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51
51화 절반의 성공
수도 외곽의 한 폐가. 당장에라도 허물어질 것만 같은 저택의 겉모습과 달리, 그 주변을 감싸는 언덕 골짜기와 정문에는 수십 명의 용병이 마치 무언가를 지키듯 자리에 서서 경계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칼이나 활, 석궁, 아니면 화승총을 들고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보초를 서듯 주변을 돌아다니고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지만, 상당수는 경비를 서는 둥 마는 둥, 담배를 피우고 잡담을 나누기 바빴다.
“그러니까, 그때 손에 쥐고 있던 스페이드 2로 트리플을 만든 거지…….”
“그래? 그것참, 운 한번 좋네.”
한 쌍의 보초들이 시답잖은 말을 주고받으며 지나쳤다. 그러자 담벼락 너머에 있던 알렉스는 그의 뒤에서 석궁을 든 스워포드를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침투.’
‘확인.’
알렉스의 수신호에, 스워포드도 석궁을 잠시 등 뒤로 돌리고 손을 풀었다. 그사이 알렉스는 두 팔의 팔꿈치 안쪽에 라이플을 끼웠다.
타닥.
스워포드가 알렉스의 라이플을 밟고 담벼락을 훌쩍 넘자, 알렉스도 그 너머로 라이플을 넘긴 뒤 두 팔로 담벼락을 잡고 넘었다.
“그러니까. 너도 한번 가 봐. 물 좋다니까?”
“이번 일만 끝나면 가야지. 근데 여기에 뭐가…….”
푹. 푸북.
순식간에 끊긴 대화. 단검에 묻은 피를 바닥에 쓰러진 두 용병의 옷에 닦아 낸 알렉스는 주변을 살핀 뒤 돌 하나를 집어 담벼락 너머로 던졌다.
그러자 사부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스무 명의 대원들이 저택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10분 남았다. 계획대로 수색하고 목표 확보한다.”
“알겠습니다.”
알렉스의 지시에 고참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두운 새벽에 의지할 것은 오직 옅은 달빛뿐이었지만, 대원들은 이 저택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빠르게 쪽문을 통해 내부로 파고들어 갔다.
알렉스도 스워포드를 비롯한 병사 대여섯 명과 함께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서늘한 밤공기를 타고 나지막한 단말마의 비명이 들려왔지만,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계단을 밟고 천천히 내려가자, 다시 횃불의 주황빛이 희미하게 그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알렉스는 품속에서 거울을 꺼내 들어 모퉁이 너머를 살폈다.
곳곳에 놓인 횃불과 수십 미터 길이의 복도 끝에서 상자를 깔고 앉아 카드놀이에 열중하는 용병들이 보였다.
‘세 명. 복도. 무장. 둘, 검. 하나, 석궁.’
알렉스의 수신호에, 석궁을 든 스워포드가 거울을 보며 뒤에 따라붙은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총검을 끼운 라이플을 앞세운 두 대원이 천천히 허리를 숙이고 발소리를 죽인 채 용병들에게 다가갔다. 그 사이 스워포드는 석궁과 머리를 모퉁이 밖으로 내밀었다.
“패 까. 넌 뭐였길래 그렇게 레이즈를 해 댔냐?”
“A 트리플. 이 정도면 걸어 볼 만하지? 그러는 너는.”
“나는 뒤졌다. 2 페어.”
“에휴 머저리들. 나는…….”
쓔욱!
석궁을 벽에 기대어 두고 스트레이트를 선보이려던 용병의 목에 쇠뇌가 틀어박혔다. 제대로 된 비명 한번 못 지르고 동료가 쓰러지자, 마찬가지로 카드에 열중하던 용병 둘은 허둥지둥 벽에 기대어 놓은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잠시 뒤, 먼저 간 동료와 마찬가지로 목에 총검이 박힌 둘은 신음 한 번 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훨씬 조용해진 지하실. 알렉스는 라이플을 쥐었던 오른손을 들고 손을 한 바퀴 휘, 돌려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대원들은 둘씩 짝을 지어 지하실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스워포드도 피 묻은 볼트를 뽑아 대충 용병들의 옷으로 닦아 낸 뒤 석궁에 재어 놓고 알렉스와 짝을 지어 문을 열고 그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때.
