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내기
“알렉스.”
“…왜요.”
아델라인의 부름에 반 박자 늦게 따라오는 무미건조한 알렉스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은 아델라인은 읽고 있던 책을 덮은 뒤 알렉스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어제 몇 시간 잤어요.”
“…그래도 좀.”
“여기서 ‘잤다’의 기준은 관사에 들어가서 베개에 뒤통수 붙이고 이불 덮은 뒤 숙면한 거예요.”
아델라인의 엄격한 기준을 들은 알렉스는 차마 거짓말은 할 수 없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알렉스에게 커피를 건네려는 나이아의 손에서 잔을 뺏어 든 뒤 그에게 말했다.
“좀 눈이라도 붙이고 오지 그랬어요.”
“한번 누워 버리면 그대로 못 일어날 것 같아서 급한 일 처리하고 여기로 왔죠… 커피라도 좀 마시면 나아질 겁니다.”
그러니까 손에 들고 있는 그것 좀 주세요, 라고 말하는듯한 알렉스의 간절한 눈에, 아델라인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커피잔을 내어 줄 뻔했다. 그러나 간발의 차로 정신을 차린 그녀는 알렉스를 바라보며 그를 향해 쏘아붙였다.
“옷도 어제 입고 있던 제복 그대로인데. 오늘 일정은 정장 입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가방에 챙겨 왔어요. 한 시녀가 다려 주겠다고 해서 맡겨 놓았고. 제복을 입으면 안 되는 곳은 아니지만, 되도록 맞추는 게 좋겠죠.”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눈을 바라봤다. 겉으로는 계속 여유를 가장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 선 실핏줄이 그의 피로를 보여 주고 있었다.
아델라인은 한숨을 푹 쉰 뒤, 알렉스의 손목을 붙잡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알렉스는 순순히 그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당황한 목소리로 그녀를 향해 물었다.
“어디로 가요?”
“어디긴요.”
아델라인은 복도를 지나 침실 문을 직접 열며 알렉스에게 말했다.
“잠 좀 자라고요.”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등을 떠밀어 침실 안으로 들여보낸 뒤 문을 닫으며 말했다.
“오늘 갈 곳은 기업가 연합회 주최 포럼이잖아요. 가서 졸면 어쩌려고.”
“그건… 그렇죠.”
알렉스의 고집이 어느 정도 꺾인 걸 눈치챈 아델라인은 서랍장을 뒤져 슬리퍼 한 켤레를 꺼내며 말했다. 거의 모든 것이 아델라인에게 맞춰져 있는 이곳에서, 다른 이에게 맞춰진 몇 안 되는 물건 중 하나였다.
“일단 구두부터 벗고.”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 자면 진짜로 못 일어날 것 같은데.”
“일단 신발부터 갈아 신고 말해요.”
아델라인이 단호한 목소리로 그의 웅얼거림을 꺾으며 슬리퍼를 품에 안기자, 알렉스는 할 수 없이 구두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그사이 아델라인은 그의 제복 코트를 벗기고 벨트를 풀며 서서히 침대 앞으로 이끌었다. 그의 몸을 싸맨 제복의 품이 한결 느슨해지자, 알렉스의 몸에서는 점점 더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의 몸에서 힘이 빠져 흐느적거리면서도 마지막 고집이 그의 발을 침대 앞에서 붙들어 매자, 아델라인은 가차 없이 그를 침대로 밀어 넘어뜨렸다.
그가 아델라인의 손에 떠밀려 힘없이 침대에 엎어지자, 아델라인은 침대의 빈 공간에 앉아 온 힘을 다해 그를 눕힌 뒤에 그의 옆에 따라 누웠다.
“자, 여기 베개요.”
아델라인이 하나뿐인 베개를 그의 머리 밑으로 넣어 주자, 알렉스는 순순히 그녀의 손길에 따르면서도 그녀를 향해 물었다.
“아델라인은……?”
그러자 그녀는 그의 한쪽 팔을 끄집어내 베며 말했다.
“이게 더 편하더라고요, 저는.”
“그런가요…….”
어느새 잠기운이 스며든 그의 나른한 목소리를 들으며,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향해 물었다.
“어제 얼마나 일을 했길래 그런 거예요.”
“일의 양보다는 일의 성격이 문제였죠, 어제는…….”
알렉스는 눈을 천천히 끔뻑이며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자기 순서가 나중이냐 따지는 귀족들… 권한도 없으면서 자기에게 범인을 넘기라는 황후궁 인사들… 귀족들 등쌀에 떠밀려 도움을 요청하는 경비대 간부들…….”
알렉스는 피식 웃으며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일주일을 밤을 새워도 어제보단 덜 피곤했을 것 같더라고요.”
그 말에,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머리카락을 쓸어 주며 그에게 말했다.
“지금은 자요, 때가 되면 제가 깨워 줄게요.”
“저번에는 먼저 자 버렸…으면…….”
알렉스는 결국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그대로 눈을 감으며 잠에 빠지고 말았다.
잠시 뒤 그가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는 걸 확인하자, 아델라인은 그의 팔을 베개 삼아 완전히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천장을 눈에 담으며, 아델라인은 한 가지 소원을 되풀이했다.
