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치명적인 실수
“5년 전 오베른 공성전과 올해 6월 중순에 있었던 남해군도 작전에 대한 심리를 시작하겠습니다. 군사 정보 보안 규약을 지켜 달라는 전시사령부 요청에 따라, 자세한 정보는 언급하거나 기록에 남기지 않겠습니다. 자세한 정보가 필요할 경우 사전에 배부한 자료집을 참고하십시오. 자료집의 내용 유출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알렉스의 생년월일을 확인하고 나자, 판사가 재판정에 선 모두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모두가 알아들었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판사는 법봉을 들어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면, 검사 측. 질문하세요.”
“네, 그러면 남해군도 작전에서 발생한 미성년자 피해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이 작전에서, 아동 연쇄 납치사건의 피해 아동 63명이 사망하였습니다. 대위는 명령을 내릴 당시, 미성년자가 현장에 있었음을 인지했습니까?”
“피고 측?”
“답변하겠습니다.”
“변호인이 없는데, 직접 답변하겠습니까?”
“사문회로 소환될 때,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는 고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판사는 고개를 돌려 검사를 바라봤다.
“검사 측, 구속 당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는 권리를 고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검사는 실수했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변명을 늘어놓았다.
“피고에게는 변호사 자격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안의 중대함을 우선하여 신속히 구속 절차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알렉스는 손을 들어, 발언권을 청했다.
“피고, 말씀하세요.”
“남해군도 작전 직후부터 구속 상태로 있었기에 변호사를 선임할 방법과 기회가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재판의 절차적, 법리적 하자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바입니다.”
알렉스의 말에 판사는 검사를 바라봤다. 검사도 손을 들어 발언권을 청했다.
“피고는 남해군도 작전 지휘 사실과 호더빌 공성전 당시 미드라스 헤르만 베르크 황자 저하 시해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법리적인 하자가 본질적인 문제를 해치지 않는다, 주장합니다.”
“피고?”
“검사 측은 제 발언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조사 당시 남해군도 작전 지휘 사실과 미드라스 헤르만 베르크 소위를 향한 발포 사실은 인정했으나, 혐의까지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알렉스의 말에, 판사는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를 훑어보았다.
“어디… 아, 여기 있군. 피고, 계속하십시오.”
“또한, 당시 야전사령부에 의해 진행된 군법 회의를 통해 월권 및 아군에 대한 무력행사 등 혐의에 대해 포괄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바 있습니다. 해당 군법 회의 기록은 자료집 47페이지를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재판장님!”
“검사 측, 발언권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자중하십시오. 피고 측?”
판사는 자료집을 덮은 뒤, 알렉스를 바라봤다.
“피고가 주장한 내용을 일부 인용하겠습니다. 상황이 중하다고 하나, 그 과정에서 법리적, 절차적 하자가 있었음은 명백합니다. 따라서 본 법정은 다음 주 월요일 오전 9시에 재판을 재개하겠습니다.”
판사의 말에, 검사는 항의의 눈빛을 판사에게 보냈다. 그러나 판사는 그 시선을 무시하며 알렉스를 바라봤다.
“그동안 피고의 권리는 보장될 것입니다. 다만 피고의 신변 보호를 위해 머무르는 곳은 제3 교도소의 개인실로 제한하며, 외출 시에는 근접 경호 인력이 동행해야 합니다. 원하는 사항이 있다면, 반영하겠습니다.”
판사의 말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접 경호 인력으로 파견 중대를 동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제3 수도경비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 것이다. 휘태커 경감은 이를 무시할 사람이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또한, 미드라스 헤르만 베르크 소위 사건에 대해서는 앞선 군법 회의가 존재하므로, 이를 반영해 1심이 아닌 재심으로 판단합니다. 검사 측, 이의 있습니까?”
“이의… 없습니다.”
