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7
7화 라이플맨에 대하여
“다리는 어떠심까, 중대장님?”
“여어전히 죽을 맛이다.”
알렉스는 바짓단을 걷어붙이고 발목에 연고를 바르며 말했다.
“저야 뭐 할 수 있는 게 총 쏘는 것밖에 없으니 그렇다 치지만. 중대장님은 왜 이 힘든 곳에 계속 계시는 겁니까? 저번에 소문 들으니 본부에서 참모직 제의 왔더만요.”
“나도 할 줄 아는 게 총질밖에 없다. 그리고 그건 참모직이 아니라 참모 본부 시다바리 하라고 제안 온 거고.”
그는 발목에 바른 연고 위로 붕대를 감은 뒤, 바짓단을 내리며 말했다.
“그리고 내 짬에 참모직 가 봤자 처음부터 다시 일 배워야 해. 힘들어 그거. 지금 하는 일도 돈 잘 벌고 있는데 뭐.”
그는 그렇게 말하며 하품을 쩍쩍 내뱉었다.
“염병할… 우리 지금 여기 온 지 얼마나 지났지?”
“딱 1년 정도 된 거 아닙니까? 8월, 9월, 10월… 아, 10개월 정도 되었네요.”
스워포드가 손을 꼽아 가며 기어코 양손의 손가락을 다 접자, 알렉스는 몸을 뒤로 젖히며 한숨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야. 정말 개처럼 굴렀다, 진짜. 수도 오면 쉴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일은 쌓여 있고, 옆에 있는 놈들은 등신뿐이고.”
“그래도 경비대 조금씩 바뀌는 거 보면 보람차지 않습니까? 휘태커 경감님이 이끄는 제3 수도경비대는 이제 준군사 조직 다 되었더만요.”
“그거야 보람차지. 친위대 놈들 군대놀이할 거면 제대로 하라고 했더니만 다 보이콧해 버리니 더더욱.”
“그놈들은 그냥 병신이고요.”
스워포드가 알렉스에게 차를 따라 건넸다.
“이번 달에 중요사항 뭐 있나 함 읊어 봐라.”
그러자 스워포드가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달력을 들고 잠시 바라봤다.
“음. 이번 달 말에 황실 주최 무도회와 우리 부대 휴식 주가 있습니다.”
“야, 앞에 거는 중요한 거 아니잖아.”
“그냥 읽어 봤습니다. 그다음에는 뭐, 보초, 보초 훈련, 보초, 보초…….”
계속 이어지는 휴식 없는 일정에, 알렉스는 한숨을 푹 쉬었다. 훈련을 하고 휴식을 취해야 하는 시간에 소모적인 경비 보초 업무에 투입되고 있으니.
“이번에 업무 조정 요청 올렸는데 빠꾸 먹었습니까?”
알렉스는 무거운 머리를 움직여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웬만하면 친위대랑 각 세우지 말고 그냥 좀 버텨 보란다. 급여는 제대로 정산해 준대…….”
“급여 제대로 정산해 주면 뭐 합니까? 쓸 시간도 없는데. 그리고 황궁에서 줘야 할 수당은 안 주지 않습니까.”
“알아…….”
알렉스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분명 자신들은 육군의 전 부대를 지휘하는 육군본부장의 직할 부대인데.
왜 고작 황태자의 병정놀이 장난감에 불과한 친위대의 칭얼거림을 들어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주일 비번 따냈잖아.”
“친위대 놈들 자기 얼굴 비출 일은 알아서 찾아서 하잖습니까. 그리고 장교들 대부분이 무도회에 참석하느라 경비도 하는 둥 마는 둥 할 텐데.”
스워포드가 책상을 정리하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한탄하자, 알렉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를 달랬다.
“우리도 다른 나라 귀족들이랑 조우해서 일 생기는 것보단 낫지.”
“압니다, 알아요. 그냥 그 뺀질거리는 친위대 놈들 면상에 개머리판이나 갈기고 싶어서 그럽니다. 우리는 지금 10개월째 제대로 된 공관도 없지 않습니까. 조금 뒤면 장마라 탄약 관리 죽어날 텐데…….”
장마철에 할 일을 떠올리자 둘의 입에서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직 비 그을 지붕도 건물도 없는 상황이라 암담하기만 할 뿐이었다. 분명 정예 중의 정예라 불리는, 그래서 장비도 월급도 남부럽지 않게 타 가는 라이플맨들이고 그린재킷들인데.
