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다시 찾은 세인트 조지 병원
기업가 연합회의 연회에서 돌아온 후 다음 날 아침. 아델라인은 나이아와 함께 어제 들었던 정보들을 명함과 함께 정리하고 있었다.
“증거금 제도는 상승장에서 자산 증식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데, 그래서 지금도 늦지 않았대. 듀란트 증권의 임원 말로는.”
아델라인의 말에, 나이아는 명함을 정리하면서도 그 내용을 종이에 적어 두었다.
“시장 상황이 낙관적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상승장이 계속 이어질 거라 예견하고 있네요.”
“다들 전쟁이 길어질 거로 생각하나 봐. 그동안은 내각에서도 어쩔 수 없이 계속 국채를 발행할 테니까. 금리도 낮춘 상태 그대로 유지할 테고.”
“하지만… 언젠간 전쟁도 끝나니까요. 그때 되면 시장이 급변할 거예요.”
명함의 정리를 마친 뒤, 나이아는 명함을 넣어 둔 책을 아델라인에게 건네며 말했다.
“시장에 풀린 돈을 회수하기 위해 당연히 기준 금리를 높일 거고, 그러면 순식간에 시장은 얼어붙겠죠. 만약 승전한다면 전쟁 배상금으로 국채를 처리할 수 있을 테니 금리를 완만하게 올리겠지만…….”
나이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맺었다.
“패전한다면 그 반대가 되겠지요.”
“…그렇겠지.”
아델라인은 나이아의 말을 들으며 필즈먼이 이면지에 그려 냈던 전선의 상황을 떠올렸다.
양 측면은 튀어나와 있고 중심부는 깊게 들어간, 오목 거울보다는 파리지옥에 가까운 모양새의 전선.
“…….”
우연일까, 아니면 의도일까.
그 의문을 품고 있던 찰나,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델라인, 들어가도 되나요?”
알렉스의 목소리에, 아델라인은 곧바로 답했다.
“들어와요. 나이아, 차를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공녀님.”
아델라인의 허락과 함께 들어온 알렉스는 사교 시즌 첫날과 같이 육군의 붉은 제복을 입고 있었다. 다행히 오늘은 푹 잔 건지, 그의 안색은 꽤나 좋아 보였다.
“오늘은 잠 좀 잤나요?”
“베개에 뒤통수 붙이고 침대에 누워서 여덟 시간 넘게 잤어요.”
어제 아델라인이 말했던 숙면의 기준을 충족했다며 장난스레 보고하는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은 미소를 지었다.
“잘했어요. 자, 차 한잔 마시고 출발하죠. 앉아요.”
아델라인은 책상 앞 소파를 가리키며 자신도 일어나 소파로 옮겨 가 앉았다. 잠시 뒤 나이아가 차를 가져오자, 두 사람은 차를 홀짝이며 노곤한 오후의 잠기운을 홍차의 향기로 흩어 냈다.
“오늘 가는 자선 경매 행사에는 뭘 기부했어요?”
“이번 생일 때 받은 장신구 중에서 제게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몇 점 기부했어요, 그편이 양쪽에게 좋겠죠.”
“장신구가 주인을 잘 찾아갔으면 좋겠네요.”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홀짝였다. 그때, 밖에 볼일이 있다며 자리를 비켜 줬던 나이아가 노크도 없이 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무언가가 인쇄된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 * *
마차 안.
아델라인은 나이아가 건네준 호외를 눈에 담았다. 실제로는 연회장 앞에도 발을 들이지 못했을 화가의 손에서 태어난 삽화는 극도로 자극적이었다.
그 삽화에 어울리는 자극적인 제목은 호외 용지 상단에 굵고 큼직한 글씨로 박혀 있었다. 그 아래에 짤막하게 적힌 내용도 누가 보면 황후가 실제로 습격당해 위태로운 상태인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내용뿐이었다.
“…제가 그때 본 게 헛것이었나요? 누가 보면 진짜로 칼에 맞은 줄 알겠는데요.”
황후는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 알렉스를 비롯한 라이플맨들은 검을 뽑아 들고 황후에게 달려들던 범인을 신속하게 제압했다.
