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40
40화 튀어나온 돌
아델라인은 눈앞의 공작을 바라봤다. 공작도 상황을 전해 들었는지,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정장을 챙겨 입은 공작은 거울을 바라보며 무뚝뚝한 얼굴로 질문을 했다.
“무슨 일로 왔느냐.”
그 무뚝뚝한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아델라인은 살짝 위축된 목소리로 답했다.
“…청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러자 공작은 시계를 바라본 뒤, 그녀에게 말했다.
“5분. 매닝햄 대위 덕분에 일어나자마자 의회에 소집령을 내린 상황이니,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곧바로 오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풀어놓았다.
“의회에서 긴급 사태 선언을 안건으로 올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공작은 잠시 아델라인을 곁눈으로 흘겨본 뒤, 계속해서 거울을 바라보며 넥타이를 맸다. 공작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한 뒤, 물었다.
“넌 항상 내게 어려운 아이였다. 사교계에 발을 들이게 되며 더더욱 그랬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넥타이를 맨 뒤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요즘은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쪽으로 어려운 아이가 되었구나.”
그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숙였다. 긴급사태 선언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던 나이아의 목소리가 귓가에 어리는 듯했다.
‘단독으로 안건을 올리는 건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을 안는 방법…….’
그때, 공작이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튀어나온 돌은 정에 맞기 십상이다.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튀어나온 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으로도 깨부수지 못할 정도로 단단해야 하지. 매닝햄 대위가, 그리고 그 후견인인 필즈먼 대장이 그 예다.”
“…….”
“너는 준비가 되었느냐. 아니면 그냥 그를 동정하는 것이냐.”
그 말을 내뱉는 공작의 칠흑 같은 눈은, 아델라인의 가슴을 후비듯 찔러 왔다. 그사이, 넥타이를 다 맨 공작은 아델라인을 잠시 바라본 뒤,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조차도 답할 수 없다면, 튀어나올 생각은 하지 말거라.”
공작은 그녀의 귀에 들릴 정도로 나지막하게, 그러나 그 목소리에 담긴 힘만큼은 그 어떤 고함보다도 묵직하게 말한 뒤 아델라인의 곁을 지나쳤다.
“…준비가 되진 않았지만. 해 볼 생각입니다.”
우뚝.
공작의 발걸음이 멈추는 게 아델라인에게 느껴졌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공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도는 해 봐도 좋겠지. 집사장.”
문간에서 문고리를 집고 기다리던 집사장이 공작의 부름에 답했다.
“말씀하십시오.”
“오전에는 황실… 황후 마마께 잠시 시간을 내 달라 하고, 오후에는 그린우드 부의장에게 내어 달라고 하게. 둘 다 진 빚이 있으니 거절하지는 못하겠지.”
“알겠습니다, 공작님.”
아델라인은 잠시 뒤를 돌아 공작을 바라봤다. 그러나 공작은 지팡이를 짚으며 이미 비서들과 함께 복도를 걸어 나가고 있었다.
상황을 뒤늦게 정리한 아델라인은, 그제야 공작의 집무실을 나섰다.
한시가 촉박했다.
* * *
한시가 촉박했다.
동이 터오고 있어야 할 하늘은 여전히 시커멨고, 눈앞은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으며, 바닥은 희고 검은 것들이 한데 섞여 회색빛을 자아내고 있었다.
“엄마아아… 아빠아…….”
“질리언!! 어디 있니!!”
“경비대원님! 도와주세요! 제 아들이 안 보여요!!”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서로 엉키고 설켜 서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개중 몇몇은 불길에 스치고 사람들에게 밟혀 심하게 다쳐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알렉스는 이를 악물었다.
사람이 부족했고, 자원이 부족했으며, 권한도 부족했다.
알렉스는 뒤를 바라봤다. 출근 시간에 딱 맞춰 나온 제2 수도경비대의 대원들은 그저 자신들의 구역으로 불길이, 그리고 사람들이 넘어오지 않도록 길목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저들에게 따져 봤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분노할 시간도, 탄식할 시간도 없었다.
그는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끝내고 싶었다. 이미 아델라인이 훈장을 받는 모습을 보기에는 늦었겠지만, 그런데도 마음속에서는 조바심이 일었다.
혹시 오늘 안에 끝낸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비록 수여식은 힘들겠지만, 그 뒤에 있을 연회에서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알렉스는 곧바로 고개를 저어 잡념을 털어 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불길을 막기 위한 방화선을 치고, 방화범을 잡아 추가 피해를 막아야 했다.
“제3 수도경비대! 길을 튼 뒤 에스코트해!!”