이런 찬밥신세에 서러움을 느끼는 그들이었다.
“…아, 이제 근무 시간 지났다.”
알렉스는 책상 옆에 놓아둔 항해용 정밀 시계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어디 여자 만나러 가십니까? 웬일로 근무 시간 따지고 계신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그를 보며, 스워포드는 농담조로 물었다.
그러자 어느새 사복으로 갈아입은 알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 만나러 가는 거 맞다.”
“에이. 구라 까지 마십쇼. 중대장님이 무슨 여자입니까.”
“진짜라니까. 나 갔다 올 동안 오늘 당직인 1소대장 옆에서 잘 보조해!”
“네이네이.”
스워포드는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손을 들어 경례했다.
“다녀오십쇼.”
“그래.”
* * *
아델라인은 천천히 서류를 읽어 내렸다. 나이아는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자 비서였다. 자신의 앞으로 집사가 가져다준 온갖 서류들과 편지들을 종류별로 분류하고, 마치 엑셀처럼 표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일 처리를 해 나갔다.
덕분에 자신은 무리 없이 일을 해낼 수 있었다.
“흐음… 내 용돈이 이만큼이나 되는데 이렇게 빠져나가고 있구나…….”
그리고 나이아가 내 준 숙제를 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늦은 시간까지 장부를 읽고 또 써 내려가고 있었다. 자신 앞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용돈의 출입을 정리하는 용돈 기입장을 쓰라는 숙제였다.
복식 부기라는 단어는 들어 봤어도 이를 쓰는 건 처음이었기에 힘들었지만, 그래도 숙제 덕분에 공작가에서 자신에게 주는 돈이 얼마인지, 그리고 그중 얼마가 어떻게 빠져나가는지도 알 수 있었다.
어느덧 장부를 반쯤 써 내려가자, 그녀의 눈살은 이내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다과 비용이 한 달에 이만큼이나 나가?!”
자신의 용돈에서 나가는 나이아의 월급과 다과로 나가는 비용을 비교하자, 입이 쩍 벌어졌다.
분명 나이아의 월급이 작은 게 아닐 텐데. 그리고 다과는 공작가의 요리사가 직접 만드는 거로 알고 있는데?
근데 왜 따로 다과 비용을 책정해서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써 버린 거지?
“이건 좀 알아봐야겠네…….”
물론 빙의 전 아델라인이 한 일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 금액이 너무 컸다. 그리고 그 이외에도 여기저기서 이상한 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마부 비용도, 시녀들 옷값도 다 용돈에서 나갔네?! 뭐야 이거! 월급은 월급대로 나가잖아!”
공작가 자체에서 처리해야 할 지출이나 시녀들의 사적인 지출이 모두 아델라인의 용돈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돈이 부족해지면 공작가에서 또 돈을 퍼 줬다. 그리고 그 돈은 고스란히 사치 비용과 횡령으로 줄줄 새어 나갔다.
“…호구였던 거야.”
아델라인은 치밀하고 악랄한 악녀가 아니라, 주변에서 마음껏 삥을 뜯어 가는 호구였던 것이다.
그러자 나이아가 자신에게 왜 이런 숙제를 내 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내게 용돈 기입장을 써 보라고 했던 건가…….”
나이아는 단시간에 이런 횡령을 눈치채고 아델라인에게 넌지시 제안한 것이었다.
네가 직접 보고 판단하라고.
“일단 좀 씻어야겠어…….”
이런 진실을 알게 되자 머리가 아파 왔다. 일단 씻고 정신을 차리는 게 우선이었다.
그녀는 벽면의 설렁줄을 잡아당겨 당직 시녀가 머무는 방의 종을 울렸다.
그러자 이내 시녀가 노크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부르셨습니까.”
참. 나이아는 오늘 당직이 아니었지.
자신을 바보 취급한 사실을 알게 되자, 빙의 후 지금까지 자신에게 웃어 보이며 부탁한 일을 해 주던 시녀들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나이아를 이 밤중에 부르는 게 맞을까. 분명 내색은 안 하고 있겠지만 적응하는 것도 꽤 벅찰 텐데.
“…나이아를 불러와.”
하지만 결국 약간의 미안한 부탁을 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러자 시녀는 물러갔고, 잠시 뒤 새로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부르셨습니까?”
막 자다 깼는지 살짝 잠긴 나이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자던 중이었을 텐데 미안하네.”