그런데도 호외지의 짤막한 기사는 ‘긴급히 대피’, ‘피습 후 급히 황실 주치의를 호출’, ‘궁내부에서는 공식 발표를 미루는 중’이라는 어휘로 부정적인 상상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때, 아델라인에게서 호외를 건네받은 알렉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친 남부당 계열 언론사네요. 그중에서도 황후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하긴, 수도경비대와 육군본부가 공동으로 엠바고를 요청한 상황인데 무시할 수 있는 언론사는 많지 않겠죠.”
“그렇다는 건…….”
아델라인은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한 뒤 알렉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황후가 일부러 이 기사를 퍼뜨렸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러자 알렉스는 아델라인에게 종이를 되돌려 주며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이런 기사를 내보내서 이득을 볼 만한 쪽을 생각해 보면 명확하죠.”
“무슨 이득… 아.”
알렉스에게 또다시 질문을 던지려던 아델라인은 스스로 답을 떠올렸다. 이즐링턴에서 벌어진 사건, 그리고 그 뒤에 연이어 해산된 영지군들. 함께 추락한 남부 귀족들의 위상. 그와 함께 손상된 황후의 위신과 세력. 그리고 점차 황후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여론.
이 사건을 이용하면, 등을 돌리는 여론을 뒤집을 수도 있었다. 여론의 동정과 지지를 받는 한편, 친위대의 공백을 대체한 수도경비대와 파견 중대를 향해 여론의 화살을 돌릴 수 있음은 덤이다.
“설마…….”
너무나 뻔하게도 자신이 테라스로 향하자 뒤따라 들어온 로베르트 세드릭, 그리고 그걸 보고 자신을 위해 뒤따라 들어온 알렉스. 붉게 물들어 있던 로베르트의 눈동자.
머릿속으로 단서를 조합하던 그녀의 귀에, 알렉스의 목소리가 속삭여졌다.
“황후를 습격한 범인의 검에는 날이 세워져 있지 않았어요. 맞아 봤자 멍만 조금 들었겠죠.”
그 말을 듣자, 아델라인의 머릿속에서는 한 가지 결론이 도출되었다.
“자작극?”
“정황상.”
알렉스의 답에, 아델라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피오나가 손을 거든 걸까요.”
“범인에게 마법이 걸린 흔적이 있다는 건 노먼 중위가 밝혀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흔적일 뿐이에요. 누구에게도 연관 지을 수 없는. 그리고 세드릭도 마찬가지죠.”
알렉스는 쓰게 웃으며 말을 더했다.
“답답하네요. 직접 까뒤집으면 뭐가 나올 것 같기는 한데.”
그의 말에, 아델라인도 같이 눈살을 찌푸리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다가 감옥 가면 어쩌려고.”
“아델라인이 판사 매수해 줄 거잖아요.”
“변호사님이시니 스스로 잘 빠져나와 보세요.”
“진짜로 안 도와줄 거예요?”
알렉스가 짐짓 속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델라인을 바라보자, 그녀는 피식 웃으며 그를 위로하듯 답했다.
“…뭐,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안드레이 시켜서 탈옥시켜 줄게요. 이 정도면 괜찮은가요?”
아델라인이 내놓은 예상 밖의 말에, 알렉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한동안 웃은 그는 아델라인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해요. 하지만 되도록 감옥을 안 가는 방향으로 노력해 봐야겠죠. 피오나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수는 없으니.”
“맞는 말이네요. 그나저나… 알렉스는 괜찮아요?”
“뭐가요?”
“분명, 그때 자리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훈수를 두려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러자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보며 질문을 했다.
“아델라인의 눈에는, 제가 어떻게 보였나요?”
“어떻게 보였냐고요?”
“네.”
그러자 아델라인은, 그때의 장면을 떠올렸다.
자신이 망설이고 있을 때, 알렉스의 총탄은 범인을 가장 먼저 맞췄다. 그것도 검을 뽑아 든 범인의 손을.
“훌륭했어요.”