절그럭.
“…….”
다른 문들과 다른 미세한 감각이 손끝에서 느껴지자, 알렉스는 문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잠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방치된 지 오래된 듯 삐거덕거리고 뻑뻑한 느낌이 느껴지는 다른 문들과 달리, 훨씬 부드럽고 매끄럽게 열렸다.
알렉스는 아래를 슬쩍 내려다본 뒤, 자신의 뒤에 있는 스워포드에게 말했다.
“인계 철선이다. 뒤로 물러나.”
알렉스의 말에, 스워포드는 군말 없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절단기를 꺼내 들었다.
“끊고 갈까요.”
약간 벌려진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본 알렉스는 고개를 저었다. 방의 구조를 단숨에 파악할 수 있었다. 안에는 서류와 플라스크 병, 서적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이 함정이 작동하는 순간, 안에 있는 모든 자료가 단번에 날아갈 것이다. 어쩌면 이 지하실이, 아니 어쩌면 이 저택 자체가. 그런 만큼, 신중을 기해야 했다.
“다른 길이 있을 거다. 어쨌든 오래 방치된 모습은 아니야.”
알렉스의 말에. 스워포드는 배낭 옆 주머니에 꽂아 둔 나무통을 꺼내 들어 보였다. 화약으로 가득 들어찬, 심지에 불만 붙이면 터질 준비가 되어 있는 폭약통이었다.
“옆의 벽, 터뜨리죠?”
강력한 화학 에너지의 힘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알렉스는 잠시 스워포드의 손에 들린 폭약통을 바라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조금 고민해 보자. 여기 옆방은 뭐 없었지?”
“없었죠?”
“뚫자. 3분 남았다. 립튼 병장!”
알렉스의 부름에, 등에 슬레지해머를 진 대원이 들어와 해머를 손에 쥐었다.
쾅! 쾅! 쾅!
단 세 번 만에 허술한 벽이 무너지고, 연구실 안이 한눈에 들어왔다. 출입문 뒤의 부비트랩을 바라본 알렉스는 두 대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스워포드는 저거 무력화하고, 립튼은 수색 마친 애들 와서 챙기라 그래.”
“옙.”
알렉스의 말에, 스워포드는 절단기를 들고 폭약통이 연결되어 있는 인계 철선을 이리저리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냥 무작정 밀고 들어가도, 바깥에서 끊어도 터지는 구조였다.
스워포드가 부비트랩을 해체하는 사이, 대원 서너 명이 방 안으로 들어와 서류들과 시약들, 그리고 서적들을 배낭 가득 챙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비워진 연구실과 가득 찬 배낭. 알렉스는 대원들을 바라보며 수신호로 지시를 내렸다.
‘퇴출.’
그 수신호에, 대원들은 대열을 갖춰 올라간 뒤 1층 복도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브랜디!”
복도 어딘가에서 암구호의 문어가 들려오자, 알렉스는 곧바로 답어와 합수호의 숫자 하나를 던졌다.
“머스킷, 4!”
“6! 중대장님, 뭐 건진 거 있으십니까?”
어둠 속에서 나타난 한 대원의 물음에, 알렉스는 자신의 빵빵해진 가방을 툭 손으로 친 뒤 물었다.
“2층은?”
“1층 복도 끝방에서 대기 중입니다. 명단 내 3인, 명단 외 10인입니다.”
“그래.”
그때, 저 멀리서 날카로운 라이플의 총성들과 함께, 일방적으로 저격당하는 용병들의 단말마 비명이 들려왔다. 민간인들과 정보 자료를 확보한 알렉스의 침투조를, 그리고 침투조가 확보한 사람들과 인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저격으로 시선을 끄는 저격조의 행동이었다.
총성들이 울리고, 용병들이 다급하게 소리치며 한쪽으로 쏠리는 걸 들은 알렉스는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나가자.”
* * *
“브랜디를 마실 때가 왔다고, 어제 대위님께서 제게 전하셨단 말씀이십니까?”
