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94)
학생회장 선거전 (7)
– 콰앙!
폭발음이 들린 것은 엘비라와의 대련이 마무리 되는 순간이었다.
“뭐, 뭐지…?”
오필리스관 지하의 학생 대련 시설.
호기롭게 각 학부 수석들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다녔던 신입생 수석 웨이드 캘러모어는 기가 잔뜩 올라와 있었다.
2학년 전투부 수석 클레비어스 노튼데일은 아예 대련장에 나타나자마자 기권을 선언했고, 연금부 수석 엘비라는 지금 막 웨이드의 검에 모든 시약병을 파괴 당하고 패배를 인정했다.
오필리스관의 지하에 몰려든 구경꾼 학생들이 환호성을 외치는 순간이었다.
아예 논외 취급을 받는 루시를 제외하고, 2학년 마법부의 차석인 직스 에펠슈타인만 꺾으면.. 다음은 3학년 차례다.
“수고하셨습니다, 엘비라 선배님.”
“흥.”
흙먼지가 잔뜩 묻은 채로 대련장 구석에서 시약병을 갈무리하던 엘비라는 코웃음을 쳤다.
“기세가 등등하네.”
“좋은 승부였습니다.”
“좋은 승부는 무슨. 고학년 수석을 이겨서 기분이 좋은 티가 뻔하게 나네.”
“하하, 저도 사람인지라…”
엘비라는 전투 분야에 대해서는 썩 능통하지 않다. 애초에 연금술이라는 학문 자체가 전투에 특화된 학문은 아니기도 하다.
그러나, 학년 수석 쯤 되면 전투 분야 자체도 수준이 다른 게 보통이다. 웨이드의 무력이 오히려 얼마나 강대한지를 엿볼 수 있다.
“어쨌든, 다음은 직스 선배님만 꺾으면 되겠군요.”
이 얼마나 오만한 발언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이드에게는 실제로 그리 해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그 광경을 보는 구경꾼 학생들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웨이드의 검술은 확실히 1학년 수준이 아니다. 마법부의 요제프와 연금부의 클로드를 제치고 1학년 수석 자리를 차지한 이유가 있었다.
대련장 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댄 채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직스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쨌든 오늘은 밤이 너무 늦었다. 슬슬 대련을 할만한 시간도 지났으니, 웨이드와 직스의 대련은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구경온 학생들이 가장 보고 싶어했던 대련이 직스와 웨이드의 대련이었다. 그 메인 이벤트가 뒤로 미뤄질 거라고 생각하니, 학생들 사이에선 아쉬운 마음이 감돌았다.
“그나저나, 방금 그 소리랑 진동은 대체 뭘까요? 바깥에 천둥이라도 쳐서 뭐가 무너졌나?”
“글쎄. 일단 올라가 봐야지. 지하 대련장도 슬슬 닫을 시간이야. 곧 메이드들이 여기 비워달라고 말하러 오겠지.”
– 콰앙!
아니나 다를까, 직스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단 메이드 두 명이 대련장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이렇게 존재감 넘치게 등장할 거란 생각은 못했는지, 직스와 웨이드는 말똥말똥 문 쪽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지금 당장 대피하셔야 합니다! 바깥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좋지 않은 일’이라니. 대체 뭐길래 그리 뭉뚱그려서 이야기 한단 말인가.
직스는 미간을 팍 찌푸리고는 등에서 벽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좋지 않은 일이라니, 그게 뭡니까?”
“그… 그건… 일단 대피하시면서…”
대련장에 들어차 있던 학생들은 일동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행은 그대로 급박하게 뛰어올라가는 메이드의 뒤를 따라 지상층에 올라왔다. 그리고 메인홀을 지나 복도로 접어들자, 창밖으로 보이는 광경에 직스는 그만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광장에 ‘동상’이 가득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동상이 아니다. 굳어버린 오필리스관의 메이드들이다.
시간계 성위 마법. ‘시간 감옥’.
성위 마력을 고도로 훈련해야만 다룰 수 있는 시간계 성위 마법이다.
