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비밀 의상
시간은 흐르고 흘러 토요일. 아델라인은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건 검술 교범. 메모까지 하며 집중하는 모습에, 나이아는 그녀를 바라보며 질문을 했다.
“검술에 흥미가 생기셨나요?”
“때려 주고 싶은 사람이 생겨서.”
“대위님 말씀이신가요?”
“응.”
“하긴, 몇 분 동안 계속 검을 휘두르셨는데 한 번도 유효타를 내지 못했다면서요?”
“보고 있었어?”
아델라인이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히며 묻자, 나이아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다른 사용인들 말로는요.”
“…부끄럽네.”
“공녀님은 배우시는 중이잖아요. 대위님은 관록 있는 군인이시고.”
“전혀 위로가 안 되는 말인데.”
아델라인은 그렇게 말하며 교본을 내려놓았다. 도움이 되는 것 같기는 한데, 역시 직접 몸을 움직여 봐야 뭐가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 밤에는 조금 더 연습해 봐야겠어.”
“조금 있으면 사교 시즌인데도요?”
“그러니까 연습해야 하지 않을까? 일종의 호신술처럼.”
“…검 차고 들어가실 건 아니잖아요.”
“혹시 모르지?”
아델라인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시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공녀님, 부티크의 디자이너가 드레스룸에서 준비를 마쳤습니다. 대위님도 드레스룸으로 모셨습니다.”
“그래, 바로 갈게. 나이아, 가자.”
아델라인의 말에, 나이아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뒤를 따랐다. 드레스룸으로 가자, 시녀의 말대로 알렉스가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왔어요?”
“오늘 해야 할 일만 빠르게 끝내고 왔죠. 어차피 주말은 별일 없으면 많이들 외출 신청하니까요. 그나저나…….”
알렉스는 앞으로 시선을 돌리며 아델라인에게 물었다.
“보통은 이렇게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오나요?”
알렉스가 향한 방향을 바라보자, 아델라인은 그만 입을 턱, 벌리고 말았다. 드레스룸 한편을 가득 채운 드레스 견본품들과 테이블 위에 잔뜩 올라가 있는 장신구들, 그리고 나란히 선 채 아델라인을 맞이하는 부티크의 직원들.
“어… 음.”
잠시 말을 잃은 그때, 중년의 여성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좋은 오후입니다, 여남작님. ‘콘월리스 37번지’ 부티크의 수석 디자이너, 아그네스 먼로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델라인 폰 로피츠입니다. 수석 디자이너가 직접 와 주실 줄은 몰랐네요.”
“마일즈 상무로부터 특별히 부탁을 받았으니까요. 제 쪽에서도 놓치고 싶지 않은 고객이기도 하고. 자, 그러면 의뢰를 시작하시지요.”
아그네스의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세 사람이 소파에 앉자, 시녀가 차와 다과를 가져와 내놓았다.
“일단 세부적인 도안 선정에 앞서, 방향성을 가늠하기 위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실까요?”
“오히려 좋지요. 말씀해 주세요.”
“훈장을 받으셨다 알고 있는데, 혹시 패용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모든 일정에서 패용할 생각입니다.”
“알겠습니다. 특히 아끼시는 장신구가 있으실까요?”
그 물음에,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잠시 바라본 뒤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 있어요. 목걸이와 브로치 각각 하나씩.”
“그것들을 볼 수 있을까요?”
“네, 당연하죠. 나이아.”
“곧바로 가져오겠습니다.”
아델라인의 부름에, 나이아는 곧바로 대답한 뒤 아델라인의 침실로 향했다. 그사이 아그네스는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 나갔다.
“드레스에서 공통적으로 원하시는 분위기가 있을까요? 화려함이라든지, 단아함이라든지. 떠오르시는 대로 말씀해 주셔도 괜찮아요.”
그녀가 메모장을 꺼내 들며 묻자, 아델라인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니면 일정을 말씀해 주셔도 조언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일정도 정해 버릴까요.”
아델라인이 알렉스를 바라보며 묻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러면 자유당 창당 40주년 연회에 초대받았는데, 어떨까요?”
“아, 큰 문제는 없는데 제복 차림으로는 절대 못 가요. 연미복을 하나 준비해야겠네요.”
알렉스의 말에, 아그네스가 알렉스를 향해 말했다.
“연미복도 준비해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은 드레스 견본만 가져왔기에 치수를 재는 것만 도와드릴 수 있지만, 이를 부티크의 남성복 전문 디자이너에게 인계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요, 알렉스. 이왕이면 같은 곳에서 맞추는 게 좋겠죠.”
아델라인의 제안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비용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든 비용은 저희 부티크에서 부담하니까요.”
“네? 부티크에서 모든 비용을… 말인가요?”
