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184
184화 저는, 얼마나 소중해요?
서재로 들어간 아델라인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공작을 바라봤다.
근 보름 만에 깨어난 공작은, 사교 시즌 시작 전 마지막으로 대면했던 때보다 훨씬 쇠약해져 있었다. 이전보다 훨씬 말라 있었고, 초췌해 있었다.
아델라인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깨어나셨습니까, 아버님.”
“그래.”
공작은 단답형으로 답한 뒤, 신문을 읽어 내렸다. 아델라인의 책상에는, 공작가의 장부와 지난날들의 신문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신문은 오늘 자 석간지. 마지막 장까지 읽은 공작은 신문을 접어 내려놓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많은 일이 있었더구나.”
“네, 그렇습니다.”
공작의 눈이 신문 더미로 향했다. 물론 신문 1면을 차지한 주 내용은 자유당과 남부당의 싸움이었지만, 아델라인이 뛰어든 주식 시장의 이야기도 하루걸러 하루 올라 있었다.
“공작가의 현금을 긁어모으고, 공작가의 인맥을 긁어모아 도박판에 뛰어들었더구나. 공작가가 지켜 온 중립의 역사는 신경 쓰는 체도 안 하고.”
아델라인이 일주일 넘게 매달린 일을 단지 도박판이라 칭하는 공작의 말. 그러나 아델라인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델라인의 눈을 바라본 공작은, 그녀를 향해 질문했다.
“왜 그랬느냐?”
“매닝햄 대위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가문이니, 대공황이니, 다른 이들에게 내걸었던 이유가 아닌 단순하고 본질적인 이유.
알렉스를, 일방적인 사문회에서 지키기 위해. 그나마 안면이 있는 피츠허버트 백작을 사문회장에 집어넣기 위해.
아델라인은 가문을 건 싸움을 시작했다. 알렉스에게 질문 한번 해 볼 기회도 없이.
“대위를 택한 게 잘못된 선택이었을 수 있다.”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저지르고 후회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후회는 후회다. 네가 말하는 건 변명이고.”
“그래서, 공작 부인께 질문하신 걸 후회하시나요?”
아델라인의 말에, 공작은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아델라인은 태연하게 의자를 끌어와 공작의 맞은편에 앉아 그를 응시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눈에서 한차례 힘이 빠진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도 후회했고, 지금도 후회한다.”
“저는 아버님께서 후회하시는 이유를 압니다.”
“일기에 쓰여 있을 테니 말이지.”
공작의 합리적인 추측은 아델라인의 생각을 정확히 집어냈다. 하지만, 아델라인이 내놓은 답은 그의 답과는 달랐다.
“답을 못 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더는 답을 들을 길이 없기에.”
자신조차 깨닫지 못했던 흉중의 답을 꺼내 놓은 아델라인의 목소리에, 공작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렇기에 후회하시는 것이겠지요.”
아델라인은 공작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바라봤다가, 잠시 시선을 피하며 말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를 믿었기도 했지만요.”
아델라인의 답에 할 말을 찾지 못한 공작은, 잠시 침음성을 흘리다가 입을 열었다.
“…일기를 봤다면 알겠지.”
공작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매닝햄 대위의 생모가 죽게 된 상황에는, 내 책임도 있다.”
공작의 고백에, 아델라인은 공작의 일기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내용이 떠올랐다.
[문득 4년 전 즈음이 떠오른다. 아이를 낳자마자 몸조리를 하기도 전에 스스로 오두막을 뛰쳐나가 강물에 몸을 던진 황후궁의 시녀가.]물론 뒷부분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그런데도 알렉스의 생모가 죽을 때 공작이 그 자리에 있었음은 알 수 있었다.
“진실을 알게 된다면, 대위는 공작가를 적으로 둘 수도 있겠지.”
“직접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가셨나요?”
아델라인의 물음에, 공작은 침묵으로 답했다. 그렇다면 그렇다, 아니라면 아니다, 라고 답할 위인이 침묵을 지킨다는 건…….
직접 죽인 것보다 더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겠지.
“책임감을 느끼신다면, 직접 말하고 용서를 구하세요.”
