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75
75화 마지막 결정
어느덧 하루가 또 지나고 다음날의 해가 밝았다. 부지런히 아침을 보내고 나자, 아델라인은 어느새 미리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로 가득 찬 의회당의 복도를 마주하고 있었다.
분명 기자들이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이아도 한 시간 일찍 가자고 했던 것이었고, 아델라인도 그 말에 따라 일찍 움직였다. 하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 기자들은 아델라인을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손을 들며 질문을 쏟아 냈다.
“여사님! 이번 사업자 선정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요소는 무엇입니까!”
“루멘시아 백작가에서 낮은 이익률을 제시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 질문들의 향연을 마주한 아델라인은 잠시 얼어붙었지만, 이내 기자들의 질문을 무시하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을 거라 예상한 회의실 안에는, 예상외로 커피 향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커피 향의 주인은…….
“아, 오셨습니까. 로피츠 여사.”
“커크만 위원님. 일찍 오셨네요.”
“기자들을 상대하기에는 말주변이 없어서.”
한 손에 잔을 든 커크만이 아델라인을 향해 먼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하자, 아델라인도 따라서 인사했다. 커크만이 잔 하나를 찬장에서 꺼내 아델라인에게 건네 보이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받아들었다.
커크만은 아델라인이 든 잔에 커피를 채우며 입을 열었다.
“그린우드 부의장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는데, 레이크 양은 결국 로피츠 공작가에 거둬졌군요.”
“…나이아를 아시나요?”
“훌륭한 인재입니다. 남는 시간에도 다른 교수들의 수업을 청강하며 지식을 쌓아 나갔지요. 학생들 대부분은 공부에 뜻이 없어 보였지만, 그녀만큼은 지식을 위해 아카데미에 온 것 같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커크만은 그리 말하며 잔을 홀짝였다. 잔주름이 자글자글한 커크만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깃들어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인 커크만은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누구의 손을 들어 주실 생각이십니까? 단둘이니 편히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커크만의 질문에, 아델라인은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돈을 싫어한다는 사람은 돈에 미친 사람이다, 라고 안드레이를 통해 들은 알렉스의 말 덕분에 어느 정도 가닥은 잡았지만, 아직 선택에 자신은 없었다.
“…교수님께서는?”
아델라인의 물음에, 커크만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도 고민 중이지요. 아직도. 그때처럼.”
“그러시군요. 저는 가닥은 잡았는데 확신은 못 하겠는지라, 함부로 말씀드리기 그렇네요.”
“스틸웰 공업이십니까?”
커크만의 물음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살짝 끄덕임으로써 답을 대신했다.
“하긴, 5%라는 낮은 이익률, 그리고 사회 공헌이라는 가치를 내건 루멘시아 백작가를 선택하셨다면 밝히기 어렵지는 않았겠지요.”
마치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늙은 교수의 말에, 아델라인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걸 본 커크만 교수는 아델라인을 향해 물었다.
“제안을 하나 하지요.”
커크만의 말에, 아델라인은 그를 바라봤다.
“레이크 양을 놓아주시지요. 그러면 이번에 여사의 뜻에 따라가겠습니다.”
“…….”
“여사의 시녀 자리도 충분히 좋지만, 그 자리에 있기에는 나이아의 능력이 아깝습니다. 들어올 때는 성적으로 인해 문학과로 들어왔지만, 공학 계열의 많은 교수가 아직 그녀를 기억하고 있어요.”
아델라인은 그 말에 솔깃함을 느꼈다. 아델라인의 손에 두 표가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이미 스틸웰 공업과 루멘시아 백작가에 두 표씩 찢어진 상황이니, 나머지 세표 중 두 표를 가져올 수 있다면 확정적으로 스틸웰 공업에게 사업권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이아에게도 좋은 이야기였다. 학업을 이어 나갈 수 있다면 나이아의 능력을 마음껏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델라인은 잔을 비운 뒤 커크만을 향해 빈 잔을 건넸다.
“커피 감사했습니다.”
“…거절이군요.”
“제 사람을 표 한 장에 바꾸기는 아쉬워서요. 나이아의 말도 들어봐야 하니, 지금 결정할 수는 없겠죠.”
