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were bigger than I thought RAW novel - Chapter 9
9화 솔로들 다 모여 봐
황궁 한편, 아무도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지 않는 외진 곳에 자리한 공터.
평소라면 야간 근무를 마친 대원들이 주간 근무에 투입되는 대원들과 교대하고 아침 식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들이 비바람을 피하던 천막은 해체되어 마차에 실렸고, 중화기는 총구와 공이에 봉인을 붙인 채 차곡차곡 정돈되었다.
알렉스는 대원들과 함께 천막의 천을 접으며 맞은편에서 같이 일하는 대원에게 물었다.
“라이미.”
“상병 라이미.”
“너는 집 가면 뭐 할 거냐.”
“가면 뭐, 가족들이랑 이야기도 나누고 그래야죠. 저번 겨울에 한 번 만나고 못 만났으니까요. 중대장님께서는?”
“나야 뭐, 갈 집도 없으니 이 주변에서 쉬어야지.”
아침도 못 먹고 점심까지 일하고 있었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일단 그들은 지루한 근무에서 벗어나 가족들 곁으로 돌아간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상황이었다. 누군가는 고작 하루 이틀 있다가 다시 머나먼 길을 돌아와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재회라는 것은 얼마나 달콤한가.
알렉스는 그 사실을 알기에, 빈 나무 상자 위에 올라가 대원들을 집합시킨 뒤 간단하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자자. 각자 주말 끼고 넉넉잡아서 9일 뒤에는 돌아와야 한다는 건 다들 알지?”
“네!!”
“그래. 늦을 것 같으면 연락 먼저 하고. 각자 푹 쉬다 올 수 있도록! 해산!”
“해산!”
알렉스의 짧은 당부가 끝나자, 각자 이런 때를 위해 보관해 둔 A급 제복을 입고 짐을 챙겨 황궁의 후문으로 삼삼오오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족들이나 연인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는 법.
알렉스와 독신들은 지도를 펼쳐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자, 우리는 어디 좋은 여관방이나 하나 잡아서 푹 쉽시다. 간만에 지붕 있는 데서 잠 좀 자야지.”
“수도 근교에 좋은 온천이 있다는데, 거기로 갈까요?”
스워포드의 제안에, 알렉스는 솔깃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 어차피 마차 타고 가면 한 서너 시간쯤 뒤에는 도착할 거고.”
“거, 그럽시다. 간만에 몸 좀 풀어야 하지 않겠슴까.”
“아, 가는 김에 레이크 하사도 데리고 갑시다. 원래 어디 다쳤을 때는 푹 쉬는 게 답이라는데. 가서 요양이라도 시켜 주죠.”
“그러지 뭐.”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 사귀는 사람 하나 없는 이 불쌍한 영혼들은 휴식을 갈구하며 가까운 온천이 있는 바스를 목적지로 잡았다.
총인원, 장교 하나 부사관 둘 병사 여섯 민간인 하나.
총 열 명으로 이루어진 솔로들의 행진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다그닥, 다그닥.
“지금 가는 곳이 바스라는 곳이었나?”
“네. 그렇습니다.”
크고 화려한 공작가의 마차에, 탄 사람은 오직 둘뿐이었다.
아델라인은 창밖을 내다봤다. 번잡하고 사람 많은 수도의 풍경은 어디로 가고, 밀밭과 과수원이 끝없이 들어차 있는 농촌이 눈에 들어왔다.
“바스라는 곳에 대해서 좀 들려줄 수 있어?”
“아, 네. 바스라는 곳은…….”
아델라인의 질문에 나이아가 설명을 시작했다.
먼 옛날 뛰어난 문명을 이룩한 고대 제국이 있었는데, 그 제국이 속주 곳곳에 수도교와 목욕탕 같은 기간 시설들을 설치했다.
역시 소설 속 세상이라, 딱 로마를 떠올리면 얼추 들어맞았다.
고대 제국이 무너지고, 그 문명의 잔재는 제국의 영향력이 사라진 땅에 남아 다른 야만인들의 손에 들어갔다.
대부분 수도교와 욕탕들은 야만인들에 의해 이리저리 해체되어서 고작 집 같은 것을 짓는 데 사용되었지만,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글로나스 제국은 이 수도와 근교에 사는 제국민들의 손을 잡고 점차 세력을 확대하며 고대 제국의 유산과 도로망을 알뜰히 사용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지금에 와서는 고대 제국의 뒤를 잇는 패권국으로 성장했으니 말 다 했지.
그러면 이 나라는 프랑스인 건가, 영국인 건가? 하긴, 소설 속 세상이니 뭐 상관없나.
바스. 그러고 보니 어디 들어 본 이름이었는데.
“…그렇게 해서 바스는 고대 제국의 본토였던 대륙 남부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그때의 목욕탕과 수도교가 남아 있는 지역입니다.”
“아, 고마워. 좋은 설명이었어.”