알렉스의 외침에, 알렉스를 알아본 경비대 간부가 그를 향해 경례하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라이플맨들은 경비대원들과 함께 마차 옆에 정렬해 각자의 라이플에 총검을 끼웠다. 제식 라이플이 아니라 총검을 끼울 수 없는 다른 라이플들을 가진 외인 소대는 피스톨과 단검을 꺼내 들었다.
알렉스가 지시를 내리자, 마부석의 대원이 말들을 채근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도움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귀를 찔렀지만, 지금은 그 아우성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밀치며 나아가자, 그나마 대로라고 부를 수 있을법한 길이 얽힌 교차로가 눈에 들어왔다. 그 교차로에서 간신히 상황을 파악하고 사람들을 모아 대피시키고 있는 경비대원들도 눈에 들어왔다.
몇 번이고 다른 교차로를 지나가며 불길을 피해 빙글빙글 돌아간 그들은, 간신히 거의 유일한 석조 건물인 성당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들이 도착하자마자, 휘태커 경감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를 맞았다.
“알렉스! 이제 왔냐! 왜 이리 늦었어!!”
“이재민들이 길을 꽉 막고 있었습니다! 제2 수도경비대가 길을 차단해서 이재민들이 대피를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휘태커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휘태커는 탁자로 쓰던 나무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소리쳤다.
“제기랄! 도움 안 되는 새끼들!!”
“대피소로 쓸 만한 장소가 필요합니다! 일단 사람들부터 대피시켜야 방화선 확보든 수색이든 가능해요!!”
그러자 휘태커는 지도를 꺼내 펼친 뒤 알렉스에게 한 지점을 가리키며 지시를 내렸다. 수도의 부촌을 담당하는 제1 수도경비대의 관할 지역 안에 자리한 공원이었다.
“여기 이 공원. 이 공원만 제1 경비대에게 양보받을 수 있다면 한숨 돌릴 수 있을 거야! 가서 설득하고 피신시키고 있어! 우리는 그동안 폭약 설치할게!”
“방화선은 설정된 겁니까?!”
“어! 너네 중대 애들도 방화선에 폭약 설치 중이야! 1소대장이 방화선으로 구획부터 나누자 그랬어!”
그러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인 뒤, 노먼을 비롯한 본부소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본부소대! 첨탑에 올라가서 할 일 해! 난 갔다 오마!”
“알겠습니다!”
알렉스는 지도에 표시된 장소로 향했다. 허술한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빈민가는 화재에 무척 취약했다.
다 기울어 가는 건물에서 끝도 없이 사람들이 빠져나왔고, 경비대원들은 길이 막힌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같은 방향으로 사람을 보냈다.
그 반대편은 치솟는 불길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나 알렉스에게는 선택지가 적었다.
“대위님! 그쪽은 불구덩이입니다!”
알렉스를 알아본 경비대 간부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양옆을 스윽 둘러본 알렉스는 손수건을 꺼내 입을 가렸다. 이미 불길이 넓게 퍼져 있어, 우회도 힘들었다.
“알아!!”
그렇게 외친 뒤, 알렉스는 불길 사이로 몸을 던졌다. 온몸이 뜨거웠고, 언제 자신의 몸에 두른 탄약포에 불이 붙을지 몰라 두려웠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한참을 달리자, 그는 간신히 불길 사이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길가로 내몰려 오도 가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그 인파들을 통제하느라, 가뜩이나 부족한 경비대원들도 발이 묶여 있었다.
알렉스는 인파들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러자 아예 경비대원들로 벽을 친 광경이 나타났다. 그들은 머스킷에 총검까지 끼운 채 빈민들을 막아 세우고 있었다.
“돌아가! 너희 같은 천것들이 올 곳이 아니다!”
그 말에, 알렉스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빈민들 사이로 나와, 병사들 앞으로 다가갔다. 제복을 입은 알렉스의 모습을 보자, 총검을 앞세우고 빈민들을 막아 세우던 대원들의 기세가 누그러졌다.
“지금 뭐라고 했냐?”
“…….”
“장교 보고 천것이라… 하, 참. 재미있네. 이 건은 상부에 공식적으로 항의할 거니까 그렇게 알도록.”
알렉스의 말에, 경비대원들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그때, 그들의 뒤에서 한 간부가 뛰쳐나와 알렉스에게 굽신거렸다.
“아이고, 대위님. 오랜만입니다. 방금 한 말은 그냥 그, 그래. 임무 때문에 발생한 실수였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죄송? 지금 그런 말이 나오나?”
