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30
30화 사냥꾼
황실 사냥터의 어딘가. 한 귀족 사내는 장궁을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냥감을 찾았다. 그의 하인이 들고 있는 큼지막한 포대 자루는 반쯤 차 있었지만, 이걸로는 아직 부족했다.
“더 없나…….”
그때, 수풀 너머로 그의 눈에 풀을 뜯어 먹고 있는 한 토끼가 보였다. 그러자 그는 쾌재를 부르며 허리의 화살통에서 화살을 뽑아 활시위를 당겼다.
그때, 어디선가 나팔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토끼가 그 자리에서 호다닥 도망쳤다.
“또 누군가 다친 건가?”
그때, 그의 발밑에서 불쑥 사람이 튀어나왔다. 진녹색 제복을 입은 그들은 자신들이 나온 구멍에서 무언가 거대한 총을 잡아당겨 뽑아냈다.
“잠깐만 지나갑시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그러자 그 사람을 따라 튀어나온 또 다른 사람이 한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E10! 5시 방향입니다!”
“가자!”
갑자기 나타난 두 사람은 이내 사람 키보다 큰 총을 어깨에 이고 달리기 시작했다. 라이플을 하나씩 들고도 그 큰 월건까지 들고 달리는 모습에, 활을 들고 있던 남자는 벙찐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대체……?”
* * *
“헉, 헉, 빌어먹을!”
알렉스는 손에 든 나팔을 허리띠에 간신히 끼운 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길을 내달렸다. 확실히 그의 손등에서 흐르는 피는 이 짐승을 효과적으로 유인하고 있었다.
점점 왼손의 감각이 무뎌지고 있지만,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었다. 아니, 감내해야만 했다.
알렉스의 머릿속에 잠시 아델라인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자 찢어질 것만 같던 폐의 고통도, 미칠 듯한 무릎의 고통도 잠시나마 버틸 만 해졌다.
“헉, 헉, 헉!”
알렉스는 뒤를 돌아봤다.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지만, 어느새 늑대는 바로 뒤까지 따라붙어 있었다. 황소만 한 늑대가 뒤를 바싹 쫓는 이 상황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알렉스는 침착하게 주변의 지형을 확인한 뒤 곧바로 바닥으로 굴렀다.
쿠당탕탕! 콰직! 쿠궁!
그동안 미친 듯이 달렸던 관성으로 인해 알렉스는 몇 번이고 구르고 나서야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라이플은 저 앞 멀리 떨어져 있었다.
“커헉!!”
알렉스는 흔들리는 시야를 간신히 바로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나무 하나를 부러뜨리고 저 멀리 나동그라진 늑대가 보였다.
크르릉…….
그 늑대도 알렉스와 거의 동시에 몸을 일으키며 그를 노려봤다. 잠시 뒤, 늑대는 침방울을 튀기며 입을 쩍 벌리고 알렉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알렉스는 허리춤에서 피스톨을 뽑아 들곤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성과 함께 늑대의 입에서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시뻘건 안광을 번뜩이는 늑대는 그대로 알렉스에게 달려들어 들이받았다.
“크헉!!”
그는 다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사이, 늑대는 피와 침이 섞인 분비물들을 입에서 흘리며 알렉스의 몸을 짓눌렀다. 알렉스는 허리춤의 세이버를 뽑아 폼멜로 늑대의 주둥이를 찍었다.
퍽!
그러자 그 늑대는 잠시 몸을 비틀었고, 그 사이 알렉스가 늑대 밑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그러나 늑대의 무게는 여전히 그의 몸을 짓누르고 있었고, 늑대는 곧바로 알렉스의 목에 이빨을 박아 넣기 위해 턱이 덜렁덜렁한 주둥이를 알렉스의 목에 들이댔다.
일순간 세상이 느려졌다. 그 느려진 시간 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알렉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마치 체스의 행마를 복기하듯, 지금에 와서는 그 어떤 쓸모도 없는 자문자답이 이어졌다.
2인 1조의 사격 조를 배치하는 게 아니라, 한 명씩 쪼개 흩어 놓았으면 도움을 받기 더 쉬웠지 않았을까. 피스톨로 입이 아니라 눈을 노리는 게 더 치명적이지 않았을까. 거리를 내주더라도 라이플을 먼저 쏘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런 자문자답을 이어가던 중, 일순간 아델라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델라인을 피신시킨 판단에 대한 의문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베르티에와 그 부하의 힘을 빌릴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가정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알렉스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베르티에에게 아델라인의 피신을 맡긴 건,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미끼가 된 건 번복의 여지가 없는 판단이었다. 그 이유는… 그 이유는…….
