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16
16화 이멜다의 봄
오후는 완전한 저녁이 되었고, 해가 있던 자리에는 달이 떠올랐다. 푸르던 하늘에 어느새 검은 장막이 덮이자, 황궁은 그 화려함을 더해 나갔다.
무도회는 어느새 점점 열기를 더해 갔고, 악단은 계속해서 새로운 곡을 연주했다. 연주자들의 손가락이 현란하게 움직이고 참석자들의 스텝도 더욱 템포를 높여 나갔다.
그리고 그사이, 아델라인은 완전히 기진맥진한 채 테라스 난간에 빨래 널 듯 널려 있었다.
“하아…….”
누가 누군지 알 도리가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듣고 적당히 맞받아치는 건, 도저히 혼자서 할 수 없는 기예에 가까웠다.
“많이 피곤하신가요?”
그런 그녀에게, 나이아는 시리도록 차가운 잔을 건네며 아델라인의 상태를 확인했다.
“고마워. 조금 많이 피곤하네.”
아델라인이 미소를 지으며 나이아가 건넨 잔을 받아 들었다. 시원한 음료가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정신이 한층 맑아지는 게 느껴졌다.
아델라인은 나이아를 바라봤다. 그녀 덕분에 이전의 기억이 없던 아델라인은 의심을 사지 않고 원만히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귀엣말로 틈틈이 알려 준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 시선을 다르게 해석한 건지, 나이아는 그녀에게 제안했다.
“마차를 준비할까요?”
나이아의 제안에, 아델라인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버님이랑 같이 돌아가는 게 맞겠지.”
그때, 황궁의 야경을 바라보던 나이아가 눈을 번쩍 뜨며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 저기!”
나이아가 가리킨 방향을 보자, 한 건물이 불길에 휩싸여 불타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친위대며 황궁의 시종들이며 수많은 사람이 모여 불길을 진압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길은 점점 더 거세져만 갔다. 그 불타는 건물에서 말들이 뛰쳐나오며, 주변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저기 건물은 무슨 건물이야?”
“저기는… 황궁 마구간인 것 같네요. 여기서 나가지 않는 게 더 안전할 것 같아요.”
나이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실제로 몸에 불이 붙은 채 날뛰는 말들에, 주위에서 불을 끄던 시종들이 들이받히고 걷어차이는 중이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중인 5월 궁 주위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병사들만이 남아 있었다.
아델라인은 여기 이 무도회에서 해야 할 일을 다시 떠올리며 나이아에게 물었다.
“여기도… 불이 나진 않겠지?”
“설마요. 여기는 주방도 따로 있는걸요.”
낙관적으로 대답하는 나이아의 말에, 아델라인은 시간을 가늠해 봤다. ‘이멜다의 봄’이 연주되기 전까지만 상황을 보면 될 테니, 그전까지는 여기 있을 필요가 있었다.
그때, 아래에서 누군가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무도회장에 오신 손님들이 외부 상황에 당황하지 않도록 잠시 양해를 구하세요. 그리고 악단에 더욱 활기차고 빠른 곡들을 계속 연주하라 지시하세요.”
“알겠습니다, 황후 마마.”
“나는 잠시 홀로 휴식을 취할 테니, 아주 급한 일 아니면 내가 부르지 않는 한 들어오지 않으면 좋겠네요.”
“전달하겠습니다.”
테라스의 커튼 너머로 들리는 대화 소리. 나이아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행사까지 망칠 수는 없으니… 이해할 수 있는 판단이네요.”
“그런가…….”
그러나 아델라인은 나이아의 부연 설명에도 안심할 수 없었다. 어쩐지 불안한 기분이 자꾸 들었다. 알렉스가 곁에 두고 있으라고 했던 안드레이는 지금 로피츠 공작 곁에 있었다.
그때, 악단이 다른 리듬과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뭔가 더욱 활기차고 색다른 선율에, 아델라인은 무심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때, 그녀가 있던 테라스로 누군가가 발을 들였다.
“젠장, 또 여기 있으셨던 겁니까?”
스워포드. 그가 한 손에 잔을 든 채 커튼을 젖히고 들어온 것이다. 그러자 나이아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스워포드 상병…님?”
그러자 스워포드는 나이아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이아도 오랜만이네, 하사님은 잘 지내시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이아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스워포드에게 물었다.
“아, 네. 근데 어떻게…….”
