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53
53화 누군가가 묻혀야 할 피
제국 의회당의 부의장 집무실. 정장을 차려입은 청년은 시가를 피우며 서류를 읽어 내려가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 남자는 서류의 마지막 장까지 읽은 뒤, 청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쁘지 않은 성과로군. 라이플 여단의 이름이 아깝지 않아, 대위.”
“아닙니다, 부의장님.”
그린우드는 알렉스를 바라보며 서류를 돌려줬다. 예상보다 빨리 나온 결과물에, 그린우드는 놀라우면서도 만족했다.
분명 왼 어깨가 회복되는 건 일주일 뒤라고 알고 있었는데, 마치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 적어도 일주일 뒤, 부상의 차도를 확인하고 계획을 세워 작전을 실행할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어깨는 괜찮나?”
그린우드의 물음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미리 부탁드린 정보는.”
“아, 그 용병들의 자금줄 말인가.”
그러자 그린우드는 옆에 서 있던 비서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 비서관은 그린우드에게 두꺼운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넸다.
“앤트워프 해운. 비상장 회사로, 주로 구대륙과 신대륙을 오가는 무역선을 여러 척 운용 중이지. 그 용병들의 일부도 서류상으로는 무역선과 계약을 맺은 함대군이었다네.”
알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서류 봉투를 알렉스에게 건넸다. 서류 봉투에는 재무부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재무부 장관에게서 오늘 아침 받은 자료일세. 꽤나 많은 부동산을 가지고 있더군. 제대로 된 사무실 하나 없는 무역 회사치고는.”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은 겁니까?”
“재무부는 세금만 잘 내면 개입할 이유도, 여유도 없다네. 서류상으로는 완벽하니, 이상한 점을 찾아내긴 힘들었지. 사무실 하나 제대로 없다는 것도 어제 자네의 연락을 듣고 찾아서 알아낸 거네.”
“…….”
“마법사 명단 중 총 몇 명을 찾았지? 총 2건의 작전을 동시에 수행했다고 알고 있네만.”
“세 명을 제외한 전부입니다. 육군 본부에서 가족들과 함께 수용, 취조 중입니다.”
그러자 그린우드는 잠시 담배 연기를 들이마셨다가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시간이 많지 않다네, 대위. 나와 마일즈 의원이 진정시켜 보려 하고 있지만, 자유당 내에서는 이미 프랑크 왕국의 공작으로 결론지은 의원들도 있어.”
“얼마나 됩니까?”
“다섯 명. 내각에서는 아무도 없지만.”
“33명 남았군요. 내각에서 선전 포고를 실시하기 전까지.”
알렉스의 말에, 그린우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섞어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75명의 자유당 의원 중 과반에 해당하는 38명의 의원만 의견이 모인다면, 75명의 자유당 의원 전원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그때 즈음 되면, 원내 정당인 46석의 남부당과 25석 가량의 황색당에서도 동조하는 이들이 생길 것이니, 전쟁은 과반의 지지를 등에 업은 채 순식간에 시작될 것이다.
“솔직히, 내부의 적보다는 외부의 적이 훨씬 더 눈에 띄고 선명하지.”
“하지만 더 위험한 건 내부의 적이지 않습니까.”
“아네. 그러니 자네도, 필즈먼 대장도, 나도 내부의 적을 찾아내려 하는 중이고.”
그린우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알렉스를 바라봤다.
“나도 슬슬 다음 일정이 있어서. 다음 작전은 언제인가?”
“다음 주 중으로 이뤄질 듯합니다.”
알렉스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운을 비네.”
“부의장님도.”
둘 사이의 악수가 이뤄지고, 알렉스는 문밖으로 나갔다. 그때, 그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알렉스!”
아델라인의 목소리. 그 부름에, 그린우드와 알렉스는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처 그린우드까지 나올 줄은 몰랐는지, 아델라인은 금세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알렉스는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델라인. 그동안 잘 지냈나요?”
“네. 잘 지냈… 팔 깁스 풀었네요? 어깨는 다 나은 거예요?”
아델라인이 묻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일찍 나아서, 빨리 풀었어요. 아델라인은…….”
큼큼! 둘의 귀에 누군가의 헛기침이 들렸다. 그러자 두 사람이 복도 가장자리로 물러났다.
“고맙네, 두 사람 다 좋은 시간 보내게.”
그러자 길이 트인 그린우드는 둘에게 미소를 지으며 그 옆을 지나갔다. 그러자 아델라인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그런 그녀를 위해,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이끌고 의회당 앞마당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많기에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곳. 알렉스 덕분인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서인지 아델라인의 얼굴은 다시 원래의 색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먼저 알렉스를 향해 물었다.
“의회당에는 무슨 일로 왔어요?”
“아, 부의장님과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아델라인은?”
“저는 이번에 예산을 책정해 주신 의원님들께 인사를 드리러 왔어요. 뭐… 절반은 없는 줄도 몰랐던 황색당 사무실을 찾아다니느라 헤맸지만요.”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피식 웃음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각 당이 고유의 색을 띠고 행동을 같이하는 자유당이나 남부당과 달리, 황색당은 그저 의원들 간의 느슨한 품앗이 모임에 가까웠다.
열 석 이상이 모인 당은 교섭 단체로서 인정해 주니 명부에는 이름을 올리지만, 그래도 의원 하나하나는 무소속에 가까웠다. 그런 당에 제대로 된 당사가 있을 리가.
“엄청 고생했겠네요.”
