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33
33화 후반전
아델라인은 여기저기 인사를 하는 피오나를 바라봤다. 피오나는 등장만으로도 모두의 주목을 받았고, 모두의 호감을 샀다.
역시 여주는 여주구나.
아델라인은 샴페인을 홀짝이며 피오나를 관찰했다. 그때, 아델라인은 피오나의 보랏빛 눈동자와 시선이 맞닿았다.
또각, 또각, 또각.
피오나는 아델라인과 알렉스의 앞까지 다가와,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
“연회는 잘 즐기고 계신가요?”
“아, 덕분에 잘 즐기고 있어요. 생일 축하해요. 생일 선물은 미리 보냈는데, 받으셨나요?”
그러자 피오나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께서도 만족하셨답니다.”
피오나는 잠시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아델라인의 손과 알렉스의 손이 포개어져 있는 걸 보자, 피오나의 눈썹이 잠시 씰룩였다.
“두 분은 정말 친밀하신가 보군요.”
피오나가 미소를 유지한 채 알렉스와 아델라인을 바라보자, 아델라인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그러나 알렉스의 입에서는 그녀가 예상치 못한 답이 나왔다.
“최고의 파트너입니다.”
화들짝. 아델라인은 얼굴을 화악 붉히며 알렉스를 바라봤다. 그러나 알렉스는 눈썹 한 번 까딱이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믿을 수 있고, 숨기는 게 별로 없는 훌륭한 상대지요.”
알렉스의 말에는 뼈가 단단히 박혀 있었다. 그 말을 들은 피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 순간, 피오나를 유심히 보고 있던 아델라인은 피오나의 눈동자에 어린 슬픔을 눈치챌 수 있었다. 비록 그 슬픔은 순간적으로 사그라들었지만, 아델라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그러나 좀 더 깊게 물어보기도 전에, 피오나는 다시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결국, 아델라인은 찜찜한 기색을 덜어 내지 못하고 알렉스를 바라봤다.
“…….”
“왜 그러십니까, 아델라인.”
알렉스가 잔을 홀짝이며 묻자, 아델라인은 턱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앓는 소리를 냈다.
“방금… 두 번째 목적을 해결할 기회가 사라진 것 같네요.”
“뭐, 하나라도 끝났으면 된 거지.”
그는 빈 잔을 내려놓은 뒤, 새로운 잔을 들며 아델라인에게 물었다.
“귀족들 사이에서는 정략결혼이 흔한 편입니까?”
“네?”
“아, 그러니까…….”
알렉스는 잔에 든 호박색의 위스키를 쭈욱 들이킨 뒤, 아델라인을 향해 부가 설명을 했다.
“그, 막 다른 사람에게 교제해 달라고 하는 게 일상적이냐 이 말입니다.”
알렉스는 자신이 말해 놓고도 어이가 없었는지, 새로운 술잔으로 바꿔 들며 어색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제가 귀족이 되어 본 적은 없어서.”
그러자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손에 들린 잔을 자연스레 가로채며 미소를 지었다.
“저도 모르겠네요. 이야기는 조금 들어 봤어도.”
“…그렇습니까.”
알렉스는 아델라인이 뺏어간 잔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른 잔을 들고는 물었다.
“혹시 주변에서 갑자기 교제해 달라고 한 적은 있습니까?”
푸흡.
아델라인의 입에서 호박색 부채꼴이 퍼져 나갔다. 아델라인이 갑자기 이상행동을 보이자, 알렉스는 연신 기침을 하는 그녀를 감싸며 등을 툭툭 두드려 줬다.
“괜찮나요, 아델라인?”
그러자 아델라인은 간신히 숨을 돌리며 알렉스를 얼떨떨한 눈으로 바라봤다.
“뭐라고요?”
“…그게 그렇게 당황스러운 질문이었습니까?”