나이아가 말끝을 뭉개는 사이, 아델라인은 그녀의 질문을 이어받아 다시 스워포드에게 물었다.
“그래, 어떻게 여길 들어온 거죠?”
“어떻게 들어왔긴, 초대장으로 들어왔겠지요.”
그는 당연하다는 듯 대꾸한 뒤,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 나가시지요, 조금 있으면 나가기도 힘들어질 겁니다.”
그러나 아델라인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마구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알고 있어요. 여기가 더 안전…….”
“하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아델라인의 말을 끊은 스워포드는 마구간을, 정확히는 마구간에 쏠린 병력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젠장, 친위대 놈들. 저렇게 몰려가면 안 된다는 것도 모르나…….”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델라인은 순간 알아차렸다.
지금 스워포드 그가 여기 있는 게, 알렉스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알렉스가 보냈나요?”
“그럼, 누가 보냈겠습니까? 몇 년 만에 본가 가서 초대장… 후우…….”
강하게 쏘아붙이던 스워포드는 잠시 스스로 말을 끊은 뒤, 다시 말했다.
“아무튼, 지금 움직여야 합니다. 곧 있으면 위험해집니다.”
그 말에, 나이아는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따라가기 힘들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아델라인과 스워포드를 살폈다. 그러나 아델라인은 단호하게 그에게 말했다.
“이멜다의 봄이 연주되기 전까지는 있어야 해요. 그때…….”
순간 소설의 내용을 말할 뻔했던 아델라인은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러나 스워포드는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두드린 뒤, 그녀에게 작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연주되고 있는 게 이멜다의 봄입니다. 왜 그러시는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움직여야 한다고요. 레이크 하사도 지금 공작님을 모시고 나왔을 겁니다. 어서!”
그때,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여러 명의 발소리와 함께 그들의 귀에 들렸다.
그러자 아델라인도 나이아도 스워포드도, 일제히 얼어붙었다.
일반적인 발소리와는 달랐다. 그 발소리를 들은 스워포드는 두 사람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저들을 막아 보겠습니다. 둘은, 이쪽 복도의 모든 커튼을 열어젖히고 황후 마마가 들어간 휴게실을 찾아서 문을 막으십시오. 알겠습니까?”
“하지만……!”
그러나 스워포드는 이의를 받지 않겠다는 듯, 손을 들어 아델라인의 말을 막았다.
“그럼, 지금!”
그 말과 함께, 스워포드는 커튼을 열어젖히고는 곧바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도 무도회장에서 시종으로 일하던 이들이, 각종 날붙이와 둔기를 들고 있었다. 그중에는 그녀에게 딸기 음료를 건넸던 시종도 있었다.
그리고 그 시종의 얼굴에, 스워포드의 주먹이 꽂혔다.
“어서! 움직이십시오!!”
스워포드는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쥐며 외쳤다. 그러자 아델라인과 나이아는 복도를 뛰어다니며 테라스의 커튼을 젖혀 열었다.
그러는 사이, 1층에서 들려오던 노래가 뚝 끊기고, 그곳에서 혼란에 가득 찬 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악!!”
“불, 불이다!!”
“문이 안 열려!!”
아델라인은 그 비명들과 고함들을 애써 무시하며 마지막 커튼을 열어젖혔다. 그다음, 그녀는 휴게실의 문을 두드렸다.
쾅쾅쾅!
“황후 마마! 아델라인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갑작스러운 소란에 놀란 황후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아, 공녀. 무슨 일이지요?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는 뭐고…….”
“습격입니다, 아래층에서는 불이 났고, 지금 자객들이 오고 있습니다!”
그러자 황후는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바로.
탕!
총성이 들려오자, 그녀는 아델라인에게 지시를 했다.
“황태자에게 친위대를 불러오라 해 주세요, 공녀.”
“지금 자객들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습니다, 곧 들이닥칠 겁니다!”
그사이 나이아는 의자를 끌고 와 방 문고리에 걸쳐 놓았다. 그리고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며 큼지막한 책장을 밀어 넘어뜨렸다.
쿵!!
“더, 더 막을 게……!”
나이아는 급히 주변을 돌아보며 더 끌어모을 게 있는지 살폈다. 밖에서 들려오는 총성들과 병장기들이 맞붙으며 내는 소리는 그들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때, 책장과 의자로 막혀 있던 문 쪽에서 무언가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콰직!
“히익!”