“아닙니다. 이제 막 잠을 청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숙제하다가 머리가 아파져 와서, 이제 씻으려고 하는데, 도와줄 수 있어?”
“네, 당연한 일입니다.”
나이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그녀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맺혀 있었다.
* * *
이번에 새로 공작가에 들어온 마부는 아직 불이 켜져 있는 아델라인의 서재 창문을 올려다봤다.
“그동안의 정보와는 다른데…….”
아델라인은 이런 늦은 시간까지 서재에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동안 그가 정보 길드의 수장으로 지내며 모은, 사교계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에 근거한 합당한 추측이었다.
세이드는 창문에 살짝 드러난 새로운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흠. 역시 저 시녀가 특별한 건가.”
아델라인이 새로 들인 평민 시녀. 나이아 레이크.
아카데미를 졸업한 수재이고, 혈육이 한 명밖에 없다는 것이 그녀의 많지 않은 특징이었다.
사실 나이아 레이크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냥 주기적으로 아카데미의 정보를 사 오는 과정에서 딸려 온 정보만으로는 이런 사소한 정보들이 한계였다.
그러나 아델라인이 나이아와 만난 이후, 그녀는 바뀌었다.
공부라는 것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고, 필요 없는 사교 활동을 줄이다 못해 끊었으며, 영지의 일도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뭐,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그 시녀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도 답이 되겠지.”
“나라면 그러지 않을 것 같은데.”
철컥.
세이드의 뒤에서 기계 장치가 내는 소리와 함께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들어.”
세이드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이런. 이렇게 뒤를 잡히는 건 처음인데.”
그는 살짝 놀란 목소리로 뒤에 있을 남자에게 말했다.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한 실력자임이 틀림없었다. 분명 자신의 감각이 녹슨 건 아닐 텐데, 기척을 감추고 이렇게 가까이 다가올 수 있다니.
“세이드. 자신의 부하들을 내팽개치고 하는 짓이 고작 마부인 줄은 몰랐군.”
“누구지? 자기소개도 하지 않고 이렇게…….”
세이드는 말을 끝맺지 않은 채 재빠르게 손을 품속으로 넣고 단검을 들어 뒤로 몸을 틀며 휘둘렀다. 그러자 평범한 사복 차림의, 한 손에는 피스톨을 든 복면 쓴 사내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게 눈에 들어왔다.
“공작가도 영 사람 보는 눈이 없군. 범죄자를 사용인으로 들이다니.”
“그래서 좀 쉬었다 가기에는 좋지 않겠어?”
세이드는 여유로운 목소리를 가장하며 천천히 상대를 살폈다.
일반적인 암살자는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이상했다.
마나도 느껴지지 않는데. 어떻게 자신의 탐지 마법과 감을 모두 피한 거지.
“그래서, 자기소개는 할 생각이 없나?”
“범죄자에게 자기소개해서 후환을 만드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야.”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세이드는 남자를 속으로 비웃으며 말했다.
“그런가. 그렇다면…….”
그는 단검을 고쳐 쥐고 앞으로 뛰쳐나가며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무언가 스치는 감각이 단검 끝에서 전해졌다.
그래. 분명 손목을 노리고 베었으니 치명상일 것이다.
세이드는 여유롭게 남자에게 치명타를 줄 생각으로 몸을 공중에 띄워 다리를 강하게 휘둘렀다.
이 발차기가 턱에 맞으면, 웬만한 사람은 한 번에 쓰러지게 되어 있다. 하물며 손목을 베이고 난 후라면 충분히.
이걸로 이 괴한을 기절시키고, 나중에 심문한다. 정보는 중요하니까.
그러나 세이드의 계획은 한순간에 틀어졌다.
남자는 자신이 쓰고 있던 복면을 풀어 세이드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순식간에 시야가 가려졌고, 그사이 공중에 떠 있던 그의 옆구리에 큰 타격이 가해졌다.
“커헉!”
순식간에 바닥으로 내리꽂힌 세이드는 이를 악물고 얼굴에서 복면을 걷어 내며 튕기듯이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자신 혼자만이 흙투성이가 된 채 서 있을 뿐이었다.
“이런 젠장…….”
간만에 맛보는 패배감에, 세이드는 이를 갈았다.
“네놈을 잡아서 온갖 고문을 다 해 주지… 아는 거는 물론 모르는 것까지도 다 털어 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