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알렉스가 모르고 있던 것
알렉스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급히 부름을 받고 회의실에 모인 몇몇 라이플맨의 시선은 평소와 다른 느낌을 띠며 자신의 중대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멍청이인가 봐…….”
알렉스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집무실을 채웠지만, 그를 위로해 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이 젊고 모자라며 띨띨하기까지 한 자신들의 상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펼쳐지게 된 이유. 그 사연은 한 시간 전으로 돌아간다.
* * *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주어진 자유 시간.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가족들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부지런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있었다.
“뭐하냐.”
“뭐하긴. 장비 점검.”
달그락달그락, 손을 바삐 놀리며 머스킷을 분해한 스워포드는 한숨을 쉬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팩을 바라봤다. 그는 한가로이 침대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책을 읽고 있었다.
“뭐 하는데.”
“의학 학술지. 신식 소독법에 대해 나온 논문이 있대서. 환부에 직접 적용 가능한 소독약이라든지.”
“덜 아프대냐?”
“몰라. 알아봐야지.”
팩은 하품을 쩌억 하며 눈을 비빈 뒤 연필로 어느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그때, 내무반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간다.”
문이 열리고, 알렉스가 내무반 안을 스윽 스캔했다.
“아, 스워포드. 이번에 무장 개편 의견 수렴 보고서 읽어 봤다. 이야기 좀 나누려고.”
알렉스는 스워포드를 본 뒤 아직 주인이 돌아오지 않은 스워포드의 옆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거 익명 아니었습니까?”
“장비 좀 줄여 달라는 사람이 너 말고 더 있겠냐.”
“그렇긴 하네요.”
“뭐, 뭐가 문제인지나 좀 들어보자.”
알렉스의 물음에, 스워포드는 그사이 정비를 마친 머스킷을 들어 보였다.
“일단, 이 머스킷.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그러자 알렉스는 주머니에서 수첩과 연필을 꺼내 들고 스워포드를 바라봤다. 알렉스가 준비되었다는 걸 확인한 스워포드는 침대 밑에서 궤짝 하나를 끄집어내며 말했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거지로 써 왔는데. 한 사람에게 장비 세 개는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제안하고 싶은 대안은?”
알렉스의 물음에, 스워포드는 부품들을 올려놓았던 모포를 개 놓으며 줄줄 의견을 쏟아 냈다.
“일단 머스킷은 기병대가 쓰는 카빈에 총검 어댑터 부착한 거로 바꿔 주십쇼. 교전 상당수가 시가지 근접전인 상황에서 총검 끼우면 2미터나 되는 머스킷은 무리입니다. 좁은 공간에서는 길이가 오히려 독이에요.”
“그냥 라이플 쓰면 안 되는 건가?”
“라이플에다가 산탄 넣게 해 주실 겁니까? 얼마 전에 그런 식으로 쓰지 말라고 여단 보급대대에서 공문 내려왔던데. 강선 망가진다고.”
“아, 산탄. 그건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카빈에 총검 끼우는 건 사례가 없어서 여단에 문의해 봐야 할 것 같다. 좀 걸려. 아, 그리고. 카빈으로도 중거리 교전이 가능해?”
“뭐 연습해 봐야겠지만… 전열 보병들 일제 사격 거리보다 멀리서도 교전 가능할 겁니다.”
“휘태커 경감에게 말해 둘 테니까 제3 수도경비대에서 카빈 빌려서 쏴 보고 결과 보고해. 우리 쪽에서도 근거 자료는 있어야지.”
“알겠습니다.”
“또, 의견 있냐?”
“석궁이야 무소음 장비니까 대체할 수는 없을 거고. 제 라이플, 중대 치장 물자로 전환해 주시면 안 됩니까?”
“이유는?”
“솔직히 라이플 들고 교전한 횟수도 많지 않고, 장점이라면 사정거리랑 머스킷에 비해 짧아서 시가지에서 근접 교전이 편하다, 인데. 카빈 받으면 굳이 라이플을 제 앞으로 둘 이유가 없어집니다. 차라리 여분으로 전환하는 게 낫지.”
“알겠어, 여단에 보고할 때 같이 보고할게.”
그때, 옆에서 학술지를 읽고 있던 팩이 알렉스를 향해 말했다.
“카빈으로 변경 가능하면 저도 부탁드립니다. 저도 구급 약품이랑 장비 들고 다니느라 무기라도 좀 가벼운 거 들고 싶습니다.”
“그래? 그러면… 카빈으로 전환하고 싶은 애들 모아서 한 번에 제3 수도경비대로 가. 시험 사격해 보고 결과 보고해. 그렇다고 모두 전환해 준다는 말은 아니다. 이유가 있어야 해.”
알렉스의 말에, 스워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오늘 오후까지 인원 모아서 명단 올리겠습니다.”
“그래, 나도 오늘내일 중으로 직접 휘태커 경감에게 말해 볼게. 그나저나 너무 라이플이 많이 남으면 어쩌지. 몇 정 정도야 중대 치장 물자로 돌린다고 해도…….”
알렉스가 연필로 머리를 긁으며 중얼거리자, 스워포드가 가벼운 말투로 그에게 한마디 던졌다.
“곧 로피츠 여사님 생일이시던데, 하나 손망실 처리했다가 선물로 건네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횡령 아니냐, 그거? 안 그래도 빡빡한 중대장님 진급 길을 막으려 드네, 이거.”