알렉스에게 유리한, 5년 전의 군법 회의를 재판에 반영한다는 판사의 말에 검사의 표정이 썩어들어 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판사는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재판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양측 모두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의 심리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그렇게 그는 양측의 인사도 받지 않은 채, 법복 자락을 휘날리며 법정을 떠났다.
첫날은, 이렇게 허무하게 지나갔다.
* * *
일주일째.
아델라인의 눈가에 자리 잡은 다크서클이 점점 길어지고 짙어지기 시작했다.
커피잔에는 나이테가 하나씩 생겼다. 처음에는 비위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피곤하니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만약 저택에서 출퇴근하기를 택했다면, 아델라인은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여관의 방에 머무르고 있기에, 그녀는 사람 꼴을 갖출 수 있었다.
시녀 두 명이 해 줘야 했던 복잡한 머리 모양은 알렉스가 선물해 준 리본으로 묶은 포니테일로 대체되었다. 앉아서 머리를 땋고 묶고 할 시간에, 한숨이라도 더 자고 글자 하나라도 더 읽어야 했다.
알렉스에 대한 소식이 신문에 종종 나왔지만, 아델라인은 일부러 그 기사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혹시나 기사에 나쁜 소식이 담겨 있을까 무서워서 신문을 펄쳤다 덮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아델라인은 혼자가 아니었다. 수십 명의 관록 있는 경제인과 증권가를 지휘하게 된 사령관이었다. 만약 개인적인 일로 동요하기 시작한다면, 자신을 뒷받침하는 이들의 믿음을 순식간에 잃을 수 있었다.
그렇게 5일째도, 장 마감까지 겨우 1시간만을 남겨 두고 있는 상황.
“20개 종목, 모두 방어선 바깥으로 밀어냈습니다.”
“상승세도 나쁘지 않습니다. 자본 회수할까요?”
“아니요, 우리의 목적은 돈을 벌려는 게 아닙니다. 기준선에서 20퍼센트 이상 오른 주식만, 보유량에서 10퍼센트 내로 매도합시다.”
아델라인의 말에, 증권가들은 곧바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오늘만 버티면 이틀의 여유가 생긴다는 생각에, 그들은 마지막 남은 힘을 모조리 짜내고 있었다.
오늘 오전, 전체의 5할까지 떨어졌던 자본은 다행히 6할까지 회복했다. 증권 시장에 퍼져 있던 하락세에 대한 걱정은 아델라인이 직접 증권 거래소에 모습을 내비치며 매수를 외치는 모습에 한결 흐려졌다.
그러나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다음 주도 비슷한 속도로 자본을 소모하면, 결국 다음 주 금요일에는 끌어모았던 모든 현금이 동나 버린다. 그다음에는, 하락세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진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공작가의 집사 한 명이 아델라인에게 다가왔다.
“공녀님.”
“왜.”
“루멘시아 백작가의 피오나 루멘시아 영애께서 공녀님을 만나 뵙고 싶다 하셨습니다.”
집사의 말에, 아델라인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피오나 루멘시아가.”
“그렇습니다.”
아델라인은 나이아를 바라봤다. 그러자 나이아는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한 시간도 안 남았으니, 나머지는 제가 맡을게요.”
“그래, 부탁할게.”
아델라인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방을 나서려는 찰나, 나이아가 그녀의 손가방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거 챙겨 가셔야죠!”
“아, 고마워.”
아델라인은 나이아에게서 묵직한 손가방을 건네받은 뒤, 옷걸이에 걸어 둔 모자를 머리에 쓰며 말했다.
“나 혼자 다녀올게.”
아델라인의 말에, 나이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괜찮아, 도시 한복판이잖아? 부탁해?”
“다녀오세요, 공녀님.”
그러자 나이아는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인사한 뒤, 자리에 앉아 증권가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나이아와 교대를 했었기에, 증권가들도 순순히 나이아의 지시를 따랐다.
아델라인이 1층의 로비로 내려가자, 1층의 테이블에 앉아 있던 피오나가 앉아서 그녀를 향해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했다.