“응. 근데 무슨 일 있어?”
이른 아침. 아델라인의 부름을 받아 서재로 간 안드레이는 아델라인의 말을 듣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걸 알려야 할까.
브랜디를 마실 때가 왔다는 것은, 브랜디를 마셔야 할 수도 있는 때가 왔다는 말이라는 것을.
병원조차 마음대로 가기 힘들어, 독한 브랜디로 고통을 달래고 수술을 버텨야 할 때가 올 수도 있다는 말이라는 것을.
“…아무것도 아닙니다. 언제 술 한잔할 때가 되기는 했지요.”
안드레이는 아델라인의 얼굴을 보며 간신히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런 이야기는 눈앞의 귀족 아가씨가 듣기에는 너무 어둡고 거친 이야기이다.
“그럼.”
안드레이가 고개를 숙이며 몸을 돌리자, 뒷모습을 보고 무언가 찝찝함을 느낀 아델라인은 안드레이에게 물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
자신에게 질문하는 아델라인의 표정에는 순수한 걱정만이 묻어 있었다. 그 얼굴을 향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 안드레이의 양심이 살짝 뻐근해져 왔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에 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럼.”
안드레이가 답을 한 뒤 서재를 나가자, 아델라인은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사실 가문의 일을 돕는 시간 외의 거의 모든 깨어 있는 시간은 공부에 쓰고 있었다.
수능 때도 이렇게 공부를 하지는 않았는데. 아델라인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책을 읽어 나갔다. 이번에 읽고 있는 건 채권에 관한 내용이었다. 채권이 단순히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복잡하고 심오했다.
그때, 나이아가 아델라인의 서재로 들어왔다.
“공녀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누구?”
아델라인이 묻자, 나이아는 아델라인을 향해 답했다.
“루멘시아 백작가의 피오나 영애입니다. 응접실에서 기다리는 중이십니다.”
아델라인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왜 여주인공인 피오나가 자신을 찾아온 것일까. 혹시 알렉스에 관한 일인 걸까?
잠시 뒤, 아델라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일단 손님이니까.”
아델라인의 말에, 나이아는 고개를 끄덕인 뒤 아델라인의 뒤를 따라갔다. 복도를 걸으며 창밖을 보자, 높고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더위가 수그러든 바깥의 하늘은 가을을 예고하듯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벌써 가을이네.”
“가을이 되면 곡물 가격도 한풀 꺾이겠죠. 이번 해는 풍작이 예상된다고 하니까요. 그러면 구호 기금으로 모인 자금을 다른 방면으로 돌리기 쉬워질 거예요.”
나이아의 말에, 아델라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창밖으로 펼쳐졌던 검은 기둥들이 눈에 선했지만, 상황이 차차 나아지고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자, 어느새 응접실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아델라인은 하녀들이 열어 주는 문을 지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아델라인은 차를 마시고 있던 피오나와 눈을 마주쳤다. 자수정 같은 보랏빛 눈동자에, 문득 알렉스의 말이 떠올랐다.
‘보라색 눈동자가 흔할까요?’
알렉스의 말이 뜻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아델라인은 왠지 모를 기묘한 느낌을 받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피오나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곧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영애… 아니, 여사님. 저번의 연회 이후로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달라진 호칭. 아델라인은 그동안 변화한 둘의 위치와 관계를 느끼며 허리를 깊게 숙이는 피오나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래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네, 여사님께서 염려해 주신 덕분에.”
“아델라인이라 부르세요. 어차피 나이 차이도 안 나는데. 자, 같이 차 한잔하죠.”
아델라인이 방금까지 피오나가 앉아 있던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자, 피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고마워요, 아델라인.”
아델라인이 그녀의 맞은편에 앉자, 시중을 들던 시녀가 곧바로 아델라인의 앞에 찻잔을 놓고 차를 따라 주었다.
아델라인은 차를 마시며 테이블 너머의 피오나를 바라봤다. 무엇을 위해 여기에 왔을까. 아델라인의 머릿속에서는 계속 그 생각이 맴돌았다.
“사실,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찾아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