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3
3화 첫 대면
사삭. 사사삭.
“정지.”
알렉스가 손을 들며 나지막이 말하자, 뒤따라오던 모두가 일제히 멈춰 섰다.
도심 외곽. 농가와 시가지가 반쯤 섞여 있는 지역의 뒷산에 숨어든 그들은 300미터 전방쯤의 여관을 바라봤다.
작지는 않지만 크지도 않은 여관의 규모에 비해서 손님이 이상할 정도로 많았다. 발자국과 마차 자국으로 추정한 내부 인원은 대략 100명. 기껏해야 50명 정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여관의 크기에는 걸맞지 않았다.
“스워포드, 레이크 하사 제대로 챙겨.”
“알겠습니다.”
진녹색 제복을 입은 이들 중에서 머스킷을 든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인 스워포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레이크 하사는 풀숲에 숨어서 총구만 내밀고 있었다.
그의 바지 안은 붕대와 거즈로 가득 들어차 울퉁불퉁했지만, 그는 꼭 도움이 되고 싶다며 자신의 라이플을 들고나왔다.
“현재 시각 00시 49분. 50분에 맞춰 둬. 1시 정각에 진입한다.”
알렉스가 자신의 시계를 들어 시침과 분침을 읽었다. 그러자 각 분대의 분대장들도 시계를 들어 시침과 분침을 조정하고 그의 신호를 기다렸다.
“5, 4, 3, 2, 1. 50분.”
티딕 티디딕!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알렉스의 시계를 비롯한 총 6개의 시계가 다시 조정되며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시계 밥 미리 먹여 둬. 발포 전까지는 완행, 발포 후는 충격 전술로 간다.”
“알겠습니다.”
“위치로.”
“위치로.”
그렇게 분대장들이 해산하고, 알렉스는 자신의 대원들을 바라봤다.
그동안 피로가 쌓였지만, 이번 작전의 의의를 다들 알고 있었기에 억지로 담뱃잎을 입에 털어 넣으며 잠을 깨고 있었다.
51분… 52분… 53분.
분침과 초침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었고, 시침도 조금씩 꿈틀대고 있었다.
그는 손에 쥔 라이플의 부싯돌 망치를 뒤로 당겼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매복한 것을 감추기 위해 각 분대에서 부는 위장용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새 소리를 빼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54분… 55분.
이번 임무를 하기로 한 게 잘못일까. 며칠만 더 기다려서 그믐 때 들어가는 게 나았을까.
그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회의와 후회와 반박이 뒤엉켰다.
그러나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미 내디딘 걸음이었다.
“총기 점검.”
“총기 점검.”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자신의 총기를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단 한 번의 불발이, 생사를 가를 수 있었으니까.
56분… 57분.
그때,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기분 탓일까. 설마 후속 지원으로 온다던 휘태커 경감의 병력일까? 아니다. 전직 육군 영관 장교 출신인 그는 이런 작전에서 작전 지역 인근까지 말을 몰고 오는 실수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중대장님, 중대장님.”
그때, 알렉스의 어깨를 스워포드가 두드렸다.
“왜.”
“그 공작 영애입니다.”
스워포드가 그에게 방향을 가리키며 망원경을 내밀었다. 망원경으로 스워포드가 가리킨 방향을 보자, 멀리서부터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는 아델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알렉스는 망원경을 눈에서 뗀 뒤, 눈을 비비고는 다시 망원경을 가져갔다. 그러자 망원경에 또렷이 아델라인의 얼굴이 들어왔다. 저 여자가 왜 여기 있는 건지, 알렉스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현실은 현실. 알렉스는 망원경을 접으며 스워포드에게 말했다.
“석궁 가지고 왔지?”
“네.”
“말을 쏴. 그리고 잭슨은 너희 분대 데리고 영애 확보한 뒤 여기로 복귀한다. 그전까지 작전은 일시 중지한다. 각 위치에 전달해.”
“알겠습니다.”
* * *
“거의 다 왔다……!”
소설 속 지리 묘사가 꽤나 세밀한 덕분에, 아델라인은 성공적으로 여관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정보 길드 아스테리오스. 붉은 장미 여관이라는 흔한 이름의 여관으로 위장한 비밀 아지트가 있었지만, 남주인 황태자에 의해 1년 전 한 번 큰 타격을 입었다고 했지.
물론 자세한 건 모르지만, 그래도 소설상 1년 전, 계산해 보면 지금 즈음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정보를 이용해 서브 남주인 세이드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박차를 가했다.
그때, 그녀의 귀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히이잉!!”
갑자기 잘 달리던 캐러니가 균형을 잃으며, 덩달아 그녀도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꺄악!”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순간 깨질 것 같은 통증이 아델라인을 덮쳤다.
그리고 잠시 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뭐야 이 여자는?”