“그래서 조금 애먹었네요. 아, 참!”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향해 무언가를 떠올린 듯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내일모레 시간 돼요? 연극 초대장을 받아서, 같이 가고 싶거든요.”
그러자 알렉스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이 펼쳐졌다. 내일모레…….
“내일모레 저녁인가요?”
“네, 저녁이에요.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니에요. 저녁에는 할 일이 없을 것 같으니까, 가능할 것 같네요.”
알렉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황궁 앞으로 모레 저녁 6시까지 갈게요.”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번에도 늦을 건가요?”
그러자 아델라인이 그를 향해 약간 날 선 목소리로 답했다.
“안 늦을게요, 안 늦을 거니까 제때 와요.”
“네, 네. 알겠어요. 그러고 보니 지금 시간이…….”
알렉스는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식사라도 같이할까요? 저번의 그 피자집에서.”
알렉스의 말에, 아델라인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공작가의 요리사는 피자를 만들 줄 몰랐기에, 그 제안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그렇게 그들은 거리를 걸어 피자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 블록 정도 거리를 둔 채 그 뒤를 따르던 남자가, 방금까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신문을 접은 뒤 두 사람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발걸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턱.
“읍! 으브븝!!”
누군가의 손이, 그 남자의 입을 막고 건물 사이 어두컴컴한 골목길로 끌어들였다.
“한 번은 봐줘도 두 번은 안 된다는 거 모르냐?”
남자의 귀에 속삭여진 말에, 그 남자의 눈이 부릅떠졌다. 언제부터 미행한 거냐는 의구심이 담긴 눈빛이 상대에게 닿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내 뒷목에 강한 충격이 가해지며, 그 남자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 * *
땅거미가 내려앉은 시간. 한 귀족 영애는 자신의 침실의 안락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생각을 이어 나갔다.
보름달 계획의 보조 실험을 시키던 마법사들과 그 가족들이 하룻밤 만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을 감시하고 지키던 용병들은 단 한 명도 살아서 도망치지 못했다.
그 덕분에 그녀에게 마법사들이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어온 건 몇 시간 전. 그것도 알렉스가 갑자기 왼팔의 깁스를 푼 채 의회당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미행 붙인 자에게 듣고 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사람을 급히 보냈기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분명 일주일이라고 했는데. 분명.
“…….”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머릿속을 점점 잠식해 나갔다.
유의미한 교환비를 산출할 단서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교환비를 산출할 수조차 없었다. 생각을 이어 나갈수록 등에는 더더욱 소름이 돋았다.
영애는 급하게 방 한편의 책장 앞으로 걸어갔다. 몇몇 책을 순서대로 뽑아 위치를 바꾸고 책장 한쪽을 밀자, 마치 회전문처럼 책장이 돌아가며 통로가 나타났다.
통로 안으로 들어가, 비좁은 계단을 내려간 영애는 안에 들어가 손가락을 딱! 소리 나게 튕겼다.
그러자 지하의 눅눅한 냄새가 나는 공간에 일제히 보랏빛 촛불이 타라락 켜지며 방 안을 비췄다. 흑마법과 반대되는 마법, 그러니까 일반적인 의미의 마법인 백마법에서는 볼 수 없는 속도였다.
불을 켠 그녀는 급하게 지하실 한구석의 금고로 향했다. 금고 위의 의식용 칼로 손가락 끝을 그어 금고의 열쇠 구멍에 가져다 대자, 이내 찰칵, 하는 소리가 들리며 금고가 열렸다.
끼이익.
금고의 문을 열어 그 안으로 손을 뻗자, 그녀의 손에 두꺼운 책이 한 권 잡혔다. 마지막 장을 펼치자, 몇 번이고 봐 왔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반란군을 상대로, 무의미한 장소에서 무의미한 항전을 벌이던 매닝햄 대위와 그 휘하 중대원은 무의미하게 죽었다고.
그 내용을 본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이 예언서 속 내용이 틀린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은 예언서에 나오지 않은 부분이라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났던 것뿐이다. 그래. 압도적인 양의 반란군을 상대로 몇 날 며칠을 버틸 수 있었던 정예병들이니, 한낱 오합지졸 용병들로는 당하기 어려운 것이겠지.
예언서 속 내용을 보면, 지금의 상황도 이해할 수 있다.
이미 아델라인과 매닝햄 대위가 친밀한 사이였으므로, 연인을 위한 황태자의 부탁을 거절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 반대로, 황태자의 연인이 하는 부탁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잠시 흔들렸던 예언서에 대한 믿음이 다시 굳건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크게 변한 건 없다.
자신은 여전히 이 예언서대로 황태자의 연인이 될 운명이었다.
그리고 그 운명대로 황태자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제국을 손에 넣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기 위해 지금까지 세이드를 이용해 황태자를 조종하고, 루멘시아 백작가를 이용해 부를 쌓아 올린 게 아닌가.
비록 황후 세리야가 죽지 않은 건 예상외였지만, 이건 오차에 불과했다. 수십 년간의 큰 그림을 그리느라 발생한 약간의 실수. 그리고 그 실수는 다른 방법으로 바로잡으면 된다.
그녀는 다시 그 책을 고이 금고로 넣으며, 보랏빛 눈동자를 번뜩였다. 그 눈에는 오직 음험한 욕망이 번들거리며 빛을 발할 뿐이었다.
“여전히, 이 세상의 주인공은 나니까.”
마치 눈에 안 보이는 누군가에게 확인이라도 받듯 단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금고의 문을 닫은 그녀는 방 한편의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에는, 갈색 머리의 순진한 귀족 영애가 순박한 웃음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렇지, 피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