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연대장들의, 영주들의 고뇌
그날 밤. 아델라인은 침대에 누워 고민에 빠졌다. 목재를 공급해야 할까? 그렇다면 얼마나 공급해야 할까? 무슨 조건을 내걸어야 할까?
고민이 이어졌다.
분명 큰 기회라는 건 알 수 있었지만, 그 기회를 어떻게 살려야 할지는 잘 알 수 없었다.
‘침실을 한번 잘 둘러보세요. 특히 침대맡.’
머릿속에서 떠오른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은 침대맡을 더듬었다. 그러나 아무리 더듬어 봐도, 손에 느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알렉스가 아무 말이나 했을 리는 없을 텐데.”
아델라인은 그 말을 중얼거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알렉스의 도움을 받아 볼까 싶었지만, 그녀는 직접 몸을 뒤집어 엎드린 채로 이부자리를 들쳐 보며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의 손에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금속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차가움. 아델라인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집어 들어 올렸다. 그러자 오래되어 먼지를 뒤집어쓴 열쇠가 나타났다.
그 열쇠를 보자, 아델라인의 머릿속에 한 대화가 떠올랐다.
* * *
이즐링턴에 온 첫날. 아델라인은 저택에 도착해 짐을 풀자마자 나이아가 건넨 연설문을 외워야 했다.
첫 연설이라는 생각에 절로 초조해졌다. 식사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끼니를 거르고 나이아가 써 준 연설문을 외우고 있을 때, 나이아가 간단한 간식과 함께 찾아왔다.
“챙겨 드시면서 하세요.”
“외울 시간도 없는데…….”
“이제 막 영주로 부임한 귀족 영애가 연설문을 보고 연설하는 건 흠이 아니에요.”
그리고 나이아는 단호한 표정으로 쟁반을 내려놓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자신들을 이끌어야 할 영주가 쫓기는 모습을 내보이는 건 흠이 맞아요. 특히 모든 사람 앞에서 하는 연설이라면.”
그 말을 하며 나이아가 다시 한번 간식이 담긴 쟁반을 아델라인을 향해 내밀자, 아델라인은 어느새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 진 종이를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나이아도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델라인이 간식을 입에 넣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이아는 그녀의 긴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도록 소소한 주제를 꺼냈다.
“아, 집사들 말로는 지하에 잠긴 문이 있는 방이 있는데, 그 열쇠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대요.”
“그래? 그러면 문을 따야…….”
“따지 마세요.”
그때 뒤에서 들려온 알렉스의 목소리. 뒤를 돌아보자, 한 손에는 음식을 담은 듯한 접시를 든 채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알렉스가 있었다.
“알렉스?”
“뭐… 우리끼리 저녁 해 먹다가 좀 남을 것 같아서. 저녁 안 먹었다 그래서 가져왔는데.”
알렉스는 접시를 내려놓은 뒤 부끄럽다는 듯 살짝 작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접시에는 갓 구운듯한 먹음직스러운 소시지가 올려져 있었다.
“우와. 맛있겠네요.”
그 소시지에 허기를 느낀 아델라인은 소시지를 입에 물었다. 겉은 미적지근했지만, 이로 깨물자 뜨거운 육즙이 톡! 터지며 그녀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그녀는 소시지를 입에 물고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잠시 미소를 지은 알렉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그곳은 그런 곳이에요. 열지 않아도 괜찮아요.”
방문을 나서며, 알렉스는 당부하듯 그녀에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니까, 일단은 그대로 두세요.”
* * *
“…이 열쇠가 저 방의 열쇠라고요?”
“맥락상?”
아델라인은 계단을 내려가며 나이아의 물음에 답했다. 촛대를 직접 들고 앞서 나가는 그녀의 목소리는 확신보다는 의심에 가까웠다. 하지만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 방에 뭐가 있는 줄 알고 이렇게 막 찾아가세요…….”
나이아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녀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
“여기 마녀의 저택이잖아요. 전에는 그 피오나가 머물고 있던 곳이었고요…….”