“일단 길드장님께 데려간다. 죽은 건 아닌 것 같으니.”
아델라인은 고통을 겨우 이겨 내며 눈을 떴다. 그러자 평범한 옷에 칼을 한 자루씩 든 남자 둘이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말이 고급 종마네요. 어디 귀하신 귀족 따님인 것 같은데 순순히 따라오셔야겠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은 기절한 척을 한 아델라인을 잡아 들쳐 메려 했다.
‘그래. 계획이 흐트러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세이드를 만날 수 있으니까.’
계속 기절한 척을 하며 생각했다.
그때,
푹. 푸푹!
“끄어…….”
아델라인을 메고 가던 남자가 나지막한 소리를 내며 숨이 끊겼다. 또 한 번 바닥으로 떨어지며 부딪힌 고통에 괴로워하며 살며시 실눈을 뜬 그녀의 시야에, 옆에 있던 남자도 진녹색 제복을 입은 한 병사에게 입이 틀어막히고 목이 베이는 장면이 들어왔다.
그 남자는 나이프를 자신이 죽인 남자의 옷에 슥슥 닦으며 지시를 내렸다.
“제압 완료. 재갈 물리고 안대 씌워. 밧줄 가지고 왔지.”
“네, 알겠습니다.”
아델라인이 찰나에 빚어진 이 참극을 이해하고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그들은 순식간에 그녀의 입을 재갈로 막고 안대를 씌운 뒤 팔을 뒤로 향하게 해 단단히 묶었다.
“폴리, 그로쉬. 너네는 시체 숨기고 와.”
“알겠습니다, 병장님.”
이내 두 병사가 각각 한 명씩 시체를 끌고 도랑에 밀어 넣은 뒤, 주변의 흙으로 대충 핏자국을 덮었다.
“빌어먹을.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묻어 버리고 싶은데.”
자신을 어깨에 인 남자는 뿌득뿌득 이를 갈며 주변 수풀에 몸을 숨겼다.
“라이미, 너는 가서 중요 인물 확보했다 그래.”
“알겠습니다.”
라이미라고 불린 남자가 풀숲을 헤치고 달려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시각 정보가 차단되고 신체의 자유가 사라진 덕분에 그녀는 점점 공포에 질려 갔다.
“으읍, 으브븝!”
“조용히 하시지요. 야산에다가 묻어 버리기 전에.”
살기 짙은 말을 들은 그녀는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입을 꾹 다물었다. 무서웠다. 그리고 서러웠다.
악녀로서 죽을 운명 좀 바꿔 보겠다는데, 이렇게 일이 꼬이냐.
서러워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며, 안대가 벗겨졌다.
“좋은 밤입니다, 아가씨. 아니, 로피츠 공녀님이라고 불러야 되려나.”
그녀의 귀에 묵직하고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델라인은 고개를 들어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소설 속 삽화로 본 남주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 남자가 자신을 매섭게 바라보고 있다는 점과 자신의 계획이 완전히 흐트러졌다는 두 사실이 유감이었지만.
그는 그녀를 향해 입꼬리만 올리며 말했다.
“저는 라이플여단 파견 중대장 알렉스 매닝햄 대위라고 합니다.”
그 말에 아델라인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 눈앞에 있는 남자가 그 알렉스 매닝햄이라고?
막연히 배 나오고 못생긴 중년 직장인의 이미지로 다뤄지던 그가 눈앞의 미남이 되어 현현하자, 그녀는 그를 찬찬히 뜯어보고 소설 속 그에 대한 묘사를 다시 떠올려 봤다.
그러나 이런 아델라인의 반응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한 그는 그녀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 시간부로 우리는 당신의 신변 보호를 위해 일시적으로 당신을 구속하겠습니다. 상황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구속은 유지될 것이며, 상황 종료 후에는 제 판단하에 모처로 인계될 것입니다.”
그는 칼 같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통보했다.
“유사시, 당신의 생사여탈권은 현장 지휘관인 제게 달려 있습니다. 이 점 유의하셔서 현명히… 행동하기를 바랍니다.”
그는 아델라인의 눈에 다시 안대를 씌웠다. 다시 시야가 차단된 아델라인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몸을 떠는 게 알렉스의 눈에 보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있는 스워포드에게 물었다.
“보초 교대까지 얼마 남았어?”
“대략 5분 남았습니다. 완행 접근으로는 늦습니다.”
“작전을 변경한다. 중화기 및 저격조를 동원해 제압사격을 하며 접근, 충격 전술을 수행한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황동색 나팔을 들었다.
“가자.”
그리고 입에 나팔을 가져갔다.
잠시 뒤, 우렁찬 나팔소리와 함께 중화기의 폭음이 야밤의 정적을 깨부쉈다.
