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틀린 대답
해군성 맞은편에 위치한 커피 하우스. 다른 커피 하우스와 달리 닻이며 해군기, 해전 기록화가 벽에 잔뜩 걸린 인테리어를 보자, 수도 한가운데임에도 바다 내음이 물씬 풍겨 오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알렉스는 자신의 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며 한 기록화에 시선을 던졌다. 다른 기록화와 비교하면 꽤 근래의 전투를 담고 있었다. 익숙한 모래사장, 익숙한 바다, 익숙한 여명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리에주 상륙 작전. 기만 작전치고는 아쉬울 정도로 성공적인 상륙이었지. 직접 두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알렉스는 고개를 저었다. 마치 아쉽다고 하는 그 말을 부정이라도 하듯.
“어차피 공세를 계속할만한 계획도, 병력도, 보급도 없었던 작전이었으니, 아쉽진 않네.”
“그때 상륙대에 속해 있었나?”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닷바람이 거세고, 바닷물이 차고, 바닷가가 휑하고. 그것밖에 기억에 남는 게 없지만. 자네도 그때 있었나?”
그러자 그의 맞은편 자리에 앉은 윌포드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남반구에 있었네. 한여름이었지. 동방 무역로 보호 작전을 수행 중이었어. 갓 임관한 것도 아닌, 그렇다고 함장이 되는 것도 아직 먼 위관.”
종업원이 그에게 다가오자, 윌포드는 익숙한 듯 주문을 했다. 카페오레 한 잔을 주문받은 종업원이 멀어지자, 윌포드는 알렉스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프룬츠베르크 전선에서 한 달 정도 고생하다가, 제국으로 돌아와서 휴가를 보내고 이제는 다시 수도로 재배치 되었네. 자네는?”
“한 일주일 정도 구금되어 있다가, 전시사령부 수립되자마자 육군 본부로 가고, 거기서 두어 달 연락 장교로 셋방살이하다가 해군성으로 보내졌다네.”
그는 앞에 놓인 카페오레를 홀짝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잠시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깔렸다. 알렉스의 입 안에서 한마디 말이 맴돌았다.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그때 선뜻 손을 내밀어 줘서 대원들을, 그리고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다고.
그러자 알렉스의 표정을 읽은 건지, 윌포드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다는 말, 그리고 고맙다는 말은 엊그제 자네 대원들에게 충분히 들었네. 솔직히 지금이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윌포드는 미소를 지으며 알렉스를 향해 물었다.
“무슨 질문을 하고 싶은지는 대충 들었지만, 무슨 이유로 날 찾았나?”
“…아델라인의 생일날 깜짝 데이트를 하려 하는데. 이벤트 전까지의 일정을 계획해야 해서 조언이 필요하네.”
알렉스의 말에, 윌포드는 예상했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흥미롭군, 이벤트 계획은?”
“수도 사단 로켓 포병대 대장이 나랑 임관 동기여서, 폭죽 이벤트를 계획했네. 운이 좋았지.”
“로켓이라.”
“일전에 이야기를 나눠 보니, 신년 연회 때 불꽃놀이를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고. 물론 화려함에 있어서는 연회와 비교할 정도는 못 되겠지만… 그래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알렉스의 말에, 윌포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뭐, 저녁 전까지 시간을 어떻게 때우느냐… 그게 궁금한 건가?”
알렉스가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윌포드의 미소에 흥미롭다는 눈매가 더해졌다.
“일단 이렇게 계획을 대강 짰는데.”
알렉스가 그렇게 말하며 수첩을 꺼내 윌포드에게 보여 줬다. 손바닥만 한 수첩에는 빼곡하게 시간과 장소가 적혀 있었다.
고작 손바닥만 한 수첩인데, 그 안에 들어찬 글자를 다 읽기까지 윌포드는 두 번이나 눈을 비벼야 했다. 이게 검은깨인지 글씨인지 도저히 구별되지 않았다.
수첩을 코에 가져다 댈 정도로 바싹 붙이고 읽은 끝에, 그는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에 수첩을 내려놓았다.
“다 빼게나.”
예상 못 한 윌포드의 말에, 알렉스의 눈이 의문을 품었다. 그러자 그는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 나갔다.
“아침부터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진을 빼면, 아무리 좋은 이벤트를 준비했어도 그걸 즐길 힘이 남아 있겠나?”
그 말에, 알렉스는 허겁지겁 수첩을 읽으며 반박하듯 일정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하지만 여기 카페도 있고…….”
