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황소가 되어
“빌어처먹을,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윌포드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영관 장교 관사로 들어섰다. 남해 함대 기지에서 헬리온의 수리와 재무장을 마치고 나니, 자신의 승조원들과 파견 중대는 소식이 끊긴 상황.
전멸당했다면 분명 소식이 있었을 텐데, 그 소식마저 없는 상황. 그 와중에 해군성의 근무지로 돌아와 보니 사문회 이야기가 들려왔다.
물어물어 알게 된 정보는, 라이플 여단의 한 대위가 사문회에 끌려가게 되었고, 지금은 영관 장교 관사 중 하나에 억류되어 있다는, 구체적이라면 구체적이고 애매하다면 애매한 정보였다.
결국 그는 퇴근하자마자 수도의 관사 중 공실 상태의 관사를 찾아 돌아다녔다. 그리고 새벽 2시를 넘겨서야, 그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왜 문이 열려 있는 거지…….”
공실 상태라면 문이 닫혀 있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문은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서류상으로 보았던 약 3개월의 공실 기간으로 설명되지 않는 흔적들이 보였다.
내려앉았을 법한 먼지는 없었고, 스토브 위의 주전자는 아직 약간의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한곳에 모인 쓰레기의 양은, 결코 한 사람이 만들어 냈다고 보기 어려운 양이었다.
“…….”
여기가 맞다. 하지만 설명되지 않는 것 또한 많았다.
그렇다면 방금까지 여기에 있었을, 경비병 내지 관리 인력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바로 그때, 위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윌포드는 급히 계단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러자 요란한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
칼을 부딪치고, 육탄전을 벌이는 소리.
짐작 가는 상황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제기랄……!”
윌포드는 허리춤의 커틀러스와 피스톨을 확인했다. 오베른 시의 사건 이후로, 커틀리스는 항상 예리하게 다듬어 왔다. 그러나 걸리는 건 피스톨이었다.
화약을 재어 넣은 지 분명 일주일은 된 것 같은데, 화약이 굳었을까.
하지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그는 유일하게 닫혀 있는 방문의 문고리를 급하게 잡고 돌렸다. 그러나 문고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젠장, 대위! 안에 있나? 대위!”
“윌포드?!!”
알렉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윌포드는 곧바로 피스톨을 뽑아 부싯돌을 젖히고 문고리를 겨눴다.
탕!
다행히 문제없이 발사되어 준 피스톨. 총성과 함께 문고리가 부서지자, 윌포드는 곧바로 문을 걷어차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비릿한 혈향.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건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흑복의 사내,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것은…….
“조심해!”
흑복을 입은 두 사내 중 하나가 윌포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목이 그이는 걸 피한 윌포드는 곧바로 허리춤의 커틀러스를 뽑아 들었다.
“빌어먹을!”
상대는 어쭙잖은 불량배가 아니었다. 그를 향해 매섭게 몰아치는 공격에, 윌포드는 그동안 배워 왔던 검술의 기본을 떠올리며 간신히 막아 내는 데 급급했다.
“젠장, 이것들 뭐야?!”
“뭐긴 뭐야, 누군가 보낸 졸병들이겠지!”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검사의 발을 걸어 균형을 잃게 만들었다. 잠시 자세가 흐트러진 그 순간, 알렉스는 허리춤의 총검을 뽑아 상대의 가슴팍을 찔렀다.
바람 빠지는 듯한 옅은 신음 소리를 내며 동료가 쓰러지자, 윌포드를 상대하던 검사가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윌포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어깨로 상대를 들이받았다.
검사의 몸이 균형을 잃은 찰나, 시퍼런 칼날이 가슴을 뚫고 나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을 뚫고 나온 검을 본 검사는, 그대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쿵.
알렉스가 축 처진 몸뚱이에서 검을 빼내자, 검사의 몸은 실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쓰러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고요해진 방 안, 바깥의 달빛만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어두운 방 안에서, 윌포드와 알렉스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더 있나?”
정적을 깬 윌포드의 물음. 그러자 알렉스는 소매로 세이버의 피를 닦아 내며 그에게 물었다.
“더 있었나?”
“1층에는 아무도 없던데.”
그가 원하는 정보를 답한 윌포드. 그러자 알렉스는 의자를 끌어와 털썩 앉았다.
“그러면, 그러면 괜찮겠지…….”
알렉스는 팔꿈치 안쪽으로 세이버에 묻은 피를 닦아 낸 뒤,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윌포드도 검을 넣은 뒤, 의자를 끌어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누가 보낸 거냐?”