그 물음에, 아그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작년까지만 해도 제 직원 중에는 남부에 살며 출퇴근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집세가 싸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그녀는 수개월 전을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큰불이 났는데도, 부티크의 모두가 몸을 건사할 수 있었던 건 두 분의 역할이 컸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직원들 챙기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니… 이렇게라도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건네는 감사 인사에, 아델라인과 알렉스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보답을 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약간 쑥스럽긴 해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항상 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저야말로, 이렇게 모실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자, 그러면 계속 의논을 하시죠. 자유당의 연회에서는 보석을 이용해 드레스를 꾸미는 것보다는 단색의 드레스가 장내 분위기에 어울릴 듯합니다.”
그 말에, 아델라인은 미소를 지으며 아그네스에게 말했다.
“화려한 것보다는 검소한 쪽이 좋을 것 같네요. 전체적으로 깔끔했으면 좋겠어요.”
아델라인의 말을 들은 아그네스는 턱에 손을 가져가며 수 초간 고민했다. 머릿속에 저장된 수많은 도안을 순식간에 훑어 낸 그녀는 아델라인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흠… 챙겨 온 견본들 중에서 몇 가지 비슷한 것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아델라인이 원하는 방향을 깨달은 듯, 아그네스는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견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사이,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바라보며 의논을 이어 나갔다.
“아, 그리고 육군성 연회가 있는데…….”
“육군성 연회… 살짝 무서운데요?”
“왜요?”
“장교들이 많을 거 아니에요. 그것도 고위 장교로. 물론 수도사단의 장교들도 거의 다 참석하겠지만.”
“에이, 겁먹고 물러나는 거예요? 겁쟁이네.”
아델라인의 가벼운 도발에, 알렉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가 말했다.
“그건 아닌데. 뭐, 가고 싶으시다면 동행할게요. 근데 드레스 코드가 있는데, 그건 알고 있는 거죠?.”
“드레스 코드요?”
그때, 아그네스가 조수들과 함께 드레스 견본을 들고 오며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기본적인 바탕색은 붉은색. 예외가 인정되는 경우는 다른 색을 쓰는 부대의 제복을 모티브로 한 복장만 가능해요. 보통은 가문이 후원하고 있는 부대의 제복을 드레스로 개조해 입죠.”
아그네스의 말에, 아델라인의 머리에서는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알렉스를 잠시 바라본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먼저 치수 재고 있을래요? 디자이너님께 긴히 말할 게 있어서요.”
그러면서 아델라인이 아그네스를 바라보자, 아그네스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조수들에게 말했다.
“대위님의 신체 치수 측정을 먼저 도와드리렴.”
“알겠습니다.”
그러자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향해 무슨 일을 꾸미는 거냐는 눈빛으로 바라본 뒤, 자리에서 일어나 조수들에게 이끌려 방 다른 쪽으로 향했다.
그가 충분히 멀어지자, 아델라인은 아그네스에게만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낮춰 나지막이 말하기 시작했다.
알렉스가 그 대화를 들으려 눈을 찡그리고 귀를 기울이는 게 보였지만, 원체 거리가 있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한참을 시도해도 들리지 않자, 알렉스의 시선에 의심이 가득 차올랐다. 그 시선이 얼마나 매서운지 피부가 따끔따끔할 정도였다.
아델라인이 그 시선을 이겨 내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말하자, 아그네스는 알렉스를 흘끗 바라본 뒤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뭐… 어렵지는 않을 것 같네요. 오히려 신선할 수도 있을 거고.”
“그렇죠?”
“처음 도전해 보는 디자인이니, 시간이 꽤 걸릴 수도 있습니다. 우선 도안을 몇 개 준비해 전달하겠습니다. 그중 마음에 드시는 게 있으면 제작으로 옮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사이 측정을 마친 알렉스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거예요?”
그의 물음에, 아델라인은 아그네스를 향해 살짝 윙크한 뒤 알렉스를 향해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드레스에 이러이러한 게 들어갔으면 좋겠다 하는 걸 말한 것뿐이에요. 그렇죠?”
아델라인의 말에, 아그네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스의 시선에 담긴 의심이 더욱 증폭되었지만, 결국 그는 한숨을 푹 쉬며 앉고는 차를 홀짝였다.
“드레스는 다 골랐어요, 아델라인?”
“이제부터 골라야죠. 그럼 드레스를 보여 주시겠어요?”
아델라인의 부탁에, 아그네스는 조수들에게 손짓해 드레스를 들어 보이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체념한 듯했던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향한 의심의 시선을 아직 거두지 않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 감추기 있어요?”
“감추다니, 너무하네요. 감추는 게 아니라, 잠시 뒤로 미루는 거예요.”
아델라인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알렉스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기대해요, 실망하지는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