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79
79화 성동격서
커크만은 서류철을 내밀며 상대방에게 말했다.
“수도경비대 간부와 육군 장교, 그리고 아카데미 졸업자의 보증이 있는 조서네. 원본은 제3 수도경비대에 있고.”
그 서류철을 받아든 상대는 남부당의 피츠허버트 백작. 커크만은 한때의 학우를 응시했다. 비록 학문을 배우는 목적도, 졸업 후 걸어 나간 길도 전혀 달랐지만, 그래도 한때는 둘도 없는 친우였다.
그렇기에 자신을 만나는 것 자체가 껄끄러운 이 상황에서도 축객령을 내리지 않은 것이라고, 커크만은 생각했다. 생각을 이어 나가며 오랜만에 만난 친우를 바라보는 사이, 피츠허버트는 서류철을 읽어 내린 뒤 커크만을 바라봤다.
“…황후께서 행하신 일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하네. 시기도 방법도 적절하지 않았다는 자네의 뜻에는 동의하네. 그러나… 당의 방침은 정해졌네.”
“그 방침이라는 것은.”
“…스틸웰 공업에 대한 검증일세. 자네 입으로도 스틸웰 공업이 깨끗하다, 말할 수는 없겠지.”
“지금 날 의심하는 건가?”
“자네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네. 자네뿐만 아니라, 마일즈 대장과 로피츠 여사에 대해서도. 하지만 스틸웰 공업이 얻은 표는 단지 세 표가 아니지 않나?”
“그러면, 자네는 루멘시아 백작가가 이 일을 진행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5퍼센트일세, 5퍼센트. 20 나누기 5. 간단한 산수이지 않나?”
“허, 1파운드의 20퍼센트가 5파운드의 5퍼센트보다 큰 줄은 몰랐군.”
“…….”
“내가 이런 사업을 한두 번 참여한 줄 아나? 자네는 나를 뭐로 보는 건가. 백마진과 탈세 기법 하나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갈 줄 알았나?”
“지금…….”
“아니면 그들과 같은 부류가 된 건가, 피츠허버트. 지난봄의 참사를 보고 배운 게 없었나? 아니면 부실한 건물에 살던 빈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건가? 어차피 투표권도 없으니?”
“…….”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고, 희생했네. 올해 졸업한 학생 하나는 유일한 혈육이 막을 수 있었던 참사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하느라 홀로 졸업식을 치렀네. 이래도 숫자놀음이 중요한가?”
커크만은 눈앞의 상대를 몰아쳤다. 영지민을 위해 학문을 배우고 적용하겠다는 도시공학도는 어디로 가고, 이제는 권력의 단맛을 놓기 꺼리는 우둔한 정치인만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일말의 부끄러움은 있는지, 피츠허버트는 커크만의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자네가 선택하게. 아니면, 내가 행동할 테니.”
“…….”
“어차피 연금 받을 만큼은 일했으니, 미련은 없네. 자네도 알잖나. 장성 포기한 대령만큼 무서운 게 학장 포기한 교수라는 것을.”
커크만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뒤 집무실을 나섰다. 문고리를 잡고 당기며, 그는 한때의 친우를 바라봤다.
“본회의 재개 시간은 알겠지. 뜻이 있으면 오게. 찬성표를 던지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
* * *
“…으음. 지금이.”
아델라인은 눈을 슬며시 떴다. 시계는 알렉스의 집무실에 들어온 때로부터 한 시간 정도 지난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알렉스는 잠깐 어디 간 건지 자신만 홀로 이 방에 남아 있었다. 아델라인은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 올렸다. 따듯하고 포근한 이불에 싸여 있는 건 정말 좋았다. 마치 알렉스의 품에 안긴 느낌…….
“……!”
그 생각을 하자 얼굴이 화악 뜨거워졌다. 허겁지겁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나온 아델라인은 얼굴을 손에 가져다 대며 열기를 식히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잠시 얼굴을 식히고 나니, 어지러워진 이부자리가 눈에 띄었다.
아델라인은 서둘러 이불을 개어 놓은 뒤 방 안을 서성였다. 다시 침대에 앉기엔 약간 부끄러웠다. 아델라인은 시선을 돌려 알렉스의 책상을 바라봤다.
아델라인은 주위를 두리번거린 뒤 알렉스의 의자에 앉았다. 의자에 앉았을 뿐인데, 집무실의 풍경이 다르게 보였다. 아델라인은 신기함을 느끼며 알렉스의 자세를 따라 해 봤다. 절도 있지만, 정작 그 손길은 부드럽고 상냥한.
아델라인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책을 바라봤다. 자신이 배우고 있는 군사학 서적이었다. 표지가 다른 걸 보니, 알렉스가 가지고 있는 구판인 것 같았다.
책을 펼치자, 한 장 한 장 공간을 수놓은 필기와 메모들이 아델라인을 반겼다. 그 책장들을 넘기는 아델라인의 손에 새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모서리의 부드러운 감각이 느껴졌다. 날카로운 종이의 모서리가 무뎌질 정도로 노력했다는 게, 이 한 권의 책만으로 느껴졌다.
“…바보 같네.”
이렇게 생각하니, 저번에 알렉스가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이 보였던 태도가 철없이 느껴졌다. 국경에서 복무하는 와중에도 열심히 공부해서 이룬 결과일 텐데, 자신은 그저 알렉스가 ‘잘나서’라고 치부해 버렸으니까.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군사학』 책을 계속 훑어봤다. 직접 적은 주석이 곳곳에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하나하나 그 주석들을 읽어 보자, 아리송했던 부분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문이 열렸다. 아델라인이 책에서 시선을 거두자, 알렉스가 아델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어났네요. 잘 잤어요?”