“짐작은 가는데, 짐작만 가네. 사문회에서 답변 거부를 너무 했나.”
“…진짜였어?”
“거짓말을 했겠냐.”
그 말에, 윌포드는 허허 웃었다.
“진짜라고 믿었겠냐, 너라면.”
“그래서, 황자 시해범과 단독으로 마주하게 된 소감이나 한번 말해 보겠나?”
“소감이랄 게 있나.”
윌포드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잠깐 검을 마주했을 뿐인데, 지금도 손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전사자가 생겼다고 전해 들었는데.”
“승조원들은 모두 살아 있어. 중상자 다섯.”
“…고맙다.”
“고맙긴.”
또다시 정적이 방 안을 채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윌포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고작 소위 하나였을 텐데. 무슨 일을 하든, 다 끝난 전쟁 질 만큼 큰일도 아니었을 텐데.”
“…….”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았을까. 어차피 너도 고작 위관 장교인데.”
윌포드의 말에는, 지금 이 상황에 대한 씁쓸함과 알렉스에 대한 연민이 담겨 있었다. 사문회, 그리고 암살 시도. 고작 대위에게는 너무 큰 고난이었다.
그러나 알렉스는, 역으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오베른에서, 너는 왜 우리를 버리지 못했냐, 일 꼬일 거 알고 있으면서도.”
“당연한 거 아니냐, 군인으로서…….”
알렉스의 질문에 답하던 그는, 곧바로 말을 흐렸다. 그가 고개를 푹 숙이자, 알렉스는 그를 향해 말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을 뿐이야. 군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알렉스의 말이 끝나자, 아래에서부터 우르르 발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알렉스가 창밖을 보자, 제1 수도경비대의 문양이 그려진 마차가 두어 대 관사 앞에 서 있는걸 볼 수 있었다.
“…거참. 빨리도 오네.”
알렉스의 농담 섞인 말에, 윌포드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오전 7시.
아직 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오가지 않는 아침, 공작가의 마차에서 내린 아델라인은 나이아와 함께 의회당으로 들어갔다.
아직 인적이 드문 복도를 지나 그린우드의 집무실 앞에 멈춰 선 아델라인이 직접 노크를 했다.
똑똑.
맑은 노크 소리가 적막한 복도 안을 채웠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천천히 문이 열렸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 창가에서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고 있던 그린우드가 담뱃대를 입에서 빼며 그녀를 바라봤다.
“부르셨나요.”
“아, 아침부터 급히 불러서 미안하네. 서신으로 전하기는 곤란한 일이라.”
“아닙니다. 무슨 일인가요?”
아델라인의 물음에, 그린우드는 한숨을 푹 내쉬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
“일단 앉게, 차를 미리 끓여 두었으니.”
“알겠습니다.”
보좌관마저 출근하지 않은 집무실. 그린우드는 직접 찻잔과 다과, 그리고 설탕을 꺼내 테이블에 놓고 그녀의 찻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아델라인이 차를 입으로 가져가자, 그린우드는 찻잔을 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피츠허버트 의원 말로는 사문회가 그들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더군. 대위가 유도 신문에 말려들지도 않았고, 오히려 사문회의 법적 결함을 들어 역으로 사문 위원들을 비판했다네.”
그린우드에게 전해 들은 알렉스의 모습에, 아델라인은 그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봤다. 알렉스다웠다. 알렉스의 그 당당한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한 게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델라인의 입이 살짝 호선을 그렸다. 그린우드는 그녀의 표정을 본 뒤, 찻잔으로 시선을 향하며 말을 이었다.
“오늘 새벽 2시 즈음에, 대위를 향한 암살 시도가 있었네.”
갑작스럽게 전해진 알렉스의 두 번째 소식. 아델라인은 손을 떨며 잔을 내려놓고 그를 바라봤다. 거짓말일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믿기지 않았다.
그린우드는 곧바로 그녀에게 설명했다.
“해군 영관 장교 관사 중 한곳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검으로 무장한 신원 불명의 남성 셋이 침입했다는군. 경비병이 모두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누구의 소행인가요? 대위는 괜찮은가요?”
“아직 밝혀진 바는 없네. 다행히 해군성의 윌포드 대위가 이변을 눈치채고 안으로 들어가 제압을 도운 덕분에 큰 부상은 없었다는군. 제1 수도경비대의 보고에 따르면.”
