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26
26화 육군 서열 1위
황궁은 복작였지만, 조금만 걷자 한적한 분위기의 공간이 나타났다. 이 주변은 관리가 덜된 건지, 중간중간에 잡초가 나 있는 벽돌길을 따라 걷자, 하품을 쩍쩍하며 정문 앞에 서 있는 라이플맨 둘이 보였다.
그들은 알렉스와 아델라인을 보더니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어 경례를 했다.
“충성. 벌써 오셨습니까?”
알렉스도 손을 들어 경례한 뒤, 그들에게 가볍게 설명을 해 줬다.
“충성. 황제 폐하도 가셨으니 거기 계속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1소대 애들도 곧 올 거야.”
그러자 두 라이플맨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렉스와 아델라인을 위해 문을 열어 주었다.
“알겠습니다. 들어오시죠.”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따라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무엇 하나 잘못 건드리면 큰 사고가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조명을 켜지 않아 약간 어두운 실내에 눈이 익숙해지자, 이내 그녀의 눈에는 평범한 방과 복도가 들어왔다.
구조만 약간 다르지, 나이아를 비롯한 사용인들이 쓰는 숙소랑 거의 비슷했다.
“이쪽으로.”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이끌고 복도의 한쪽 끝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자그맣게 ‘중대장실’이라는 목판이 붙은 문이 드러났다.
“여기가 알렉스의 방인가요?”
“집무실 겸 침실쯤 됩니다. 들어오시죠.”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델라인의 서재보다 약간 작은 방이 나타났다. 침대와 책상, 난로 겸 스토브까지 있을 건 다 있는 공간이었다.
알렉스가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자, 햇살과 함께 시원한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시죠.”
“고마워요.”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알렉스는 방 한편의 의자를 끌어 책상 앞에 놓은 뒤,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여기 앉아계십쇼. 차라도 한잔 내올 테니까.”
그가 그렇게 말하며 찬장에서 항아리 하나와 찻주전자를 꺼내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아델라인이 자리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알렉스.”
움찔.
주전자에 물을 붓던 알렉스의 몸이 잠깐 굳었다가 다시 풀어졌다. 아델라인이 그 모습을 이상하게 바라보자, 알렉스는 주전자에 찻잎을 넣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영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알렉스라고 불리는 건.”
그는 스토브에 석탄과 톱밥을 넣은 뒤, 불을 붙인 성냥을 안에 던져 넣으며 말했다.
아델라인은 스토브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자신의 맞은편에 앉는 그를 바라봤다. 그도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아마 이렇게 있는 게 어쩌면 어색하거나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아델라인이 물었다.
“그럼,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까요? 어색하시다면.”
그러자 알렉스는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이름으로 불린지 꽤 오래되어서 말입니다. 다들 직책이나 계급으로만 부르니.”
“아하.”
아델라인은 그제야 그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름으로 불려서 어색했던 거구나.
알렉스는 찬장에서 찻잔과 접시를 꺼내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냥 편하신 대로 불러도 됩니다, 아델라인.”
“알겠어요.”
잠시 뒤, 주전자의 물이 끓었다. 그러자 알렉스는 주전자의 물을 두 찻잔에 고루 부었다.
아델라인은 두 잔 중 하나를 집어 들어 차를 맛봤다. 약간 쌉쌀한 맛이 났지만, 상쾌한 향이 좋아 오히려 정신을 깨우는 데는 좋았다.
“차 맛있네요. 찻잎 뭐 써요?”
“솔잎을 따서 씁니다. 저는 커피보다는 이쪽을 선호해서.”
“그렇군요… 한번 나이아에게 물어봐야겠어요. 이거 맛있네.”
아델라인은 연신 감탄하며 차를 홀짝였다. 공작가에서처럼 화려한 디저트나 동방에서 들여온 도자기 찻잔 같은 건 없었지만, 그녀에게는 이 자리가 훨씬 더 편안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바람, 손에 든 찻잔, 그리고 마냥 넓지 않아 아늑한 이 공간까지.
이 모든 조건이 그녀를 만족시켜 줬다. 알렉스도 마찬가지인지, 찻잔을 들고 조금씩 차를 마시며 느긋이 시간을 보냈다.
그때, 창문 너머가 약간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알렉스는 그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인 뒤, 차를 홀짝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1소대가 왔나 보군요.”
“그런가 봐요.”
여러 명의 군홧발 소리와 장비들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절그럭거리는 소리. 알렉스가 그 정체를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발소리는 차근차근 알렉스의 방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발소리를 들은 알렉스의 표정이 살짝 굳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방의 문이 벌컥! 열렸다.
“잘 지내고 있었나, 중대장.”
아델라인은 갑자기 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을 바라봤다. 얼굴만 내민 그의 인상은 꽤나 점잖은 중년 남성이라는 생각만 들게 했다. 마치 학자나 교수 같은 인상이었다.
그러나 남자를 본 알렉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알렉스는 당황한 얼굴로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했다.
