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20
20화 진짜 여주인공
황궁 한구석의 낡은 벽돌 건물. 황궁의 화려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 건물은 발걸음이 끊긴 채 방치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안에서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도 관사가 생겼군요.”
스워포드가 탄약통을 옮기며 중얼거리자, 옆에서 문서함을 옮기던 알렉스가 맞장구를 쳤다.
“조사단이 황궁을 드나드는데 방치할 수는 없었겠지. 조사단은 어디까지 알아냈대?”
“난항이랍니다. 중대장님이 제압한 한 놈은 입을 꾹 다물고 있고, 애초에 하청을 몇 번이나 돌린 건지 알 수도 없죠.”
“양지에서 알아내기는 힘든 건가.”
“어불성설입니다.”
“젠장.”
알렉스는 문서함을 책상 위에 놓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생각이 오가고 있었다. 조금의 위험 부담을 더하더라도 세이드를 그 자리에서 잡아내는 게 맞았을까.
“후회하시는 중이시군요.”
탄약통을 문서함 옆에 잠시 내려놓은 스워포드는 그에게 넌지시 말했다.
“음?”
“4년 전, 호더빌에서 지었던 표정을 짓고 계십니다.”
“…그러냐.”
“뭐, 지금은 위스키에 물 탄 것처럼 약간 옅지만요.”
“그렇구만.”
알렉스는 그리 말하며 책상의 서랍에 서류를 채워 넣었다. 그는 서류들을 분류하고 채워 넣길 반복하다가, 잠깐 멈춰 섰다.
[라이플여단 제1 대대 선임 위관, 대위 알렉스 매닝햄.]“…호더빌.”
잠시 그 서류를 한 손에 들고 읽던 알렉스는 이미 서랍에 들어가 있던 서류들을 들어내고 손에 쥔 서류를 가장 깊숙이 집어넣은 뒤, 그 위에 들어낸 서류를 쌓아 올렸다.
서류들을 담고 있던 나무상자는 차근차근 비워졌다. 가장 묵은 서류들은 아래로, 가장 많이 쓰는 서류들은 위로.
서류 정리를 다 마치고 날 때 즈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대위.”
“아, 휘태커 경감님.”
“집들이 왔네, 부탁할 것도 있고.”
그는 알렉스의 책상 위에 찻잎 통과 서류 봉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경감님께서 오신 걸 보니 불안한데요. 앉으시지요. 아직 차를 내드릴 만큼 정리가 되지 않아서.”
알렉스가 책상 앞 소파를 가리키자, 휘태커 경감은 어깨를 으쓱이며 소파에 앉았다.
“기대도 안 했다네, 수개월간의 야전 생활을 청산하는 중일 테니 많이 복잡하겠지.”
알렉스는 책상에서 서류 봉투를 집어 들며 경감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서, 의회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자유당 내각과 육군본부에는 나쁘지 않은 상황인가? 알게 모르게 있던 군부 쪽 개입을 걷어 낼 명분이 생겼으니.”
“저는 말단 중대장일 뿐입니다, 제게 그런 걸 물으셔도.”
알렉스는 서류 봉투의 봉인을 떼어 내고 안의 내용물을 꺼냈다. 그걸 잠시 훑어본 알렉스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
“지금 감사가 진행 중인 친위대 대신, 제3 수도경비대가 이번 황실 행사의 경비를 맡게 되었네. 자네들이 맡기에는 외국 인사들에게도 민감한 부분이 없지 않을 테니.”
“다른 쪽 정보는?”
휘태커는 품속에서 또 다른 봉투를 꺼내 내밀며 그에게 말했다.
“뒷골목의 상황이 좋지 않아. 우리 쪽도 점점 인력이 부족해지고 있어. 그쪽은 경비대에서 어떻게든 하겠지만, 자네들의 도움이 몇 군데 필요하네.”
“…오늘 안으로 답 드리겠습니다.”
* * *
알렉스가 가고 며칠 뒤. 아델라인은 나이아와 함께 일정표를 짜고 있었다.
“연회가 또 있네?”
아델라인은 일정표를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각종 초대장을 분류하고 있던 나이아가 그녀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여름에 하는 대연회예요. 황궁에서 하는 본 행사를 시작으로 여러 가문에서 사교 활동이 이뤄지죠.”
그 말을 들은 아델라인은 눈을 크게 뜨며 나이아를 바라봤다.
“…분명 암살 시도가 벌어진 지 한 달도 안 되지 않았어?”
“그러니까 더더욱 예정대로 일정을 진행하려는 것이겠죠. 우리는 멀쩡하다는 것을 과시해야 하니까요. 뭐… 지방에서 올라올 귀족들을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나이아는 그렇게 말하며 한 목록을 내밀었다.
“여기, 공녀님께 초대장을 보낸 가문들입니다. 일자별로 분류했습니다.”
“고마워. 어디 보자…….”
아델라인은 나이아가 건넨 목록을 살펴봤다. 누가 누군지는 잘 몰랐지만, 나이아가 친절하게 주석을 달아 둔 덕분에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때, 그녀의 눈에 한 가문의 이름이 들어왔다.
“루멘시아 백작가…….”
“따로 친분이 있으신 분인가요?”
나이아가 묻자, 아델라인은 일단 고개를 저었다. 이 가문이 이 소설 속 여주인공의 가문이라는 걸 어떻게 말하겠는가.
“아니, 그래도 어디선가 본 것 같아서.”
