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독 사과는 붉고, 영롱하게 빛난다
설마 증거금을 채울 여유 자본이 남아 있었던 건가?
증거금이 바닥나기 전, 또다시 현금을 융통해 부족한 양을 채워 넣었다면 지금 이렇게 버티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부족한 증거금을 채울 자본을 끌어온 거지? 분명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텐데?
그런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아델라인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영애, 질문 하나 할게요. 혹시 공매도를 했다가 주식이 오르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별 어려울 것도 없는 질문. 당연히, 주식이 더 폭등하기 전에 손해를 감수하고 주식을 매수해 상환하거나, 만기까지 주식의 하락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피오나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주가 하락을 조장하기 위해, 피오나도 가용 가능한 자산을 쏟아부은 참이었다. 3할만 떨어트리면 된다는 착각에 매몰되어, 주식을 떨어트리기 위해 전력을 다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런 피오나의 상황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듯, 아델라인은 승자의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생각, 해 두셨나요?”
“…….”
“영애가 아직 주식 시장에 대해 잘 몰라, 실수를 저지르신 모양이시네요. 하긴, 아직 누군가의 부추김에 휘둘리실 수 있는 나이이니까.”
마치 피오나를 깔보는 듯한 아델라인의 말에, 그녀는 이를 빠득, 갈았다. 그리고 그녀는 잠시 아래를 바라보며 표정을 감춘 다음, 다시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시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요, 남작님.”
“뭐, 간단해요. 제국의 황태자비가 되실 분인데, 사소한 은원 관계는 덮어 둬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리고, 황태자비께서 투자 실패로 빚더미를 지신 민망한 상황은 로피츠 공작가로서도 반가운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간 아델라인은 회중시계를 손가방에서 꺼내 시간을 바라봤다.
“흠. 약 30분 정도 남았을까요?”
아델라인은 그 말을 한 뒤, 피오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서두르신다면, 큰 손해는 막으실 수 있을 거예요.”
아델라인의 말에, 피오나는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대체 왜 자신에게 이런 기회를 주느냐는 의문과 그 말이 자신을 노린 또 다른 함정이 아니라는 보장이 있냐는 경계심이 눈에 담겨 있었다.
그때, 아델라인은 다시 한번 권유하듯 피오나를 향해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어서 물러가시지요.”
그다음, 그녀는 피오나의 귀에 입을 가져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다른 사람 목숨으로 무마할 생각 하지 말고. 피 냄새는 지긋지긋하니까.”
그 말에, 잠시 이해할 시간을 가진 피오나의 입에서는 곧바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잠시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무시하듯 한껏 웃어 젖힌 그녀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고작 손짓 한 번만 하면 될 텐데, 손짓 한 번만 하면 저를 치워 버릴 수 있을 텐데.”
마치 희극을 보듯, 얼굴에 맺힌 순수한 웃음은 거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웃음기를 유지하며, 아델라인을 향해 말했다.
“아델라인은 정말 착하군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꼭두각시를 걱정해 줄 여유도 있고.”
피오나에게, 수족으로 부리던 중개인들은 꼭두각시나 다름없었다. 세이드가 있었을 적에는 세이드의 손으로 폐기 처분을 해 왔고, 세이드가 없어진 지금에도 다른 사람의 손으로 폐기 처분할 소모품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소모품으로 여긴 이들의 목숨을 부지시켜 주겠다고, 아델라인은 자신의 목을 칠 절호의 기회를 포기한 것이었다.
“이래서야, 마치 제가 이 세상의 악역이 된 것 같잖아요. 아델라인이 주인공이 된 것 같고.”
피오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자조적인 기색까지 느껴지는 피오나의 목소리였지만, 아델라인은 무미건조하게 시계를 바라본 뒤 그녀에게 말했다.
“27분.”
더는 피오나와 말을 섞기 싫다는 듯, 짤막하게 남은 시간을 일러 주는 아델라인. 그녀의 말을 들은 피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네. 알겠어요. 황소 뿔에 들이받히지 않으려면, 서둘러 도망가야겠지요.”
피오나는 말을 마친 뒤, 치맛자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하해와 같은 관용과 은혜, 언젠가는 갚아 드리겠습니다. 그럼.”
피오나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거래소를 나갔다.
잠시 뒤, 거래소 안은 연이은 매수 주문으로 가득 찼다. 매수 주문에 균형을 맞추듯 매도 주문이 이어졌다. 십수 분 정도 지나 연이은 매수 주문이 사그라들 즈음, 거래소 한편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종전 협정, 배상금, 승리 등등. 갖가지 단어가 사람들의 입을 타고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곧이어 거래소 안은 또다시 매수 주문의 연속이 이어졌다.
그 주문들을 귀에 담은 아델라인은 고개를 돌려 거래소를 나섰다.
자신의 역할은, 여기서 끝이었다.
* * *
“황자 저하께서는 스스로 작성한 기고문을 통해, 전장에서만큼은 제2 황자가 아니라 제17 보병 연대의 일개 소위로 종군하겠다,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재판정에서 다뤄야 할 것은 제2 황자 저하가 아니라, 미드라스 헤르만 베르크 소위가 되어야겠지요.”