아델라인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자 커크만은 아쉬운 감정이 역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커크만도 아델라인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곧이어 바깥이 북적거리며 다른 위원들이 하나둘씩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마일즈 의원은 위원장 자리에 앉으며, 다른 이들을 쭉 둘러봤다.
토론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미 저번 회의에서 나왔던 내용의 반복이었기에, 공허한 주장과 반박만이 계속될 뿐이었다. 결국,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모두가 마일즈 의원을 바라봤다.
“…그럼, 표결로 넘어가겠소. 지명하는 대로 거수해 주시면 되오.”
그리 말하며 마일즈가 의사봉으로 위원들을 하나씩 짚기 시작했다.
“페드로 위원.”
“루멘시아 가문을 선택하겠습니다.”
페드로를 시작으로 시작된 투표, 마일즈는 이미 토론을 통해 의견을 내비친 사람들부터 지목해 표결을 진행했다. 그러니 예상대로라면 두 표씩 가져가야 했다. 하지만…….
“리먼 위원?”
“…루멘시아 백작가를 선택하겠습니다.”
그 말에, 당장 옆에 앉아 스틸웰 공업에 표를 던졌던 위원은 물론이고 마일즈까지도 당황한 표정으로 리먼을 바라봤다. 그리도 격렬하게 스틸웰 공업을 밀어주던 리먼이 루멘시아 백작가에 표를 던진다는 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마일즈는 침착하게 회의를 진행했다. 그는 의사봉을 가볍게 두드려 주의를 집중시킨 뒤 계속해서 표결을 이어 나갔다.
“루멘시아 백작가가 세 표를 가져갔소.”
그러면서 마일즈는 아직 표결하지 않은 커크만과 아델라인을 번갈아 바라봤다. 커크만이 살짝 고개를 저어 아직 시간이 필요함을 밝히자, 마일즈는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로피츠 위원.”
“…스틸웰 공업을 선택하겠습니다.”
아델라인의 선택에, 루멘시아 백작가에 표를 던진 세 사람은 아쉽지만 여유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두 명 중 한 명의 표만 얻으면 되는 일이니까. 그때, 마일즈가 커크만을 바라보며 그를 호명했다.
“커크만 위원.”
모두의 시선이 커크만에게 향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전문가라 부를 만한 유일한 인물이었기에, 그의 의사 결정이 가지는 의미는 다른 이들보다 더 컸다. 커크만의 의견을 존중해 오며 회의를 진행했던 마일즈의 표까지도 좌우할 가능성 또한 작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커크만은 입을 열었다.
“스틸웰 공업을 선택하겠습니다.”
커크만의 대답을 들은 마일즈는 곧바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의사봉을 한 손에 쥐었다.
“그렇다면, 위원장도 스틸웰 공업을 선택하겠소. 네 표를 가져간 스틸웰 공업이, 수도 남부 재건 사업의 사업자로 결정되었음을 확정하는 바이오.”
땅. 땅. 땅.
루멘시아 백작가에 표를 던진 위원들이 항의하기도 전에 의사봉을 두드려 입을 막아 버린 마일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의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소. 이상.”
마일즈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표결 결과지를 챙기고 문으로 나갔다. 잠시 뒤, 기자들의 질문 소리가 복도를 채우고도 남아 회의실 안으로 새어 들어왔다.
아델라인은 짐을 챙기고 있는 커크만 교수에게 다가갔다.
“…저는 나이아를 내보낼 생각이 없었는데요.”
끄덕. 커크만은 단출한 짐을 담은 가방을 한 손에 들며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힘을 보탠 겁니다. 레이크 양의 존재가 제가 들고 있던 한 표보다 더 소중히 여겨지고 있다는 뜻이니. 물론, 리먼 위원이 태도를 바꿀 줄은 몰랐습니다만.”
커크만은 그리 말하며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그러니, 레이크 양을 잘 부탁드립니다. 여사님.”
그 말을 들은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나이아가 원한다면, 교수님께 보내 드릴게요.”
“그래 주신다면 감사히 거두겠습니다. 그럼.”
커크만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회의장을 나섰다. 아마 마일즈가 시선을 끄는 사이, 조용히 빠져나가려는 생각일 것이다.
커크만을 따라 문밖으로 나서자, 온갖 시끄러운 말소리들이 아델라인의 귀를 두드렸다. 복도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사이에는…….
“아델라인.”