아델라인과 피오나가 똑같은 귀족 영애라면 용납될 행동이었겠으나, 아델라인은 엄연히 작위를 받은 귀족. 아델라인은 피오나를 잠시 내려다본 뒤,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얼굴이 많이 상하셨네요, 아델라인.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천연덕스럽게 안부를 묻는 피오나의 말에, 아델라인은 표정을 굳힌 채 짧고 퉁명스러운 한마디로 반응했다.
“호칭.”
“…….”
“남들 앞에서는 격식을 차려야 하지 않겠어요, 영애? 백작께서 영애의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하.”
아델라인의 말에 가소롭다는 듯 반응하는 피오나. 이내 여관의 종업원이 차를 내오자, 두 사람은 찻잔을 들고 서로를 응시하며 차를 입에 머금었다.
“그 말, 후회하지 않으시겠어요?”
피오나의 도발적인 물음, 그러나 아델라인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뭐, 황태자비께 격식 정도야 차려 드릴 수는 있지요. 무사히 황태자비가 되신다면야. 물론, 그전까지는… 아시지요?”
아델라인의 물음에, 피오나의 눈빛이 일순간 매서워졌다. 그러나 아델라인은 더는 그에 굴할 사람이 아니었다.
이내 피오나는, 미소를 되찾으며 아델라인을 향해 말했다.
“주가가 내려가지를 않는군요. 마치… 누군가 붙들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가 일부러 흔들어도,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으니까요. 특히, 남의 그림자에 숨어 수작질 부리는 사람의 손에는 더더욱.”
아델라인의 시리도록 푸른 눈이, 피오나의 보랏빛 눈을 지그시 꿰뚫어 보았다. 그러자 피오나는 피식 웃으며 잔을 내려놓았다.
“불안하신가요?”
아델라인의 심정을 절반 정도 들여다보면 나올법한 감정이, 피오나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왔다.
두려웠다.
이 추세를 따라간다면, 당장 다음 주에는 아델라인과 스틸웰 공업이 모은 집단들의 자산이 모두 동난다. 거기다가 누군가 이탈이라도 한다면, 가용 가능한 자본은 더더욱 줄어들 터.
그러나 아델라인의 마음속에는 두려움만 있는 게 아니었다.
“뭐, 그래도 한 1할 정도만 손실을 봐서요. 3할까지는 버틸 수 있으니까.”
아델라인은 미소를 지으며 선선히 그녀에게 정보를 내주었다.
그 말에, 피오나는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행이네요. 준비해 둔 게 모자라지는 않을 것 같아서.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멍청한 짓거리도, 이제 그만 끝낼 때가 되지 않았어요?”
그러자, 아델라인의 등골에 서늘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마치 육감을 건드리는 듯한 불길한 조짐.
아델라인은 시계를 바라봤다. 시침은 부지런히 4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공, 공녀님!”
공작가의 집사 중 한 명이 아델라인에게 달려왔다.
“증권가 내에서 패전 소식이 퍼졌습니다! 매도 주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어선에서 15퍼센트 이상 하락!”
그 말에, 아델라인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진짜 패배한 건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은 했지만, 대비를 하지 않았던 상황. 아델라인의 손은 덜덜 떨리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자명종이 세차게 울리며 4시를 알렸다.
그러자 피오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델라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문에는 실체가 없지만, 그 위력은 강력하죠. 얼마나 떨어졌으려나. 기대되지 않나요?”
마치 자신이 패전에 대한 소식을 퍼뜨렸다고 자백하는듯한 피오나의 말. 그 말에, 아델라인은 매서운 눈길로 피오나를 바라봤다. 그러나 피오나는 그 시선마저 즐겁다는 듯, 미소와 함께 아델라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차 잘 마셨습니다. 다음번에는 황궁에서, 제가 직접 대접할게요, 남작.”
피오나는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로비를 벗어났다.
그 뒷모습은, 마치 미리 승리를 만끽하는 듯 한없이 가볍고 즐거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