이런 평화로운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이즐링턴의 남작이니, 로피츠 공작가의 후계자니 하는 걸 모두 내던지고, 단둘이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생각을 하며, 아델라인의 눈도 천천히 감겨 갔다.
* * *
세 시간 뒤. 오후 4시.
“…깨워 준다면서요?”
알렉스의 짓궂은 물음에, 아델라인은 얼굴을 붉히며 마차의 창밖을 바라봤다. 자신도 그렇게 잠들어 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나이아가 스틸웰 상무에게 미리 말해 두지 않았으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저도 잠들 줄 누가 알았나요…….”
아델라인이 나지막이 항변하려 입을 열었지만, 그 바람에 하품이 덩달아 나오고야 말았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알렉스는 아델라인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다음, 그는 그녀의 머리를 끌어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
“피곤하면 눈 좀 붙여요.”
그 말에,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어깨에 순순히 기대었다. 잠기운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그의 어깨에 의지한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그의 어깨에 기댄 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두 사람이 탄 마차는 어느새 증권가 한가운데의 한 대리석 건물 앞에 멈춰 섰다.
그러자 건물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성이 마차로 다가와 마부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는 마차를 건물 안뜰로 인도했다.
마차가 멈춰 서고 마부가 문을 열자, 아델라인과 알렉스는 마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마차를 인도한 남자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좋은 오후입니다, 남작님. 그리고 대위님.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늦는다는 연락을 미리 받아 둔 건지, 그는 곧바로 두 사람을 안으로 안내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수행원들로 보이는 이들이 제공된 간식을 맛보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보였다.
“때마침 중간 쉬는 시간이라, 안으로 바로 들어가시면 될 듯합니다.”
남자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인 뒤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회장 안은 가벼운 잡담들로 적당히 활발해져 있었다.
어디가 자신들의 자리일까 둘러보고 있을 그때, 그녀를 향해 누군가가 살짝 손을 들어 보였다.
“여기입니다, 두 분.”
마일즈 스틸웰과 같은 테이블에 비어 있는 두 자리. 아델라인과 알렉스는 그 자리에 앉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상무님.”
“죄송할 것까지야. 어제 있었던 일을 모르는 게 아니니까요. 이미 이곳의 많은 분이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신문에 나오기 전의 정보가 진짜 돈이 되는 정보니까요.”
그러자 아델라인도 같이 미소로 답했다.
“맞는 말이네요. 그나저나 목재 사정은 어느 정도 괜찮아지셨나요?”
“덕분에.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어제부터 벌목을 시작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영지에 사람들도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 약속하신 사항은 지켜 주셔야 합니다.”
계약 조건을 상기시켜 주는 아델라인의 말에, 마일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당연하지요. 돈 몇 푼에 팔아먹을 신뢰라면 시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 포럼이 재개되었다. 짤막한 발표와 질의응답이 계속 오갔다. 많이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아델라인은 전체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마저 벅찼다.
역시 돈은 함부로 다루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어느새 포럼의 모든 순서가 끝이 났다.
“자, 그러면 내빈들께서는 진행 요원의 안내에 따라 연회장으로 이동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과 함께, 홀의 문들이 일제히 활짝 열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 요원이 안내하는 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델라인과 알렉스도 마찬가지. 마일즈 상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홀을 나와 복도를 걷자, 또 다른 홀이 나타났다. 화려한 장식들, 현란한 곡을 연주하는 악단, 그리고 희망찬 웃음소리가 가득 채운 분위기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화려하군요.”
알렉스의 말에, 마일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1년을 살아남은 보상이라 생각하면, 다르게 보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위.”
“살아남은 보상이라고요?”
아델라인의 물음에, 마일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곳에 초대받는다는 건, 단지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것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곳의 초대장을 받은 사람은…….”
그는 잠시 어휘를 고민하듯 턱을 잡고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을 마무리했다.
“그만한 부를 지난 1년간 지켜 내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지요. 물론 남작님처럼 특별한 경우도 있지만.”
마일즈는 샴페인 잔을 손에 잡으며 말을 이었다.
“내년에 다시 이곳에 얼굴을 비출 수 있는 사람은 남작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적을 겁니다. 자, 그러면 가볍게 건배를 할까요.”
마일즈의 제안에, 아델라인과 알렉스는 음료 잔을 들며 마일즈의 잔에 잔을 부딪쳤다. 그렇게 대화를 시작하자, 한두 명씩 그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마일즈와의 인맥으로, 누군가는 아델라인과 연회장에서 이야기를 나눈 인연으로. 세 사람은 잔을 계속 비우고 또 잡으며 활기차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이번에 목재 물량에 숨통이 트이게 된 게 남작님께서 힘을 써 주신 덕분이라 들었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얻는 게 있는 거래였는걸요. 오히려 힘을 써 주신 건 기회를 열어 주신 마일즈 상무의 몫이 크죠.”
“지난 남부 재건사업 사업자 선정 때 보이신 모습 덕분에 청렴하다는 건 널리 알려졌지만, 이런 겸손한 성격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진실을 말할 뿐입니다. 하지만 칭찬은 감사히 듣겠습니다. 칭찬은 아무리 많이 받아도 뇌물수수로 재판받지 않으니까요.”
아델라인의 재치 있는 한마디에, 다른 이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어느새 아델라인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그녀를 향해 질문했다.
“혹시, 남작님께서는 증거금 제도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