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77
77화 보이콧
“숄더 홀스터가 필요하시다고요?”
“왼쪽 팔하고 어깨가 살짝 뻐근해서, 동작을 바꿔 보면 좀 나을까 싶어서. 해병대 출신이니까 해적들한테 노획한 거 가지고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스워포드의 물음에, 본부소대 내무반에 들어온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자 스워포드는 같은 내무반을 쓰는 팩을 바라보며 물었다.
“팩! 저번에 빌려줬던 숄더 홀스터 아직 가지고 있냐?”
“아, 그거. 잠깐만 기다려 봐.”
가만히 누워 책을 읽던 팩은 몸을 일으켜 관물대를 뒤적거린 뒤, 가죽으로 만들어진 홀스터를 꺼냈다. 차이점이라면 알렉스가 쓰는 홀스터와는 달리 어깨끈이 달려 있었다.
알렉스는 셔츠 위로 홀스터를 착용한 뒤 팔을 움직여 봤다. 확실히 편하기는 했다. 특히 허리춤에 구급낭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팩에게는 더더욱 유용할 것 같았다.
“편하네. 이거 어디서 구하냐?”
“뭐, 무두장이에게 가져가서 만들어달라 하면 만들어 줄 텐데, 언제 쓰실 겁니까?”
“일단 추수제 당일에는 쓸 것 같아.”
그 말에, 팩은 다시 침대에 누워 책을 펼쳐 들며 물었다.
“친위대에서 협조 요청 들어왔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그때…….”
“데이트입니까?”
스워포드의 물음에, 알렉스가 시선을 회피했다. 귀가 살짝 붉어져 있는 모습을 본 팩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책으로 그 입가를 가렸다.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가지고 가서 쓰십쇼, 쌀쌀한 옆구리 녹이려면 피스톨은 치워야지요.”
“…….”
알렉스가 말없이 내무반을 빠져나가자, 스워포드는 팩을 바라보며 물었다.
“몇 개월 안으로 고백할 것 같냐?”
“아직 고백 안 했대?”
“안 한 것 같은데?”
스워포드의 말을 들은 팩은 책을 잠시 들여다본 뒤 입을 열었다.
“올해 지나가기 전에 한다에 5파운드.”
“그래도 내년 봄까지는 봐야 하지 않겠냐. 콜.”
* * *
선선한 가을이 찾아오자, 아델라인의 옷차림도 약간은 묵직해졌다. 오늘은 아무런 용건 없이 알렉스와 만나는 날. 아델라인은 마차 안에서 알렉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나이아에게 물었다.
“아직 떠오르지는 않는 거야?”
“뭔가 비유 같기는 한데, 수도의 서부에 있는 상업 구획들은 각각 그 기능이나 취급 품목이 정해져 있어서요. 떠오르는 게 많지 않네요.”
“그래?”
“네.”
“그렇구나…….”
나이아의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학다식한 나이아도 알지 못하는 장소는 어디일까, 점점 궁금해지기만 했다. 그리고 그 궁금증에 비례해 기대감도 커지기 시작했다.
아델라인은 기대감에 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걸 본 나이아가 아델라인에게 물었다.
“대위님께서 내신 거지요?”
“응. 추수제 때 가기로 한 곳이라는데.”
그 말을 듣자, 나이아는 곧 무언가를 알아챈 듯 미소를 띠었다. 미소를 본 아델라인이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이아는 아델라인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말했다.
“재미있는 곳이에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안 알려 줄 거야?”
“생일 선물 포장이 두껍다고 미리 풀어 드리고 싶지는 않아서요. 정 원하시면 알려 드릴까요?”
그 말에, 아델라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나이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바라봤다. 어느새 의회당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이아는 서류 가방을 챙기며 아델라인을 향해 말했다.
“본 의회당에는 제가 들어가지 못하니까, 공녀님께서 직접 들고 가셔야 해요. 질의응답 시간에는 대부분 질문이 커크만 교수와 마일즈 위원에게 향하겠지만, 공녀님께서 답하셔야 하는 질문도 있을 거예요.”
나이아는 그리 말하며 서류 가방에서 한 묶음의 종이를 꺼내 들었다.