“충성!!”
알렉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델라인 역시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대체 이 사람이 누구기에… 하고, 그를 멀뚱히 바라봤다.
그사이 그 중년 남성은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알렉스보다 약간 더 화려한 제복을 입고 있는 그는 태연하게 의자 하나를 끌어와 아델라인의 옆에 놓으며 말했다.
“충성, 나도 차 한잔 하지.”
그 요구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왜 알렉스가 당황해하며 급하게 경례를 했는지, 왜 그가 노크도 없이 문을 열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본부장님!”
리안 필즈먼 대장. 육군 서열 1위가 지금 자신의 옆에 서 있었다.
…….
팔락, 팔락, 팔락.
알렉스의 자리를 빼앗은 필즈먼 대장은 몇 가지 서류를 받아 확인했다. 필즈먼 대장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알렉스의 표정은 긴장 그 자체였다.
아델라인은 알렉스 옆에 앉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알렉스를 봐 온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그가 이렇게까지 긴장한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긴장한 모습이 어째서인지 힘겨워 보이기도 해서, 아델라인은 살짝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주먹을 꽉 쥔 탓에 하얗게 질려 있던 손에서 살짝 힘이 빠졌다.
자신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곁눈질했다. 아델라인이 자신의 손을 잡고 있다는 걸 자각하자, 알렉스는 천천히 손에 힘을 풀어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단순히 손을 잡았을 뿐인데, 알렉스는 긴장이 한결 가시는 걸 느꼈다.
그때, 서류를 탁 내려놓은 필즈먼 대장이 말했다.
“잘하고 있네. 별다른 특이 사항은 있나?”
“없습니다. 마지막에 보고드린 대로 진행 중입니다.”
“좋아. 그러면.”
필즈먼 대장이 아델라인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로피츠 영애 맞나? 미처 인사를 못 했군.”
그러자 아델라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숙였다.
“맞습니다, 각하.”
그러자 필즈먼 대장은 손을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하란 호칭은 안 붙여도 되네. 자리에서 일어날 필요도 없고. 오늘은 공식적인 방문도 아니니 말이야.”
필즈먼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델라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원래대로라면 공식적으로 시간을 내서 공작과 영애에게 감사를 표해야겠지만, 일정이 있어 이렇게 방해하게 되어 미안하네.”
“아, 아닙니다.”
아델라인이 손을 내밀어 살짝 필즈먼의 손을 잡자, 그는 가볍게 악수를 한 뒤 그녀의 손을 놓았다.
“그럼 남은 기간 동안 이 애를 잘 부탁하네. 비록 내가 해 준 건 없지만, 이 애의 후견인이니 행여나 무슨 실수를 저지르면 내게 말하고.”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정보.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가는 필즈먼을 배웅했다. 그가 문을 닫고 나가자,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향해 물었다.
“…필즈먼 대장이 후견인이셨어요?”
“후견인…이긴 하죠. 후우우우…….”
알렉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여전히 아델라인의 손을 잡고 있는 자신의 손을 봤다.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직장 상사이기도 하고.”
“…….”
“공과 사는 철저한 분이니까요.”
알렉스는 털썩, 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머릿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넌지시 말했다.
“아카데미의 교수님 같아 보이던데요, 제 눈에는. 떠도는 말에 비하면 훨씬 점잖은 분인 것 같은데요?”
아델라인이 그렇게 말하자, 알렉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말하기는 합니다. 그나저나…….”
알렉스는 아델라인의 손을 잡은 자신의 손을 살짝 들어 보이며 물었다.
“…걱정해 주신 겁니까?”
그러자 아델라인은 화들짝 놀라며 손에 힘을 풀었다.
“너, 너무 안쓰러워 보이길래?”
아델라인은 제가 말하고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는지,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알렉스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놀란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런 뒤, 손아귀에 살짝 더 힘을 줘 아델라인의 손을 더욱 꼭 붙잡았다. 그다음, 그 손을 가슴에 얹으며 말했다.
“누가 걱정해 주는 건 진짜 오랜만이네요.”
“…….”
“고마워요. 아델라인.”
그러자 아델라인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런 그녀를 보며 알렉스는 손을 놓아주었다.
“저는 잠시, 대원들 점검하러.”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며 방에서 나왔다.
달칵.
문을 닫은 그는 벽에 기대어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미친놈 아니야 이거?’
알렉스는 갑자기 솟아오르는 부끄러움에 온통 붉어진 얼굴을 양손으로 덮었다.
그때. 한 라이플맨이 복도를 지나가다가 그를 보고는 동료를 향해 손짓했다.
“야, 팩. 저건 무슨 병이냐?”
그러자 자신의 배낭에서 약을 꺼내 장부와 확인하던 의무병, 팩이 알렉스를 멀찍이서 관찰했다. 그런 다음, 알렉스에게 들리지 않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적어도 내가 치료할 수 없는 병인 것 같다. 저건 병원 보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