그래. 파트너니까. 파트너의 안전은 최우선이니까. 후회는 없다.
잠시 뒤.
쾅!!
그 어떤 총소리보다도 큰 폭음이 사냥터를 뒤흔들며 알렉스의 생각을 깨부숴 버렸다.
* * *
“…….”
공작가의 천막. 아델라인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자꾸 알렉스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라이플의 총검으로 자신의 손을 베어, 피를 흘려 거대한 늑대를 유인하는 모습. 그 행동에는 어떤 주저함도 없었고, 목소리에는 일말의 두려움도 섞여 있지 않았다.
두려움을 감추려 목소리를 높일 법도 하다만, 베르티에를 향해 해야 할 행동을 일러 줬던 그의 목소리는 평상시의 목소리와 차이점을 찾을 수 없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오한이 들고 있었다.
시뻘겋게 번뜩이던 늑대의 안광이 아델라인의 머릿속을 쿡쿡 찔러 왔다.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때, 아델라인의 어깨 위로 무언가가 덮였다.
“괜찮으십니까.”
베르티에는 그녀의 어깨 위에 담요를 덮어 준 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잔을 건넸다.
“차입니다. 브랜디를 약간 탔으니, 마시면 속이 조금 편해지실 겁니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베르티에가 건넨 잔을 떨리는 두 손으로 건네받아 간신히 입으로 가져갔다. 따듯하고 달달한 액체가 입 안에 머금어지자, 그녀의 떨림은 한결 잦아들었다.
잠시 몇 번에 나누어 잔에 담긴 차를 반 정도 비운 아델라인은 베르티에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마…워요.”
그러자 베르티에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
“신사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저야말로 조금 전에 부하를 시켜 영애를 거칠게 대했던 것을 사과드립니다.”
“…….”
아델라인은 그에게 고개를 숙여 반응한 뒤, 잔에 담긴 차를 바라봤다. 찻잔 안에 비친 자신이 너무나도 못나 보였다.
조금 전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짝이 되었다는 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무력감을 불러일으켰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있었을까요…….”
그러자 베르티에는 고개를 돌렸다. 비록 말로써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비참하네요.”
그러자 베르티에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각자 할 수 있는 게 다르지 않습니까.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영애.”
“그렇…겠죠.”
머리로는 베르티에의 말이 맞다고, 부정할 수 없다고 계속 말했다. 그러나 가슴 한편은 그 생각에 반발하듯 쿵쾅거렸다.
“그리고.”
베르티에는 아델라인의 손을 살며시 잡아 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는 강합니다. 오러나 마법이 없어도, 그는 확실히 강합니다.”
“…….”
“그러니, 무사할 겁니다.”
아델라인은 베르티에의 말을 듣고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음, 아델라인은 두 손을 꼭 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교회도 절도 성당도 가 본 적 없던 그녀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마디가 간절하게 그녀의 마음속을 맴돌았다.
부디. 부디 알렉스가 무사히 돌아오게 해 달라고.
그때,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그에 나이아는 천막 밖으로 나갔다가, 곧바로 다시 안으로 들어오며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공녀님, 잠시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일인데?”
아델라인이 눈을 뜨고 나이아를 바라보자,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다가와 아델라인의 손을 잡았다.
“어서요! 어서!”
아델라인은 나이아의 재촉에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 바깥으로 향했다.
그러자 바깥에는 한 곳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나이아는 아델라인의 손을 잡은 채 그 인파를 헤치고 안쪽으로 파고들어 갔다.
간신히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자,
“무사해서 다행이군요.”
바닥에는 늑대가 쓰러져 있었고, 그 위에 걸터앉아 의무병에게 손등을 치료받고 있는 알렉스가 아델라인과 나이아를 보고는 그들을 향해 손을 저어 인사했다.
붉은 제복은 흙먼지가 잔뜩 낀 넝마가 되어 있었고, 얼굴에는 잔상처가 가득했지만, 알렉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알렉스!”
아델라인은 울먹이는 얼굴로 알렉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알렉스도 따라서 일어나려다가…….
“앉으십쇼. 아직 안 끝났습니다.”
라며 파견 중대에 둘밖에 없는 의료진, 팩이 강제로 주저앉히는 바람에 다시 얌전히 앉을 수밖에 없었다.
알렉스가 다시 앉자, 팩은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팩의 손에는 실과 바늘이 들려 있었다. 비록 그의 몸에 가려져 손의 상처를 볼 수는 없었지만,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는 있었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방금까지 도시락을 나눠 먹던 그가 자신을 위해 저렇게 위험에 처하고 다쳤다는 걸 알자, 죄책감이 그녀를 감쌌다.
