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낭보
연말연시를 맞아 열린 황궁의 연회는 화려함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수도의 모든 귀족과 명사들이 고운 옷을 차려입고 나와 이 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연회장의 화려함과 새로운 한 해에 대한 기대감에 취해 시간을 보내는 이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었다.
하지만 아델라인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이런 화려한 연회가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결국, 아델라인은 노력해도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가리기 위해 별로 마시고 싶지도 않은 샴페인 잔을 들고 이리저리 걸어 다닐 뿐이었다.
그때, 아델라인의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로피츠 여사님.”
아델라인이 뒤를 돌아보자, 휘태커 경감이 중년의 여성과 함께 다가왔다.
“아, 휘태커 경감님. 잘 지내셨나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 이쪽은 제 아내입니다. 여보, 이쪽은 아델라인 폰 로피츠 여사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아,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여사님. 리안나라고 편하게 불러 주세요.”
“저도, 아델라인이라고 편히 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인.”
“친절하시네요, 여사님. 일단 가볍게 건배할까요? 새해를 맞아서.”
휘태커 부인의 제안에, 세 사람은 각자 들고 있던 잔을 눈높이로 들어 보였다. 그 잠깐 사이 아델라인과 부인의 눈짓을 받은 휘태커는 결국 잔을 앞으로 내밀며 가볍게 건배사를 건넸다.
“새해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마치 아델라인의 심정을 알고 있는듯한 건배사에, 나머지 두 사람도 잔을 부딪쳐 맑은 소리를 냈다. 잔에 담긴 샴페인을 반 정도 비운 아델라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올 한해 고생 많으셨어요, 경감님.”
“여사님께서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남부 대화재 때는… 그 누구도 해낼 수 없으리라 생각한 일을 해내셨습니다.”
휘태커의 말에, 아델라인은 가볍게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한 건 별로 없는데요. 그리고 위험한 일도 아니었고요. 고생하신 건 휘태커 경감님과 경비대원들이지요.”
“파견 중대의 역할도 컸습니다. 덕분에 피해 확산을 조기에 차단할 수 있었지요.”
그는 들고 있는 잔에 담긴 샴페인을 한 모금 홀짝인 뒤, 아델라인을 향해 물었다.
“든 사람 자리는 몰라도, 난 사람 자리는 안다고. 대위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집니다. 그죠?”
“…그러게 말이에요. 한 달 조금 넘는 시간인데, 왜 이리 천천히 흐르는 것 같은지 모르겠어요.”
“그 마음 알지요. 상대가 멀리 떠나면 쓸쓸하고. 자꾸 그리워지고. 남편이 파병 나갔을 때는 매일 걱정하며 살았었죠.”
휘태커 부인은 아델라인의 심정을 잘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아델라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파병이었는데, 그렇게 큰 고생을 했으니까. 세상에, 신문으로 호더빌에서 큰 피해가 났다고 하는데 편지로는 아무 말도 안 해서 무사하겠거니, 했죠. 그런데 돌아온 사람 가슴에 호더빌 공성전 참전기념장이 있었다니까요?”
“…그걸 온전히 말할 수는 없었잖아. 당신이 걱정할 텐데.”
“그렇다고 그런 걸 숨겨요? 이래서 남자들이란.”
두 사람의 대화에 공감이 가서일까, 아델라인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피어났다. 그러자 휘태커 부인은 아델라인을 향해 지원 사격을 요청했다.
“여사님도 한마디 해 줘요. 아직도 자기 잘못을 이해하지 못했다니까요?”
“그러니까 그게… 당신을 걱정시킬 수 없는 노릇이잖아.”
“그때는 경감님께서 잘못하셨네요. 반성하세요.”
아델라인이 부인의 편에 서서 말을 덧붙이자, 휘태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휘태커를 제압하자, 부인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편지는 자주 오나요?”
“편지는 계속 주고받았었어요. 물론 얼마 전부터는 편지 부치는 걸 중단하라는 지시가 내려와서 알렉스에게 못 받고 있지만요.”
“그렇군요.”
아델라인의 말에 부인이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연회장 안에 울려 퍼지던 음악이 멈췄다.
“곧 불꽃놀이가 시작됩니다!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친위 대원의 안내에 따라 밖으로 움직여 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불꽃놀이를 구경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아델라인도 휘태커 부부를 따라 나가려는 찰나, 옆에서 한 사람이 다가왔다.
“좋은 저녁일세, 셋 다.”
“아, 의원님 오셨습니까?”
한 손에는 샴페인 잔을 든 채 나타난 마일즈 의원. 그는 세 사람과 인사를 나눈 뒤,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잠시 시간 좀 내줄 수 있겠나, 여사?”
“…네. 가능합니다.”
“고맙네, 따라오게.”
아델라인이 승낙하자, 그는 불꽃놀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동쪽 발코니 대신 서쪽 발코니로 향했다. 불꽃놀이의 반대 방향인 서쪽 발코니들은 텅텅 비어 있었다. 아델라인이 마일즈를 따라 발코니 안으로 들어가자, 마일즈는 발코니의 커튼을 쳤다.