“예상 질문과 그 대답들이니까 회의 시작 전에 한 번 훑어보세요. 한 시간 일찍 도착했으니까 그리 촉박하지는 않을 거예요.”
“고마워. 그런데 왜 한 시간이나 일찍 움직인 거야?”
“본 의회당의 구조 때문에요. 가서 보시면 알 거예요.”
나이아의 말에, 아델라인은 궁금증이 가득한 표정을 띠었다. 그리고 이내 마차가 의회당에 들어서고, 마차에서 내린 아델라인이 나이아에게 서류 가방을 건네받은 뒤 본 의회당에 들어가자,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의회당 내부의 모습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사당보다는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궁에 가까웠다. 자리 하나하나가 주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 없는 긴 벤치들이 배열되어 놓여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영국과 달리 1층만으로 이뤄져 있단 점.
자칫하면 자리가 부족해 뒤늦게 온 사람은 서서 본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구조였다. 본회의에서는 여러 안건을 한번에 다루는 만큼, 자칫하면 수 시간동안 서 있어야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었다.
아델라인은 내부를 쭉 살펴본 뒤, 이곳에 유일하게 앉아 있는 사람의 옆으로 다가갔다.
“좋은 오후입니다, 커크만 교수님.”
“일찍 오셨습니다, 로피츠 여사.”
“나이아가 일찍 가라고 해서요. 와 보니 이유를 알겠네요.”
“우리는 질문을 받는 입장이니,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의회당의 자리가 넉넉한 것도 아니고.”
“…….”
“20퍼센트. 그 표면적인 숫자로 시비를 걸고 항의하려는 이들이 많을 겁니다. 특히 남부당의 의원들이 말이지요.”
커크만은 그리 말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스틸웰 공업의 지속적인 재투자가 예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두 집단이 각각 내민 이익률 같이 단순하고 단편적이며 자극적인 정보들이니까.
“그리고 한쪽의 손을 들어준 이상, 화살이 비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각오는 했어요. 그리고 준비도 했고요.”
아델라인은 그렇게 말하며 서류 가방에서 나이아가 써 준 예상 질문들을 들어 보였다. 그걸 본 커크만이 손을 살짝 내밀었다. 아델라인이 그 손에 종이 뭉치를 건네자, 커크만이 주욱 훑어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레이크 양의 느낌이 물씬 나는군요. 문체에서.”
“많이 만나 보셨나요?”
그 질문에 커크만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제 수업에서는 청강생이었지만, 레이크 양의 수업을 지나가다 참관한 적은 있었지요. 그 수업은 마침 질의응답을 곁들이고 있었고.”
커크만은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며 나이아가 쓴 문장들을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한 3분의 1 정도 읽었을 즈음, 그의 입에서 질문이 나왔다.
“과반이 귀족 자제들이었던 수업에서 배경 없는 평민이 종종 처하는 상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델라인이 가볍게 고개를 젓자, 커크만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답했다.
“질의응답을 빙자한 모욕입니다. 그저 재미로, 한 사람을 궁지에 몰아가는 유흥이지요. 그런 풍습이라 부르기도 역겨운 것에 많은 여린 새싹들이 짓밟혀 펜을 꺾었지요.”
커크만의 얼굴에는 한 사람의 교육자로서 그 상황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었다는 무력함과 죄책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레이크 양은 달랐습니다. 끝까지 물어뜯었고, 끝까지 싸웠습니다. 덕분에 다른 이들에게 용기를 주었지요. 아직 아카데미에는 레이크 양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많이 힘들었겠네요.”
“그렇지 않다고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어쩌면 그런 질의응답에 질려 마치 몸을 피하듯이 과학이나 공학 수업에 점점 발을 들였겠지요. 그나마 공학은 숫자로 논하니까.”
커크만은 아델라인에게 예상 질문지를 돌려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여사를 생각해 많이 누그러뜨리긴 한 것 같지만, 아직 레이크 양의 느낌이 남아 있습니다. 계속 읽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아델라인은 고개를 끄덕여 답한 뒤, 예상 질문과 그 답을 읽어 내려갔다. 커크만의 말을 듣자, 종이 위에 적힌 질문들과 답변들에서 날카로운 느낌이 느껴지는 듯했다. 마치 나이아, 자신의 경험을 반영한 것처럼.
