하게 대응 방안 구축하도록 하세요.”
클라리스는 오판했다.
메이드가 클라리스의 상태를 체크하자마자 나왔으니, 적어도 몇 시간은 자리를 비워도 눈치를 못챌 것이라 생각했겠으나… 오필리스관의 메이드는 그렇게 무르지 않다.
클라리스의 부재를 눈치채는 데에는 단 15분이면 충분했다.
오필리스관 꼭대기 층에서 번갈아가면서 사방을 감시하고 있는 당직 메이드들이, 눈폭풍 너머로 사라지는 학생의 형상을 발견.
재빨리 다시금 본관 전체의 인원 파악을 하는 데까지 단 10분.
그리고 행방이 묘연해진 자가 바로 그 카일리라는 사실을 확정짓는 데까지는 단 5분 걸렸다.
“대체 왜 사라지신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학사에 보고한 후 수색에 들어가야겠지요…”
“일단 당직 메이드들이라도 먼저 보낼까요, 메이드장님?”
“메이드들을 내보내는 건 신중하게 생각해야할 일이에요. 저택 내부 관리 인력이 줄어드니까요. 지금은 인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여야해요. 특히… 루시 아가씨를 감시하는 인력은 단 한명도 빼지 마세요. 섣부르게 추격하다가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어요.”
“네, 넷… 그럼 카일리 아가씨는 어떻게…?”
의외의 상황이지만, 벨은 당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침착하게 대처 방안을 고려했다.
오필리스관의 메이드 장.
카일리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는 학사 내부 관계자 중 하나다. 즉, 벨은 카일리가 클라리스라는 사실을 미리 전해들었다. 적어도 기숙사 최고 책임자만큼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하니까.
대체 이 눈폭풍을 헤치고 왜 뛰쳐나갔는지, 어디로 향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 동기라도 알 수 있으면, 행선지라도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인데.
원칙대로라면 카일리 하나 때문에 저택의 방호 체계에 흠이 생기게 만들어선 안된다. 당장 메이드들을 수색 내보낸다고 해서 카일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이런 날씨라면 못 찾아낼 가능성이 더 크다.
천천히 학사와 긴밀하게 협조해가며 신중히 수색해나가야할 일이다.
그러나… 수면에 드러나지 않은 사실… 카일리의 진짜 신분을 생각해본다면… 정말 저택의 모든 인력은 물론이고 학생까지 다 동원해서 찾아내야하는 상황이다.
성녀가 행방불명이 된다면, 그건 아예 나라가 뒤집힐 대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쪽으로 생각해보면… 성법의 가호를 잔뜩 두르고 있는 성녀 아닌가. 오히려 다른 학생에 비해서는 안전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흘리기도 했다.
적어도 야생 동물 같은 것을 만나 객사하는 일은 절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장 급박하게 생명의 위기를 맞이하진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벨은 고심한 끝에… 본인이 직접 찾으러 나가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선임 메이드에게 잠시 지휘 역할을 맡겨놓으면 당장 급한 일을 처리할 짬은 생길 것이다.
이런 돌발상황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모습에… 벨을 지켜보던 메이드들도 차분해졌다.
역시나 오필리스관의 메이드 장 다웠다.
“당직 메이드들의 보고 사항이 최신화 되었습니다, 메이드장님! 그게… 카일리 아가씨로 추정되는 형상은… 북쪽숲 방향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식.
이런 날씨에 바깥에 사람이 다닐 리가 없다.
그러나… 단 한명, 대자연의 모진 눈폭풍과 정면으로 승부하고 있는 남자가 있다. 지금 북쪽숲은 그 남자의 영역이다.
“…. 설마… 아니겠지….”
벨은 그제야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북쪽 숲에 캠프를 차리고 사는 그 남자.
쏟아지는 눈폭풍. 조난. 단 둘이 남은 남녀. 도움 요청. 구조를 기다리며, 극한의 상황에서 서로에게 기대어야만 하는 둘.
그리고 진짜 이상하게, 기묘할 정도로 여복이 많은 한 남자.
북쪽숲의 그 남자를 중심으로 얽히고 설킨 관계도가 순식간에 머리 속에 피어오른다.
온갖 인물들 사이,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왔다갔다하는 화살표들의 행렬이 어찌나 복잡한지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거기에 새로운 얼굴이 하나 추가되는 꼴을 생각하니, 심지어 그 인물의 신분까지 생각하고 보니 벌써부터 온몸에 식은 땀이 뻘뻘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벨은 갑자기 언성을 높여대기 시작했다.
“반드시 찾아야해요…! 최대한 빨리…! 더… 늦기 전에…! 반드시…!”
항상 진중한 벨 치고는 정말 급박한 목소리였다. 벨은 카일리가 적어도 타살에 의해서는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박한 어조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덕에 주변에 포진하고 있던 메이드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