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85
85화 주변 정리
어느새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가로수에 몸을 기댄 휘태커는 담뱃대를 물고 뻐끔뻐끔 연기를 피어 올렸다. 어느새 쌀쌀해진 날씨에,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세우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재건사업이 시작되었다 해도, 제3 수도경비대가 위치한 수도 남부는 아직 불에 탄 건물들이 남아 있어 더욱 황량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그 풍경을 눈에 담고 있을 때, 진녹색 제복을 입은 알렉스가 휘태커에게 다가왔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언제나 바쁘지 원. 다행히 수도사단 연대장들이랑 기수로 비벼서 밀릴 일은 없으니 좀 낫지만.”
“주변의 커피 하우스로 들어갈까요?”
“제대로 된 커피 하우스 찾으려면 한참 걸어야 해. 그냥 걷자고. 책상 앞에 앉아 있으려니 힘들다.”
휘태커가 담뱃대를 물고 걷기 시작하자, 알렉스는 그 옆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건물을 무너뜨리는 굉음이며, 작업자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고함들이 귀를 계속 두드렸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개의치 않고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수도 남부 상황은 어떻습니까?”
“좋지. 역시 일자리가 있으면 상황이 좋아져. 질 좋은 일자리에, 여사께서 수도 동부의 기업들과 손을 잡고 아동 복지랑 교육 안건까지 내놓았다며? 이런 상황이면, 제정신 박혀 있는 사람은 범죄에 손대진 않지.”
“동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스틸웰 공업이 적극적인 행동을 약속했으니. 아마 수년 내로 효과를 볼 테지요.”
“나아져야지. 그래.”
휘태커는 그렇게 말하며 담배 연기를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잠시 흩어지는 연기를 바라본 그는 알렉스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질문을 했다.
“오늘 나 불러낸 이유는 뭐냐.”
“…듣고 거절하셔도 됩니다. 무리한 부탁이란 건 아니까요.”
“그런 부탁을 할 거면 적어도 12년 묵힌 위스키 한 통 정도는 들고 와서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니냐?”
휘태커의 말에, 알렉스는 쓰게 웃었다. 일단 들어 보겠다는 심술궂은 말투였다.
“이번 연합 훈련에, 파견 중대도 참여합니다.”
“너네는 왜 가는 거냐? 프룬츠베르크까지 간다며.”
“일을 끝마치러요.”
알렉스의 말에, 휘태커는 잠시 곰곰이 단서를 조합해나갔다. 그러다 이내, 알렉스를 휘둥그레한 눈으로 바라봤다. 알렉스가 마쳐야 할 일이라면 떠오르는 건 단 한 가지뿐이었다.
“오베른에 있는 거냐. 세이드는.”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보름달 계획을 진행하던 연구진 일부가 오베른에서 계속 연구를 하고 있다고 정보국에서 확인했습니다.”
“성 조지 사건하고 방화범 관련 마법 말이지.”
휘태커의 말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스에게서 이전부터 이야기를 들어왔던 휘태커는 머릿속으로 정보를 정리한 뒤 알렉스를 향해 운을 띄웠다.
“그러면 저번에 그 베른하르트제 목걸이도.”
“아직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안에 대해서는.”
알렉스의 말에 담긴 의도를 알아챈 휘태커는 담뱃대를 뒤집어 털어 낸 뒤 코트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담배를 피우며 듣기에는 너무 묵직한 이야기였다. 만약 황후를 비롯한 고위층이 얽혀 있는 일이라면?
지금 당장에라도 손을 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그러나 알렉스를 보자, 혼탁했던 머릿속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이미 한 번 빚진 목숨이다.
“내가 뭘 해 주면 되겠냐. 들어는 볼게.”
그 말에, 알렉스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장비 몇 개만 폐기 처분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레이크 하사가 다룰 수 있을 겁니다.”
제3 수도경비대의 장비를 장부상에서 폐기 처분, 혹은 작전 중 분실로 처리해서 안드레이에게 전달하는 것.