도저히 믿기 힘들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바쳐 연구해왔던 성위 마법을, 한 번 보고 대충 따라해버릴 수 있는 천재가 세상에는 실존한다.
그대로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광장을 가득 매운 메이드의 숫자가 하나 둘… 수십 명에 육박한다.
그 중에는 오필리스관의 메이드를 총괄하는 메이드 장, 벨 마이아의 모습도 보인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웨이드가 소리를 질렀다. 비가 오는 하늘을 올려다 보면, 거대한 마력의 구가 오필리스관 상공을 가득 메우고 있다.
고위 불 마법 ‘작열구’.
오로지 순수한 화력만으로 일대를 통째로 불태워버릴 수도 있는, 순수 불 마법 분야에서도 가장 유명한 고위 마법이다.
첫 폭발음이 들린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았다. 그 5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눈에 보이는 광경만으로는 도저히 유추가 되질 않았다.
광장의 중앙. 모자를 꾹 눌러쓴 채 귀기 어린 모습으로 서있는 소녀가 있다. 익숙한 얼굴이다.
“루시… 메이릴…?”
정신이 나간 것인가?
제 아무리 괴짜 중의 괴짜 취급을 받는 루시라고 할지라도, 이런 정신 나간 짓을 할 사람은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보이는 광경만으로는, 당장이라도 루시가 이 오필리스관을 통째로 부숴버릴 것 같지 않은가.
안에 아직 학생들이 가득한데 정말로 저런 수준의 마법을 때려박았다간 대참사가 일어난다.
“마법부 3학년, 에드 로스테일러 도련님이 사망했다는 소식입니다.”
“뭐라고요?”
“적어도 루시 아가씨가 말하기로는 그래요.”
메이드는 얼른 학생들을 인솔하면서, 1층 홀 뒤쪽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따라 뛰었다. 일단 뒷문으로 다들 대피시킬 생각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상황 설명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 메이드장님과 고위 메이드들도 모두 당한 와중이라, 저희도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에요. 일단 활동 가능한 메이드들끼리 뭉쳐서 학생들을 대피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일단 빠르게 움직이셔야 해요!”
대련을 구경하고 있던 학생들은 대략 스무명 남짓이다. 메이드에게는 이 학생들을 모두 인솔해서 대피시키는 게 당장 급하게 해결해야할 일이었다.
“에드 선배님이… 죽었다고요…?”
복도를 가로질러서 뛰고 있다 보면 창밖으로 루시의 뒤쪽 풍경까지 보인다. 루시의 염동 마법에 의해 사로잡힌 두 명의 가신들이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네. 로스테일러 가문의 가신들에게 암살 당하는 모습을 보였나봐요.”
“로스테일러 가문의 가신이라면… 그럼… 타냐 로스테일러…?”
“그건… 제가 추측할 영역이 아닙니다.”
메이드는 달려나가면서 잠긴 문을 모두 열어제꼈다. 혹시 방 안에 남아있는 학생들이 있다면 전부 데리고 나갈 심산이었기 때문이다.
뒤따르던 학생들의 무리는 하늘을 가득 메운 작열구를 보고 공포에 떨었다.
“그럼 타냐 본인은 어디에 있는데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
메이드를 따라 뛰던 직스는 발걸음을 멈췄다. 한 시가 바쁜 상황에 무슨 일이냐고 묻는 듯한 눈빛이 직스에게 꽂혔다.
“먼저 가십시오.”
“예? 직스 도련님. 지금 상황이…”
“알고 있습니다. 일단 다 대피시키십시오.”
직스는 직감할 수 있었다.
루시가 마음먹는 다면, 저런 작열구 마법 따위 순식간에 영창을 끝내고 내려 꽂을 수 있었다.
저건 단지, 당장 타냐를 눈앞에 대령하라는 협박 수단일 뿐이다. 오히려 모든 학생들이 대피하고, 인명피해가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면 실제로 마법을 때려박아 버릴지도 모른다.
루시는 완전히 이성을 잃은 상태지만, 그래도 마지막 끈을 놓지는 않고 있다.