윌포드는 아델라인에게 직접 확인해 보라는 듯, 제1 수도경비대의 약식 보고서를 건넸다. 그 말대로였다.
아델라인은 그린우드에게 서류를 돌려 줬다. 그러자 그린우드는 책상 위에 보고서를 올려놓은 뒤, 목소리를 낮춰 그녀에게 속삭였다.
“그리고 정보원에 따르면, 암살 시도가 있기 전 마지막 사문회가 끝난 후 남부당 사문 위원 셋이 황후궁에 방문했다고 하고.”
그 말에, 아델라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범인은 명백했다. 황후의 사주로 이뤄진 암살 시도였다. 그러나…….
“정황 증거뿐이네요.”
요점을 짚은 아델라인의 말에, 그린우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 중이긴 하지만, 이렇게 끝날 가능성이 높네. 하지만 남부당 놈들도 찔린 게 있는지, 먼저 우리에게 제안을 해 오더군.”
“어떤 제안 말인가요?”
그러자 그린우드는 차로 목을 축인 뒤, 아델라인에게 답했다.
“사문회 대신, 정식 재판을 진행하자 하더군. 기소 항목은 두 건. 이번 남해군도 작전에서 발생한 미성년자 피해 방조 혐의, 그리고 5년 전 호더빌 공성전에서의 황족 시해 혐의.”
“호더빌 공성전에서의 황족 시해 혐의요?”
“제2 황자. 미드라스 헤르만 베르크 소위 살해 혐의네.”
그린우드는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이 컸다. 자신도 모르고 있던 사안이었다.
그러나 아델라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알고 있었나?”
“아니요.”
아델라인의 말에, 그린우드는 더욱 의문 가득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델라인은 그 의문을 해결해 주듯, 믿음이 섞인 눈빛으로 그에게 답했다.
“하지만 저는 알렉스를 알아요. 이유 없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래. 그렇긴 하지. 이미 5년 전 야전사령부 군법 회의에서 포괄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안이기도 하고.”
“알렉스는 어떻게 되나요?”
“대위는 고위층 전용 감옥에 수용될 걸세. 시설은 안락하고, 보는 눈이 많으니 암살 시도도 더욱 힘들 거야. 오히려 더 안전한 셈이지. 상황이 상황이니, 개인실에 최소한의 무장도 허락하기로 했어.”
그린우드는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아델라인을 향해 물었다.
“내 딴에는 도움을 주겠다고 쓴 글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 황후랑 맞설 각오, 아니 준비가 되어 있나?”
“그렇게 해야만 알렉스를 지킬 수 있다면요.”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아델라인은 그린우드를 향해 말했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말하게.”
“주식 시장에 대한 감시망을, 조금 느슨하게 해 주십시오.”
“…무엇을 위해서인가?”
“조금은, 선을 넘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아델라인의 말에, 그린우드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나 아델라인의 눈에 담긴 의지를 본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말게. 이미 내각과 의회는 난리니까.”
“감사합니다. 그럼, 가 볼 곳이 있어서요.”
“어디로 가나?”
그린우드의 물음에, 아델라인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부탁받은 일을 시작하려고요. 준비는 끝났으니까.”
아델라인의 말에, 그린우드는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하네, 그리고 고맙네.”
“오래는 못 버틸 겁니다. 뒤는 부탁드려요.”
아델라인은 그 말을 남긴 채, 집무실을 나섰다.
* * *
그녀는 곧바로 의회당을 나와, 마차에 올라 또 다른 장소로 향했다.
아델라인이 탄 마차가 도착한 장소는 제국 중앙 증권 거래소.
제국의 모든 주식이 오가는, 대륙 최대의 증권 거래소에는 장이 시작하기 전 미리 자리를 잡아 두려는 수많은 증권가들과 중개인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아델라인이 마차에서 내리자 일제히 그녀에게로 향했다. 공작가의 유일한 후계자가 이곳에는 무슨 일이지? 라는 시선.
대부분의 귀족 가문은 중개인을 보내 주식의 거래를 맡겨 왔기에, 아델라인이 직접 방문하는 건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그때, 아델라인의 곁으로 마일즈 스틸웰이 다가왔다.
“제때 도착하셨군요.”
“의회에 들를 일이 있어서요.”
“소식은 알고 있습니다.”
“계획에 변동이 생길까요?”
“큰 흐름은 같습니다.”
마일즈는 중절모를 벗었다가 고쳐 쓴 뒤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황소가 되어 주시지요.”
그러자 아델라인은,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기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