손에 연막탄을 쥔 대원들은 여관과 수풀 사이의 개활지에 그것을 던져 적들의 시야를 가렸다.
그사이 여관 창문으로 보초를 서고 있던 조직원들은 이내 하나둘 기다리고 있던 라이플맨들의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알렉스는 자신의 라이플을 들고 총검을 끼운 뒤, 수풀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갑작스러운 작전 변경이었지만, 이런 상황도 대비해 둔 대원들은 각자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
알렉스는 연막탄으로 피운 연막을 뚫고 여관의 후문 옆으로 밀착했다. 안에서는 찰그락거리는 병기의 소리가 들렸다.
“척탄병!”
알렉스가 수류탄을 의미하는 수신호를 보내며 후문의 문고리를 잡자, 그를 따라 달려와 반대편에 밀착한 대원 중 수류탄을 든 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성냥으로 심지에 불을 붙인 뒤 잠시 타이밍을 재고 알렉스에게 눈짓했다.
“수류탄!”
그가 후문의 문고리를 당겨 살짝 열자, 척탄병이 곧바로 수류탄을 쑥 집어넣고 문을 탁 닫았다.
그리고 바로 그 직후,
펑!!
“끄아아악!!”
안에서 폭음과 비명이 동시에 들렸다. 알렉스는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문을 걷어차며 안으로 치고 들어갔다.
“1소대! 지하로 가는 루트 뚫어! 그리고 2소대는 위층 확보해!”
“알겠습니다!”
“1소대는 나랑 같이 간다!”
대원들은 빠르게 쓰러진 적들을 총검으로 확인 사살하며 1층의 주점을 정리해 나갔다. 알렉스는 1소대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문이 잠겨 있습니다, 뚫을까요?”
“뚫어! 빠루 가지고 와!”
알렉스의 지시에, 대원 한 명이 노루발을 가지고 와 문의 틈새에 박아 넣고 힘껏 밀었다.
콰자작!
그러자 나무 문에 달려 있던 자물쇠가 뜯겨 나가며 문이 열렸다.
안에는 막 문서를 태우고 짐을 챙기던 조직원들이 있었다.
이렇게까지 빨리 돌파당할 줄 몰랐던 이들은 급하게 주위의 병장기들을 집어 들었지만.
“머스킷!! 폴, 존, 틸리!!”
탕! 탕! 탕!!
뒷발로 문을 걷어차 박살 낸 알렉스의 지시에 머스킷을 들고 있던 몇몇 대원들이 산탄을 지하실 내에 뿌려 댔다. 그 후 알렉스를 따라온 척탄병이 수류탄을 하나 던져 넣자, 순식간에 지하실 안은 난장판이 되었다.
매캐한 연기가 지하실을 가득 메우고도 모자라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진녹색 제복의 대원들은 그 연기를 뚫고 살아 있는 적들을 총검으로 찌르고 라이플과 피스톨로 제압하며 차근차근 진압했다.
탕! 탕! 탕! 탕!
알렉스를 필두로, 내부로 진입한 라이플맨들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자신의 총에 장전된 한 발의 총탄을 발사한 그들은 총검을 앞세우고 전진했다.
“크헉!”
“끄으윽!”
“아악!”
“살려 주… 커헉!”
“확인 사살 확실히 해!”
“알겠습니다!”
총성이 한 번 울릴 때마다 한 명이 쓰러졌다. 압도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실력에, 지하실의 적들은 하나씩 제압당하거나 사살당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클리어!”
“클리어!”
몇 번의 확인 구호가 떨어진 뒤, 한 대원이 지하실이 울리도록 외쳤다.
“세이드, 찾았습니다!”
이미 발사한 라이플 대신 피스톨을 들고 지하실 구석구석을 확인하던 그는 다른 대원에게 그 일을 맡긴 뒤 품속에서 초상화를 꺼냈다.
“어디 있어!”
“여기 있습니다!”
대원은 가슴에 총탄이 박힌 채 절명한 청년을 발로 뒤집어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
알렉스는 초상화를 그 얼굴과 비교했다. 완전히 꼭 닮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의 직감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보류. 따로 구분해 놓고. 2분대, 3분대는 위에 지원 가고 1분대는 나랑 여기 있는 고가치 물품과 정보 싹 다 확보한다. 알겠나?”
“네!”
아직 상황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길드장인 세이드를 잡았다고 생각한 그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알렉스는 나뒹구는 아무 의자에 앉아 고민했다.
아델라인. 공작가의 유일한 적통.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친히 오셨을까. 설마 정보가 샌 건가?
고민이 깊어 가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잠시 본부 애들 쪽에 가 볼 테니까 챙길 거 다 챙기고 보고해.”
“알겠습니다.”
직접 물어보면 되겠지. 암시장 건 심문도 할 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