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47
47화 수상한 부고
파견 중대 관사. 알렉스의 집무실에는 단 열흘 만에 10년은 늙은 듯한 휘태커 경감이 의자에 앉아 알렉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 많이 피곤하신가 봅니다.”
“집에 못 들어간 지 열흘째다 지금. 휘하 경비대는 2교대 돌리고 있고.”
알렉스는 열흘 만에 폭삭 삭아 버린 휘태커 경감을 보며 그의 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차로 목을 축인 휘태커는 한숨을 쉬며 그를 바라봤다.
“수도사단이 별 도움이 안 되는 중입니까?”
“수도사단은 제 일을 잘하고 있지. 불탄 지역 재정비하고, 이재민들 구호물자 나눠 주고, 경비 업무 같이 서 주고.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야.”
휘태커는 들고 온 서류 가방에서 몇 장의 서류를 꺼내며 말했다.
“사소한 사건들 몇 개가 수도 곳곳에서 터지고 있는 중이야. 겉으로만 보면 개별적인 사건들인데… 수상하단 말이지.”
“수도 곳곳에서? 무슨 일입니까?”
알렉스의 물음에, 휘태커는 서류를 알렉스 방향으로 돌려놓으며 말했다.
“빈민가 화재 이후 몇 건의 실종 사건과 화재, 그리고 자살 사건이 보고되었어.”
휘태커의 말을 들은 알렉스는 서류를 훑어봤다. 넘쳐나는 게 사람인 수도라 사람이 죽는 건 이야깃거리도 아니었지만, 그 사람들의 신상명세를 눈으로 살펴본 알렉스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주식이나 현물, 선물을 다루던 이들이군요. 중산층이고, 돈 좀 만지던 이들이고.”
“하지만 다뤘던 돈에 비하면 그렇게 잘 사는 건 아니었더군. 대부분 독신이었고.”
“그렇습니까.”
알렉스는 추가로 덧붙여진 정보들을 훑어봤다.
“다들 제1, 제2 수도경비대 관할 구역이군요. 잠정적인 결론은?”
“주식과 현물 시장에서 부정 거래 의혹이 있던 이들이더군. 내각에서 발표한 시장 감찰 계획으로 인해 압박감을 느끼고 야반도주 내지 자살. 화재야 뭐… 우연이라고 퉁치는 것 같더군.”
“우연. 우연이라…….”
알렉스는 허허 웃으며 서류를 돌려줬다. 여기 있는 둘은 ‘우연’이라는 단어를 믿을 정도로 순진하지 않았다.
“제 쪽에서 도와줄 게 무엇이 있는지.”
“일단 죽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이고, 실종자들도 찾기 힘들 것 같지만.”
휘태커는 그에게 한 장의 서류를 건넸다.
“한 명은 강둑에서 발견되었더군. 저체온증에 교살 흔적까지 남아 있지만, 숨통은 붙어 있어.”
차를 한 모금 마신 휘태커는 알렉스를 향해 말했다.
“믿을 만한 애들 몇 명 보내 놓기는 했는데, 우리 쪽도 사람이 부족해서. 부탁해도 되겠냐?”
답은 정해져 있었다.
“노먼 중위와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 * *
공원. 지금은 구호소 겸 대피소로 쓰이고 있는 이곳은 육군의 붉은 제복을 입은 병사들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다.
아델라인은 병사들의 엄호를 받으며 공원 한편의 천막으로 들어갔다. 열흘이나 지났으니, 한참 고생하고 있을 안드레이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을 필요도 있었다.
“이쪽이십니다, 여사님.”
“고마워요.”
자신을 안내한 부사관의 경례를 받으며 들어가자, 서너 명의 부사관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안드레이의 모습이 보였다.
“아, 오셨습니까, 공녀님.”
안드레이는 자리에 일어나 인사한 뒤, 그녀를 위해 의자를 끌어오며 옆에 있던 부사관에게 부탁했다.
“차를 좀 끓여 줄 수 있나.”
“예, 알겠습니다.”
옆에 있던 부사관이 천막 한쪽에 있는 스토브로 다가가 차를 끓이는 사이, 안드레이는 아델라인에게 서류를 건넸다.
“지금까지 들어온 구호물자와 구호기금 목록입니다. 황실에서도 상당한 양의 금액을 출연했습니다. 식량 걱정은 한결 덜었기에, 목판과 천막으로 임시 거주 시설을 만드는 데 투입하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부를 살폈다. 알렉스의 말대로, 안드레이는 훌륭한 참모였고 인재였다. 괜히 나이아의 오빠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드레이는 아델라인에게서 서류를 돌려받은 뒤,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공녀님 덕분에, 많은 사람이 수도 남부에 관심을 가지는 중입니다.”