아델라인이 예상 질문과 답을 읽고 또 읽는 동안, 여러 명의 의원이 의회당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의원 중 한 명이 아델라인과 커크만 곁으로 다가왔다.
“좋은 오후일세.”
“어서 오시지요, 위원장님. 자리는 맡아 두었습니다.”
“고맙네, 커크만 위원. 여사도 간만일세. 그건 뭔가?”
“어서 오세요, 위원장님. 제 시녀가 써 준 예상 질문지입니다.”
“아, 그 아카데미 출신의? 맞나 커크만 위원?”
“네. 그렇습니다.”
“어디 한번.”
커크만의 옆에 앉은 마일즈가 손을 내밀자, 아델라인은 종이를 커크만 너머의 마일즈에게 건넸다. 그걸 잠시 훑어본 마일즈는 허, 하는 감탄을 내뱉으며 돌려줬다.
“준비가 잘 되어 있군. 탐날 정도로 유능하구만.”
“감사합니다.”
아델라인은 고개를 숙이며 다시 질문지로 시선을 옮겼다. 그때, 커크만과 자리를 바꿔 앉은 마일즈가 아델라인에게 물었다.
“요즘 대위는 어떻게 지내는가.”
“매닝햄 대위 말인가요?”
“그렇네. 저번에 같이 있는걸 봐서. 혹시 두 사람이 친한가?”
마일즈의 물음에, 아델라인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아직 노장의 눈썰미는 살아 있던 건지, 대답을 들은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잘 부탁하네, 뛰어난 장교이니.”
그 말을 들은 아델라인은 마일즈를 향해 질문했다.
“혹시 매닝햄 대위에 대해 잘 아시나요?”
“도움을 몇 번 받았지. 그중에는 제국 전체가 위태로웠던 적도 있었고.”
“…과거에 대해서는 잘 알려 주지 않아서요.”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거로 생각하네, 내 생각에는.”
마일즈는 그리 말하며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나도 한때는 그랬었지. 아내하고 아이들에게는 항상 밝은 이야기만 들려주려 노력했네.”
“밝은 이야기만요?”
“뭐, 파병 나가면 행군 중에 본 노을이 아름다웠다. 연대원 중 한 명이 성가대에 있었는데 노래를 정말 잘하더라. 종군 가족 중 한 부사관의 아들이 걸음마를 뗐다. 같은 것만 편지에 쓰고는 말이지.”
마일즈는 그리 말하며 씁쓸한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봤다.
“뭐, 그것도 한 3개월 지나면 쓸거리가 동나버리지만. 그래도 되도록 전장에 관한 이야기는 안 하려 했네. 흠. 내 생각에는 말이지…….”
마일즈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아델라인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마 자네에게 깊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 거로 생각하네.”
그 말을 듣자, 아델라인의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깊은 감정이라.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부끄러운 건 사실이었다. 뭐라 말해야 할지 생각하지 못한 아델라인은 결국 얼굴을 종이에 묻어 버렸다.
그사이 의원들이 하나둘 의회당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본 회의 시작 직전까지도, 의회당의 벤치에는 빈자리가 많이 남아 있었다.
“…이상한데.”
마일즈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욱 주변을 살폈다. 의회당에 들어온 의원들의 면면을 확인한 마일즈는 눈썹을 찌푸렸다. 자유당, 황색당, 그리고 무소속. 남부당 인원은 없었다.
“…설마.”
그때, 그린우드가 마일즈에게 다가왔다. 주위를 두리번거린 그린우드는 마일즈의 귀에 몇 마디 말을 속삭였다. 그러자 마일즈는 이마를 탁 짚었다.
아델라인은 두 사람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다. 대부분 속삭임은 의회당의 소음에 뭉개지고 흩어져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몇 개의 단어만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항의. 남부당. 보이콧. 기자 회견.
그 단어들을 조합한 아델라인은 커크만을 바라봤다. 커크만도 상황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남부당이, 보이콧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