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사람 하나를 찾으려고
“자, 정말 오랜만이군. 커크먼 교수, 그리고 이즐링턴 여남작…이라 불러야 하겠지? 다들 그동안 잘 지냈나?”
그동안 각자의 사정으로 미루고 미루던 재건위원회의 회의가 근 몇 개월 만에 마일즈 의원의 안부 인사와 함께 열렸다.
“네, 부수상님. 염려해 주신 덕분에.”
“저야 뭐 애들 가르치는 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부수상님께서는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낯간지러우니 부수상 소리는 그만하게. 뭐, 어찌어찌 해내는 중이지.”
그의 겸양 섞인 말과 달리, 눈가에는 짙은 피로가 묻어나 있었다. 기존의 수상을 대신해 내각을 이끌어 가고 있다 해도 무방한 마일즈의 위상은, 점점 대체 불가능한 정도로 높아지고 있었다.
육군은 자신의 인맥을 통해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해군은 황후파 인사를 좌천시키며 얻은 타 파벌의 지지를 통해 최소한의 방향성만을 제시한 뒤 자율에 맡긴다. 필즈먼이 전시 사령관으로 취임하며 구상한 방안은, 마일즈의 힘으로 빛을 보고 있었다.
“신대륙에서 주로 수입하는 목재의 수급에 일시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었지만, 다행히 남작 덕분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네. 수도 남부와 하루 거리인 목재이니만큼 우선권을 뺏기지 않을 수 있겠지.”
“전시에는 목재 사용 우선순위가 해군부터니 말이지요. 이렇게 보면 전쟁은 자원을 잡아먹는 레비아탄이라는 생각마저 드는군요.”
“자원만 잡아먹나. 사람도 국고도 뜯어먹는 괴수지. 자, 아무튼 일이나 하세. 그래야 차라도 한잔하면서 이야기 나눌 틈이 생길 테니.”
그 말에, 나머지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인 뒤 회의를 이어 나갔다. 몸이 기억하고 머리가 기억하는 호흡이었기에, 의사 결정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대부분 안건이 예상대로 흘러갈 때, 마일즈의 입에서 예상 밖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아, 전황 보고를 들어보니 이번 전쟁의 전상자와 유가족에게 배분할 주택의 수는 기존 배정치의 8할로 줄여도 될 듯하네.”
“2할이나 줄인다고요?”
아델라인의 물음에, 마일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 전상자 수치를 이전 전쟁에 기반해 잡았는데, 우리 측 전상자가 생각보다 덜 나왔지 뭔가.”
“좋은 겁니까?”
커크먼의 질문에, 마일즈는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현장의 장교나 병사들에게는 아무렴 좋은 일이겠지만… 문제는 본토의 분위기란 말이지. 특히 의회의 주전론자들 말이야.”
그는 메모용으로 쓰고 있던 종이를 뒤집은 뒤, 빈 공간에 구대륙의 대략적인 지도를 그렸다.
“분명 1분기만 해도 프룬츠베르크 전역에서는 꽤나 큰 성과를 거뒀어. 도이치 지역을 넘어 프랑크 왕국 본토에 닿을 기세였지. 그런데 어째 저번 달부터는 다시 밀리는 모양새란 말이야?”
그는 지도 위에 선을 쓱쓱 그어 전선의 변화를 보여 줬다.
“특히 중부 전선이 밀려서 원점으로 돌아온 모양새라, 내각의 분위기가 많이 안 좋아. 뭐, 프랑크 왕국이 원체 육군 강국이기도 하니 예상 못 한 바는 아니지만… 필즈먼 그놈도 압박을 꽤 받고 있을 거로 생각하네.”
“전쟁이 길어질까요?”
“그놈은 유연한 놈이니, 후퇴 중 장비와 병력 손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마일즈는 심란해진 마음을 다잡아 보려는 듯 무의식적으로 여송연을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며 중얼거렸다.
“전시의 장성에게 필요한 건 오히려 군사적 능력보단 정치적 능력이니 말이야. 필요해지면 그런 쪽으로는 어떻게 도움을 줘 봐야겠지. 그놈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다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단 말이지.”
마일즈는 그렇게 말하며 씁쓸한 표정으로 연기를 내뱉었다. 그러다 담배를 안 피우는 두 사람을 뒤늦게 의식하고는 여송연을 끈 마일즈는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주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곧 사교 시즌인데,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나?”
그러자 아델라인의 머릿속에서 며칠 전 대화가 떠올랐다. 한 번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공작이 자신을 향해 언성을 높이는 장면이 머릿속을 채웠다가 흩어졌다.
“네.”
아델라인은 고개를 살짝 끄덕여 답했다. 그러자 마일즈는 그녀를 향해 몇 가지 제안을 건넸다.
“이번 사교 시즌에 열리는 육군성 연회에 참석할 생각은 있나? 대위와 함께라면 문제는 없을 테니, 언질을 넣어 두겠네. 자유당 창당 40주년 연회에도 초대 목록에 올라가 있으니 일정 보고 참석 여부를 알려 주게.”
당연하다는 듯 알렉스와 함께일 거라는 전제로 이야기를 하는 마일즈. 그 말을 듣자, 아델라인의 표정이 일순간 흔들리고 말았다. 이번 연회에는 알렉스가 없을 텐데 이 대화가 무슨 소용일까.
그때, 표정에서 무언가를 알아챈 커크만이 아델라인을 향해 물었다.
“대위는 요즘 많이 바쁜가?”
“그래도 시간 내서 계속 만나고 있어요. 하지만 문제는 제 쪽이라…….”
