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그래도, 사랑하시죠?
네슬러의 표정이 일순간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무리 공작이 쓰러졌어도, 공작가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인장 반지를 협상 수단으로 써? 이게 귀족 영애의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는 생각인가?
네슬러의 시선이, 줄곧 곁을 지키고 있던 마일즈에게로 향했다. 그는 줄곧 아델라인의 변칙성에 경계해야 한다, 자신에게 말했었다. 그녀는 단순한 귀족 영애가 아니라고, 몇 번이고 네슬러에게 조언했다.
그러나 아무리 아델라인이 묘수를 꺼낸다고 해도, 자신이 수십 년간 회사를 키워 오며 마주한 수많은 상황에 비하면 충분히 대응 가능할 거로 생각했다.
“…….”
그럴 것이라고, 방금까지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생각을 고쳐야 할 이유가 생겼다.
머릿속으로 수 계산을 마친 네슬러는 마일즈를 향해 창문을 열라 손짓하며 상자 위에 놓인 리볼버를 바라봤다. 금장 장식도 없고, 부싯돌이나 뇌관 같은 격발 장치도 보이지 않았다.
목업인가? 그저 개념을 구상하고 구현하기 위한 모형이라면, 아델라인의 손가방에서 나오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이미 상식은 깨진 판. 여기서부터는 기존의 상식이 아니라, 직감과 추리로 한발 앞을 먼저 내딛는 사람이 이기는 싸움이었다.
그는 미소를 띠며,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포사이스 박사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스틸웰 공업은 수십 년을 방산업에 뿌리내리며 쌓아 온 인재 풀이 있지요. 우리도 리볼버 정도는 1년 안에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저물어 가는 플린트락 시대의 인재 풀 말인가요?”
“하지만 안에 들어가는 화약과 탄환의 모양은, 그리고 그 탄환을 쏘아 보내는 총신은 다음 세기까지 바뀌지 않을 테지요. 이미 라이플 여단의 제식 라이플도, 우리 회사에서 공급 중이니.”
네슬러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꾸며 내며 수표책을 꺼냈다. 잠시 뒤, 아델라인의 앞에는 조금 전 수표에 적힌 금액의 20%가 더해진 금액이 제시되었다.
“이 정도는 어떻습니까? 격발 한번 안 해 본 리볼버의 가격으로는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만.”
그러자 아델라인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꽃피었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의 말에서 오류를 집어냈다.
“죄송하지만, 제 쪽에서 실수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포사이스 교수님은 유능하지만, 리볼버는 포사이스 교수님의 발명품이 아니지요.”
아델라인은 머릿속에 집어넣어 둔 매뉴얼대로, 장전 레버를 이용해 리볼버의 약실에서 종이로 감싼 카트리지를 꺼냈다. 그녀는 상자 위에, 단 한 발의 종이 탄약을 올려놓으며 네슬러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건 어떠실까요.”
네슬러는 그 물건을 보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아직 개념 설계에 머무르고 있던 종이 탄약이, 그들 앞에 놓여 있었다. 가닥도 잡지 못하던 원추형 탄환과 함께.
그러자 아델라인은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며 네슬러에게 물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나요?”
“…….”
“참고로, 이렇게 혼자서 제게 가격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일 겁니다. 다음번은, 특허를 두고 입찰을 받을 예정이라.”
“…….”
“마침, 육군성 내에서도 제식 총기를 교체할 시기가 왔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아델라인의 입에서 나온 육군성 내의 정보. 그 출처는 불 보듯 뻔했다.
알베르데 그리보발 마일즈. 비록 그는 군문을 떠났을지라도,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육군 전체에 남아 있었다. 당연히 제식 총기 선정 사업 같은 역대급 규모의 사업에 대한 정보는 귀를 닫아도 주변에서 눈앞에 들이대는 수준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지요.”
“하시려는 일의 필요성은 압니다. 전쟁으로, 그리고 대연정 내각의 혼란으로 제국의 대응 여력이 빈약해진 시점에서, 주식 시장의 붕괴까지 따라온다면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겠지요.”
“사업체라고 멀쩡하지는 않을 테지요.”
“하지만 자본가에게는, 하락장도 기회의 순간입니다. 그를 위한 공매도니까요. 저야 회사에 얽매여 있으니 근근이 사업체의 손실을 메꿔 나가는 데 그치겠지만, 로피츠 공작가는 다르지요. 중개인을 내세운다면, 가문의 위신에 손상이 가는 일도 없이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식어 버린 차로 목을 축인 뒤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남작님께서 하시려는 일은, 리안 필즈먼의 군사적 승리와 자유당의 정치적 승리가 동시에 만족되어야 비로소 본전을 찾을 수 있는 일입니다. 거기에 필즈먼 대장은 파견 중대라는 리스크를 지고 있지요.”