“대답을 듣고 후회하는 게 더 낫다… 이거냐.”
“적어도 속으로 앓고 계시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그리고… 저는 알렉스를 믿어요.”
그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이에게까지 모질게 구는 냉혈한은 아니었다. 아델라인이 느낀 알렉스는, 그 누구보다 따듯한 이였다.
그렇다면, 알렉스는 자신에게 준 온기의 일부를, 공작에게도 내어 줄 것이다.
아델라인의 말을 들은 공작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듯 눈을 감았다.
“…내일, 의장 권한으로 다수당인 자유당에 내각 재구성 권고를 할 것이다. 필즈먼 대장이 전쟁에서도, 재판에서도 승리를 거뒀으니 남부당이 더 상황을 끌어 나갈 힘은 남아 있지 않겠지.”
공작은 그렇게 말하며 석간지의 기사들을 내보였다.
[- 전직 프랑크군 장교! 제2 황자의 전쟁 범죄를 폭로하다!– 제17 보병 연대의 사병화는 어떻게 비극으로 이어졌는가!
– 검사 측 증인, 알렉스 매닝햄 대위의 무고함의 증거가 되다!
– 잘못된 언어가 잘못된 결과를 낳았다!]
기사의 문장들을 보자, 아델라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비록 승전 보도에 밀려 1면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신문의 한 지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신문을 받아 든 아델라인의 손이 떨려 왔다. 막연히 믿기만 했던 알렉스의 결백함이 현실로 눈앞에 쥐어져 있었다.
그러자, 아델라인의 눈에서 참아 왔던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한번 터진 눈물은, 공작이 앞에 있어도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신문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 미세하게 떨리고, 구겨진 신문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승전 연회가 8월 1일에 있을 것이다. 그때를 전후해서… 필즈먼 대장과 매닝햄 대위를 만날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좋겠지.”
공작은 몸에 힘을 줘 아델라인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상적인 동작조차 힘을 들여야 할 만큼, 공작의 몸은 쇠약해져 있었다.
공작은 그녀의 옆을 지나가며, 아델라인의 손에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아델라인이 손을 펴 물기 어린 눈으로 손안의 것을 확인하자, 아델라인의 동공이 한순간에 커졌다. 아델라인은 그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공작가의 문양이 박힌, 인장 반지가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아직 총선까지는 1년 넘게 남아 있지만, 준비는 얼마를 해도 모자람이 없는 법이다.”
서재를 나가려 문을 열며, 공작은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또 다른 반지는, 의회에 맡겨 둘 테니 준비가 되면 받아 가거라.”
또 다른 반지는, 의장을 상징하는 반지.
아델라인이 검지에 공작가의 인장 반지를 꼈다. 아델라인의 손가락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공작이 나가기 직전, 아델라인은 몸을 돌려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말했다.
“모르핀은 모두 폐기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제국 의회의 의장은, 모르핀을 처방받은 적이 없으니까요.”
아델라인의 말에, 공작은 쓰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알겠다.”
그 미소와 함께 공작이 서재를 나갔다. 문이 닫힌 그 순간, 아델라인은 끝내 참아 왔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눈물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자꾸 흘러내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몸을 덮쳤기에, 아델라인은 눈물을 쏟아 내는 것 이외에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아델라인은 안도감에 울었고, 행복함에 울었으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막막함에 울었다. 그 끝에는, 울고 있기에 계속해서 울었다.
그렇게 아델라인은 밤이 깊어 가도록 볼품없이 울었다.
그날만큼은, 누구도 아델라인의 서재를 찾지 않았다.
* * *
한 달도 머무르지 않았건만, 알렉스의 개인실에는 어느새 양팔로 들고 가기 힘들 정도의 물건들이 곳곳에 자리 잡았다. 분명 들어올 때는 개인 장비와 군장밖에 없었던 짐이 두 배로 늘어나 있었다.