“당황스럽죠! 그런 질문을 누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성내려던 아델라인. 그러나 아델라인의 머릿속에서 조금 전 베르티에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이러한 사정을 봐주시면 같은 경보병으로서 감사하다… 라는 게 제 의견입니다.’
“…베르티에 보좌관을 봐서 다시 한번 봐줄게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러자 알렉스는 베르티에의 이름을 듣고 잠시 눈썹을 씰룩였다.
“베르티에 보좌관과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알렉스의 푸른 눈이 번뜩였지만, 아델라인은 맑은 파란색의 눈으로 그의 눈빛을 맞받아쳤다. 알렉스의 눈빛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나니, 두려움이 한결 줄어들어 맞설 만 해졌다.
“먼저 말해 봐요. 내가 먼저 물어봤으니까.”
그러자 알렉스는 한숨을 쉬고는 저 멀리, 사람들 사이에서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는 피오나를 바라봤다.
그가 갑자기 왜 피오나를 바라보는지 잠시 의아해하던 아델라인이 이내 그 의미를 깨달았다.
“…설마.”
“조용히.”
알렉스는 탄산수를 하나 낚아채 홀짝이며 말했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그의 팔을 움켜잡고 테라스로 향했다.
별다른 저항 없이 알렉스가 순순히 테라스까지 끌려오자, 아델라인은 급하게 커튼을 치고 그의 어깨를 붙들었다.
“진짜, 진짜 그랬어요?”
그러자 알렉스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아델라인의 머릿속이 끝없이 혼잡해져 갔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 세상의 여주인공 피오나가, 알렉스에게 교제를 청한다고? 대체 왜? 왜?!
이 소설의 내용 자체가 황태자와 피오나의 연애 아니었나?! 장르가 왜 로맨스 판타지에서 치정극으로 바뀌기 시작한 거지? 아니, 거기서 거긴가?! 그게 아니지 않나?!
엄청난 혼란에 빠진 그녀의 손이 제 머리칼을 헝클어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알렉스는 잠시 아델라인을 지켜보다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진정. 진정.”
“진정하게 생겼어요?! 지금 여, 여, 여주…….”
아델라인의 언성이 높아지며 그녀가 말을 버벅거렸다. 아델라인의 얼굴은 혼돈으로 물들어 있었고,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 모습에, 알렉스는 주변을 살피더니 그녀의 이마를 남은 손으로 깠다.
쪽.
아델라인의 이마에 따스한 촉감이 느껴졌다. 아델라인이 어느 정도 혼잡해진 머리를 가라앉히자, 그의 셔츠 자락 아래 숨겨진 맨살이 흘끗 드러났다.
어마. 몸 좋구나. 근육이 탄탄하네. 근데 왜 저게 내 눈에 보이는 거지? 지금 내가 뭐 하고 있었더라?
아델라인은 눈동자를 위로 돌렸다. 두 눈의 초점이 한데 모이지 않아 흐릿하게 보였지만, 누군가의 얼굴이 그녀의 얼굴 가까이에 있었다.
그 얼굴의 입술은 아델라인의 이마에 닿아 있었다.
화아아아아악.
아델라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알렉스는 미소와 함께 입술을 이마에서 떼며 나지막이 물었다.
“이제 진정 되셨습니까.”
알렉스는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으며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그러자 얼굴을 넘어 온몸이 뜨거워진 아델라인은 얼떨떨한 얼굴로 삐그덕 삐그덕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알렉스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아델라인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슥슥 정리해 줬다.
“뭔 생각인지는 몰라도, 일단 진정하시죠. 창백한 것보다는 보기 좋으니까.”
“아, 네, 네. 진정했어요.”
“그리고, 속이 뻔히 보이는 접근이었습니다. 아직까지 알고 있는 정보로는 말이지요.”
알렉스가 그렇게 말하자, 아델라인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아델라인의 얼굴에는 자신도 모르게 그 어떤 때보다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알렉스는 테라스 바깥 정원으로 시선을 잠시 던졌다. 달빛조차 닿지 못하는 그림자밖에 없었지만, 알렉스는 잠시 그걸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
“자, 그러면 슬슬 돌아갈까요?”