알렉스의 부탁에, 휘태커는 고민을 이어 갔다. 확실히 제1 수도경비대 관할 구역 안에 있는 로피츠 공작저를 대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알렉스의 제안은 그가 할 수 있는 행동 중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휘태커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그걸로 충분하겠냐?”
“언제나 충분한 상황을 마련할 수는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래. 리스트 보내 주면 한번 마련해 볼게. 그렇다고 라이플, 판금 갑옷, 기마순찰대 말 한 필. 이딴 거 써두면 개머리판으로 두개골 쪼개러 간다.”
“감사합니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어디 가는데? 무슨 약속이라도 있냐?”
휘태커의 물음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붉어진 귀는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정확히 알려 주었다. 그의 귀를 흘긋 본 휘태커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을 하러 가는지, 언제 가는지는…….”
휘태커는 알렉스의 얼굴을 본 뒤 한숨을 푹 내쉬었다. 표정만 봐도 뻔하기 그지없었다.
“안 말했겠지. 어휴, 이 머저리 같은 놈.”
휘태커의 말에, 알렉스는 그를 바라보며 가볍게 항변했다.
“머저리 소리까지 들을 일입니까, 그게.”
“이래서 결혼 안 한 놈들은.”
휘태커는 한숨을 쉬며 담뱃대를 물고 불을 붙였다.
“미리 말해야, 그래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생기지 않겠냐. 그게 상대방에게는 얼마나 소중한데.”
“…그렇습니까?”
반쯤 의심하는 표정으로 묻는 알렉스의 모습에, 휘태커는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두어 번 두드렸다.
“야, 만약 너가 떠나기 전날 밤에 저 프룬츠베르크 공국에 작전 뛰러 가… 이것도 안 말하겠구나. 나 연합 훈련 참가하러 가요. 하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겠냐? 당장 언제라도 만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던 사람이 사라졌는데?”
“…….”
“그건 또 다른 종류의 상황이라고. 생각나도 찾아갈 수 없고, 못 해 준 거 떠오르면 더 후회되고, 소식 안 들려오면 더 걱정되고. 물론 일찍 말해 준다고 아예 안 그러는 건 아닌데, 준비할 시간이 없으면 더더욱 그런다니까?”
“연합 훈련으로 알고 있을 텐데 그리 걱정하겠습니까.”
“니 제복부터가 레드 코트가 아니잖니? 그린재킷 메뚜기 놈아. 단순하고 안전한 훈련 하러 간다고 하면 퍽이나 순순히 믿어 주겠다. 착하기는 해도 맹한 인상은 아니던데.”
휘태커의 말에, 알렉스는 앓는 소리를 내며 하늘을 바라봤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델라인이면 분명 자신의 말을 순순히 믿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결국 가장 가까이 있는 안드레이에게 질문할 것이고, 그러면 결국 진실에 근접하는 건 시간문제.
그제야 알렉스의 표정이 진지해지자, 휘태커는 한숨을 쉬며 알렉스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후. 내뱉었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기습을 받은 알렉스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호흡이 흐트러졌다.
쿨럭쿨럭.
몇 번 기침을 한 알렉스는 벌게진 눈으로 휘태커를 노려봤다. 그러나 알렉스에게 밀릴 군번이 아닌 휘태커의 눈빛을 받은 알렉스는 반쯤 쪼그라들며 시선을 회피했다.
“담배 안 피는 거 알면서…….”
“아무튼, 미리미리 말해 두라고. 그편이 양쪽에 좋으니까.”
“…알겠습니다.”
알렉스는 힘없는 대답을 끝으로 대로변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보며 휘태커는 한숨을 쉬었다.
“자, 그럼 남는 카빈이나 폐기하러 가 볼까…….”
* * *
“자, 이것으로 오늘 회의를 마치겠소. 다들 다음 회의까지 각자 맡은 부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부탁드리오.”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에 다시 뵙도록 하지요.”
마일즈 의원의 말에, 회의실 안에 있던 커크만과 아델라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겼다. 세 명을 제외한, 일신상의 이유, 건강상의 이유로 나머지 네 명의 재건위원이 사임하자, 크지 않은 회의실이 휑한 느낌이 들었다.