“덕분에요. 물론 일어나니까 혼자 있어서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요.”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잠시 자리를 비웠어요. 그나저나…….”
알렉스는 아쉬운 듯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슬슬 다시 의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알렉스는 아델라인이 이번에도 헛걸음하는 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 걱정을 눈치챈 듯, 아델라인은 알렉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 마요, 잘 될 거에요. 물론… 이렇게 말하는 저도 걱정되기는 하지만.”
아델라인은 멋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알렉스가 아델라인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바래다줄게요. 관사 앞에 마차가 기다리고 있어요.”
“고마워요.”
아델라인은 알렉스의 손을 맞잡았다. 사람 없는 복도를 지나 정문으로 나가자, 아델라인의 마차가 나이아를 태운 채 기다리고 있었다.
아델라인은 계단을 밟고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알렉스는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일 봐요. 숙제하고 시험 잊지 말고요.”
지금 당장 눈 앞에 펼쳐진 복잡한 상황과 동떨어진 알렉스의 말을 듣자, 어째서인지 평온함이 느껴졌다. 오늘 일이 뜻대로 안 풀려도, 내일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아델라인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초조함을 흩어 버렸다.
“알겠어요. 내일 봐요.”
아델라인이 창밖으로 미소를 지으며 답하자마자, 마차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델라인은 잠시 알렉스를 향해 손을 흔든 뒤, 마차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멍을 때리자, 어느새 마차는 의회당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려 나이아와 함께 의사당 안으로 들어가자, 복도에서 다른 의원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던 마일즈가 아델라인을 발견했다.
“안에 들어가 있게. 커크만 교수가 기다리고 있네.”
“네.”
아델라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안으로 들어갔다. 마일즈의 말대로, 커크만은 몇 시간 전 앉았던 자리에 앉아 자료를 보고 있었다.
말은 없었다.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재개 시간이 다가오자 자유당과 황색당 의원들이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의장 자리에 앉은 그린우드의 표정이 보여 주듯, 남부당의 의원들은 한 명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좋은 친구였는데 말이지.”
커크만은 고개를 돌려 의원들의 얼굴을 둘러본 뒤, 실망감이 담긴 얼굴로 중얼거렸다. 피츠허버트 백작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마일즈가 아델라인의 옆에 앉는 것을 마지막으로, 의원들의 발길이 그쳤다. 잠시 뒤, 로피츠 공작이 의사당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아델라인을 흘긋 본 공작은 그녀를 없는 사람 취급하듯 잠깐의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서기는 의원들의 수를 세시오.”
공작의 말에, 옆에 앉아 있던 그린우드가 그에게 말했다.
“아직 시간이 안 되었습니다. 의장님.”
“남부당 당수가 마일즈 의원과 이야기를 나눈 뒤 황궁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이 이상 기다림이 필요한가?”
공작의 물음에, 그린우드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다섯 명, 고작 다섯 명이 부족해서 일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부당은 대화를 거부했고, 협력의 손길을 내쳤다.
그린우드에게서 더 이상의 반론을 듣지 못한 공작은 서기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정해진 절차를 밟아 나갔다.
“서기는 의원들의 수를 세시오. 진행에 필요한 정족수가 확인되면, 본 회의를 진행하겠소.”
공작의 엄중한 말에, 서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원들의 수를 세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정해진 결과였다. 의원들의 출석을 증명하기 위해 출입구 옆에 걸어 놓는 명패는 서기의 손에 빠르게 걷어지기 시작했다.
1. 10. 50. 서기의 목소리가 침묵에 빠진 의회당 안을 울렸다. 다음에 나올 말은 100. 본회의 진행에 필요한 전체 의석의 3분의 2인 100명을 의미하는 100이었다. 그러나 그 숫자를 들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하고 있었다.
그때.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벌컥! 열렸다. 그러자 명패의 수를 세던 서기에 쏠린 시선이 일제히 의회당의 문을 향했다.
“…혹시 늦었습니까.”
피츠허버트 백작. 그리고 그 뒤에 선 다섯 명의 의원들.
그 면면을 알아본 의원들의 술렁임이 의사당을 채웠다. 잠시 뒤, 공작은 의사봉을 두들기며 의회당을 조용히 시켰다.
“정숙. 늦게 온 의원들은 명패를 걸고 착석하시오. 그 뒤에 출석을 진행하겠소.”
공작의 지시에, 피츠허버트를 비롯한 여섯 명의 남부당 의원들은 명패를 건 뒤 빈자리에 앉았다. 마지막 의원까지 자리에 앉은 걸 확인한 공작은 서기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100, 101. 총 출석 의원 수는 101명입니다.”
서기의 확인이 끝나자, 공작은 의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의사 결정에 필요한 인원이 확보되었으므로, 본회의를 진행하겠소.”
땅. 땅. 땅.
공작은 의사봉을 두들긴 뒤 의회당의 사람들을 주욱 둘러봤다. 그러나 한 방향에서 공작의 시선이 살짝 더 오래 머물렀다.
공작의 시선이 잠시 머문 곳에는, 아델라인이 긴장한 표정을 띄운 채 앉아 있었다.
걱정 어린 시선이 향했지만, 이내 아델라인이 공작을 돌아보자 공작은 다시 시선을 거뒀다. 마치,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