그 물건 중 상당수는 밖에서 형무소로 보내 준 선물들이었다. 응원의 편지와 함께, 갖가지 물건이 간수를 거쳐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차나 과자 같은 먹을 것들은 간수들과 그리고 다른 죄수들과 나눴다. 이런 고위층 전용 감옥에 있다는 것 자체가 옥바라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이들이라는 뜻이었지만, 그래도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는 행위조차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 덕분인지, 출소 당일이 되자 알렉스의 개인실 앞에는 선물들이 한가득 쌓였다. 누군가는 책을, 누군가는 몸에 좋다고 하는 리큐어를, 누군가는 알렉스의 나이보다 오래 숙성된 위스키를, 누군가는 흑단과 상아로 만든 체스 세트를 선물했다.
물론 사회에서는 구하고자 한다면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물건마저 구하기 어려워지는 형무소 안에 있는 이들의 성의마저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정리하던 그때, 누군가가 알렉스의 감옥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알렉스의 말에, 한 청년이 나무 궤짝을 든 채 안으로 들어왔다.
“물건 담을 궤짝 가지고 왔어요.”
“아, 감사합니다. 파블로 씨.”
넉넉한 보상을 대가로 누군가의 죄를 뒤집어썼다는 파블로가 건넨 궤짝에 물건들을 담으며, 알렉스는 그에게 말했다.
“얼마나 남으셨죠?”
“한 달 조금 더 남았죠. 그래서인지 시간이 첫날보다 더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아요.”
“파블로 씨도 나가면 도서관 담당은 누가 하나.”
“누군가는 맡아서 하겠지요. 저는 뒤도 안 돌아보고 신대륙으로 떠날 거라.”
“신대륙으로요?”
“신대륙 서부에 금광이네 사금이네 하는 소문이 돌더라고요. 물론 금광을 찾을 생각은 없지만, 거기서 여관이라도 하나 지어 놓으면 먹고살 수는 있겠죠.”
“아하.”
그의 도움을 받아 정리를 마친 알렉스는 궤짝을 닫은 뒤, 파블로와 악수를 나눴다.
“무죄 방면 축하해요.”
“고맙습니다.”
가볍게 악수를 나눈 알렉스는, 궤짝을 들고 형무소를 나섰다.
황궁으로 파견 중대가 복귀했다고 하니, 마차를 잡아서 황궁으로 가면 될 것이다. 공작이 깨어났다는 소식은 신문으로 들었지만, 아델라인은 분명 뒷수습으로 바쁠 것이다. 혹여나 방해가 될까, 출옥 일자도 알려 주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정문을 나선 알렉스는, 순간 궤짝 양쪽의 손잡이를 든 손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공작가의 마차가 형무소 앞에 서 있었다.
설마 아델라인일까, 하는 기대감이 차오르기도 전에, 마차 문이 벌컥 열렸다. 곧이어 복면을 쓴 두 사람이 마차에서 뛰어내려 알렉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알렉스는 누군가의 어깨에 둘러메졌다.
“알렉스 매닝햄 대위님, 실례하겠습니다!”
“뭐 이리 짐이 많대, 군장만 들고 간 양반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알렉스의 몸은 곧바로 대응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귀에 익은 목소리들이 들려오자, 알렉스는 순순히 그들에게 들려 마차 안으로 던져졌다.
우당탕―
마차 위에 궤짝이 실리고 알렉스를 던져 넣은 두 사람이 문을 닫자, 마부는 곧바로 말을 채근해 앞으로 나아갔다.
“아이고… 사람 잡네.”
짐짝처럼 널브러진 알렉스가 눈을 질끈 감으며 마차 벽에 부딪힌 머리를 문질렀다. 그때, 그의 귀에 그토록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파요?”
눈을 뜨자, 아델라인이 자리에 앉아 알렉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알렉스는 시선을 떼지 못하고 그녀의 맞은편에 앉으며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아델라인.”
“오랜만이에요, 알렉스.”
아델라인의 목소리에는,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알렉스가 긴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있죠? 저는 거짓말은 한 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해요.”
“…….”
할 말이 없어진 알렉스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알렉스는 두 번이나 제게 거짓말을 했어요.”
“…미안해요.”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알렉스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아델라인은 그렇게 말하며 마차 문을 달칵, 잠갔다. 그다음,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알렉스에게 저는, 얼마나 소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