굳이 번거로운 시간 감옥으로 메이드를 제압한 것도, 그들의 몸에 해코지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작열구를 내리 꽂게 되더라도 시간자체가 분리된 메이드들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을 것이다.
다만, 오필리스관을 통째로 부숴버리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말려야 한다. 아무리 신중을 기하더라도 아예 인명피해가 없을거라는 생각을 할 수는 없다.
“저는 따로 행동하겠습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해는 합니다만….”
“이미 4학년 학부 수석이 두 분이나 당했습니다.”
직스는 그 말을 듣고 다시금 광장을 보았다. 수많은 동상들 가운데 4학년 연금부 수석 ‘도로시 화이트펠츠’와 마법부 수석 ‘트레이시아나 블룸리버’가 보인다.
학사 직원들이 도착할 때까지는 얼마나 걸릴 것인가. 10분? 30분?
설령 학사 직원들이 도착하더라도 저런 괴물을 감당할 수나 있을 것인가.
일단 적어도 오필리스관 내부에는 루시 메이릴과 대적할 수 있는 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창밖을 보고 있으면 허공을 부유하고 있는 루시의 마력 어린 모습이 선명히 보인다.
이리저리 떠다니는 곡궁은 에드의 것이다. 루시에 의해 수십발의 마력화살이 장전되어 있는 상태다. 하나 하나가 모두 고위급 마법의 위력을 발휘하는 법진이 각인되어있다.
광장을 가득 메운 원소 법진들도 하나 같이 복잡해서 하나만 해석하는 데에도 사흘 밤낮은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듯 하다.
하늘의 축복을 몰아받은 천재다. 저런 괴물을 막아설 수 있는 자가 지금 존재하기나 할까.
장미정원에 도래한 저 재앙을 막아내는 행위의 무모함은… 단 세글자 단어만으로 대변할 수 있다.
불가능. 저런 걸 막아서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래도 루시는 마지막 일선은 넘지 않아, 학생들이 가득한 오필리스관에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진 않지만… 정말로 완전히 이성을 잃어서 선을 넘어버린다면….
“대화를 시도해보았습니다만, 통하지 않습니다. 끝없이 타냐 아가씨를 데려올 것을 요구하고만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먼저 가십시오.”
직스가 그리 말하자, 메이드가 다시금 미간을 찌푸렸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반응이었다.
“너무 무모합니다, 직스 선배님!”
이번엔 웨이드도 막아섰다. 겁집을 쥐고 길을 막은 채 웨이드는 미간을 찌푸리고 이야기했다.
“저런 걸… 어떻게 막아서겠다는 겁니까…? 그냥 대피하십시오…!”
“때 되면 알아서 대피할테니까 먼저 떠나라.”
“정말 왜 그러십니까?! 직스 도련님.”
언제나 정중하고 깍듯한 오필리스관의 메이드들이다.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로 힘들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입장이다. 여기서 인명피해로 이어졌다간 무슨 책임을 지게 될지 모른다.
그렇기에, 직스는 미안한 마음을 안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리 말하고, 대열에서 이탈해서 뛰쳐나왔다.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린 이유는 뻔했다.
직스는 지금 상황 자체가… 납득이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
– 콰앙!
문을 박차고 들어서자, 시원하게 뻥 뚫린 외벽이 직스의 눈에 들어왔다. 오필리스관 3층 안쪽에서 세 번째 방, 타냐 로스테일러의 개인실이었다.
상황이 상황이었으므로 노크도 없이 문부터 부숴버렸다. 소녀답게 아기자기하지만, 또 호화롭기도 한 방이었다.
지금은 부서진 외벽으로 비바람이 몰아쳐 말이 안되는 몰골이지만, 적어도 방의 형태만큼은 남아있었다.
직스는 옷을 털고 주변을 훑어보았다. 지하 대련장까지 인솔 메이드가 뛰어왔다는 것은, 이미 어지간한 장소는 대부분 그들이 다 체크해보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가 몰아치는 늦은 밤에 외부에 나가 있을 리도 없으니 타냐가 있을만한 곳이라고는 결국 제 방 뿐이다. 이미 방이라도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광경이긴 했으나, 그나마 안들키고 숨을만한 곳이 여기밖에 없을 터.