“…….”
그러나 윌포드가 말없이 이마를 짚자, 알렉스도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
잠시 두 사람의 입으로 커피 잔이 다가갔다. 잔을 반 정도 비운 윌포드는 알렉스를 향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노먼 중위가 왜 자네를 내게 보냈는지 알겠군. 이제 확실히 이해했어.”
그는 잠시 앓는 소리를 내더니, 알렉스를 향해 말했다.
“수첩 다음 장 펴고, 불러 주는 대로 쓰게나.”
* * *
아델라인은 주변을 돌아봤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드넓은 풀밭과 새파란 하늘, 그리고 거대한 동백나무 한 그루. 아델라인은 천천히 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로피츠 공작령의 저택 마당에 있던 동백나무. 이 아래에서 알렉스와 재회했던 기억을 떠올리자, 아델라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나무줄기에 등을 기대어 앉자, 마치 알렉스와 함께 하는 듯한 행복감이 감돌았다.
그때, 위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아델라인이 위를 올려다보자, 나뭇가지와 잎사귀 사이의 틈새를 뚫고 반짝이는 보석 같은 눈과 마주쳤다.
아델라인이 놀라 움찔하는 사이, 나무가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잎사귀들이 떨리는 소리가 그치자, 어느새 나무 그늘 밖 아델라인의 앞에는 한 마리 새가 서 있었다. 기다란 꼬리와 화려한 깃털, 무슨 색이라 단정 지을 수 없는 오묘한 색의 보석 같은 눈, 그리고 그 모든 특징을 품은 커다란 몸.
“다시 만나게 되었구나.”
마치 오르간을 바로 옆에서 듣는 듯한 깊은 울림의 음성에, 아델라인은 멍하니 그 새를 응시하며 물었다.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요?”
아델라인의 물음에, 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한 이맘이 과인의 분신을 빌려 갔었지. 그때 너를 보았고 말이야.”
그 말에, 아델라인은 황후궁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비록 그때 너무 많은 것을 들어 기억이 희미했지만, 노먼이 했던 말들을 부분부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그때.”
아델라인이 기억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새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때는, 감사했습니다.”
아델라인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새는 부리를 치켜들며 껄껄 웃어 보였다.
“뭐, 간만에 바깥 구경도 할 수 있었으니 과인도 좋았다, 그래도 감사는 즐거이 받으마.”
새는 그리 말한 뒤 그녀의 이마에 부리를 가져다 댔다. 잠시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하듯 낮은 울음소리를 옅게 내뱉은 새는 아델라인의 기억을 훑어본 듯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 그 이맘이 과인에 대해 알려 주기는 했어도 과인의 이름은 제대로 알려 주지 못한 듯하구나. 하긴, 그는 내 사제가 아니었으니.”
새는 사정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고개를 들어 아델라인을 내려봤다.
“시무르그. 불을 숭배하는 이들이, 그리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과인을 그리 불러 왔다. 그러니 너도 그들을 따라 그리 부르도록 하라.”
시무르그의 말에, 아델라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시무르그 님.”
“그래, 그리 들으니 편하구나.”
아델라인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시무르그는 기쁜 듯 부리를 들어 울음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천천히 그늘 안으로 들어와 아델라인의 앞에 섰다.
“과인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
그 물음에, 아델라인은 눈을 감고 노먼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신화로서, 관념으로서 잠자던 새들의 선하신 왕…이시라 들었습니다.”
“그래, 그 이맘이 해 준 말을 잘 기억하고 있구나. 성실하고 올곧구나. 그러니 과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겠지만.”
시무르그의 칭찬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들어라. 그렇게까지 겸손할 필요는 없으니. 자, 그러면…….”
시무르그는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 한쪽 눈으로 아델라인을 똑바로 바라봤다.
“네 소개를 들어볼까?”
그러자 아델라인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그 물음에 답했다.
“제 이름은 아델라인 폰 로피츠입니다.”
그러자 웃고 있던 시무르그의 눈매가 달라졌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아델라인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부리를 열었다.
“과인은 네 이름을, 그것도 두 번째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당황한 표정으로 시무르그를 바라봤다. 그는 천천히 아델라인의 이마에 부리를 가져다 대며 말했다.
“과인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답을 원하지 않았노라.”
