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67
67화 황실의 주인
달그락, 달그락.
아델라인은 창밖을 바라봤다. 어느새 자신은 황궁의 정문 앞에 다다르고 있었다. 아델라인은 친위대들이 경비를 서는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도그 칼라… 알고 보낸 거겠지.”
“황후도 사교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니까요. 이런 걸 신경 쓰지 않을 사람이 아닙니다.”
나이아의 말을 듣자, 아델라인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모르고 보낼 리가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을 순간 부정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황후는 저번의 화재 때 죽을 사람이었다. 이를 바꾼 건 자신이었고, 자신의 말을 믿고 따라 준 알렉스였다. 그런데도 자신에게 목걸이를, 그것도 개 목줄 목걸이를 보내다니.
차라리 모르는 척할걸. 아델라인은 끓어오르는 속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심호흡했다. 알렉스가 알려 준 대로, 세 박자에 걸쳐 들이쉬고, 세 박자에 걸쳐 내쉬기를 반복했다. 그런데도 아델라인의 속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지금 당장에라도 마차를 돌리고, 가슴에 달린 훈장을 뜯어내 버리고 싶었다. 정작 당사자는 감사해하지도 않는데, 이딴 훈장이 무슨 소용일까.
아델라인의 감정을 알아챈 나이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모르는 체하셔야 합니다.”
“알아, 안다고.”
나이아의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한번 끓어오른 감정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장신구마저 모두 처분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쓰여 목걸이를 보낸다. 말은 좋아.”
아델라인은 황후의 편지에 적혀 있던 문장을 내뱉었다. 위선과 가식이 가득한 편지에서 건질 만한 본론은 오직 그 한 문장뿐이었다. 그마저도 가식이 껴 있었긴 했지만.
“좋아. 그냥, 단순히, 재건위원회의 위원이 되어 부담스러우니 거절한다. 정도면 되는 거지?”
“만약 그런데도 받으라 하면, 두 번 정도 더 거절한 뒤. 그다음에는 기금으로 돌리겠다 하시면 됩니다. 그 상황까지 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요.”
“그쯤 가면 황후와 척을 진다는 의미가 되니까.”
“근데… 정말 괜찮으신가요?”
나이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황후의 선물을 거절한다는 건, 사교계에서 황후와 척을 진다는 의미로 확대 해석이 이뤄질 수도 있어요. 사실이든 아니든. 그리고… 그게 황후가 원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
“귀족 가문들의 기부가 줄어들 수 있어요. 황후가 관리하는 황실 납품 계약은 많고, 그걸 주 업으로 삼는 귀족 가문도 많으니까요.”
그 말에, 아델라인은 순간 움찔거렸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구호소의 사정이 안 좋아질 수 있다는 말은 결코 좋지 않았다.
“…그래도. 난 순순히 당해 주고 싶지는 않아.”
“저도 그래요.”
나이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때, 서행하던 마차가 멈춰 섰다. 친위대가 마차를 검문했고, 마부는 황후의 인장이 찍힌 초대장을 건넸다. 그러자 마차는 이내 황궁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일전에 황후를 만났을 때 아델라인을 맞았던 관리가 다시 아델라인의 마차로 다가왔다. 마차의 문이 열리고, 먼저 내린 나이아의 보조를 받으며 아델라인이 내렸다.
“황후 마마께서 기다리시는 중입니다.”
관리가 고개를 숙이며 나이아의 손에 들린 보따리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차마 못 볼 걸 본 듯, 고개를 돌렸다. 아마 보따리 안에 무엇이 들렸는지, 무슨 목적으로 황후를 만나 뵙고자 하는 건지 짐작한 것이겠지.
“…안내하겠습니다. 여사님.”
그 말을 한 관리가 발걸음을 옮기자, 아델라인과 나이아는 그 뒤를 따랐다. 나이아는 처음이겠지만, 아델라인은 한 번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지난여름의 기억도 되짚었다.
여전히 이곳은 세상과 분리된 듯,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해맑은 대화 소리만 들려왔다. 지난여름과 주제만 달라졌을 뿐, 이곳의 대화는 밖의 세상과 동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이번 연극의 배우들이…….”
“그런가요? 언제 한번 황궁에 초청을 해 보도록 건의를…….”
“한 천 파운드만 있으면… 황궁에서 직접 연극을 즐기는 건…….”
아델라인은 대화들을 듣고 이를 악물며 멈춰 섰다. 천 파운드. 황후의 시녀가 가벼이 입에 올린 천 파운드. 그리고 황실이 구호소에 ‘쾌척한’ 천 파운드. 하도 생색을 내기에 며칠 동안 고민하며 감사 편지를 꾸몄건만, 정작 그 천 파운드는 하룻밤 여흥에 지나지 않는 돈이었구나.
“…….”
아델라인의 자그만 손이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나이아는 그 주먹을 감싸 쥐며 아델라인에게 속삭였다.
“지금은 아니에요, 공녀님.”
나이아의 손은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강인하게 아델라인의 주먹을 풀었다. 그러자 나이아의 손바닥 이곳저곳에 박힌 굳은살이 만져졌다.
알렉스와는 다르지만, 그런데도 굳은살이 느껴지는 나이아의 손을 만지자, 나이아가 하고 싶은 말을 알 수 있었다.
“가죠, 공녀님.”
“그래.”
