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사문회
모든 창문을 암막 커튼으로 가린,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길쭉한 테이블 하나와 여섯 개의 의자뿐인 회의실.
알렉스는 그 회의실로 들어서, 다섯 개의 의자를 마주하고 있는 단 하나뿐인 의자 앞에 앉았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사문회는 일방적인 괴롭힘을 위한 자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준비를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저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며 마음을 안정시키며 시간을 흘려보내던 중, 뒤에서 문이 열리며 여러 명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알렉스는 천천히 눈을 뜨며 앞을 바라봤다. 신문에서 한 번씩 본 적 있는, 익숙한 면면들이었다. 남부당 의원들이 셋, 구색 맞추기 용으로 황색당 의원 하나. 그마저도 공공연히 남부당 의원들과 꾸준히 교류해 온 의원이었다.
그 넷 모두, 알렉스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인간 이하의 무언가를 보는 듯한 눈빛부터, 알렉스를 향한 조소까지. 참 가지각색이었다.
“피츠허버트 의원은?”
“그 양반이 스스로 늦어 준다면 좋은 일이지, 어차피 하등 도움 될 일 없는 인물. 이대로 진행하지.”
“그러시죠, 어차피 자유당 압력으로 넣게 된 인물이니. 문을 닫아라!”
황색당 의원이 목소리를 높이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비병들이 문을 잡아당겼다. 그 문이 완전히 닫히려는 그때.
문이 다시 열렸다.
“허허, 내 시계가 고장 났나?”
한 손에는 보기에도 묵직해 보이는 가죽 가방을, 다른 손에는 회중시계를 든 채 문을 어깨로 밀며 나타난 피츠허버트 백작. 그는 나머지 네 명의 의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분명 시계 밥도 넉넉히 먹였을 터인데… 아니, 시계 밥을 너무 먹여 초침이 느려진 걸까.”
피츠허버트 백작의 묵직한 목소리에, 나머지 네 명의 의원들은 일제히 그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렇게 바라본들 할 말은 없다는 걸 알기에, 그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피츠허버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자 피츠허버트는 회중시계의 뚜껑을 닫으며 미소와 함께 그들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아주 늦은 건 아닌 것 같군. 자, 그러면 자리를 내줄 수 있겠나?”
피츠허버트는 그렇게 말하며 다섯 개 의자 중 가장 가운데에 있는, 의사봉이 있는 자리로 향했다. 이미 중년의 남성이 앉아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빈자리로 가게나. 레셉스 자작.”
그러자 자리를 빼앗기게 된 자작이 항의의 시선을 보내며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피츠허버트 의원.”
그러다 마치 정정이라도 하듯, 그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타이르듯 그에게 말했다.
“피츠허버트 백작. 여기는 청문회장이 아니라네. 응당 권위에 따라 역할과 위치가 나뉘는 귀족들을 모아 둔 사문회장 아닌가. 자네와 나는 같은 신분이 아니라는 걸 명심했으면 하는데.”
그의 말에, 레셉스 자작은 민망함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피츠허버트 백작을 쏘아본 뒤 가장 오른쪽의 빈자리로 도망치듯 향했다.
피츠허버트는 자리에 앉은 뒤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책상 위에 쌓았다. 필요한 서류 전부를 올려놓은 뒤, 마지막으로 빈 공책과 필기도구를 꺼낸 그는 알렉스를 바라보며 의사봉을 잡았다.
땅. 땅. 땅.
맑은 소리와 함께, 피츠허버트 백작이 회중시계를 보며 개회를 선언했다.
“자, 그럼. 6월 26일 오후 2시 04분. 육군 라이플 여단 파견 중대장, 대위 알렉스 매닝햄에 대한 사문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든 사문 위원은 의장에게 발언권을 얻은 뒤, 발언하시길 바랍니다.”
그 말이 끝나자, 피츠허버트에게 밀려나 가장자리에 앉은 레셉스 자작이 누가 빼앗아 갈세라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청했다.
“발언하시지요.”
“감사합니다, 백작. 그러면…….”
피츠허버트에게서 얻은 불쾌감을 알렉스에게 쏟아붓겠다는 듯, 그는 알렉스를 깔보며 질문을 던졌다.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약 1달 동안 파견 중대원 중 10명 이내의 인원을 차출, 지원단을 구성해 이즐링턴에 갔었나?”
“그렇습니다. 육군본부의 명령이었습니다.”
“4월 말, 주변 영지에서 치안 유지 임무를 위해 고용된 용병단이 큰 손실을 입고 와해 되는 일이 있었네. 아는 바가 있나?”
“당시 지원단의 임무는 이즐링턴 남작령의 유민들에 대한 대민지원 및 행정력 재건, 그리고 남부 훈련소 교관단 배치 전 사전 준비였습니다. 전투 임무가 아니었고, 따라서 용병단에 대해서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바는 없습니다.”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가는 알렉스의 답변에, 레셉스 자작은 더욱더 추궁을 이어 나갔다.
“추정되는 바도 없나? 그래도 이즐링턴에 있었으니 이유는 알 텐데.”
그러자 알렉스는 원론적인 답을 꺼내 놓았다.
“남부 훈련소 교관단과 동행한 헌병대의 조사에 따르면, 동시기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미상의 무장 집단이 이즐링턴 영내에 침입하던 중 숲에 설치된 함정들에 걸려 피해를 입고 사냥꾼들의 대응에 와해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함정?”