그 말과 함께, 시무르그는 아델라인의 이마를 강하게 부리로 쪼았다. 그러자 이마를 넘어 머리 깊숙한 곳까지 통증이 느껴졌다. 그 통증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을 때, 시무르그의 목소리가 아델라인의 귓가를 울렸다.
“더 깊이 생각해 보거라. 답을 얻을 때 즈음 찾아오겠노라.”
그 말과 함께, 아델라인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녀가 다시 눈을 뜨자, 익숙한 천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침실의 천장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봤다. 오후 3시. 그러자 아델라인의 머릿속에서 몇 시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오랜만에 오후가 한가해서 낮잠을 자기 위해 누웠었지. 점심도 거르고 오전 티타임이 끝나자마자 잠들었지…….
아델라인은 벌써 흐릿해져 가는 꿈속의 장면 중, 그나마 천천히 흐려지던 질문을 건져 올렸다.
‘과인은 네 이름을, 그것도 두 번째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 생각을 하자, 새삼 이상한 감정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자신은 진짜 아델라인이 아니다. 아델라인을 대신해, 그녀의 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자신에게, 생일이란 게 의미가 있을까.
잠시 침대에 누운 채 시간을 죽이며 뒹굴거리던 아델라인은 기지개를 켠 뒤 습관처럼 옷을 갈아입고 서재로 향했다. 그러자 간만에 서류 대신 책을 들고 있는 나이아가 그녀를 맞았다.
“아, 일어나셨어요?”
“응. 이상한 꿈을 꿔서 깨 버리고 말았어. 해야 할 일 있어?”
“아니요. 오늘은 예정된 일정도 없으니 푹 쉬셔도 됩니다. 티타임을 준비할까요?”
“부탁할게. 그나저나 뭘 읽고 있는 거야?”
아델라인의 물음에, 대기 중인 시녀에게 차를 부탁한 나이아는 아델라인에게 책을 보여 줬다.
“서던 퓨질리어 연대에 관해 쓴 책을 읽어 보고 있었어요. 아직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그래? 어떤 곳이었어?”
“뭐… 연대 설립 초반에는 영지군들 사이에 배치된 유일한 중앙군 부대여서 규율이 강했대요. 대원들도 남부 주민들이 아니라 중북부 주민들을 끌어와 배속시켰고요. 아직 읽은 건 여기까지네요.”
시녀들이 테이블에 차와 다과를 준비하자, 두 사람은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이어 나갔다.
“유사시 남부 지방의 반역을 진압하기 위해 정예 부대로 육성되었고요. 포위되었을 때 방어에 유리하도록 이즐링턴 숲에 터를 잡았대요.”
“그래서 숲 한가운데에 병영과 마을이 있었구나.”
아델라인은 차를 홀짝이며 나이아의 설명에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나이아가 알려 주는 이야기를 듣던 중, 시녀 한 명이 서재로 들어왔다.
“공녀님, 공녀님 앞으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시녀는 아델라인에게 두 통의 서신을 전달한 뒤 서재를 나갔다. 편지 봉투 하나에는 알렉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에는 오직 황실의 인장만이 봉투의 입구를 봉하고 있을 뿐, 그 누구의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았다.
“누구의 편지지.”
나이아에게서 페이퍼 나이프를 건네받은 아델라인은 우선 알렉스의 편지를 꺼냈다. 그 안에는 간단한 용건이 적혀 있었다.
[4월 5일 저녁에 시간 되나요? 그때 시간이 비어서, 저녁 식사를 같이하면 어떨까 싶어서요. 괜찮다면 답장 주세요.]4월 5일. 아델라인의 생일과 겹치는 날짜에, 그녀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뭐지? 자신의 생일을 몰랐던 게 아니었나? 대체 무슨 이유로 이날에 저녁을 먹자고 하는 거지?
그 생각을 하면서, 아델라인은 다음 봉투를 페이퍼 나이프로 갈라 서신을 꺼냈다. 그러자 황실의 인장을 달고 있는 것 치고는 소박한 편지지가 그녀를 맞았다.
[4월 5일의 티 파티 때 대화를 나누고 싶으니, 다시 한번 여사를 초대하네.]알렉스의 편지보다 간결한 문장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4월 5일에 황실에서 열리는 티 파티 초대는 개인 사정을 이유로 사전에 거절했었다. 그런데도 ‘다시 한번’ 초대한다는 의미는 뭘까.
아델라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의문을 품으며 편지지 아래를 바라봤다. 그러자 한 사람의 이름이, 아델라인의 의문을 가중했다.
[니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