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22
22화 합 맞추기 (2)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서로 인사를 하는 아델라인과 무용 선생이었지만, 그들의 시선은 한 지점을 떠날 줄 몰랐다. 조금 전까지는 멀쩡하던 알렉스의 구두는 과장을 좀 섞어 구두였던 것이 되어 있었다.
선생이 떠나고, 알렉스도 자신의 구두를 내려다봤다. 그 상태를 본 안드레이는 알렉스를 향해 물었다.
“다치지는 않았습니까?”
“다행히도.”
“그럼 뭐, 흠…….”
안드레이는 잠시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때, 아델라인이 우물쭈물하며 알렉스에게 물었다.
“그럼… 제 방에서 잠시 기다리시겠어요? 제 방에 여분 슬리퍼가 있으니, 그걸 신고 있는 동안 구두를 수선하는 건…….”
그러자 알렉스가 그녀를 바라봤다. 안드레이도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럼…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라오십시오.”
안드레이가 앞서서 걷고, 알렉스와 아델라인은 그 뒤를 따랐다. 그러다가 이전의 일이 떠오른 아델라인은 그에게 속삭였다.
“근데 내 방 어디 있는지 알지 않나요?”
“…그건 그때의 사정이 있었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죠.”
어느새 아델라인의 방에 도착하자, 안드레이는 방 한쪽에 있던 서랍에서 슬리퍼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그걸 보고 고개를 홱 돌렸다. 잠시 뒤, 도저히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던 그녀는 끅끅 소리 죽여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안드레이는 현실을 부정하며 서랍장 안쪽 깊숙한 곳까지 손을 뻗어 봤다. 그러나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았고, 알렉스의 얼굴에 진 그늘만 더 짙어질 뿐이었다.
결국, 더 나은 슬리퍼를 찾아내지 못한 안드레이는 손을 달달 떨며 슬리퍼 한 켤레를 들어 보였다.
“이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안드레이는 알렉스를 보며 물었지만, 이내 알렉스의 얼굴에 진 그늘 밑에서 쏘아진 눈총에 다시 시선을 회피할 수밖에 없었다.
안드레이의 손에 들려 있는 슬리퍼는 꽤나 고급이었다. 사이즈도 약간 작다 뿐이지, 신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슬리퍼를 본 알렉스는 입을 꾹 다문 채 안드레이에게 다가가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슬리퍼를 홱 낚아챘다.
알렉스는 잠시 손에 든 한 켤레의 슬리퍼를 노려본 뒤, 한숨을 쉬고 구두를 벗고 슬리퍼를 신었다.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은 후 다시 알렉스를 바라본 아델라인은 또다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발을 감싼 슬리퍼는, 프릴 장식을 한껏 선보이고 있었다.
“…저는 구두를 맡기러.”
안드레이가 알렉스의 구두를 들고 도망치듯 방을 나서자, 한참을 웃고 있던 아델라인의 뒷목에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알렉스의 눈빛이 다음 목표를 향한 것이었다.
“…….”
아델라인이 삐그덕거리며 뒤를 돌아보자, 알렉스가 입을 꾹 다문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그는 아무 말 없이 침대 옆 테이블로 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팔꿈치를 테이블에 얹은 뒤 얼굴을 그 솥뚜껑 같은 손으로 덮었다.
그러자 도저히 그 테이블에 같이 앉을 수 없었던 아델라인은, 자신도 슬리퍼로 갈아 신은 뒤 발소리를 죽이며 침대맡에 걸터앉았다.
“…….”
“…….”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정적이 이어졌다. 가만히 침묵하는 알렉스를 보자 아델라인도 도저히 말을 걸 수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안드레이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는 일. 아델라인은 자신의 뺨을 챱챱 때린 뒤 그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미안…해요.”
그러자 알렉스도 손을 치운 뒤, 아델라인을 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닌데. 그리고…….”