그 앞에서 다른 물건들을 쌓던 나이아는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 소리를 들은 아델라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스워포드가 뚫려 버렸고, 이제 자객들을 가로막는 건 저 문밖에 없다고 판단한 그녀는 서둘러 창문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러나 저 아래 잔디밭까지는 까마득하게 멀었다. 떨어지면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델라인은 또 다른 대안을 짜내려 노력했지만, 그녀의 생각은 곧 끊기고 말았다.
쾅!!
문짝이 큰 소리를 내며 그대로 뜯겨 나가고, 황궁 시종의 복장을 한 사내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 이…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황후가 간신히 그들에게 외쳤지만, 그 괴한들은 점점 그녀들에게 다가올 뿐이었다. 결국, 그녀들은 방 한구석까지 몰려 버렸고, 그런 그녀들을 찬찬히 살펴본 한 괴한은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들며 중얼거렸다.
“황후 마마와 로피츠 공녀… 그리고 그 시녀라. 보너스는 두둑이 받겠는데?”
나이아가 주변에 굴러다니던 꽃병을 집어 들고 아델라인과 황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나이아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용기는 가상하지만, 우리도 시간이 없어서.”
남자가 단검을 치켜들자, 아델라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스테리오스를 찾아갔던 그날의 기억이 나이아의 모습과 겹쳐 나타나 버렸다.
그리고 황후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바로 그때.
“잠시 실례.”
아델라인의 옆에 있던 창문이 열리며 무언가가 그녀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델라인이 눈을 뜨자, 나이아의 앞에는 익숙한 진녹색의 제복을 입은 사내가 서서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나이아, 공녀님의 눈을 가려. 너도 뒤돌고 있고.”
그 목소리를 듣자, 아델라인은 목구멍까지 하고 싶은 말이 솟구쳤다. 대체 뭘 하다 이제 온 거냐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고. 그러나 이내 그녀의 시야는 나이아의 손에 차단됐다.
“네, 네!”
“너, 넌 누구야! 에잇!!”
괴한이 소리치며 단검을 내질렀지만, 알렉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괴한의 종아리를 걷어차 무게 중심을 흔든 그는, 곧바로 허리춤의 홀스터에서 피스톨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피스톨의 총탄이 괴한 하나를 그대로 쓰러뜨리자, 남은 세 명의 괴한은 일제히 알렉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알렉스는 몸 한번 움찔거리지 않고 처음부터 손에 쥐고 있던 라이플을 고쳐 잡았다. 곧이어 정면에서 다가오는 괴한의 가슴을 총검으로 찌른 뒤, 방아쇠를 당겨 그 뒤에 있던 괴한까지 쓰러뜨렸다.
그사이 알렉스의 뒤를 잡은 또 다른 괴한은, 그의 머리를 향해 망치를 내리찍었다. 그러나 괴한의 손에는 어떠한 타격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찰나의 순간, 머리를 틀어 망치를 피한 알렉스는 총검이 가슴에 박힌 괴한을 걷어차고 라이플을 뽑아낸 뒤, 그대로 개머리판을 뒤로 내질러 망치를 든 사내의 턱을 돌려 버렸다.
“커헉!”
순식간에 끝난 상황. 그러나 누군가가 그들이 있는 휴게실을 향해 달려왔다. 아델라인의 몸에도,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던 나이아의 몸에도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그자의 목소리는 다행히도 아델라인의 예상을 벗어났다.
“그쪽은 끝나셨습니까, 중대장님?”
“그쪽은.”
“저야 뭐, 저격조 도움이 있었으니 괜찮았지만. 설마 또 다른 암살조가 있었을 줄은 생각 못 했습니다.”
아델라인이 나이아의 손을 거두게 하자,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 문간에 기댄 스워포드가 알렉스에게 답하고 있었다.
스워포드의 대답을 들은 알렉스는 뒤로 돌아 나이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생했다. 많이 놀랐을 텐데.”
“아, 아. 아닙니다.”
“아래에 레이크 하사 있으니까, 이따가 내려가서 만나. 걱정하더라.”
그런 다음, 알렉스는 뒤에 있던 황후에게 손을 내밀었다.
“황후 마마, 일어나시지요. 예를 갖추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델라인은 황후를 바라봤다. 황후는 어딘가 이상했다. 그녀는 알렉스가 내민 손을, 그리고 그의 얼굴을 잠시 노려보더니, 앞에 내밀어진 손을 탁, 내쳤다.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