그러자 아델라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답을 확인한 알렉스는 커튼 자락을 손으로 잡았다.
“먼저 마차로 돌아가 계시지요. 저는 만나볼 사람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며 알렉스가 커튼을 열어젖히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스가 그녀에게서 떨어져 어딘가로 향하자, 아델라인도 대화를 나누고 있는 피오나를 향해 다가갔다.
“루멘시아 영애, 저희는 이제 가 볼게요.”
그러자 피오나는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 줘서 고마웠어요, 로피츠 영애. 혹시 매닝햄 대위께서는…….”
“만나볼 사람이 있다고 해서, 먼저 나갔어요.”
그 말을 들은 피오나의 안색이 잠깐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피오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고마워요.”
아델라인이 몸을 돌리고 돌아가려는 찰나,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아델라인이 뒤를 돌아보자, 피오나는 보랏빛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혹시, 매닝햄 대위님과 무슨 관계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러자 피오나의 곁에 있던 이들이 모두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결코, 호의적이지는 않은 시선. 그사이 어떤 말이 오간 걸까.
아델라인의 머릿속에 피오나가 만족할 몇 가지 대답이 떠올랐다. 친구, 사교 시즌의 파트너, 혹은 그냥 사무적인 관계.
하지만 그 대답들을 떠올리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다른 기억들이 떠올랐다.
도움을 줄 것 같지 않던 알렉스가 창문을 통해 나타났던 기억.
처음으로 같이 춤을 췄던 기억.
처음으로 같이 손을 잡았던 기억.
거대한 늑대 앞에서 당연하단 듯 손등을 베어 늑대를 유인해 자신을 지키던 기억.
그리고…….
‘이제 진정 되셨습니까.’
자신의 이마에 닿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마와 가슴이 동시에 간질거리는 그 기억까지.
“매닝햄 대위… 아니, 알렉스는.”
아델라인은 맑고 푸른 눈동자로 피오나를 바라봤다. 아델라인의 얼굴에는 그 미모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미소가 얹어져 있었지만, 피오나를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모종의 힘이 실려 있었다.
“제 소중한 파트너예요.”
아델라인은 몸을 돌려 피오나에게 한 걸음씩, 천천히 다가갔다.
“저를 위해 지지 않아도 되는 위험 부담을 지기도 했고, 보름 가까이 자신을 혹사하기도 했고, 저를 위해 스스로를 상처 입히고 위험에 빠지기까지 했던 사람이에요.”
아델라인의 나긋나긋했던 목소리에는 어느새 힘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표정에는 강력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더는 소설 속 세상이라 생각하지 않겠다고.
이미 자신의 손으로 비틀어 버리고, 결국은 갈라선 시간 선에 대해서 미련을 가지지 않겠다고.
대신, 내 옆에 서게 된 내 사람들을, 그리고 내 행동들을 믿겠다고.
“그리고 이 관계는.”
아델라인은 자신보다 약간 작은 피오나를 내려다봤다. 아델라인은 피오나의 귀에 입을 가져간 뒤,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녀의 얼굴에 남아 있던 미소는 어느새 싸악 지워진 상태였다.
“사교 시즌과 상관없이 계속될 거야, 피오나.”
흠칫.
피오나의 몸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런 그녀의 귀에, 아델라인은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그러니… 알렉스를 건드릴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마. 나도 악녀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아델라인은 그렇게 말하며 허리를 폈다. 그녀는 미소와 함께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몸을 돌려 회장을 걸어 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알렉스가 한 기둥에 기대어 서 있는 게 보였다. 발소리를 들은 건지, 알렉스도 아델라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쩐지 후련해 보이는군요, 아델라인. 무슨 일 있었습니까?”
그가 묻자, 아델라인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아델라인의 얼굴에는 해맑은 미소가 피어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