결국, 아델라인은 군중들과 알렉스 사이, 애매한 위치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손등을 실로 다 꿰맨 팩이 붕대로 손등을 칭칭 감은 뒤 알렉스의 손을 탁 때렸다.
“악!”
알렉스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자, 그제야 팩은 붕대의 매듭을 마무리 지으며 알렉스에게 말했다.
“다 끝났습니다. 그러면.”
팩은 아델라인을 잠시 바라본 뒤, 한걸음 옆으로 물러나 길을 터 줬다. 그런데도 아델라인이 우물쭈물하며 다가오지 못하자, 알렉스는 몸을 일으켜 아델라인에게 다가갔다.
“이걸 진짜로 해 볼 줄은 몰랐는데.”
알렉스는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는 듯 허허 웃으며 말한 뒤, 한쪽 무릎을 꿇고 아델라인의 손을 오른손으로 잡았다.
평생을 사냥꾼처럼 살아왔다 하지만, 알렉스가 사냥하는 목표는 파트너에게 내어 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느낌이 생소했다.
그러나… 눈앞의 ‘파트너’를 위해서라면. 자신을 걱정해 주고 마치 자신이 다친 게 아델라인 자신의 탓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책하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이런 낯간지러운 말쯤은 몇 번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가 얻은 사냥감의 공을, 아델라인 폰 로피츠. 당신에게 바칩니다.”
알렉스는 그렇게 말한 뒤 아델라인의 손등에 입술을 살짝 맞췄다. 아델라인은 그제야 알렉스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온통 흙먼지와 피딱지로 얼룩진 얼굴이었지만, 보석같이 깊고 푸른 눈 만큼은 변함없이 아델라인을 향해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졌지만, 아델라인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모든 신경이 알렉스에게로 향해 있었다.
알렉스의 먼지투성이가 된 손에서는 차가운 냉기만이 느껴졌지만, 그런데도 아델라인의 손을 잡은 알렉스의 손에서는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신호가 전해지는 듯했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미소를 지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단지,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그 차가운 손을 꼬옥 맞잡을 뿐이었다.
그때, 고개를 살짝 숙인 알렉스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고마워요. 아무 일도 없이 무사해 줘서.”
그러자, 아델라인은 결국 여러 감정이 섞인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알렉스는 당황하며 어찌할 줄 모르다가, 일단 그녀를 공작가의 천막으로 데리고 갔다.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아델라인을 알렉스가 어설프게 달래 주며 멀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에선, 왠지 모를 설렘이 묻어나고 있었다.
이윽고 휘태커 경감의 경비대원들이 늑대의 사체를 수거해 가자, 사람들도 이내 이리저리 흩어졌다.
* * *
그날 밤.
수도 남부의 빈민가. 허름한 판잣집들이 난립한 이곳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한 사람이 마법구를 바라봤다.
흑백으로 이뤄진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 봤지만, 영상의 결말은 같았다.
쾅―!!
측면에서 들려온 굉음과 함께, 영상은 그대로 멎었다. 그러자 그 영상을 보던 자는 옆에 서 있던 세이드를 향해 물었다.
“이게 끝인가요?”
세이드는 고개를 숙이며 그 물음에 답했다.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세이드는 그 목소리에 저항할 수 없었다. 지금껏 그렇게 훈련받아 왔으니.
“네. 그렇습니다.”
“들인 자원에 비하면 너무 수지가 안 맞는데. 사냥 대회는 그러면 어떻게 된 건가요.”
그녀가 묻자, 세이드는 고개를 숙였다.
“…예정된 시간까지 완전히 진행되었습니다. 기존의 방식대로 1등부터 3등까지가 정해졌지만, 로피츠 영애와 매닝햄 대위에게는 특별상이 주어졌습니다.”
그 말에, 로브를 쓴 여성은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타라라락 두드렸다.
“흠…….”
그 여성의 가벼운 한마디에도 세이드는 계속해서 위축되었다. 그녀는 로브 너머로 잠시 세이드를 본 뒤, 다시 수정구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많은 기대를 한 건 아니에요. 그냥… 우리가 상대할 수도 있는 이들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뿐이죠.”
그 여성은 마법구 위에 손을 얹은 뒤, 세이드를 바라봤다.
“그런데 이렇게 간단하게, 그리고 허무하게 무력화될 줄은 몰랐네요.”
“실망시켜 드려 죄송합니다.”
세이드가 고개를 숙이며 사죄하자, 그녀는 마법구를 테이블 반대편으로 밀어 떨어트렸다.
쨍그랑!
수정구가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조사하세요. 알렉스 매닝햄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