스워포드의 헛소리에, 팩은 실실 웃으며 핀잔을 줬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 알렉스를 바라보자, 예상과는 다른 표정이 그의 얼굴에 얹혀 있는걸 볼 수 있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표정이 왜 그리…….”
“다시 말해 봐.”
알렉스의 명령에, 스워포드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알렉스를 향해 방금 했던 말을 되짚었다.
“아니 뭐… 손망실 처리하고 선물로…….”
“그 전에 거.”
알렉스의 말에, 스워포드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내뱉었다. 말도 안 되는 가설이다. 휴가까지 로피츠 공작령의 본가에서 아델라인과 함께 보내고 온 알렉스였다.
스워포드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가설이 현실일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서는 한 가지 단어가 맴돌고 있었다.
설마.
“에이, 농담이시죠?”
“…….”
그러나 알렉스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자 스워포드와 팩, 그리고 내무반에 있던 다른 대원들까지 모두 알렉스를 바라봤다.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을 목격한 듯한 그들의 눈에, 알렉스의 손이 느릿하게 얼굴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은, 얼굴을 천천히 쓸어내리고 있었다.
“농담…이죠?”
팩의 물음에, 알렉스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는 것으로 답했다. 그러자 팩과 스워포드의 얼굴에 어려 있던 웃음기도 싹 사라졌다.
설마가 사실이 된 이 순간, 그 누구도 웃음을 터뜨릴 수 없었다.
“로피츠 여사님 생일은 4월 초중순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스워포드의 말에, 알렉스는 눈동자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오늘이……?”
알렉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팩이 알렉스를 향해 답을 건넸다.
“내일모레가 3월 말일입니다, 중대장님. 월급날이요.”
“…….”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아 얼어붙은 중대장을 보자, 모두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 가설을 열심히 부정하던 대원들이었지만, 어째 고개를 푹 숙인 알렉스의 모습을 보면 볼수록 가설은 정설이 되어 가는 듯했다.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스워포드가 적막을 깨며 입을 열었다.
“혹시, 혹시나 해서 하는 말입니다만. 아닐 거라 믿는 중이기도 한데.”
그는 잠시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며 알렉스에게 물었다.
“혹시, 여사님 생일을 모르십니까?”
그 질문을 듣자, 알렉스는 고개를 들어 스워포드를 바라봤다.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은 건지, 그의 눈은 초점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잠시 뒤.
그의 고개가 크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 * *
“음, 그러니까. 지금 상황을 정리해 보자면.”
노먼은 젊은 중대장을 바라보며 회의실의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중대장께서 교제 중이신 로피츠 여사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는데, 정작 교제 당사자인 중대장은 그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맞습니까?”
지금의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한 노먼의 물음에, 알렉스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집무실에 소집된 라이플맨들, 특히 기혼자들의 시선이 매서워졌다.
누구는 생일 맞춰서 배우자에게 가지도 못하는데, 이 머저리는 그 절호의 기회를 흘려보내려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자, 저절로 입에서 정제된 분노가 쏟아졌다.
“중대장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혹시 프룬츠베르크에서 교전 중에 부상당해서 후송할 때 머리가 깨지셨습니까?”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아편 정제를 식후 한 알씩 드시는 식습관을 가지고 계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장교 임관은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시험 통제관하고 포커 치셔서 땄습니까? 포커는 무슨 머리로 치신 겁니까?”
평소라면 상상도 못 할 급진적인 강도의 갈굼이 부하 라이플맨들로부터 쏟아졌지만, 그 누구도, 그 갈굼을 듣는 당사자인 알렉스조차도 말리지 못했다. 결국, 한동안 부하들에게 얻어맞던 중대장을 바라본 노먼은 손을 들어 대원들을 진정시켰다.
“그만. 정도가 과하면 효과가 없는 법이다. 아직 완전히 일이 어긋난 건 아니니, 지금부터 수습해야지. 안 그런가?”
중대의 연장자인 노먼의 묵직한 목소리에, 대원들은 알렉스를 향한 눈빛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하긴, 아직 엎질러진 물이 아니니만큼, 수습할 시간은 남아 있었다. 그게 충분하냐 아니냐가 문제였지만.
대원들을 주욱 훑어본 노먼은 그들 중 한 명을 짚으며 지시를 내렸다.
“밀든 하사, 두어 명 뽑아서 제국 중앙 도서관으로 가. 대략적인 범위는 좁혀졌으니, 그 시기의 신문들을 조사해 로피츠 여사의 생일을 확인하도록. 기사로 나와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잠시 대기. 중대장님께서 하셔야 할 일이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정해지는 거고.”
노먼의 말에, 알렉스의 눈에 초점이 희미하게 돌아왔다.
“내가……?”
끄덕.
고개를 끄덕인 노먼의 입에서, 연장자의 지혜가 천천히 풀어져 나왔다. 그러자 흐리멍덩했던 눈에 다시 초점이 돌아왔다. 어질러져 있던 머릿속에는 노먼의 말이 마치 계시처럼 들려왔다.
이내, 알렉스의 몸이 집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그의 발걸음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 끝에는 아델라인을 종착지로 두고 있었다.
느릿했던 걸음은 빠른 걸음을 지나, 어느새 뜀박질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