“연말연시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겠다고 하신 거로 알고 있는데…….”
“몇몇 의원들에게 전해야 할 소식이 있어서 말일세. 부득이하게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왔다네. 자네에게만 소식을 전하면 곧바로 돌아갈 거야.”
마일즈는 그렇게 말하며 성냥으로 여송연에 불을 붙였다. 두세 모금 들이마셨다 내쉬기를 반복한 끝에, 마일즈는 담배 연기를 흘리며 질문을 했다.
“그 전에, 묻고 싶은 게 있네.”
“말씀하십시오.”
“혹시 이번 연합 훈련에 대해, 밖으로 공개된 정보 이외에 알고 있는 정보가 있나? 트레포드에 가서 들은 건?”
마일즈의 물음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잠시 라이플 여단 파견대의 숙소에 머물 일이 있었는데… 방음이 잘 안 되더라고요. 하지만…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 그냥 작전, 선행정찰조… 같은 단어들만 들었습니다.”
“의장이나 대위에게 들은 내용은?”
“없습니다, 의원님.”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한 건?”
“없습니다.”
“그렇군. 후우우… 다행이야.”
아델라인의 답에, 마일즈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슨 일이 터진 걸까? 아델라인은 긴장한 표정으로 마일즈를 바라봤다.
“일단 크게 걱정할만한 소식은 아니네. 원래라면 자네에게도 말하면 안 되지만…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지. 오베른 시에서 군사작전이 있다는 건 자네도 눈치챈 모양이니 설명이 어렵진 않겠어.”
마일즈는 잠시 여송연의 재를 털어 낸 뒤 황궁의 화려한 야경을 눈에 담았다. 이내 등 뒤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마일즈는 아델라인을 향해 말했다.
“좋은 소식이 있고, 나쁜 소식이 있네. 무엇부터 듣고 싶은가?”
나쁜 소식이 있다는 말에, 아델라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설마 알렉스가 심하게 다친 것일까, 아니면 작전이 실패한 걸까.
그래도 매는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아델라인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쁜 소식 먼저, 들을게요.”
“좋네. 나쁜 소식은… 이번 작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황후 측 인사가 작전에 중대한 차질을 일으켰다는 걸세. 외교부를 통해 사람을 보내지 말라고 권고했건만, 그걸 끝내 무시해 버리고 경매에 사람을 보낸 데다가 황후의 사람이 지상 병력의 퇴출 수단까지 마음대로 유용했다는군.”
“…네?”
마일즈의 말에, 아델라인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서, 우리도 현지에 제때 정보를 전해 줄 수가 없었네. 애초에 기밀에 붙여져 있던 작전이라 연락 수단이 제한되어 있기도 했고.”
“…….”
이번에도, 이번에도 황후가 문제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아델라인의 머릿속에 후회가 잠시 스치고 지나갔다. 황후가 죽는 것을 무시했다면 자신은…….
아델라인은 마일즈의 눈을 응시했다. 나쁜 소식은 이게 끝이냐고 묻는듯한 눈빛을 보자, 그는 여송연을 입에 물고 담배 연기를 한 번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했네. 하지만… 상정하고 있던 최악의 상황은 면했어. 사상자를 보고한 장교의 이름이 알렉스 매닝햄 대위였으니, 자네도 마음을 놓았으면 좋겠군.”
“그럼… 알렉스는…….”
“크게 부상당하지 않은 것 같네. 사상자 보고 및 작전 디브리핑 자료 작성을 할 수 있는 상태라면 말이지. 하지만 지금 작전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이상, 아무래도 대위를 다시 수도에서 보는 건 예상보다 늦어질 것 같네.”
마일즈의 말에, 아델라인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알렉스를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미뤄진다는 건 결코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해서 알렉스가 무사하다는 긍정적인 사실을 떠올리며 애써 미소 지었다.
“알렉스가 무사하다면. 저는 기다릴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네. 일단 파견 중대는 재정비를 위해 본토로 돌아와 본대에 합류할 예정이라 들었으니, 그 틈에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겠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원님.”
“동료 아닌가,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일이네. 그럼, 먼저 가 보겠네. 조금 바람 좀 쐬다 나오게.”
아델라인의 어깨를 톡톡 두드린 마일즈가 발코니를 나서자, 그녀는 홀로 난간에 몸을 기대어 밤하늘을 바라봤다.
비록 황궁 안뜰에서 쏘아 대는 폭죽 때문에 많은 별이 그 빛을 잃었지만, 그래도 달은 어김없이 밝았다.
분명 알렉스도 같은 달을 보고 있겠지. 저와 같은 달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그 생각을 하자, 알렉스가 더더욱 보고 싶어졌다. 물론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기다림의 시간을 먼저 보내야 하겠지만, 알렉스가 안전하다는 걸 안 이상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건강히 돌아와요, 알렉스.”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향해 속삭이듯 달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번에는, 알렉스가 ‘사랑한다’라고 말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사랑한다’라고 말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