역시, 나이아를 들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델라인의 몸에 빙의되기 전의 사용인들은 분명, 이 모습을 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나이아는 아예 자신이 새로 뽑은 사람이니 상관이 없었다.
그러니까 마음껏 질문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뜻이지!
“저기가 바스인 거지?”
“네, 맞습니다.”
저 멀리 도시가 보였다. 규모는 작지만 활기차고 화려해 보였다.
“온천이라…….”
그러고 보니 현실에서도 온천에 가 본 적이 꽤 오래전이었지 아마.
그녀는 기대를 품고 미소를 지었다.
“뭐, 황궁에서 여는 연회에 참석하기 전에 미모를 가꿀 겸 가는 거지만 그래도 기대되네.”
아델라인은 자신이 정리한 용돈 기입장을 공작에게 건넸을 때의 장면을 회상했다.
용돈 기입장을 내밀자, 공작은 말없이 바스로 가서 휴양을 하고 오라고 했지.
그때의 공작은 꽤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라 단정 짓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처음에 봤을 때는 ‘아, 부전여전이구나’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지만, 알렉스의 정체가 반전이 있었던 걸 생각하면 뭔가 로피츠 공작에게도 반전이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 다 도착했습니다. 바스의 별장입니다.”
마부가 마차를 멈춰 세운 뒤, 마부석과 연결된 창으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때, 아델라인은 볼 수 있었다.
마부의 챙 넓은 밀짚모자 아래로 보인, 세이드의 얼굴을.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그의 얼굴이 나오자, 머릿속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왜 세이드가 공작가에서 마부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안 내리시나요?”
먼저 마차에서 내린 나이아가 아델라인을 향해 묻자, 아델라인은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뒤에 따라오는 사용인들과 짐마차들을 훑어보는 척 다시 한번 마부를 바라봤다. 그래. 저거 세이드 맞아. 맞다고!
그때, 세이드가 아델라인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희미한 미소를 슬쩍 지어 보였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소설에서 본 세이드가 저지른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저, 저거 완전 상또라이였는데. 여주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었는데.
그를 직접 만나러 가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의 용기는 어디로 가고, 아델라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때, 나이아의 목소리가 그녀를 깨웠다.
“아, 매닝햄 대위님!”
나이아가 길 건너편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며 외치자, 건너편에서도 손을 들어 인사해 보였다.
알렉스가 스워포드와 함께 지도를 든 채로 인사하고 있었다. 사복 차림이라 발견하는 게 살짝 어려웠지만, 그래도 알렉스의 저 외모는 군계일학이라 불릴 정도로 이기적이었다.
낡고 칙칙한 진녹색의 제복이 아니라 주변에 지나다니는 신사들과 비슷한 정장을 입은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었다.
개중에는 남몰래 얼굴을 붉히는 여성들도 있었다. 옆에 있는 스워포드도 어느 정도 상위권에 놓을 법하지만, 알렉스가 옆에 있으니 평범해 보였다.
그러나 나이아는 그런 건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고 그와 인사한 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델라인은 그런 나이아에게 무심한 척 물었다.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아는 사람인가?”
“네, 제 오라버니의 상관이었던 알렉스 매닝햄 육군 대위입니다. 여러모로 도움을 받아서.”
“흠…….”
일단 상또라이 세이드가 마부로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지금 당장 알아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일단 뭐가 되었든 소설 전개 이전의 속을 알 수 없는 세이드와 단독으로 한 공간에 있는 건 자살행위에 가까운 짓이었다. 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별장 안에다가 먼저 짐을 풀어놓고 있도록. 나는 잠시 주변 산책을 갔다 올 테니. 나이아, 짐을 챙겨서 따라와.”
“아, 알겠습니다.”
사용인에게 간단한 지시를 내린 그녀는 나이아와 함께 길 건너편으로 건너갔다.
자신에게로 아델라인이 다가오는 걸 본 알렉스는 지도를 접고 그녀를 향해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자, 그녀의 눈에 알렉스의 손목에 감긴 붕대가 들어왔다.
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은 건가.
어쩌면 저 손목의 상처는… 그때 세이드에게 입은 걸까?
“안녕하세요, 매닝햄 대위님.”
“안녕하십니까, 공녀님.”
그의 경계심 가득한 얼굴은 그녀 바로 뒤에 양산이나 비품들을 챙기고 따라오는 나이아를 보자 살짝 누그러진 표정이 되었다.
그래. 이렇게 표정 좀 풀면 더 잘생겼잖아.
“나이아도 오랜만이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그래그래. 취직했다면서?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나이아랑 대화할 때는 그래도 온화한 표정을 짓는구나.
아델라인은 그런 그의 표정을 관찰하다가 이내 본론을 꺼냈다.
“지난번에 만났던 일 관련해서 할 이야기도 있고 한데. 혹시 에스코트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러자 알렉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가… 나이아를 의식해서인지 다시 풀어졌다.
“알겠습니다.”