멀쩡한 꼴을 유지하고 있는 가구가 거의 없다. 여기 저기 뒤져보다가, 직스가 커다란 옷장을 열어제끼자… 드디어 그 안에서 타냐 로스테일러가 모습을 드러냈다.
“으으… 으으어…”
무릎을 안고 옷장 안에 틀어박힌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은… 영락 없이 겁에 질린 소녀 그 자체다. 몸을 꽈악 말고 있는 모습이 사람이라기보단 햄스터 같아서 어이가 없었다.
“…”
“으으.. 으흐윽… 왜… 어쩌다가 상황이 이렇게 된 거에요 대체…. 뭐야… 왜…”
직스는 다시금 고개를 돌려서 반파된 외벽 쪽을 보았다. 여기서 중앙광장을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으면 이성을 잃은 루시의 모습이 똑바로 보였다.
겁에 질릴만도 한 풍경이다. 직스도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곧바로 루시를 향해 튀어나간다는 발상은 어지간한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오히려 자살에 가깝다.
루시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튀어나갔다간 당장에 죽임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기세다. 숨는 게 당연하고도 합당한 판단이었다.
“잘 들어라, 타냐 로스테일러.”
직스는 심호흡을 한 다음, 방 구석에 쓰러져 있던 의자를 하나 가져와서 옷장 앞에 세워두고 앉았다.
그리고, 똑바로 타냐의 두 눈을 응시한 채 이야기했다.
“내 말에 반드시 진실로만 대답해줘야 해. 어줍잖게 거짓말 하면 정말 가만 안 놔둘거야. 지금 시점에서 에드 선배님의 뜻을 가늠하고 널 도와줄만한 사람은 나 밖에 없다.”
타냐가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네가… 에드 선배님의 암살을 사주했냐?”
정신머리가 똑바로 박힌 인간이라면 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스는 구태여 그런 질문을 했다.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에드 로스테일러는 타냐를 상대로 전혀 적대적인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도움을 줬으면 줬다.
직스 특유의 야성적인 감각은 착실하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타냐가 에드를 상대로 모종의 앙심을 품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게 심각할 수준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타냐는 에드의 수혜를 잔뜩 받고 있는 입장이다. 타냐는 그런 에드의 뒤통수를 먼저 칠 위인이 되지 못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근본은 그 에드의 동생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직스는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타냐는 울먹거리면서 고개를 붕붕 휘둘렀다.
직스는 그 말을 듣고 한참동안 고개를 짚은 상태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나서 결론을 내렸다.
이대로 루시의 앞에 튀어나가면 타냐는 죽는다. 정말 무조건 죽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에드 로스테일러가… 그런 상황을 바랄 것 같진 않다.
루시의 손에 피를 묻히는 일도, 타냐가 그렇게 죽임을 당하는 일도… 절대로 그가 원하던 상황은 아닐 것만 같다.
“그래, 자세한 사정 설명은 나중에 들어야겠네.”
직스는 다시금 중앙광장 쪽을 쳐다보았다. 루시는 당장 타냐를 데려오지 않으면 정말로 오필리스관을 통째로 부숴버릴 기세로 분노하고 있다.
에드의 사망이 사실이라면… 저렇게 분노하는 루시의 모습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루시에게 있어서 에드가 얼마나 각별한 존재였는지, 직스는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스 자신도 적적한 마음이 들었다.
“잘 들어라, 타냐 로스테일러. 지금 정말 광장으로 나가면… 죽을 수도 있다.”
“….”
“그러니까 일단 여기 틀어박혀 있는 게 맞다. 대체 뭐가 어떤 식으로 오해가 쌓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루시가 이성을 되찾고 나서 이야기 해볼 일이야.”
