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로켓탄 소동
알렉스는 시계를 꺼내 들여다봤다. 만나기로 한 6시가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오늘도 늦는 걸까. 그는 시계에서 시선을 떼며 생각을 이어 나갔다.
“너무 늦지는 말아야 할 텐데…….”
평소라면 조금 늦는 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은 특별한 계획이 있었기에, 그의 마음은 점점 초조해져 갔다.
어제 수도 사단의 지인으로부터 전달받은 마지막 서신에 적힌 내용을 떠올리자, 알렉스의 머릿속에서는 몇 번이고 다시 계산이 이뤄졌다. 온갖 변수를 추출해 하나하나 조정하며 가능한 시나리오를 짜 봤다.
그러나 생각은 세 번째 사고 실험을 마치기 전에 끝났다. 그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한 사람이 다가와, 약간 가라앉은 얼굴로 말을 걸었다.
“미안해요, 오래 기다렸나요?”
아델라인의 얼굴을 보자, 머릿속을 천천히 물들이던 걱정이 일순간 싹 가시는 듯했다. 알렉스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저도 막 왔어요. 그나저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네요.”
“아, 많이 이상한가요?”
알렉스의 물음에, 아델라인은 살짝 부끄럽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그의 물음에 이어서 답했다.
“낮잠을 조금 자고 와서 목이 가라앉은 것 같네요.”
“아하. 어디 아픈 데는 없는 거죠, 그럼?”
아델라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답을 대신했다. 평소와 달리 기운이 없어 보이는 아델라인의 모습에, 알렉스의 더듬이가 작동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아델라인이 왜 힘이 없는 걸까.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안색이 좋지는 않은데…….
전채 음식이 나오자, 도저히 답을 알 수 없었던 알렉스는 식기를 놀리며 아델라인을 향해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오늘은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요?”
“오늘은…….”
집에 있다가, 황제의 부름을 받고 황궁에 가 독대를 했다고 답하려던 아델라인의 입이 소리를 내기 전 다물렸다. 적어도 이곳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냥 집에서 뒹굴고, 산책도 하고 그랬어요.”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의 가슴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낮게 헛기침을 한 뒤 식사를 이어 갔다. 너무나도 어색한 침묵에 알렉스는 대화 주제를 꺼내려 머리를 굴렸지만, 아델라인의 무거운 표정을 보자 애써 끄집어내던 주제마저 가라앉았다.
몇 가지 주제가 화두에 올랐지만, 그 주제들은 단 몇 마디 말을 끝으로 식어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조용히 식사를 이어 나가고 끝날 때쯤, 디저트를 바라보던 아델라인의 입이 열렸다.
“알렉스는… 그런 생각해 본 적 있나요?”
“무슨 생각이요?”
“막. 귀족 자제같이 높은 신분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거요.”
그러자 알렉스는 별생각 없이 그녀에게 되물었다.
“뭐, 흔한 남작이나 기사 작위를 가진 집안 말고요?”
“네. 백작이나, 후작이나 아니면…….”
아델라인은 떨리는 가슴을 계속 달래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맺었다.
“황가, 라면 말이에요.”
“황가라…….”
알렉스는 아무렇지 않게 아델라인의 질문을 받으며 케이크에 포크를 가져갔다.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음. 별로일 것 같은데요.”
생각보다 빨리 나온 예상 밖의 답에, 아델라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알렉스를 바라봤다. 그러나 알렉스는 단정을 짓듯 케이크 조각을 포크로 뜨며 말했다.
“몇 번 그런 생각을 해 보긴 했는데… 역시 지금만큼 좋지는 않을 것 같아요.”
“왜요?”
당황한 아델라인의 반문이 곧바로 튀어나왔다. 그러나 너무 쏘아붙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아델라인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알렉스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무겁고, 무언가 고민이 있는 듯한 얼굴보다는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더 보기 좋았다.
“뭐, 사실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았거든요.”
알렉스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어 나갔다.
“훈련이라든지, 전장에서라든지. 몸은 힘들고 시간은 더럽게 안 가는 그럴 때 단골로 나오는 주제 중 하나였죠. 다른 생각으로라도 힘든 걸 잊어야 할 때.”
그는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계속 자신의 경험을 말했다.
“한때는 ‘아, 내가 귀족 아들로만 태어났어도 이 고생은 안 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했던 때도 있었죠. 하지만 그런 질문을 결혼한 대원들에게 하면 대부분 반대의 답이 나오더라고요.”
그는 다시 한번 케이크를 포크로 찍어 떴다. 케이크와 함께 잠깐 목구멍까지 차오른 과거에 대한 향수를 삼킨 그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던지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때는 영 공감이 가지 않았거든요. 고생은 피하는 게 맞지 않나. 귀족이면 그래도 좋은 거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이해가 가더라고요. 그 대원들 생각이.”
알렉스는 시계를 바라봤다. 대화가 그리 많지 않아서였는지, 이곳에서 지체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아델라인의 접시와 찻잔을 바라본 뒤 그녀를 향해 물었다.
“혹시 이 뒤에 시간 있어요?”
그의 물음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알렉스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갈 곳이 있는데, 따라와 주실 수 있을까요?”
알렉스의 물음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어디로 가기에 이렇게 동의를 구하는 걸까?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고민을 이어 나갔다.
설마 자신의 생일을 위한 이벤트라도 준비한 걸까? 일순간 기대감이 일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생일을 알려 준 적도 없는데, 이벤트를 준비할 수나 있었을까.
그래도 시간이 없는 건 아니니, 알렉스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아델라인은 그의 손을 잡은 뒤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 움직였다.