알렉스는 잠시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발을 바라본 뒤 피식 웃었다.
“이걸 보고 누가 안 웃겠습니까.”
“그건… 그렇죠.”
아델라인의 머쓱한 웃음이 잠시 방을 채운 뒤, 이내 방 안에는 어색한 정적이 다시 자리 잡았다. 이런 분위기를 도저히 버틸 수 없었던 아델라인은 알렉스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저번에 입었던 붉은색 제복, 잘 어울렸어요. 가슴에 달린 것도 많던데.”
그러자 그 역시 침묵이 좋지는 않았던 건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웬만해서는 입지 않다 보니 아직도 익숙지 않습니다. 그걸 입을 때마다 어딘가 문제가 생기는 징크스도 있기도 하고.”
그 말에,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보통은 뭘 입는데요?”
“그린재킷이라 불리는 라이플여단의 제복을 입죠. 아니면 사복을 입거나.”
그러자 아델라인은 몇 번 봤던 알렉스의 녹색 제복을 떠올렸다. 수수하고 칙칙한 녹색 제복. 물론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니 그 녹색 제복도 잘 어울렸지만, 역시 붉은색의 화려한 제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얼굴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아델라인은 황태자를, 그리고 황후를 떠올렸다. 꽤 오랫동안 품어 왔던, 그리고 몇 번이고 묻지 못했던 질문.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바라보며 운을 띄웠다.
“지금까지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는데요. 이건 꼭 답 안 해 줘도 되니까…….”
“말씀하시죠.”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을 보자, 아델라인은 어째서인지 하려던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아직 이 질문을 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델라인은 입 안에 머금었던 질문을 다시 삼켰다. 그러다 그녀는 지금 막 급하게 떠올린 질문을 던졌다.
“어렸을 때는 어떤 꿈을 꿨어요? 막… 뭐가 되고 싶다든지.”
“어렸을 때 말입니까?”
“네.”
그러자 알렉스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한 뒤,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기가 가득 들어간 스튜를 흰 빵과 함께 배 터지게 먹는 것이었으려나요.”
“흰 빵과… 고기 스튜요?”
아델라인이 잠시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묻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복한 삶은 아니었는지라.”
“아…….”
아델라인이 알렉스의 답을 듣고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지금은 흰 빵쯤은 실컷 먹을 수 있는 삶이니, 반 정도는 달성했지 않나 싶습니다.”
“좋네요. 그다음 꿈은 뭐였어요?”
“다음 꿈 말입니까?”
“네.”
그러자 알렉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뒤로는…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왜요?”
“…….”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어쩐지 슬퍼 보여서, 아델라인은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미안해요.”
“아닙니다, 다 지나간 일입니다. 다만 좀…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어서요.”
알렉스는 손을 내저어 그녀를 말렸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그녀에게 제안했다.
“뭐, 지금이라도 한번 연습을 해 볼까요?”
“무슨 연습이요?”
아델라인이 묻자, 알렉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춤 연습. 지금이라면 그래도 구둣발보다는 덜 아플 것 같아서요.”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은 머쓱하게 웃으며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알렉스의 오른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고, 아델라인의 손은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럼, 천천히 가 볼까요?”
그렇게 말하며 알렉스가 발을 내딛자, 아델라인도 따라서 발을 내디뎠다.
하나, 둘, 셋. 박자를 외치는 선생은 없었지만, 둘은 놀랍게도 똑같은 박자에 발을 디디며 나아갔다.
“…꽤 잘하는데요, 우리?”
아델라인이 뿌듯한 듯 말하자, 알렉스도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들의 움직임은 점점 속도를 더해 갔다. 둘의 몸은 어느새 조금씩 기교를 넣고 있었다. 점점 아델라인의 숨이 가빠지며 잔실수가 나오기는 했지만, 알렉스의 리드는 그녀의 실수를 완벽히 커버해 주었다.