“다행이네. 그나저나 이제 우리 가문의 주치의 대신 다른 사람들을 구해야 할 것 같은데. 혹시 아는 사람이 있어?”
“미리 목록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사단의 군의관들도 있지만, 그래도 여러 명 구해 두는 게 낫겠지요. 언젠가는 사단도 주둔지로 복귀할 테니.”
안드레이는 그렇게 말하며 종이를 아델라인에게 건넸다. 규모가 있고, 의사들이 여럿 있는 병원들의 목록이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병원들을 찾아가서 사람을 구해 보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공녀님께서 직접 움직이는 것이 제가 움직이는 것보다는 힘이 더 실릴 테니까요.”
안드레이의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람은 얼마나 필요해?”
“의사가 최소 네 명에, 보조 인력은 그 두 배 정도가 필요합니다. 밀집된 피난민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문제가 커지니 그 전에 관리할 전문인력이 필요합니다.”
“알겠어. 알아볼게.”
아델라인은 안드레이가 부탁한 내용을 머릿속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갈 때도 인파를 병사들이 장벽을 세워 막으며 마차로 갔다.
“이렇게까지 안 해 주셔도 되는데.”
아델라인이 말하자, 옆에서 따라 걷던 부사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빈민가에 있던 사람들이니만큼, 더욱더 조심해야 합니다. 출신 성분이나 신분을 모르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그는 그리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얼마 전까지 범죄 조직에 몸담고 있던 이들도 섞여 있습니다. 항상 조심하시길 권하는 바입니다.”
부사관의 경고를 들은 아델라인은 그의 손이 짚고 있는 곳을 바라봤다. 그의 손은 허리춤에 찬 검의 손잡이에 얹어져 있었다.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도 그의 경계심을 확인하자, 아델라인은 그 조언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살벌한 경호를 받으며 마차에 오른 그녀는 마부석으로 트인 창문을 통해 목록을 건넸다.
“오늘 그 병원들 중 몇 군데를 가 볼 예정이야.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디지?”
그러자 마부는 잠시 목록을 바라본 뒤 한 병원의 이름을 떠듬떠듬 읽어 내려갔다.
“성… 조지… 병원. 이곳이 제가 알기로는 가장 가깝습니다. 그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아델라인의 말에, 마부는 마차를 몰아 도로를 누비기 시작했다.
* * *
성 조지 병원의 한 병실 앞. 알렉스는 노먼과 함께 휘태커가 파견한 수사관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목이 졸린 흔적에, 방어흔도 몇 가지 관찰되었다고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여기, 담당 의사의 입회하에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알렉스와 노먼은 수사관이 작성한 보고서를 훑어봤다.
“음… 이 사람도 증권가에서 일하던 사람이네요.”
“네, 그렇습니다. 다행히 지갑이 주머니에 있어, 식별이 가능했습니다.”
수사관의 말을 들은 알렉스는 노먼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노먼 중위는 주변에 방 하나 구해 봐요. 영수증 떼어 오고, 외인 소대가 맡아 줬으면 하는데.”
“알겠습니다. 수사관들은 소대원 오면 인수인계 마치고 돌아가시면 될 듯합니다.”
“알겠습니다, 중위님.”
수사관들과 노먼이 복도를 떠나자, 알렉스는 문을 열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네 개가 있는 병실에는 단 한 사람만이 병상에 누워 있었다.
알렉스는 그 옆의 간이의자에 앉아 그 사람을 바라봤다. 중년 남성, 목에는 교살 흔적. 그리고 몸 전체에는 방어흔. 단서를 조합해 보면, 꼬리를 자르기 위해 자살로 위장한 암살을 시도했다가 탈출. 강에 빠졌다가 발견되어 후송… 이라는 시나리오가 술술 풀려 나갔다.
가설 하나를 정리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을 나가려 했다. 그때, 알렉스의 뒤에서 신음이 들렸다.
“끄으으… 여긴 어디…….”
그 목소리를 들은 알렉스는 곧바로 몸을 돌려 그 남자를 내려다봤다. 녹색의 제복을 본 그는 알렉스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성 조지 병원입니다. 일단 안심하세요. 밖에는 수사관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중년 남성은 살짝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 일을 맡지 않는 거였는데…….”
그 말을 들은 알렉스는 그 남자를 향해 귀를 기울였다.
“무슨 일 말입니까.”
“…그 전에, 당신은.”
“라이플여단 파견 중대 중대장, 알렉스 매닝햄 대위입니다.”
알렉스가 그리 말하며 신분증을 꺼내 보여 주자, 그 남자는 알렉스의 신분증을 보고는 물었다.