아카데미 교수 일도 겸하는 커크만은 부지런히 두 사람에게 인사하며 회의실을 나섰고, 아델라인도 그 뒤를 따라나서려 했다.
그때, 뒤에서 마일즈가 서류 가방을 들어 보이며 아델라인을 불렀다.
“로피츠 여사, 잠시 이야기 좀 나누지.”
“네, 무슨 일이시죠?”
아델라인이 멈춰 서서 마일즈를 바라보자, 그는 커크만이 열고 나간 문을 닫으며 아델라인을 마주했다.
“좀 알아봤네. 여사가 물어본 일에 대해서.”
마일즈의 말에, 아델라인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알렉스가 위험한 임무를 맡은 걸까? 아니면 오랫동안 머나먼 곳으로 향해야 하는 걸까?
아델라인의 심각해진 표정을 본 마일즈는 가방에서 한 장의 서류를 꺼내어 그녀에게 건넸다.
“파견 중대가 1년 넘게 본대에서 떨어져 나와 있었으니, 전술 훈련의 결핍이 우려되었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나 보더군. 육군 본부 내에서.”
“그런가요?”
“이게 대략적인 예산이나 규모는 정해 뒀어도, 세부적으로 어떤 부대가 동원될지는 상황 따라 다르기에 막판에 조정이 이뤄진 것 같네.”
그 말을 들은 아델라인은 마일즈가 건넨 서류를 바라봤다. ‘연합 훈련 파견군단 편제’라고 적힌 조직도에는 지휘 체계와 주요 장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가장 오른쪽 끝에는…….
[- 라이플여단 파견대.– 제1 대대. 아서 스튜어트 대령.
– 수도 파견 중대. 알렉스 매닝햄 대위.]
알렉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혹시나 잘못된 게 아닐까 다시 한번 꼼꼼히 조직도를 훑어봤지만, 여전히 알렉스의 이름은 조직도에 넣어져 있었다. 아델라인이 직접 알렉스의 이름을 본 걸 확인한 마일즈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델라인은 마일즈에게 조직도를 돌려주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다행히 위험한 일은 아니었다.
“언제쯤 가서 언제쯤 돌아올까요?”
“아마 3주 뒤에는 출발하지 않을까 싶네. 돌아오는 건… 내년 1월 초중순에 돌아올 거로 생각하네. 연말연시를 함께 보내지 못하게 된 건 유감일세. 그래도 별 탈 없이 돌아올 거로 생각하네.”
그 말을 들은 아델라인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물론 알렉스가 먼 길을 떠난다는 건 걱정되는 일이긴 하지만,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보다는 나았다.
적어도 알렉스가 위험할 일은 없으니까.
“감사합니다, 알아봐 주셔서. 그럼 가 보겠습니다.”
마일즈 뒤에 놓인 벽시계를 본 아델라인은 어느새 약속 시간이 다가왔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은 알렉스와 연극을 보기로 한 날. 아델라인은 자신의 짐을 챙기고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무얼, 동료를 위해 이 정도는 힘써 줄 수 있지. 어서 가 보게. 나는 어차피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으니.”
마일즈는 회의실을 나서는 아델라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저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특히나 힘든 거짓말이었구만…….”
마일즈는 그렇게 말하며 가방에서 서류철 하나를 꺼냈다.
[CONFIDENTIAL]마치 과시라도 하듯 붉은 도장이 큼지막하게 찍혀 있는 서류철 안에는. 자유당 의원의 신분으로도 접근할 수 없었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전례가 없었던, 앞으로도 없으리라 예상되는 계획에 관한 내용이.
이걸 손에 넣게 된 건, 온전히 선배에 대한 필즈먼의 예우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그래도 아직 이런 접근법이 먹히는구나, 생각하고 미소 지었지만, 알고 나니 잊고 싶어졌다.
“차라리 모르면 속이 편했을 것을…….”
마일즈는 그렇게 말하며 여송연을 꺼내,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그 서류철에도 함께 불을 붙였다. 종이가 타며 만들어진 매캐한 연기는 담배 연기와 그리고 노익장의 한숨과 섞여, 자연스럽게 창문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