그러자 알렉스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면 남의 말을 신경 쓸 필요가 있나요. 바로 옆에서 본 아델라인도 그렇게 말해 주는데.”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마차가 멈춰 섰다. 창밖을 보자, 근 1년 만에 찾는 세인트 조지 병원이 눈에 들어왔다. 병원 건물을 보자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의 살갗을 훑고 지나가던 날붙이의 감각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아문 어깨를 슬쩍 손으로 만져 본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왼손, 줘 봐요.”
“왼손이요?”
“줘 봐요.”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순순히 그녀에게 왼손을 내밀었다. 아델라인이 장갑을 벗기자, 그의 손등에 남은 흉터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사냥대회로부터 이미 1년 가까이 지났건만, 흉터는 조금도 옅어지지 않고 선명히 남아 있었다.
그걸 본 아델라인은 손등의 흉터를 엄지손가락으로 쓸어 보이며 그에게 물었다.
“파코프스키 병장에게 잘못한 거 있었어요?”
“왜요?”
“아니… 그냥… 흉터가 너무 크게 남아 버린 것 같아서. 일부러 그랬나 싶을 정도로.”
그 말을 하며 아델라인이 슬픈 눈으로 흉터를 바라보자, 알렉스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저는 오히려 좋은데요?”
“왜요?”
그러자 그는 아델라인을 향해 더욱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델라인을 구한 훈장이니까요. 크면 클수록 오히려 저는 좋아요.”
흉터가 흉터지. 대체 뭐가 좋다고 저렇게 웃어 보이는 걸까.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바라보면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그 말이, 아델라인의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짐을 덜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알렉스를 향해 솔직한 마음을 털어 내었다.
“사실, 세인트 조지 병원의 초대를 받았을 때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이렇게 막상 오니까 살짝 기분이 묘하네요.”
묘하네요, 라는 아델라인의 담담한 목소리에 담긴 복잡한 심경. 잘게 떨리는 아델라인의 손을 통해 알아챈 알렉스는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오늘은 제가 계속 곁에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알렉스가 정확히 자신의 심리를 짚어 내자, 아델라인은 절로 피어난 미소를 머금고 알렉스를 바라봤다.
잠시 뒤, 병원 안으로 들어온 마차가 멈춰 섰다. 마부가 준비를 마치고 문을 두드리자, 알렉스는 마차에서 먼저 내린 뒤 아델라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최선을 다해 에스코트하겠습니다, 아델라인.”
“저도 잘 부탁드려요, 알렉스.”
아델라인은 그 손을 맞잡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한없이 든든하기만 한 그의 손을 잡자, 머릿속에 남아 있던 일말의 걱정까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알렉스와 함께 병원 문 앞으로 향하자, 아델라인을 알아본 병원의 접수원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그녀를 맞았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작님. 이쪽의 방명록에 이름을 적어 주시겠습니까?”
접수원의 말에, 그녀는 손가방에서 만년필을 꺼낸 뒤 테이블 위에 올려진 방명록에 이름을 적었다. 어느새 익숙해진 유려한 필기체가 방명록에 수놓아졌다.
[아델라인 폰 로피츠]“알렉스도 적을래요?”
“그럴까요.”
아델라인에게서 만년필을 넘겨받은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아델라인의 옆자리에 적었다. 간결하고 알아보기 쉬운 글씨가 그녀의 이름 옆에 자리했다.
[알렉스 매닝햄]“안쪽으로 들어가시면 두 분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쪽으로.”
접수원의 안내를 따라 복도를 걸어가자, 자선 경매 행사를 위해 마련한 공간이 그들을 맞았다. ‘로피츠 공작가’라는 명패가 걸린 가장 앞자리로 가 앉은 두 사람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드디어 사회자가 앞으로 나왔다. 중년의 남성은 헛기침과 함께 긴장을 떨쳐 낸 뒤, 자리에 앉은 내빈들을 바라보며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행사의 진행을 맡게 된 세인트 조지 병원의 외과의, 다니엘 로크라고 합니다.”
익숙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에 긴장한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눈을 질끈 감으며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지금부터, 세인트 조지 병원의 자선 경매 행사를 진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