아델라인이 일단 둘러대자, 나이아는 루멘시아 백작가에서 보낸 초대장을 꺼내 그녀의 앞에 내밀었다. 피오나 루멘시아의 그랜드 투어 복귀 기념 연회였다.
자신이 기억하는 소설 속 묘사가 맞다면, 아델라인은 이 소설의 여주, 피오나 루멘시아와 만난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 초대장에도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날에 다른 중요한 일정이 있어?”
아델라인이 묻자, 나이아는 고개를 저었다.
“공녀님의 판단을 바꿀 만큼 중요한 일정은 없습니다.”
나이아의 답이 나오자, 아델라인은 그녀에게 초대장을 건네며 말했다.
“좋아. 그러면 이날에는 이 일정으로 잡아 줘. 그랜드 투어 이야기가 궁금하네.”
“네, 일정을 조율하겠습니다. 파트너는 누구로 하실 생각인지요?”
나이아의 물음에, 일정표를 살피던 아델라인이 고개를 들어 나이아를 바라봤다.
“파트너?”
“네, 아무래도 저번의 작은 당일치기 행사가 아니라 여름 동안 계속 이어지는 사교 시즌이니까요. 혼자 다닐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공작가가 뒤에 있다 보니…….”
“내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거라고?”
“그렇습니다.”
“그렇기도 하네.”
아델라인은 자리에 앉으며 고민했다. 공작가의 재산과 권력은 분명 탐날 만했다. 만약 자신의 배우자가 된다면, 그걸 손에 넣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제게 접근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안드레이 레이크는? 유능하고 위험할 때는 날 지켜 줄 수 있을 거 아니야.”
아델라인은 안드레이를 떠올리며 물었다. 알렉스가 남겨 준 주머니칼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이아의 생각은 달랐다.
“공녀님, 저나 제 오라버니는 평민입니다. 장교도 아니고요. 수행원으로는 가능하지만, 공녀님의 파트너로는 격이…….”
나이아가 말끝을 흐리며 아델라인을 바라보자, 그 뜻을 알아챈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에 빠졌다.
“그러면 누구에게 부탁하지. 사교 활동 중에 얽히는 건 조금 그런데.”
자신은 아는 사람이 아예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노크했다.
“들어와요.”
아델라인이 말하자, 안드레이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 안드레이. 무슨 일이야?”
“중대… 알렉스 매닝햄 대위가 방문했습니다.”
아직 알렉스를 향한 호칭이 익숙하지 않은 건지, 안드레이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안드레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용건은?”
그러자 안드레이는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은 뒤 그에게 말했다.
“이게, 좀… 허허… 이게 말이 안 되는 건 아는데… 후우…….”
안드레이는 잠시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예의에 벗어난 행동이었기에 나이아가 안드레이를 노려봤지만, 안드레이는 잠시 이마를 짚은 뒤 표정을 가다듬고는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이번 여름, 황궁에서 진행되는 연회의 파트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러 오셨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아델라인은 안드레이를 따라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잠시 벙찐 표정을 지었다가 나이아를 바라봤다. 나이아의 표정도 비슷했다.
잠시 머릿속에서 발생한 혼란을 정리한 뒤, 아델라인은 안드레이에게 말했다.
“일단 만날게요. 헛소리할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아니까요. 그리고 저도 파트너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고요.”
“감사합니다. 응접실에서 대기 중입니다.”
안드레이가 고개를 숙이며 문을 열자, 아델라인과 나이아가 그 문을 나섰다. 복도를 걸으며, 아델라인이 나이아에게 물었다.
“나이아, 매닝햄 대위는 어때?”
“기본적인 부분만 보면… 문제는 없습니다. 평민이라도 장교이고, 사교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교계 인물에 대해서도 무지한 건 아니…죠?”
나이아가 안드레이에게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때, 아델라인은 갑자기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근데.”
우뚝. 아델라인이 멈춰 서자, 뒤를 따르던 나이아와 안드레이도 멈춰 섰다.
“…….”
“왜 매닝햄 대위는 절 찾아온 거죠?”
* * *
“그러니까. 지금…….”
아델라인은 입을 쩍 벌리고 알렉스를 바라봤다. 양복을 입은 그의 얼굴에도 근심이 가득 얹어져 있었다. 그는 한숨을 푹푹 쉰 뒤 맞은편에 앉은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황궁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파트너가 필요합니다. 황궁에서는 최대한 위화감이 나타나지 않게 하고 싶어 하고, 아직 암살 시도의 진범은 잡히지 않았으니 경계를 늦출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
“연회장 안을 혼자 움직이기에는 눈에 너무 띕니다. 파트너가 있다면…….”
“그래요. 파트너가 있다면 더 좋겠지요. 그 어떤 사람도 혼자서 움직이진 않을 테니까.”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아델라인은 잠시 그의 얼굴을 관찰했다. 저 얼굴은 진짜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잠시 차를 홀짝이며 보기 힘든 알렉스의 표정을 관찰한 뒤, 찻잔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언제까지 답을 주면 되는 거지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
아델라인은 일부러 입을 닫았다. 알렉스의 초조함을 이용하는 것 같아 미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에게서 뭔가 더 얻어 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오늘까지입니다. 아니라면 저도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겠지요.”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그 눈빛을 보자, 좀 더 그를 놀리려던 아델라인은 어쩔 수 없이 입을 가리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좋아요, 그 대신 조건이 있어요.”
“…말하시지요.”
알렉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아델라인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알렉스에게 요구했다.
“이번 여름 사교 시즌 동안, 저랑 함께 해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