기자들 사이에 티 안 나게 서 있던 알렉스도 있었다. 자신을 부른 알렉스를 발견한 아델라인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알렉스. 여긴 어쩐 일로 왔어요?”
“일하러 왔다가, 아직 있을까 싶어서 와 봤어요. 물론 다시 관사로 돌아가야 하기는 한데.”
“그렇구나… 그럼.”
아델라인은 주변을 둘러봤다. 이래서야 제대로 대화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기자들에게 또 붙잡힐 수 있었다. 잠시 고민을 한 아델라인이 알렉스를 바라보며 까치발을 들자, 알렉스는 머리를 살짝 숙이며 아델레인이 귓속말을 할 수 있도록 키를 맞춰 추었다.
아델라인은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마일즈 의원은 능숙하게 질의응답을 진행하며 기자들의 주의를 끌고 있었다. 그러다 잠시 눈이 마주치자, 그는 가 보라며 눈짓을 한 뒤 곧바로 질문을 받았다.
“여긴 너무 혼잡하니까, 밖으로 나갈까요? 슬슬 점심시간이기도 하고.”
아델라인의 속삭임에, 고개를 살짝 끄덕여 답한 알렉스는 아델라인의 손을 걸치듯 잡은 채 혼잡한 복도를 빠져나왔다. 기자들에게서 멀어지자,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손을 꼭 잡았다.
“한숨 돌렸네요. 사업자 선정도 끝났으니까요.”
“많이 힘드셨나요?”
“솔직히 말하면, 약간 버거웠어요. 나이아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쉽지는 않았고요.”
“그렇습니까?”
“그래도, 보람은 있네요. 그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아델라인은 씨익 알렉스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알렉스가 자신을 그린우드에게 추천해 주지 않았다면, 아마 스스로 무언가를 해 볼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 중간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과정 자체를 돌아보니 뿌듯했다.
“알렉스가 절 추천해 줬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직접 계속 일을 이어 올 수 있던 거고요.”
아델라인이 해맑은 미소를 보이자, 알렉스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회피했다.
“다행이군요. 힘든 일 시켜서 미움받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힘든 일 시킨 건 알고 있네요. 자, 그럼 알렉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어요.”
“뭔가요?”
알렉스의 물음에,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손을 놓고 팔을 뻗어 양쪽 볼을 붙잡았다.
“그때, 사고라고 합의했던 거 기억나요?”
아델라인의 물음에, 알렉스는 양 볼이 눌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점점 붉어지는 알렉스의 얼굴에서 나오는 열기가 아델라인의 손을 덥혔다.
“그 사고. 한 번만 더 일으켜 주세요.”
아델라인의 말에, 알렉스의 동공이 흔들리고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알렉스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 이미 양쪽 볼이 잡혀 버린 이상 피할 수도 없었다.
이런 모습. 알렉스의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의 피로가 가시는 듯했다. 알렉스의 난감해하는 표정은 정말 사진을 찍어 보존하고 싶을 정도였다.
충분히 알렉스의 당황한 표정을 감상한 아델라인은 그의 얼굴을 놓아주며 싱긋 웃었다.
“농담이에요, 농담. 많이 놀랐나 봐요? 자, 밥이나 먹으러 가요.”
아델라인은 그리 말하며 몸을 스윽 돌려 앞을 바라봤다. 그때, 아델라인의 어깨에 알렉스의 손이 얹어졌다.
아델라인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알렉스는 고개를 숙여 아델라인의 입에 입술을 맞췄다. 지난번의 짤막한 ‘사고’가 아니라, 몇 초간 이어진 의도적인 입맞춤이었다. 그 입맞춤이 끝나고, 알렉스의 목소리가 아델라인의 귓가를 간질였다.
“…이래도, 농담이라고 말할 거야?”
화악.
알렉스의 얼굴만큼이나, 아델라인의 얼굴도 붉어졌다. 자신이 해 달라고 했으니 할 말은 없었다. 결국,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점심이나… 먹으러 가죠.”
그리고 그건 입맞춤을 저질러 버린 알렉스도 마찬가지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둘은, 설렘과 어색함. 그리고 그 위에 얹어진 미묘한 행복을 느끼며 천천히 거리의 인파에 녹아들었다.
두 사람의 눈은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지 못했지만, 두 사람의 손만큼은 단단히 서로를 붙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