“이번에 빈민가 화재 진압에 투입되었던.”
“그 중대 맞습니다. 더 확인이 필요하십니까?”
알렉스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하아…….”
그는 잠시 체념한 표정을 지어 보인 뒤, 알렉스를 향해 물었다.
“당신의 중대원들도 여기 와 있습니까?”
“곧 한 개 소대가 배치될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허, 하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역시, 대가 없는 선의는 없다는 건가.”
그는 그리 말하며 손에 있는 반지를 빼내 그에게 내밀었다.
“선불이오. 이걸 어디에 써먹을지는 내 안전이 확실시되면 알려 드리지.”
그의 말에, 알렉스는 그 반지를 코트 안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을 믿는 게 아니오.”
그는 그리 말하며 병실을 나가려는 알렉스에게 말했다.
“당신의 제복이 날 조종한 이에게 복수해 줄 거라 믿는 거지. 내 손에는 이제 아무것도 없으니.”
그의 말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때, 한 간호사가 카트를 끌고 알렉스를 스치고 지나갔다.
“잠시만요.”
코트 안주머니에 넣어 둔 반지를 만지작거리던 알렉스는 자신보다 키가 작은 간호사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보랏빛 안광만큼은 머리에 남았다.
“참 신기하구만, 보라색이라.”
그러고 보니 최근 만났던 사람 중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이 있던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던 중, 그의 옆으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알렉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아델라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렉스는 얼굴에 가득 낀 심각함을 지우고 미소를 지으며 아델라인에게 말했다.
“그냥, 잠시 생각하는 중입니다. 아델라인은 어쩐 일로.”
“이재민 구호소에서 일할 의사들을 찾는 중이에요. 안드레이 말로는 전염병이 돌기 전에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조금 이따가 병원장과 면담을 하기로 했어요.”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델라인.”
“뭘요, 제가 시작한 일인데요.”
그때, 사환 한 명이 아델라인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병원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사님.”
그러자 아델라인이 알렉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만 이야기를 나누고 올게요. 같이 식사라도 하는 건 어때요?”
“기다리죠.”
알렉스는 멀어지는 아델라인에게 답을 했다. 그러자마자, 그의 뒤에서 노먼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중대장님.”
“아, 그래요. 방은?”
“구했습니다. 병원에서 두 블록 거리의 여관입니다. 여기 영수증.”
노먼은 알렉스에게 영수증을 건넸고, 그걸 확인한 알렉스는 바지 주머니에 영수증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좋아요. 소대는?”
“곧 배치될 겁니다.”
그때, 그들의 귀에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알렉스와 노먼은 반사적으로 허리에 손을 짚었다.
위치는… 아델라인이 향한 방향. 물론 방향만 같은 거지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알렉스는 노먼을 향해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노먼, 위층으로. 수사관들과 함께 그 환자 보호해요.”
“알겠습니다. 중대장님은?”
그러자 알렉스는 허리춤에서 피스톨을 뽑아, 어렵게 왼손을 빌려 공이를 당기며 말했다.
철컥.
“가 봐야 할 곳이 있어요.”
알렉스는 그리 말하며 피스톨을 한 손에 들고 아델라인이 향한 곳으로 달려갔다. 알렉스의 코에는 점점 비릿한 혈향이 짙어져 갔다. 불안한 생각이 자꾸 떠올랐지만, 그는 애써 진정하며 혼란에 빠진 사람들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잠시 뒤, 사환을 따라가는 아델라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알렉스는 안심한 표정과 함께 속도를 늦췄다.
“아델라인!”
알렉스의 부름에, 아델라인도 뒤를 돌아보며 알렉스를 바라봤다. 알렉스는 가빠 오는 숨과 저려 오는 다리의 고통을 가라앉히며 속도를 더욱 늦춰 걸었다.
그래. 아델라인은 안전해. 그러면 된 거야.
알렉스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때, 한 손에 수술용 메스를 든 붉은 안광의 남성이 모퉁이에서 튀어나와 아델라인을 덮쳤다.
그 순간, 알렉스의 시간이 무한히 느려지는 듯했다. 실제로는 단 5초도 되지 않을 과정이 느릿하게 지나갔다.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거쳐야 할 모든 이성적 사고들이 건너 뛰어지고, 오직 육체로 습득한 과정만이 빠르게 지나갔다.
조준선을 정렬하고, 방아쇠를 당기고, 공이의 부싯돌이 내리쳐지며 불꽃을 튀기고, 이내 총구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퍽. 툭.
잠시 뒤, 총성조차 걸러 낸 그의 귀에 무언가가 꿰뚫리고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