알렉스가 꺼내 든 신문. 그 신문에 실린 기고문은, 검사 측이 꺼내 든 ‘황족 시해죄’ 라는 키워드를 확실히 흔들고 있었다.
그와 함께, 재판정의 흐름도 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위압적인 검사에 맞서는 단 한 명의 청년. 누가 봐도 불리한 상황에서 대등하게 맞서는 이의 모습은, 무릇 방청석의 마음을 흔들기 충분했다. 하물며 홀로 고고히 서 있는 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계속 정론만을 택하고 있다면 더더욱.
“계속하세요.”
“또한, 제17 연대의 사병화는 이미 베르크 소위의 전입 직후부터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육군 정보국의 내부 감찰 자료에 따르면, 소위가 연대장을 향해 경례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 일상적으로 관찰되어 왔습니다. 경칭의 생략은 물론이고, 연대장을 대신해 연대 장교들에게 지시를 내리기도 했지요.”
그동안 감춰져 있던, 비극으로 포장되어 있던 제2 황자의 모습을 들춰내는 알렉스의 말이 계속 이어지자, 검사가 알렉스를 노려보며 손을 들었다.
“검사 측, 발언하세요.”
판사의 허락이 떨어지자, 검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알렉스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육군 정보국의 내부 감찰 자료는 호더빌 공성전 당시 작성된 게 아닙니다. 당시 소위에 불과했던 제2 황자 저하가 제17 연대의 비위 행위를 지휘했다는 증거로 쓰일 수 없습니다! 당시에는 이미 3차 돌격대까지 총 3개 연대, 4천 명에 달하는 병력이 요새 내에 있었습니다! 요새 내에서 벌어진 범죄가 모두 제17 연대의 죄라는 증거 또한 불충분합니다!”
“그러면 야전사령부의 군법 회의에서 판단한 내용에 하자가 있다는 뜻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발악에 가까운 모습. 그에 반해, 알렉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판사를 바라보며 허락을 구했다.
“발언을 이어 나가도 되겠습니까?”
“피고 측은 발언을 이어 나가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러면 어디까지 말했더라…….”
알렉스는 능청스레 말을 늘인 뒤, 서류를 보는 척 호흡을 끊었다. 모두의 시선이 알렉스를 향했을 때 즈음, 그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아. 연대장을 대신해 휘하 장교들에게 지시를 내리기까지 했다, 까지 했군요. 사실, 뭐 평상시에는 그렇게까지 문제가 되지 않을 일입니다. 기껏해야 배수로 파기, 당직 세우기 정도니까. 하지만!”
목소리를 한번 높인 알렉스는 차분히 말을 이어 가며 판사를 바라봤다.
“언어는 관계를 규정합니다.”
알렉스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잘못된 언어는 잘못된 관계를 규정하고, 잘못된 관계는 잘못된 결과를 낳습니다. 그 결과 4차 돌격대로 편성된 제17 보병 연대는, 잘못된 결과를 낳아 버렸습니다.”
“제17 연대가 호더빌 주둔 여단의 투항 직후 벌어진 제국군의 비위 행위를 일으킨 주범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검사 측의 흥분한 목소리. 그러나 검사도 순간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는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를 향해, 알렉스는 질문을 했다.
“그 말은, 먼저 투입된 다른 연대들이 그런 비위 행위를 저질렀다는 뜻입니까?”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존경하는 재판장님. 검사 측의 주장에 대한 반대 논거로서 증인을 출석시켜도 되겠습니까?”
알렉스의 물음에, 판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서류 증거 검토는 끝난 것 같으니, 증인 조사를 실시하겠습니다. 피고 측부터. 누구를 부르시겠습니까?”
그때, 검사가 손을 들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검사 측 먼저 증인을 출석시켜도 되겠습니까?”
조급해진 검사의 목소리에 잠시 눈살을 찌푸린 판사는 알렉스를 바라봤다.
“피고, 괜찮습니까?”
그러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후우… 좋습니다. 검사, 누구를 출석시키겠습니까.”
그러자 검사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알렉스를 노려봤다.
“당시 프랑크 육군, 호더빌 주둔 여단 소속이었던 앙리 바스통 소위입니다.”
“조서가 없군요.”
“증인을 설득하는데,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조서를 준비하지 못한 점은 사과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출석시키세요.”
판사의 말에, 잠시 뒤 중년의 남성이 증인석에 섰다. 그는 많이 긴장한 듯, 재판정을 두리번거리며 훑어봤다.
그러던 중 알렉스와 눈을 마주치자, 바스통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가 서툰 발음으로 선서를 마치자, 판사는 알렉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피고는, 증인에게 질문하세요.”
판사의 지시에, 알렉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판정의 한가운데로 걸어간 그는, 증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본 대로 말해 주십시오, 소위. 당신의 증언은 당신의 신변을 위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알렉스의 입에서 나온 프랑크 어에, 연신 흔들리던 바스통의 동공이 바로잡혔다.
그리고 잠시 뒤.
“증언,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