루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 암살 건은 누가 봐도 명백히 타냐가 주동자다. 모든 정황증거가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그러니, 무슨 말을 하든 루시를 납득시키기는 쉽지 않다. 일단은 루시가 이성을 되찾고, 정황이 제대로 파악되기 전까지는 무조건 숨어있는 게 맞다.
“루시는 일단 내가 막아보지.”
“그렇게는 안됩니다, 직스 선배님.”
부서진 방문 틈새로 웨이드가 따라 들어왔다. 웨이드 또한 대열에서 이탈해서 직스를 쫓아온 것이었다.
메이드가 지끈지끈 두통을 앓고 있을 것만 같았다. 직스는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구태여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은… 루시 선배님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는 게 맞습니다. 저런 괴물을.. 어떻게 상대합니까…!”
직스를 말리겠답시고 쫓아온 웨이드가 그 앞길을 가로막았다.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되십니까? 지금… 그… 타냐를 감싸고 돌았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냥… 이대로 타냐를 루시 선배님에게 보내십시오.”
“난 내 판단대로 한다, 웨이드.”
웨이드의 말이야말로 정론이다. 직스도 그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허나, 타냐 로스테일러는 바로 그 에드 로스테일러의 친동생이다. 그렇다면 두 번까지는 모르겠으나, 한 번만큼은 믿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또한, 직스가 알고 있는 루시라면… 제 아무리 이성을 잃었어도 사람이 남아있는 건물에 고위 마법을 때려박을 정도로 선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직스는 오로지 그 믿음 하나로 신념을 유지하기로 마음 먹었다.
“불합리한 판단을 하시는군요… 직스 선배님.”
웨이드는 검을 뽑아들었다.
“그렇다면… 강제로라도 제 뜻을 관철해야지요.”
“…”
“타냐를 이 쪽으로 보내십시오.”
*
– 콰앙! 콰앙!
몇 번의 폭발음이 더 들려왔다. 장미 정원의 정자 한 켠이 부서져 나가고, 옥상에 매달린 조각상 하나가 지면에 처박혔다.
“끄아아아아악!”
장미 정원 뒤쪽으로 도망 나가던 클레비어스는 폭발음에 발을 헛디뎌서 바닥을 굴렀다.
학생들을 인솔하는 메이드들은 최대한 많은 학생들을 데리고 도주했어야 했다. 그러다보니 동선이 너무 길었다.
겁에 질린 클레비어스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대열에서 이탈해 홀로 광장 뒤쪽을 가로지른 것이다.
건물 외곽의 화단 사이에 숨어서 도망치려다가, 빗물에 미끄러져 바닥을 구른 클레비어스는 그대로 중앙광장까지 고꾸라졌다.
“…”
“…히익…!”
말도 안되는 수준의 마력을 휘감은 루시가, 허공에서 클레비어스를 곁눈질 한다.
그러나, 신경 쓰는 기색도 없고, 일절 공격할 마음도 없이 루시는 클레비어스에게서 신경을 꺼버렸다.
클레비어스의 겁쟁이 기질을 루시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덜덜 떠는 다리를 부여잡고 겨우 몸을 일으킨 클레비어스는 비명을 지르면서 달아났다.
“으아아아아아악!”
클레비어스는 그대로 루시의 뒤쪽을 가로질러서 오필리스관 밖으로 도망쳤다. 당장 갈 데도 없지만, 저런 위험한 곳에 남아있고 싶진 않았다.
도망칠 수 있다면 반드시 도망친다. 그것이 클레비어스의 제 1 원칙이었다.
“진짜… X팔…. 왜… 이딴 일이… 벌어지는 거야.. 개… X팔…! 난 이러려고 실베니아에 온 게 아니야! 진짜 내 인생에 평온함이라곤 없냐고! 진짜 X같네! 진짜 개 X팔…!!!”
이를 딱딱 부딪히고 온 몸을 덜덜 떨면서 도망치던 클레비어스는 장미정원 출구에서 다시금 바닥에 고꾸라졌다.
– 쿠당탕탕!