그때, 갑자기 촛불이 흔들리며 꺼졌다.
* * *
히익!
알렉스의 입에서 겁에 질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자 앞서 나가던 남자가 뒤를 돌아봤다.
“무서운 것이냐?”
“아, 아닙니다. 연대장님!”
애써 목소리를 내어 부정했지만, 던컨의 입에서는 피식, 하는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나왔다.
“자, 그럼 가자꾸나.”
그 말과 함께 던컨이 계단을 내려가자, 알렉스도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러나 빛 한 점 비치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알렉스는 디딜 곳을 찾지 못한 채 헤맬 뿐이었다.
그때, 몇 걸음을 앞서 있던 던컨의 발소리가 멎었다.
“두렵느냐?”
“…네.”
“왜 두려운지 아느냐?”
그 물음에, 알렉스는 뭐라 답해야 할지 갈피를 잃었다. 눈 앞을 가린 어둠은 점점 머릿속을 공포로 젖어 들게 하고 있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몰라서 두려운 것이다.”
던컨의 목소리에, 공포에 질려 보이지도 않는 바닥만을 바라보던 알렉스의 고개가 들렸다.
“혹시 자신을 위협할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닌가, 앞으로 나아가도 디딜 계단이 없는 게 아닌가. 미약한 빛만 있어도 힘도 못 쓸 그 생각들이 무의식을 지배하고 너의 행동을 막는 것이다.”
“…….”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으냐.”
잠깐의 침묵, 그 뒤로 알렉스의 답이 정적을 깼다.
“기억을 떠올리고 주변을 짚어, 제 상황을 가늠합니다.”
“해 보거라.”
그 말에, 알렉스의 손이 벽을 더듬었다. 그러자 이내 난간이 그의 손에 느껴졌다. 알렉스는 난간을 잡은 뒤, 천천히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한 번 걸음을 내디디자, 다음 걸음을 내디디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자, 어느새 계단은 끝나 있었다.
“잘했다. 자, 들어와라.”
그때, 묵직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철컹. 끼이익.
문이 열리고, 꺼졌던 촛불에 다시 불이 붙었다.
“살면서, 그런 캄캄한 순간이 올 것이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올 것이고, 앞으로 나아가기 두려울 때가 찾아오겠지.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러자 알렉스의 눈에, 책으로 가득 들어찬 서재가 들어왔다. 던컨의 서재에 있을 법한 양장 책도 있었지만, 대부분 공간은 서류들을 엮은 묶음들과 손때가 가득 탄 공책들뿐이었다.
그 안으로 발을 들이며, 던컨은 말을 이어 나갔다.
“들어오거라, 이곳은 지금까지 앞서 지나간 영주들이 그 캄캄한 순간에 했던 고민이 남아 있는 고해성사의 장이자.”
던컨은 미소와 함께 알렉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부턴 네 서재다.”
* * *
“…크네요.”
“그러게.”
간신히 계단을 내려와 나이아가 양초에 불을 붙이자, 책과 종이 더미가 한가득 들어찬 서재가 눈에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가자, 그동안 쌓인 먼지가 온 곳에 두껍게 쌓여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오래 방치된 장소임을 파악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알렉스는 대체 무슨 이유로 이곳에 오라고 했을까. 아델라인이 고민하던 찰나, 그녀의 눈에 익숙한 이름이 들어왔다.
[리처드 C 던컨.업무 일지 #1]
던컨의 마지막 업무 일지. 아델라인은 책장에서 일지를 꺼낸 뒤, 먼지를 털어 내고 중간부터 펼쳐 읽기 시작했다.
알렉스가 태어나기 1년 전. 전임 연대장의 뒤를 이어 이즐링턴에 부임한 그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단조로운 제국 본토에서의 일상과 변화무쌍한 타국의 전장.
그 두 개의 이야기를 모두 담은 일지를 훑어보던 그녀는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 오늘, 목재를 다루는 상인들이 찾아왔다.– 이즐링턴의 벌목권을 얻기 위해 온 상인이었다.