아델라인의 말에, 두 사람은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 사교 시즌의 파트너는 대위가 아니라…….
“마일즈 스틸웰 상무랑 같이 다니라 강권하셔서.”
그 말에 마일즈 상무의 얼굴을 떠올린 두 사람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뭐. 나이 차이도 나고, 사업 파트너이기도 하니. 뒷말은 나오지 않겠다만…….”
커크만은 이마를 짚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씁쓸한 건 어쩔 수 없겠지요. 같이 다니기 이만한 시간도 없을 텐데.”
침울해진 분위기. 그러나 이 분위기를 끌고 가기 싫었던 마일즈는 급히 또 화제를 틀었다.
“그나저나 대위는 요즘 뭘 하고 있는가? 이즐링턴에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말이야.”
* * *
스워포드는 카빈 끝에 달린 총검을 바라봤다. 무광 처리를 한 총검의 끝은 예리하기 그지없었다. 보통의 검에서 나타나는 번뜩이는 빛은 없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치명적이었다.
뒤를 돌아보자, 라이플을 한 손에 든 알렉스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었다. 잠시 그와 눈을 마주친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미는 간단했다.
진입.
그 지시에 스워포드는 카빈을 고쳐 쥔 뒤 개머리판으로 문고리를 내리쳤다. 황동 손잡이가 허무하게 부서지자 곧이어 문짝을 뒤로 돌려찬 그는 카빈을 겨누고 알렉스와 함께 방 안으로 진입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두어 명의 사내들이 급히 책상의 무기를 집어 들려 하는 게 보였다. 그러나 알렉스의 피스톨이 먼저, 책상의 피스톨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탄에 맞은 피스톨이 순식간에 책상 위에서 떨어졌다. 아직 숙련된 정보원은 아닌지, 그 상황이 되자 두 사람은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스워포드는 그들의 등에 총검을 들이대며 지시를 내렸다.
“손들어. 당장.”
잡기 직전이었던 무기가 손에서 멀어지자, 두 사람은 순순히 손을 들며 알렉스를 노려봤다. 처음에는 반항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이내 더 많은 라이플맨들이 올라와 방 안을 뒤지기 시작하자 체념하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모든 방 확인 마쳤습니다.”
“정보국 양반들 곧 온다니까, 잠시 대기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알렉스는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린 뒤, 다른 방으로 향했다. 평범한 사무실로 꾸며져 있는 방. 하지만 무언가가 그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때, 그의 눈에 양탄자가 보였다. 알렉스가 그 양탄자를 들춰 보자, 자그마한 쪽문이 나타났다.
“쪽문이네. 혹시 랜턴 가지고 있는 사람?”
“직접 들어가 보시게요?”
“한번 들어가 볼 테니, 기다리고 있어.”
알렉스의 말에, 라이플맨 중 한 명이 그에게 랜턴을 내밀었다. 그사이 피스톨 재장전을 마친 그는 랜턴을 켠 뒤, 쪽문을 열었다.
랜턴의 불빛에 의지해 사다리를 내려가자, 물비린내가 조금씩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러자 알렉스는 급하게 사다리에서 뛰어내린 뒤 피스톨을 꺼내 들며 인기척을 향해 랜턴을 비췄다.
“손들어.”
알렉스의 말에, 상대방은 천천히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을 내려놓고 손을 들었다. 랜턴의 밝기를 키우자, 알렉스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익숙한 은발과 녹안. 그 얼굴에 이름을 대입시키는 건 순식간이었다.
“베르티에 중령.”
“오랜만이군 대위. 그동안 잘 지냈나.”
“이번 방문은 외교관 자격 아니라 얄짤없을 텐데 말입니다. 이리 오십쇼.”
피스톨을 겨눈 채 그를 바라보는 알렉스의 단호한 목소리에, 베르티에는 알렉스를 향해 서류 가방을 툭, 차 밀었다.
“좀 봐주게. 그걸로 값을 치를 테니.”
“뭡니까?”
서류 가방을 곁눈질로 흘끗 바라본 뒤 다시 베르티에를 노려보는 알렉스의 물음에, 베르티에는 짐짓 여유로운 표정을 꾸며 내며 알렉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뭔지는 자네들이 보면 알겠지. 안 그런가?”
알렉스는 한걸음 앞으로 나가며 뒤꿈치로 서류 가방을 뒤로 밀어낸 뒤, 베르티에를 향해 눈웃음을 지으며 그를 따라 되물었다.
“조금 부족한데. 어차피 당신을 쏘면 이것도 우리 거 아닌가?”
“…쯧. 운도 없으려니.”
반쯤 체념한 표정을 지어 보인 베르티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잠시 숨을 골랐다. 그다음 순간, 그는 손을 품속에 넣으며 알렉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단검이 들려 알렉스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그렇게 베르티에의 손에 들린 예리한 칼날이 알렉스의 목을 찢어 놓으려는 찰나, 알렉스가 그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제안을 할까 하는데.”
그 순간, 베르티에의 손이 멈췄다. 그때 가슴에서 느껴진 서늘한 감각에 아래를 내려다보자, 알렉스의 피스톨이 그의 명치를 겨누고 있었다.
“…무슨 제안?”
베르티에가 알렉스의 목에서 단검을 거두자, 그도 피스톨의 총구를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사람 하나를 찾고 있는데 말입니다.”
“누구?”
베르티에의 물음에, 알렉스는 기억에서 한 이름을 끄집어냈다.
“호더빌 주둔 여단 32 보병대대 앙리 바스통 소위. 내 기억이 맞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