아델라인은 나이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방금까지 떠들고 있던 시녀들이 아델라인을 지나쳤지만, 시녀들은 아델라인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아델라인의 눈에, 시녀들의 얼굴에 띤 비웃음이 비쳤다. 그러나 아델라인은 가볍게 무시했다. 저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다. 그저 아델라인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황후궁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도 조금 걷자, 드디어 관리가 발걸음을 멈췄다.
“이 안에 계십니다, 여사님.”
“고마워요. 나이아.”
아델라인이 나이아를 부르자, 관리가 나이아의 앞을 팔로 막았다.
“여사께서만 들어오라 하셨습니다.”
초대장에는 적혀 있지 않던 제한 사항. 그러나 이를 예상했던 듯, 나이아는 아델라인에게 보따리를 건네며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가 보세요.”
나이아의 입은 아델라인을 안심시키려는 듯 웃고 있었지만, 걱정만은 덜어 낼 수 없던 건지 나이아의 눈만큼은 불안정해 보였다.
아델라인은 그 보따리를 받아들며, 나이아에게 말했다.
“잘 될 거야. 잘.”
아델라인은 한 손에 보따리를 든 채, 시종들이 열어 주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한가운데에 놓인 기다란 테이블 끝. 가장 상석의 자리에는, 황후가 앉아서 아델라인을 맞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공녀. 이쪽으로 앉아요.”
* * *
아직은 따가운 햇빛이 쏟아지는 가을의 오전, 한 노인은 목에 건 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한 벤치로 향했다. 벤치의 오른쪽에는 그 노인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백나무가 뿌리를 단단히 박은 채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벤치의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이미 진녹색 제복을 입은 한 장교가 앉아 있었다. 그러나 장교의 얼굴을 본 노인은 개의치 않고 왼쪽 가장자리에 앉았다.
잠깐의 침묵. 먼저 입을 연 건 노인 쪽이었다.
“자네가 날 찾아온 건 이번이 두 번째인가.”
끄덕.
그 장교는 푸른 눈동자로 눈앞의 꽃밭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건이 있어 왔습니다.”
“뭘 바랄지 궁금하군.”
그 노인은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에 꿰인 금반지를 눈높이로 들어 보이며 말했다.
“가진 건 이것밖에 없는 늙은이에게, 본부장을 후견인으로 둔 청년 장교가.”
노인은 장교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 장교는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이 필요합니다. 아니, 그것이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로피츠 가의 새 기사를 말하는 것인가?”
그러자 다시 한번, 장교의 고개가 아래위로 짧게 움직였다. 그러자 노인은 금반지를 손에서 놓으며 장교를 바라봤다.
“좋은 참모를 얻고, 좋은 사람을 곁에 두었으니 잘 헤쳐 나가리라 생각하는데. 부적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라네.”
“하지만 때로는, 곁의 사람만으로 부족할 때가 오기 마련이란 걸 아시지 않습니까.”
“…….”
“그렇기에 그걸, 그때, 빌려주신 거 아닙니까.”
장교의 말에, 노인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럴지도 모르지.”
노인은 정원을 바라봤다. 노인의 푸른색 눈동자에 비친 꽃밭은 풍요롭기만 했다.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보다 백배 천배 화려했다.
“그린우드가 묻더군.”
“…….”
“이걸 진짜 한 줌 식량으로 바꾸어 보태라 했냐고.”
“당황하셨습니까?”
“자네가 내 입장이 되었다면 충분히 그랬으리라 생각하는데.”
노인은 목이 탔는지 허리춤의 물병을 꺼내 목을 축였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소매로 입을 닦은 노인은 장교를 향해 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선했다네.”
그러자 장교는 미소를 지으며 노인에게 말했다.
“그 점이 매력 중 하나이기는 하지요.”
“하지만, 모든 꽃이 영원히 싱그러울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노인은 장교를 바라보며 물었다.
“시간이 지나면 꽃도, 사람도 변하네. 그때 가서도,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겠나?”
노인의 물음에, 장교는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건 꽃과 사람만 있는 건 아니지요.”
알렉스는 자신의 오른쪽에 있는 나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상록수도 시간이 지나면 변합니다. 그러나 꽃과 달리 빛이 바래지는 않지요. 그렇기에 날짐승과 들짐승들을 끌어들이는 것이고.”
“그리고… 라이플맨도 끌어들이는군. 라이플맨이 가장 좋아하는 게 숲과 산이라 했었나.”
노인은 장교를 바라보며 허허 웃었다. 잠시 웃음을 터뜨린 노인은 웃음을 그친 뒤 장교의 옆에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동백나무가 그렇게 좋던가?”
“용기가 없어 상황만을 탓할 뿐입니다.”
“무슨 용기?”
“빠른 이별을 각오할 용기이지요.”
장교는 정면의 정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빠른 이별. 장교는 자신의 옆을 수없이 스쳐 지나간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떠올렸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가족이, 연인이 있었다.
“늦지 않게 말하는 게 좋을 거로 생각하네, 매닝햄 대위. 뭐,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노인은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렉스도 몸을 일으키며 노인을 바라봤다.
“오늘은 그럼, 동백나무나 보러 가야겠군. 상록수라 하나 벌레 정돈 잡아 줘야겠지.”
“감사합니다.”
알렉스는 노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 노인은 알렉스의 인사도 받지 않은 채, 천천히 어딘가로 걸어갔다.
노인이 멀어지자, 알렉스는 황후궁을 바라봤다. 조금 있으면 아델라인도 황궁에 도착하겠지.
“…믿겠습니다. 아델라인.”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