식당 밖으로 나가자, 그들의 앞으로 한 마차가 멈춰 섰다. 알렉스는 자신의 마차인 것처럼 문을 열고 아델라인을 향해 말했다.
“타요, 걸어서 가기에는 조금 머니까요.”
“어디로 가는 건가요?”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도움을 받아 마차에 오르며 질문을 했다. 그러나 알렉스는 마차 안에 올라타고 문을 닫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비밀이에요. 하지만 그렇게 멀지는 않아요.”
그 말과 함께 마부석과 연결된 창문을 똑똑 두드리자, 마차가 앞으로 나아갔다. 마부석을 제외한 창문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다.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궁금증이 일었지만, 가만히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알렉스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느낀 아델라인은 말없이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저번에 나들이를 갔던 곳으로 가는 건가요?”
“아뇨, 전혀 아니에요.”
“힌트라도 줄 수 있나요?”
아델라인의 물음에, 알렉스는 잠시 눈을 감고 곰곰이 고민했다.
“황궁에서 열렸던 신년 연회, 불꽃놀이 못 봤다고 그랬죠?”
아델라인이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 답하자, 알렉스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면… 기대해도 좋아요. 훨씬 좋을 거예요.”
그 말을 하자마자 마차가 덜컥, 멈춰 섰다. 그러자 알렉스는 문을 연 뒤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
“자, 넘어질 수 있으니 잡아요.”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인 뒤 그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평소같이 바닥을 바라보며 내린 그녀는, 이내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 앞에 펼쳐진 건…….
“생일 축하해요. 아델라인.”
수많은 꽃과 양초로 장식된 길, 그리고 그 길 끝에 마련된 벤치와 테이블이었다. 믿을 수 없는 눈앞의 광경에, 아델라인은 입을 손으로 가렸다. 분명 자신은 알렉스에게 생일을 알려 준 적도 없는데. 그래서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근 며칠 동안 제멋대로 기대하고 또 실망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고, 또 이런 이벤트를 준비해 준 알렉스가 고마워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차오르는 눈물이 떨어지기 전에 눈을 비비는 척 눈물을 닦아 낸 아델라인은 물기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알렉스…….”
“아직 감동하기에는 이른데.”
시계를 확인한 그는 미소를 지으며 아델라인의 손을 잡아 천천히 이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자, 이제 진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요. 어서 가죠.”
아델라인은 기대감을 품으며 그를 따라 앞으로 걸어갔다. 황궁을 나설 때는 그리도 무겁던 발걸음이 지금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양초와 꽃의 길을 지난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았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아델라인의 귀를 즐겁게 만들었다.
“그래서, 뭘 기다리는 건가요?”
그의 물음에, 알렉스는 시계를 바라봤다. 8시 58분. 시간을 확인한 그가 눈을 감자, 풀벌레 소리 사이를 지나 저 멀리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지시를 내리는 단호한 목소리, 무언가를 설치하는 절그럭거리는 소리, 그리고 절차를 진행하는 구령들. 그 모든 소리가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 보죠.”
알렉스는 눈을 감고 회중시계를 주머니에 넣으며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잠시 뒤, 눈 앞에 펼쳐진 들판의 왼쪽에서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소리의 정체를 묻기도 전에, 차분한 밤공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하늘로 십 수 개의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어떤 불꽃은 곧고 바르게, 어떤 불꽃은 비틀거리며 올라갔지만, 모두 다 긴 빛의 꼬리를 펼치며 하늘을 향해 빠르게 솟구쳤다.
밤하늘을 가르며 올라간 불꽃들은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아델라인은 그 불꽃을 따라 고개를 위로 들어 올리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탄성과 함께, 아델라인의 입에서는 감탄의 말이 흘러나왔다.
“와… 정말 예쁘…….”
쾅! 쾅! 쾅!!
아델라인이 섣부른 감상을 마치기도 전에, 하늘에서 연이어 열 번가량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폭죽이 낼 만한, 화려한 불꽃에 따라오곤 하는 가벼운 폭음과는 그 무게감이 달랐다.
살벌한 폭발이 이어졌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델라인의 눈에는 충분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하늘을 수놓는 주홍빛 불꽃은 보는 눈을 즐겁게 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알렉스는 달랐다. 밤하늘을 수놓은 폭발의 횟수를 세어 본 그는 다급하게 아델라인을 들쳐 메었다. 아델라인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그는 서둘러 뒤로 뛰어나가며 다급한 목소리로 주변에 외쳤다.
“로켓탄 낙탄! 로켓탄 낙탄!! 로켓탄 낙탄!!”
주변의 수풀에서 진녹색 제복을 입은 대원들이 튀어나와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몸을 감출 만한 둔덕이나 바위 뒤로 몸을 급하게 숨겼다.
마찬가지로, 아델라인을 들쳐멘 알렉스는 한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그는 아델라인을 끌어안으며 자신의 몸으로 그녀를 덮은 채 엎드렸다.
“이, 이게 무슨 상황……?!”
퍽! 파각! 쿠당탕!
아델라인이 채 질문을 마치기도 전에, 그들 주위로 무언가가 떨어져 박살 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그러자 알렉스는 말없이 아델라인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완전한 정적이 흐르자 주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해 보고! 피해 보고!”
“다친 사람 없습니다!”
“경상 한 명!”
“부상자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알렉스는 그제야 아델라인을 품에서 풀어 주었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죠?”
그러나 그도 알 수 없다는 듯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분명 폭죽용 탄두를 전달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