자신이 아닌 나이아를 보고 내린 결정인 게 뻔히 보였지만, 그녀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일단, 그와 함께 있는 게 세이드와 함께 있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저벅. 저벅.
얼마간 바스의 거리를 걸었지만, 알렉스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는 아델라인의 옆을 지키며 반 발짝 거리를 두고 걸었다. 그녀가 오른쪽으로 몸을 틀면 그도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고, 그녀가 왼쪽으로 발을 돌리면 그도 왼쪽으로 발을 돌렸다.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그들을 바라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디 들어가서 차나 한잔할까요?”
“…원하는 대로 하시지요.”
기껏 쉬는 날에 귀찮은 상대를 거절도 못 하고 끌려다니느라, 짜증 섞인 얼굴을 하고 있는데도 멋있는 그를 사람들이 쳐다보기 바빴다.
“그럼.”
수많은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가장 가까운 찻집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세 사람. 혹시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있나.”
한참은 어려 보이는 아델라인이 반말로 말해도, 늙수그레한 이 찻집의 주인은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2층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2층의 창가 쪽 방을 안내받은 셋은 안으로 들어갔다.
“무엇으로 준비해 드릴까요? 우리 찻집에서는 저번 티 레이스에서 준우승한 레인보우호가 실어 나른 녹차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것으로…….”
“잠깐.”
아델라인이 주인장의 추천대로 주문을 하려 하자, 알렉스가 손을 들며 막았다.
“레인보우호는 이번 티 레이스에서 순위권에도 못 든 걸로 아는데.”
알렉스의 말에, 주인장의 이마에서 땀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품질은…….”
“15위. 한 120일 걸렸나. 처참한 성적표지.”
그는 그렇게 말한 뒤, ‘아쌈으로.’라고 말하며 그 주인장을 돌려보냈다.
“…티 레이스에 관심이 많으신가 보네요?”
“선박 기술은 군부에서도 중요하게 지켜보니까요. 많은 자금이 투자되는 영역이기도 하고. 귀족 가문들에서도 중요시하지 않습니까? 특히 직접 투자했다면.”
그렇게 말하며 알렉스가 아델라인을 바라보자, 아델라인은 그제야 로피츠 공작가에서 티 레이스를 비롯한 여러 사업에 발을 걸치고 있다는 걸 떠올렸다.
“그렇…지요.”
“역시. 티 레이스 우승으로 얻는 이익은 그닥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나 보군요. 워낙 자산 규모가 크다 보니.”
우승이 우리 집안 배였나?
이렇게 되자 대화가 우스워졌다. 자기네 집안의 사업을 눈앞의 군인보다 모르는 자식이라니.
얼굴이 붉어진 아델라인은 헛기침을 한번 한 뒤 그를 바라봤다.
주문한 차가 다과와 함께 나오자, 알렉스는 찻주전자를 들고 자신의 잔에 따랐다. 잠시 차의 향을 즐긴 그는 각설탕 한 개를 찻잔 안으로 떨어트렸다.
겉으로 봐서는 각설탕 반 조각도 안 넣을 것처럼 생겨 놓고선, 그래도 설탕을 넣긴 하는구나. 아델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주전자를 받아 자신의 잔 옆에 두었다.
“우유는 안 넣으시나 봐요?”
아델라인이 우유를 먼저 반쯤 붓고, 나머지 공간에 차를 부은 뒤 각설탕 두 개를 넣으며 묻자, 알렉스는 차를 홀짝이다가 아델라인을 바라보며 답했다.
“습관입니다.”
단호하게 선을 긋는 듯한 모습에, 아델라인은 거리감을 느꼈다.
그녀는 잠시 밀크티를 홀짝인 뒤, 알렉스를 향해 물었다.
“바스에서 묵을 곳은 정해졌나요?”
“정해지겠지요. 어디 몸 누일 곳 하나 없겠습니까.”
아델라인은 그의 말에서 아직 그들이 바스에서 머무를 장소를 구하지 못했다는 걸 간파했다.
그러자 아델라인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세이드가 주변에 있어도 안심할 수 있는 방법이.
“그럼, 당신과 일행들을 우리 가문의 별장으로 초대해도 될까요? 방은 많습니다.”
“…….”
“지금 바스는 많이 복잡할 거예요. 황궁의 대연회가 시작하기 전 휴식을 취하며 외모를 다듬으려는 영애들이 많아서요.”
그러자 알렉스의 머릿속에서는 갈등이 일었다.
과연 아델라인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짓일까.
그가 우려하는 바를 잘 알고 있던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걱정 마세요. 이걸 가지고 뭘 부탁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저번에 말했던 것과는 관계없이 그냥 초대하는 겁니다.”
아델라인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머무를 곳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을 대원들이 떠올랐다.
그래.
잘못되어도 내가 책임지면 되니까.
“…알겠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대에 응해 줘서 고마워요. 머무를 준비를 해 둘게요.”
그래. 알렉스가 있으면 세이드도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겠지.