알렉스는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눈빛으로 쏘아 보냈다. 아무리 계층이 다르다 해도, 살길조차 총검을 앞세워 틀어막은 꼴을 본 그는 확실히 분노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간부는 알렉스의 눈빛을 그냥 자신이 빈민들과 같은 취급을 당해서, 라고 단순히 이해한 건지, 더욱 굽신거리며 알렉스를 달래려 했다.
“얼마나 마음 상하셨을지,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이 애들도 열심히 하려다 실수한 것이니…….”
그때, 그들의 뒤에서 연미복을 입은 한 남자가 나타났다. 비록 하늘 높이 치솟은 연기 때문에 햇빛이 제대로 비치지 않았지만, 알렉스는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안드레이는 알렉스에게로 다가오며 작은 동작으로 빠르게 수신호를 보냈다. 현장의 모든 시선은 알렉스에게로 향해 있었기에, 안드레이의 수신호를 본 것은 알렉스뿐이었다.
본인, 선행. 2회. 조우. 행동.
모호하고 아귀가 맞지 않는 수신호들. 하지만 그 뜻을 대충 이해한 알렉스는 모자챙을 살짝 잡으며 답을 한 뒤, 다시 간부에게 시선을 옮겼다.
“총검을 앞세워 장교를 겁박한다라, 제1 수도경비대는 대체 뭘 하는 집단인가?”
“그, 그러니까 그게…….”
그사이, 경비대원들의 뒤로 다가온 안드레이는 알렉스를 향해 인사를 했다.
“아, 매닝햄 대위 아니십니까!”
서로 이름으로 부를 만큼 친한 사이였지만, 안드레이는 마치 남을 대하듯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그러자 알렉스도 그 장단에 맞춰 인사를 했다.
“아. 반갑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저번에 로피츠 공녀님을 에스코트하러 오셨을 때 한번 인사드렸었는데. 이번이 두 번째로군요.”
그 말을 통해, 두 번째로 만난 것처럼 행동하라는 안드레이의 수신호를 완벽히 이해한 알렉스는 답했다.
“아, 안드레이 집사.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오늘은 공녀가 훈장을 수여받는 중요한 날이라 자네도 바쁠 텐데.”
“공녀님께서 제게 빈민가의 상황을 살피고, 필요한 게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고 오라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 말에, 알렉스를 달래던 경비대 간부의 몸이 굳었다. 총검을 앞세워 빈민들을 막고 있는 이 모습이 로피츠 공녀에게 알려진다면…….
“공작님께서도 이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의회에 소집령을 내리셨습니다.”
또 공작에게 알려진다면…….
“그렇군. 우리에게는 일단 사람들을 대피시킬 공간이 필요하네. 그리고 의료 지원도. 인력도 부족하고.”
“공작가의 주치의와 관련 사항을 공유해 의료 지원을 준비하겠습니다. 다만 공간은…….”
안드레이는, 그리고 곧이어 알렉스는 경비대 간부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압박을 잠시 버텨 보던 그였지만, 이내 항복 선언을 하고 말았다.
“근, 근처에 공원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빈민… 아니 시민들을 피난시키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경비대원들의 장벽이 무너지고 대피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알렉스는 안드레이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로피츠 공작이 진짜 지원에 뜻을 두었나?”
“저도 잘 모릅니다. 호더빌에서 했던 대로 다시 했을 뿐이지.”
그가 ‘호더빌’이라는 지명을 꺼내자, 알렉스는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금세 눈치챘다.
“거짓말과 월권행위라. 공작가에 들어간 지 반년도 안되었으면서.”
그 말을 들은 안드레이는 허허 웃음을 지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거짓말이었을까. 알렉스가 그걸 묻는 눈빛으로 안드레이를 바라보자, 안드레이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뒤 낮게 속삭였다.
“공녀님께서 저를 보내 상황을 파악하라 한 것은 사실입니다. 의회에는 중대장님이 보낸 통보문으로 인해 소집령이 내려졌고요.”
“아델라인이?”
그의 물음에, 안드레이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그러자 알렉스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냥 외면해도 될 텐데, 남들과 같이 적당히 중간만 해도 될 텐데. 그녀는 먼저 나서서 자신과 빈민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알렉스는 안드레이를 향해 말했다.
“가서,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도와줘서 고맙다고 전해 줘.”
“알겠습니다.”
이제는 연미복이 몸에 익은 안드레이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 뒤 빈민들과 함께 걸어갔다. 알렉스는 그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그때, 알렉스의 귀에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그 나팔소리에 귀를 기울인 알렉스는 곧장 몸을 돌려 달려 나갔다.
‘동남쪽에서 서북쪽 방향으로 용의자 추격 중.’
이제는, 다시 사냥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