– 쏴아아아아아
꼴사납게 바닥에 고꾸라진 클레비어스는 그렇게 대자로 뻗어서 비를 맞고 누워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클레비어스를 짓밟는다.
“진짜… 저딴 게 갑자기 나타나면… 당연히 무서운 거 아니냐고… 진짜… X팔… 개… X팔…”
드러누운 채 제 몰골을 생각해 본다. 꼴사납게 도망치느라 온 몸은 비에 쫄딱 젖어 있었고, 화단을 거치고 바닥을 몇 번 굴렀더니 진흙이 잔뜩 묻어있다.
안 그래도 음울한 몰골인데 물에 빠진 생쥐꼴이기까지 하니 이보다 한심할 수가 없다.
“진짜… X팔…”
드러누워서 빗물에 범벅이 된 제 얼굴을 북북 쓸어 내리며, 클레비어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도 발은 떨어지질 않는다. 완전히 힘이 풀려버렸다. 클레비어스는 그대로 제 얼굴을 북북 쓸어내리면서, 영혼 없는 욕지거리만 계속해서 내뱉고 있었다.
“뭐해, 멍청한 클레비어스.”
문득 빗줄기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까지 대련을 하고 있던 2학년 연금부 수석, 참견쟁이 엘비라였다.
글라스칸을 토벌할 때부터 늘 똑같았다. 클레비어스만 보면 한심하다는 듯 놀리는 소리만 일삼던 수석 연금술사다.
“하다 하다, 이런 데에 드러누워있네.”
“너.. 방금 전까지 대련하고 있지 않았냐…?”
“그래. 대련하다가 시약을 다 잃어버렸잖아. 그래서 연구실에 시약을 더 가지러 가야겠어.”
보아하니 엘비라도 대열을 이탈해서 나온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저 괴물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수석 학생들 빼고 누가 있겠어. 적어도 학사 직원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최소 30분은 버텨봐야하지 않겠어? 그래서 남아있는 수석들끼리 힘을 합쳐보기로 했어.”
엘비라는 그렇게 말하고, 클레비어스의 정강이를 퍽 하고 찼다.
“보아하니 다리에 힘 풀렸네. 힘 돌아오면 교수동 쪽으로 도망쳐. 학사 직원 있으면 불러오고.”
숙직하던 학사 직원들 중 고위직은 대부분 북쪽 절벽 지대에 조사차 나가 있었다.
안 그래도 거리가 멀고, 원래 오필리스관은 메이드들이 독자적으로 관리하는 곳이므로 방범체계가 세심하게 연계되어 있지도 않다.
학사 직원을 불러오려거든 생각보다 더 시간이 걸릴 것이 뻔했다.
엘비라 또한 바로 해결되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금술 가방을 잔뜩 챙겨든 채 연구실 쪽으로 뛰쳐나갔다.
엘비라가 뛰쳐나가고, 또 다시 혼자 남은 클레비어스는… 그렇게 대자로 드러누워 한참동안 비를 맞고 있었다.
“…”
“진짜… X팔………..”
“한심한 새끼… 모자란 새끼… 진짜… 개… 못난 새끼….”
클레비어스는 그렇게, 한동안 비를 맞고 드러누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를 악물고, 꽉 쥔 주먹으로 눈두덩이를 짓누르고만 있었다.
*
“에드!”
모닥불이 피워진 동굴 안으로 예니카가 뛰어들어왔다.
마력도 완전히 바닥났고, 몸 상태도 박살이 난 나는 누워서 맞이해줄 수밖에 없었다.
“크… 큰일 났어, 에드…! 일단 학사 직원들은 먼저 출발 했고.. 메릴다도 움직였는데… 혹시 모르니 에드도 좀 움직여야 될 것 같아…!”
“뭐?”
“아직 말 못해줬는데… 루시가… 에드가 죽었다는 사실을.. 내가 사정을 설명하기도 전에 먼저 알아냈나봐…!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미 알고 있더라구…! ”
비명을 지르는 몸은 뜻대로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타냐를 찾으러 오필리스관으로 간 거 같아…!”
그 말에… 나는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 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건… 직접 나서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