“파견 중대장인 알렉스 매닝햄 대위가 사문회에 끌려가 속박되어 있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은 없습니다.”
“사문회는 죄를 찾아내는 절차보다는 죄를 만들어 내는 절차에 가깝습니다. 무언가가 하나라도 나오는 순간, 승률은 극도로 떨어집니다.”
말을 마친 네슬러는,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질문으로 말을 끝맺었다.
“제가 이 일에 뛰어들어야 할 이유를, 하나만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아델라인은 곧바로 그에게 역으로 질문했다.
“포우스포드 스틸웰은, 집에서 어떤 사람이었나요?”
아델라인의 입에서 나온 스워포드의 본명에, 네슬러는 잠시 놀란 눈을 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지요, 집안의 막내. 가출을 몇 년이나 하는지 모를 골칫덩이 막내.”
“그래도, 사랑하시죠?”
“…….”
“저도 비슷해요. 2주면 돌아오겠다고 해 놓고선, 한 달이 다 되어도 편지 한 장 안 보내는 몹쓸 사람이 있어서요.”
아델라인은 서글픈 미소를 지어 보이며, 네슬러를 향해 말했다.
“그래도, 그래도 사랑하니까. 미련한 짓도 하고, 기약 없이 기다리기도 하고. 그러네요.”
그러자 네슬러의 표정이, 아델라인을 따라 서글프게 변했다.
“지난날의 실수가 덮을 수 없을 정도로 크니, 그 애가 받아들여 줄지 잘 모르겠습니다.”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해 보고 후회하는 게 더 나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겠지요.”
아델라인의 말에, 네슬러는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마일즈에게 지시를 내렸다.
“여유 자금 중, 주가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자금을 제외한 나머지 여유 자본금을 주식에 투자한다. 어차피 남부 재건사업은 끝물에 접어들었으니, 여기에 집중해.”
그는 마일즈를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
“본전은 남겨 와라, 주주총회에서 얻어맞긴 싫으니.”
“알겠습니다, 아버님.”
“이건 너네 형 주고. 다음 달부터 포사이스 박사하고 연구 협약 맺을 준비 하라 그래.”
네슬러는 그렇게 말하며, 종이 탄약을 집어 마일즈에게 툭 던졌다. 그가 뒤돌아 떠나려는 찰나, 아델라인이 그를 향해 물었다.
“아, 참. 가기 전에, 상자 안의 반지는 보고 가시지요.”
아델라인의 말에, 네슬러의 발이 멈췄다. 아델라인의 손에 꼭 맞는 금반지가, 네슬러의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로피츠 공작가의 인장 반지가 아니었다. 그저 사람 손을 많이 탄, 낡은 금반지였다. 잠시 멍하니 멈춰 서 아델라인과의 대화를 복기한 그는, 이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어쭙잖게 속아 넘어갔다면 화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완벽히 속아 넘어갔다는 생각을 하자 화는커녕 웃음만 나왔다.
네슬러는 그렇게, 한층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무실을 나섰다.
방 안에는 마일즈와 아델라인만 남은 상황. 마일즈는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질문을 했다.
“포우스포드 그 애에 대한 소식은…….”
“…….”
방금까지 해맑은 미소를 짓던 아델라인의 고개가 푹 숙여지자, 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오늘 장이 마감하고,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을 모아 식사 약속을 잡겠습니다. 급하게 일정을 잡아야 해서 얼마나 응할지는 모르겠지만, 시도조차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적극적인 협력 감사합니다.”
“뭐… 필요할 때만 나타나는 말썽쟁이 막내 놈이라지만. 가족이니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겠지요. 그러면, 저녁에 뵙겠습니다.”
“저녁에 뵙지요.”
아델라인은 마일즈와 인사를 나눈 뒤, 그의 집무실을 나섰다.
마차에 오르자, 아델라인은 맞은편의 자리를 바라봤다. 알렉스가 앉아 있었던 맞은편 자리가, 오늘따라 공허하게 느껴졌다.
“…….”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다,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자신만 정신을 차리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마치 자신을 세뇌하듯, 아델라인은 맞은편의 빈자리에서 눈을 돌렸다. 한여름이건만, 마차 안은 한없이 서늘하고 쓸쓸했다.
* * *
“사문회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느냐.”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얼마나?”
황후의 시선이 사문회에 참석한 사문 위원들을 향해 내리꽂혔다. 황후의 부름을 받고, 황후의 지시를 따랐으나, 황후가 원하는 결과를 아직도 내지 못하고 있는 이들.
“대체 얼마나 경들을 기다려야 하지?”