“사실, 조금 전에는 일부러 밟으신 거 아닙니까?”
알렉스가 미소를 띠며 그녀에게 묻자, 아델라인은 그를 바라보며 장난스레 말했다.
“그럴지도요?”
그때, 한순간 집중을 잃은 아델라인의 스텝이 꼬여 버렸다. 한순간에 무너진 무게 중심에, 그동안 아델라인을 이끌고 있던 알렉스도 덩달아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꺄악!”
아델라인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아 버렸다. 그리고 잠시 뒤, 요란스러운 소리가 그녀의 귀를 때렸다.
쿠당탕!
그러나 귓가에 들린 소리와 달리, 그녀의 몸에는 그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약간의 포근함마저 느껴지는 듯했다.
“끄으으…….”
그때, 밑에서 알렉스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눈을 떴다.
그녀를 자신의 몸으로 받아 낸 알렉스가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그의 팔은 아델라인의 몸을 살짝 감싸고 있었는데, 그가 반사적으로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었다.
상황 파악이 끝나자, 아델라인의 얼굴이 화악 붉어졌다.
그때, 방문이 달칵 열렸다.
“구두가 왔…….”
한 손에 알렉스의 구두를 든 채 나타난 안드레이. 그는 잠시 두 사람을 바라본 뒤, 슬그머니 뒷걸음을 쳤다.
“…구두는 아마 한 시간 정도…….”
그렇게 말하며 탁, 문이 닫히자 둘은 뒤늦게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야, 야! 레이크 하사!! 기다려!!”
“안드레이! 잠깐만요!!”
그렇게, 오후가 흘러갔다.
* * *
루멘시아가.
늦은 밤, 세이드는 저택의 으슥한 뒷마당에 서 있었다. 세이드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젠장…….”
황태자의 의뢰는 완전히 실패했다. 황후는 살아 있으며, 증거는 온전히 남아 있고 심지어 황후를 죽이려 든 암살자 중 한 명은 그대로 합동조사단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세이드는 두려웠다.
황태자의 압박이 두려운 게 아니었다. 그동안 수많은 거래를 해 온 만큼, 황태자의 비밀도 적지 않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마주할 상대는 달랐다.
아무리 뒷골목을 장악하고 있는 자신이라 할지라도, 그의 몸에 뿌리 깊게 박힌 두려움은 걷어 낼 길이 없었다.
“일찍 왔군요.”
사박.
잔디를 밟는 소리와 함께, 고운 목소리가 세이드의 귓가를 찔렀다. 세이드는 잠시 흠칫, 몸을 떤 뒤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그러자 뒷마당으로 나온, 머리에 베일을 쓴 여인은 천천히 세이드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평안했을까요. 덕분에 계획이 흐트러졌는데. 그것도 1년 가까이 계획한 계획이.”
“…….”
우뚝. 그 여인이 세이드 앞에 멈춰 서자, 세이드는 몸을 잘게 떨며 바닥에 시선을 고정했다.
“실험체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 건 이해해요. 언젠가는 들키기 전에 멈춰야 할 일이기도 했고.”
그 여인은 세이드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세이드의 몸은 더욱 떨려 왔다.
“하지만… 어째선지 같은 인물이 연이어 제 계획을 방해하네요?”
“…….”
“제, 완벽했던 계획을요.”
그 여인의 손이 세이드의 뒷머리를 살짝 움켜쥐자 그의 몸이 더더욱 떨렸다. 여인은 세이드의 귀에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 댄 뒤, 그에게 속삭였다.
“날 실망하게 하지 마세요.”
“…….”
“날 실망시킨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아시잖아요?”
그녀의 말에, 세이드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의 얼굴은 어느새 하얗게 질려 있었다. 세이드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녀는 어느새 손에 꽉 쥐고 있던 세이드의 뒷머리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세이드의 턱을 잡은 뒤, 들어 올리며 말했다.
“도망칠 생각도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