“이즐링턴 숲은 한때 마수 사냥으로 인기를 끌었던 지역이기도 하며, 올해 초까지만 해도 사냥꾼들이 수렵을 이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서던 퓨질리어 연대가 방위 목적을 위해 설치한 함정들도 많습니다.”
“혹시 그들이 격퇴시킨 무장 집단이, 주변 영지의 치안을 담당하던 용병단인가? 그렇다면 주변 영지의 치안 약화에 이즐링턴이 관련되어 있다는 말이 될 것 같은데.”
다분히 의도적인 질문에, 알렉스는 곧바로 반박에 가까운 답을 내놓았다.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임관 시험에도 나와 있듯, 고용주들이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용병단이 규율을 잃고 도적단으로 돌변해 주변 민간인들을 약탈하는 일은 예로부터 매우 흔하게 발생했습니다.”
알렉스가 이즐링턴의 당시 상황에 대한 책임을 그 용병단들을 고용한 영주들에게로 틀어 버리자, 뜻대로 풀리지 않은 레셉스 자작의 얼굴이 붉어졌다. 트집을 잡고 싶어도, 잡기가 힘든 답변이었다.
“또 물으실 내용이 있으십니까?”
알렉스의 물음에, 다른 사문 위원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청했다.
“다른 안건으로 넘어가지. 작년 12월 말, 오베른 시에서 군사 작전을 수행했나?”
“네, 그렇습니다. 제 재량의 한계로 작전 목표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작전을 통해 지난번 연쇄 아동 납치 사건의 피해 아동 78명을 구출하고 다량의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78명의 아동을 구출하는 데 파견 중대 내에서만 1할이 넘는 사상자라.”
마치 중요한 단서라도 얻은 것처럼 빈 종이에 메모한 그 사문 위원은 알렉스를 바라보며 질문을 했다.
“그만한 가치가 있었나? 육군본부의 자료에 따르면 대다수가 빈민가 출신이라는데. 라이플맨은 자타공인 정예 아닌가.”
원하는 답이 있는 것처럼 미묘한 어조로 날아온 질문에, 알렉스는 자신의 답을 계속 이어 나갔다.
“당시 파견 중대와 1대대 화기 중대는 군법에 따라 자국민 보호와 비무장 인원에 대한 피해 예방 조치를 수행했습니다. 군법에는 신분의 고하를 고려하라는 내용은 없었으므로 무의미한 질문이라 생각됩니다.”
알렉스의 말에, 다른 사문 위원이 손을 들었다.
“이번 남해군도 작전에서. 오베른에서와 달리 미성년자 사상자가 크게 발생했고, 그에 반해 투입 병력의 피해는 경미했네. 작전을 지휘한 최선임 장교로서, 이런 결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나?”
“어떤 방향의 책임감인지 정확히 물어도 되겠습니까?”
알렉스의 질문에, 그 위원은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분명 오베른에서의 작전과 견주어 보면 이번에 발생한 ‘미성년자 피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피해 같은데. 내가 잘못 집은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예방할 수 있었는지, 그 고견을 들어도 되겠습니까?”
“난 군인이 아니네, 그런 고민은 국가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자네의 몫이지.”
“하지만 질문을 하시는 건 사문 위원으로서 앉아 계신 의원님의 몫 아닙니까. 구체적인 답을 원하신다면, 구체적으로 질문해 주시지요.”
“그렇다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말해 보게.”
“감정이라.”
알렉스는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한 뒤, 그들에게 말했다.
“전사한 전우들에 대한 슬픔, 미성년자에게 마법을 걸고 약물을 주입한 뒤 병장기를 들려 투입시킨 적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은 피해 아동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자네는 훌륭한 사격 솜씨를 지닌 걸로 알고 있는데. 알현식 연회에서 발생한 황후 시해 미수 사건에서도 범인의 손을 맞춰 무장 해제를 시킬 정도로 정확했었지.”
그는 비릿한 미소를 띠며 알렉스를 향해 질문했다.
“이번에는 그때와 달리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자 알렉스는 절로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피츠허버트는 그 질문을 듣고 부끄럽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숙였지만, 나머지는 일말의 염치도 잊은 듯 알렉스를 노려보며 답변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러나 알렉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들을 향해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새벽 4시 반 즈음에, 총성과 총연, 그리고 총구 섬광이 가득한 전장에서, 미성년자만을 유추해, 정밀한 사격을 시도해라. 그다음, 약과 마법에 취해 발작에 가까운 저항을 해 대는 상대방에게 다가가 구호 조치를 시도해라.”
알렉스는 방금 멍청한 질문을 한 사문 위원을 향해 비꼬듯 말했다.
“왜, 거기에서 수프를 끓여 환자식을 만든 뒤 10여 분에 걸쳐 천천히 섭취시켜야 했었다는 말은 안 하십니까?”
“거기까진 말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내 말은… 오베른에서 그랬던 것처럼 ‘약간의 피해’를 감수하고 그 아이들을 구하려는 시도를 해 보지 않았느냐는 말일세.”
부끄러움도 모르는지, 그 위원은 알렉스를 향해 계속 말을 뱉었다. 그러자 차마 그 멍청한 질문을 듣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피츠허버트가 의사봉을 두드리며 외쳤다.
“10분간 휴정하겠습니다.”
그 말에, 사문 위원들은 대책 회의라도 하려는 듯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을 벗어났다. 그 뒷모습을 보며, 알렉스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길어지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