– 기반 산업이라고는 농지 1헥타르도 없으며, 오직 병사들과 장교들의 월급만이 유일한 수입인 이 이즐링턴에 비로소 터전을 갖추고 사람을 정착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 이 좋은 조건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 싶었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조건을 들고 왔기에 상인들을 돌려보냈다. 전대 연대장들이 받은 조건보다도 안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 있을까. 물가는 오르고, 다른 영지는 발전해 가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숲과 병영만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 이러다 연대가 해산되는 날이면 다들 살기 위해 흩어질 게 분명했다.
– 동일 면적의 신대륙 벌목권의 2분의 1 가격.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안 하고 말지.]
정갈한 글씨의 다른 문장과 달리, 마지막 문장은 감정이 실려 있는 걸 단번에 구별할 수 있었다. 그 일지를 내려놓은 아델라인은 다른 영주들의 일지를 연이어 살펴봤다.
역대 연대장들이 최소 한 번, 많게는 열 번 넘게 받은 제안이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상인들은 군인인 연대장을 상대로 헐값에 벌목권을 넘길 걸 제안했고, 모두가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일지에 남은 그들의 문장에는, 아쉬움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그들이 공통으로 고민했던 것은 ‘벌목권을 파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이상, 그 너머의 미래를 고민했던 그들이었지만, 그들은 군인이었지 상인이 아니었기에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 그들의 발자취에서, 아델라인은 답을 찾아냈다.
“…나이아.”
“네?”
“내일은 여기부터 청소시켜. 오늘부터 내 서재는 여기야.”
* * *
3일 뒤.
“곧 도착합니다, 상무님.”
비서의 말에, 마일즈 스틸웰은 창밖을 바라봤다. 이즐링턴의 유일한 진입로조차 이제 막 포장 공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목재 수급 문제가 아니었다면 찾아올 일이 없었을 이런 촌구석에 아델라인이 있다는 게 쉽사리 머릿속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남부에 퍼져 있는 회사의 정보원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아델라인은 직접 이즐링턴에 머물며 영지를 다스리고 있고, 그녀는 최근 남부 귀족 영지들에서 벌어진 영지군 해산 상황에 깊게 연관되어 있다.
“이즐링턴에서 무력 충돌이 있었던 게 맞나?”
“네, 귀족 영지들의 치안 유지 업무를 담당하던 붉은 늑대 용병단과 카펜타리아 용병단이 4월 말 이후로 자취를 감췄습니다.”
비서의 보고에, 마일즈의 눈매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즐링턴에는 기반이라는 게 전무한 상황이었는데, 어떻게 그 상황을 이겨 낸 거지.
물론 라이플맨들이 있었다 하나, 정보원들이 추산한 그들의 수는 많이 잡아도 열 명이었다. 운신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이즐링턴은 아델라인이 부임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찾아온 강력한 위협을 해결하고 그 뒷마무리까지 끝낸 뒤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정보를 정리한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쉽지 않겠어.”
이제는 고작 비스킷 공장을 가지고 있는 사업주를 소개해 주겠다는 조건으로 부탁을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때보다 아델라인은 더욱 성장했으며, 그 실력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스워포드를 통해 아델라인이 자신을 초대하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델라인의 호의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녀라면 스틸웰 공업이 처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거고, 목재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최대한 많은 이득을 뽑아내려 할 것이다.
자신이 그녀라면 그렇게 할 것이므로.
그때, 비서가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도착했습니다, 상무님.”
그의 말에 창밖을 보자, 병풍처럼 나무에 감싸인 아담한 저택이 보였다. 잠시 뒤, 저택의 사용인들이 마차로 다가와 문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스틸웰 상무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집사로 보이는 이의 마중을 받으며, 마일즈는 마차에서 내렸다.
“이쪽으로.”
집사는 한쪽 팔로 현관을 가리키며 그를 안내했다.
“영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