“…사문회를 통해 압력을 가하려고 해도, 피츠허버트 백작이 의사봉을 쥔 상황이라 번번이 방해받고 있습니다.”
“유도 심문에도 걸리지 않고, 툭하면 답변을 거부해 속도를 내기가 힘듭니다.”
“저번에는, 저희를 향해 ‘불만이 있다면 법정에서 보시지요.’라고 까지 하더군요.”
그들의 말에, 황후는 이를 악물었다. 누가 필즈먼의 피후견인 아니랄까 봐, 능구렁이가 따로 없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사문 위원들을 향해 꾸짖었다.
“죄과가 명백하거늘, 이렇게 속도가 안 나온다면 그대들의 자질을 의심하는 수밖에 없소! 단 둘뿐인 황실의 적통을 다른 이들이 보는 앞에서 죽였는데, 그거 하나 끄집어내지 못해?”
“하지만, 대부분의 자료를 가지고 있는 육군본부는 사문회 목적의 자료 제공을 거부했고, 마일즈 부수상과 그린우드 의장 직무 대행은 연이어 남부당을 향해 압박을 넣고 있습니다!”
“남부당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시 상황에 대연정 내각 내에서 분란을 일으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수작이 아니냐는 여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더구나 일전의 시해 미수 사건에 쓰인 도구가, 날도 서지 않은 의장용 검이라는 수사 결과 보고서도 공개되었습니다, 여론이 점점 불리해지고 있습니다!”
그러자 황후는 탁자를 내리치며 그들에게 외쳤다.
“사문회에서 그 잡것의 죄를 밝혀낼 수 있다고 한 건 경들 아닌가!”
황후의 일갈에, 사문 위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바로 그때, 한 시녀가 손에 신문을 든 채 다급한 걸음으로 황후에게 달려왔다.
“황후마마, 큰일입니다!”
“내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 명을 내렸거늘!”
황후가 시녀를 향해 호통을 쳤지만, 시녀는 황후에게 신문을 내밀며 외쳤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석간신문에……!”
시녀가 내민 신문의 제1면 상단에는 단 일곱 자의 글자만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나는 고발한다!]무엇을, 무슨 이유로 고발하겠다는 건지, 이유도 없는 불완전한 문장. 그러나 그 아래 펼쳐진 글은 도저히 묵과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무기력한 자유당 출신 수상부터 침묵을 지키고 있는 황제까지 모두 조목조목 비판한, 첨예한 글줄이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 글을 쓴 이의 필명이 ‘파인우드’라는 것.
몇 년 전 개인적인 사정이라며 마지막 칼럼으로 절필을 선언했던, 한때 사설을 냈다 하면 모든 신문이 경쟁적으로 1면에 실어 주던 수수께끼의 명필.
황후의 손은, 이미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거리는 이미 반으로 갈려 격렬한 논쟁이 오가고 있습니다, 황후마마!”
“…이런 빌어먹을 놈들!”
황후는 사문 위원들을 향해 신문을 내던지며 외쳤다.
“대체 일을 어떻게 하면 이렇게 퍼져!”
“송구하옵니다, 황후마마!”
황후의 일갈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이들. 황후는 의자에 털썩 앉아, 나지막이 말했다.
“친위대가 수도 근교에 도착했다. 연락을 넣어, 몸이 날래고 능력이 있는 몇 명을 먼저 수도로 보내도록 지시해라.”
“그, 그렇다면…….”
“추궁당해 죄가 드러나는 게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라는 결말이 좋겠지.”
황후의 말에, 사문 위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봤다. 그러나 황후는, 그들이 뭐라 의견을 꺼낼 틈도 주지 않았다.
“뭘 기다리는 거지? 경들은 어서 물러나라. 내일은 대위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 데에만 집중하도록!”
결국 사문 위원들은 고개를 숙이며 황후 앞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림자 속에 절묘하게 숨어 자신을 감추던 여성이 황후 곁으로 다가왔다.
“뛰어난 결단력이십니다, 황후마마. 하지만…….”
보랏빛 눈을 빛내며, 피오나는 짐짓 만류하는 투로 황후에게 속삭였다. 그러나 황후는 미소를 지으며 피오나를 안심시켰다.
“친위대에는 특히 신경 써서 키운 이들이 있어. 총기도 압수당한 대위 하나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야. 그래도 걱정해 줘서 고맙구나.”
황후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를 들은 피오나는 고개를 숙이며 입에 발린 말들을 이어 나갔다.
“아닙니다, 황후마마. 뜻대로 되시리라 믿습니다.”
달콤한 말을 황후의 귀에 속삭이는 피오나의 입에는, 잔잔한 미소가 깔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